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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세미나에서 저희는 『몸 페미니즘을 향해』 2장의 정신분석학과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에 이어 카유아에 이르는 정신분석학의 흐름을 바탕으로 그로스가 이끌어가는 논의를 따라가 보았는데요, 일차적으로 정신분석학적인 내용들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독자들이 정신분석학을 어느 정도 안다고 전제하고 그 위에서 논의를 전개해나간 글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세미나 초반에 튜터 재림 선생님께서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정신분석학 개념과 사고틀을 설명해주신 덕분에 논의가 보다 원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장에서 저자 그로스는 “몸의 정신적 내부가 육체적 과정의 사회적인 각인을 통해 그 자체로 형성되는 방식을 탐구하고자” 합니다.(79) 이는 달리 말해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몸을 매개로 하여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를 탐구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정신분석학에서의 에고(자아)의 문제를 끌어오는데요,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의 정신을 이루는 에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프로이트에게 에고는 자연적이거나 선험적이지 않지요. 그것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에고에 관한 프로이트의 탐구는 에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물음에 바쳐졌지요. 우선 에고는 주체가 “자기 경험을 구성하는 전혀 다르고 이질적인 감각을 넘어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90) 그런데 이 과정이란 생물학적 질서 속에서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입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생후 6개월 무렵 거치게 되는 원초적 나르시시즘의 단계에서 유아가 어머니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같은 다른 주체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에고가 생겨납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에고가 형성되면, 유아는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지 못했던 자기성애에서 벗어나, 주체인 자신과 대상을 분리해 자신조차도 대상으로서 취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몸의 역할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로스는 프로이트가 에고의 형성에서 몸과 몸의 부위들을 중립적이지 않은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몸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은 몸이 에고의 형성에서 어떤 구성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겠지요. 프로이트에 따르면, 에고는 몸의 성감대 강도나 몸의 감각의 강도가 내재화된 이미지입니다. 에고는 몸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에고는 몸으로부터 강하게 규정되는데, 이 또한 그로스가 주장하는 바이지요. 사회적인 관계가 고스란히 정신에 반영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신과 사회를 매개하는 몸은 투명한 유리창처럼 정신과 사회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유의 역동성을 지니고 있어 정신이 형성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정신은 몸의 특수한 배치와 사회적 관계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해야겠지요.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라캉도 정신을 선험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 발생이 설명되어야 할 대상으로 다루었습니다. 거울 단계를 통해 에고의 형성을 설명하려고 한 시도가 이를 잘 보여주지요. 이런 맥락에서 라캉은 ‘상상계적 해부학’을 이야기하는데요, 상상계적 해부학이란 사회의 상징적 질서를 위해 몸이 지니고 있는 내재화된 이미지입니다. 이는 “몸의 형식과 행동 양태에 대한 개인적이고도 집단적인 환상”이지요.(107) 이를 가지고 히스테리의 ‘유행’이라고 할 만한 경향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보편적인 히스테리가 아니라 역사적인 히스테리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지요. 거식증에 대해 저자 그로스가 제시하는 설명이 그 예시였습니다.

거식증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 대해 잠시 살펴봅시다. 상상계적 해부학과 관련된 예시로서 저자가 잠시 언급하고 넘어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식증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저자의 보다 근본적인 입장에 닿을 수 있어 보입니다. 저자는 거식증이 “여성 육체에 부여된 사회적 의미에 대한 항의의 한 형태”라고 설명합니다.(108) 거식증이라는 히스테리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중심주의적인 이상을 지나치게 내면화한 결과가 아니라, 반대로 그런 이상을 단념함으로써 사회 질서에 저항하면서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설명과는 전혀 다른데요,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사회 질서에 순응한 결과로 이해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로스는 거식증에서 순응이 아닌 저항을 발견하면서 프로이트의 입장을 거부하는 겁니다.

언뜻 보면 이런 차이는 큰 의미를 함축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거식증에 관한 그로스의 입장을 신체의 투명성을 거부하는 주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이트적인 해석에 따르면 히스테리는 사회 질서에 굴복해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였지요. 이런 식의 설명 방식은 신체를 투명한 것으로 전제하는데요, 그래서 외부의 사회적 의미가 신체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반면 거식증을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이해하는 그로스의 방식은 사회적 질서와 정신의 관계를 무매개적이고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매개를 통하면서 몸의 적극적인 영향을 받으며 구성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렇게 이해한다면, 거식증에 대한 그로스의 설명은 단순히 예시 하나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1장에서부터 보았던 몸의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그로스의 핵심 주장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거식증은 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것일까요? 질문을 보다 넓혀서, “왜 여자들은 자신들의 갈등을 남자들보다 더 신체화하는 것”일까요?(104) 한편으로는 언어가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남성중심적인 질서에서 여성은 대상으로 간주되면서 욕망이나 고통을 억압당합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욕망이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들은 부족하게 되지요. 결과적으로 여성들의 정신적 갈등은 적절히 언어화되어 의식되거나 표현되지 못해 몸을 통해 (히스테리나 건강염려증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주류 의학이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인 남성을 표준으로 하는 의학 체계 속에서 여성의 고통은 언어화되지 못하는 지점들에 부딪히고, 이것이 몸으로 드러나면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언어의 부족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우 억압 자체가 몸의 표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도 여성들이 정신적 갈등을 자주 신체화하는 경향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억압과 차별은 저희가 세미나 첫 시간에 『욕구들』을 읽으면서, 그리고 지난 세미나 때 『몸 페미니즘을 향해』 1장을 읽으면서 논의를 나누었던 적이 있지요. 이전 세미나들에서 자주 이야기 나눈 바 있듯이, 여성들이 신체의 ‘여성성’에 대해 받는 요구는 남성들이 신체의 ‘남성성’을 요구받는 것에 비해 그 강도와 빈도에 있어서 훨씬 강력합니다. 그로스가 책 1장에서 비판한 이분법에 따르면 여성은 몸에 연결되고 남성은 정신에 대응하는데, 전자는 후자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집니다. 이런 이분법적 구도에서도 이미 여성의 신체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엿보이지요. 현실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이상적인 몸매에 대한 요구나 월경에 대한 터부시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몸이 억압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여성으로 하여금 갈등을 신체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게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성/몸 대 남성/정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여성의 몸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남성의 몸을 억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남성은 ‘정신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남성은 그 특수한 신체성이 억압될 필요가 있지요. 그럼에도 남성들은 여성들만큼 정신적 갈등이 신체화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우리가 노처녀히스테리는 들어봤어도 노총각히스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그로스가 책 1장에서 철학이 “특히 남성의 몸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의 합리성을 구축했다는 점을 다시 살펴봅시다.(33)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부인’입니다. 부인은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거부함과 동시에 수용하는 것”이지요.(33 각주5) 남성이 정신을 치켜세우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부인’했다는 것은 몸을 그저 억압한 것과는 전혀 다른 사태인 것입니다. 남성은 몸을 억압하는 동시에 나름의 방식으로 끌어안은 겁니다. 따라서 신체가 오직 억압의 대상이 되는 여성과는 다릅니다. 남성은 자신의 신체성을 부정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수용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지요. 이런 차이가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보다 더 자주 자신의 갈등을 신체화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주 세미나는 『몸 페미니즘을 향해』 3장에 대해 논의를 나눌 예정입니다. 세미나 참여하시기 전까지 3장을 모두 읽어 오시면 되겠습니다. 발제는 단미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이번 주에도 튜터님들이 내용을 정리해주셨으니, 텍스트 이해가 어려우시다면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이번 주 토요일(4/9)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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