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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다시 한 번 금욕과 금욕주의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무의미, 최후의 금욕주의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7장에 이어 다시 나온 금욕과 금욕주의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금욕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미시적 기억이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이 없듯이, 금욕 역시 그 자체로는 좋다, 나쁘다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금욕을 하는지, 금욕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따라 금욕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가령 주권적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금욕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그 외의 욕망들을 억제해야 합니다. 특정한 하나의 욕망을 긍정하고 그것을 하기 위해, 즉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서 이 경우 금욕은 필수적인 것이 됩니다.

반면 금욕주의는 금욕의 기술과 다릅니다. 금욕주의는 모든 욕망, 생명이 가지는 그 자체의무구한 욕망들을 모두 적대시합니다. 생명의 무구성이 가지는 능동적인 힘에 작용하는 반동적 힘으로써의 금욕주의는 생명의 능동적 힘을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부정하는 형태로 작동합니다. 금욕주의는 이처럼 부정의 부정, 즉 두 번의 부정을 통해 작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금욕주의 역시 삶을 보존하려는 힘의 의지입니다. 생명체의 무구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금욕주의는 나아가 반동적 힘과 부정적 의지를 덕으로 승화시킵니다. 강함을 악이라 비난하고, 약함을 선으로 바꾸어 금욕주의를 하나의 도덕과 정의로 만들어냅니다. 이를 통해 병자의 약함은 신체적으로 치유해야할 것이 아니게 되고, 오히려 강자들의 능동적 힘이 벗어나야 할 악덕으로 변하게 됩니다.

여기서 고통을 대하는 두 가지 길이 만들어집니다. 하나는 고통을 만들어내는 신체적 원인을 찾아 그것을 제거하는 생리학적 방식과 다른 하나는 고통을 야기한 행위자를 찾는 심리학적 방식입니다. 고통이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제아무리 강자라 해도 고통은 이유 없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강자, 건강한 자라면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이라는 반동적 힘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고통 받는 신체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건강한 신체 상태를 추구합니다. 반면 약자들은 이유 없는 고통 속에서 고통을 야기한 행위자를 찾아냅니다. 이들은 신체적 이유를 찾는 대신 자신의 고통에 책임이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행위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고 원한의 감정을 표출합니다. 이들은 명확한 책임자를 찾기 어려운 경우에도, 말 그대로 이유 없이 찾아온 고통 속에서도 원한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책임을 묻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러한 고통을 야기하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인 생명의 욕망 자체를 억압하는 금욕주의와 이어집니다. 이들은 고통의 무의미성을 신체적으로 넘어서는 것이 아닌 심리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니체는 금욕주의에서 나아가 최후의 금욕주의를 찾아냅니다. 니체가 발견한 최후의 금욕주의는 종교가 아닌 학자들의 이상주의에서 발견됩니다. 금욕주의는 하나의 의지만을 상정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금욕주의는 생명의 모든 능동적 욕망을 부정하고 고통 없는 세계를 추구합니다. 더불어 모든 욕망을 부정하는 것 속에서 욕망을 악한 것으로 비난합니다. 이들에게 모든 생명의 모든 욕망은 금욕주의의 이상에 맞추어서 평가됩니다. 자신들의 약함을 기준으로 강자들의 무구성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금욕주의의 요체는 하나의 의지를 상정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모든 의지들을 평가하는데 있습니다. 진리라는 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진리란 어떤 것에도 변하지 않고 다른 모든 것들을 자신에게 맞추는 초월적인 척도입니다. 학자들에게서 보이는 최후의 금욕주의는 이러한 진리에의 의지입니다. 진리, 요즘엔 과학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기를 요구합니다. 과학은 어떠한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확고한 절대적 사실이고, 다른 것들은 더욱 과학적일수록 더욱 확고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과학이나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로써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즉 확고부동한 진리, 과학은 그 자체로 증명될 수 없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과학적이지 않은 다른 전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공리로써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는 학문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되고, 신앙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니체는 최후의 금욕주의를 종교가 아닌 곳에서 찾아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니체가 퍼스펙티비즘을 말하며 모든 퍼스펙티브는 자신이 잘 보는 것이 있고, 또 그만큼 못 보는 것이 있다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과학의 퍼스펙티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을 잘 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의 퍼스펙티브, 철학의 퍼스펙티브를 넘나들며 각자가 잘 보는 것을 활용할 수 있을 때, 초월적 진리를 상정하지 않고도 또 그렇다고 진리를 폐기하지 않고도 진리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드디어 니체의 책인 선악의 저편시작입니다.
이진경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많은 개념들을 배우고 이야기 나눴기 때문에 힘들어도 잘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제는 1장은 인영선생님, 2장은 지담선생님입니다.
책을 읽고 궁금한 점이나 중점적으로 이야기나누고 싶은 것들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토요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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