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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세미나] 2월 17일 모임 후기

날날 2022.02.19 15:14 조회 수 : 2690

<기타>

집의 풍경이 그려지는 묘사에 저절로 잠시 멈추어 머릿속으로 상상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작은 방에 손님으로라도 들러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요. 생강님이 그 방에서 태어나셨다고 했는데 그 방은 무엇이라도 잉태하고 품어낼 수 있는 멋진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손님들 이야기도 참 좋았는데 신영복 선생님의 <손님>이라는 글이 떠오르면서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리던 어린 생강님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있어서 손님은, 어른들의 자상하지 않은 대꾸로 인하여 더욱 궁금해진 그 미지의 손님은 어린이들이 최초로 갖게 되는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며, 어린아이들의 소왕국을 온통 휘저어놓는 '걸리버'의 상륙 같은 것입니다.” 작은 방과 연결되는 거대한 이세계, 그 세계에 호기심을 품는 아이는 참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 호기심 많은 아이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것대로 또 굉장한 일이고요. 기타로 시작된 지적, 문화적 젖줄에 대한 회상이 한 편의 산문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의 유년시절에는 어떤 젖줄이 있었나 비교해보게 되기도 하고요.

 

<돌아온 찰리>

안그래도 엊그제 밤에 동네 고양이 몇 마리가 비명지르듯 유난스럽게 울어대서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는데 <돌아온 찰리>를 보고 영문을 알았습니다. 요다와 다른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네 고양이들의 생태를 배우게 됩니다. 거기다 고양이들에게서 에로스를 발견할 줄은!(어떤 종류의 농염인가 하여 아무도 없을 때 말씀해주신 영화도 검색해보았습니다)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분명 어떤 종류의 사랑이 담겨있는데 제가 경험해본 종류는 아닌 것 같아요. 피와 살이 섞이지 않은 이들을 이렇게 진득하게 바라보는 일을 저는 아직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사랑하기 전에 두려움이 늘 선을 그어버리곤 해요. 그런데 요다와 다른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자꾸 궁금해지고 그 고양이들에게서 어떤 표정을 발견하기를 기대하게 된단 말입니다. 스프레이할 때 느끼한 표정을 짓는 찰리처럼요. 어떤 종류의 사랑은 전염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햇빛이 두껍게 고여있는 그 곳에 앉아있는 찰리와 요다와 선생님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름다운 풍경이예요.

 

 

<나를 돌보다>

때때로 나라는 존재는 너무 가까워서 잊기가 쉬운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가장 함부로 대하기도 쉬워지고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주인 행세를 하도록 내버려두다보면 몸도 마음도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 있어요. 분명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는데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 같이, 몸이 강하게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말이예요. 나를 좀 돌보라고. 다른 일 모두 제쳐두고 나를 돌봐야한다고.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라는 책을 읽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글쓴이는 몸이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몸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고. 그런데 그런 삶의 방식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전제한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젊고 건강한 몸’만 정상적인 것처럼 간주하는 프레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아프기 전까지는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해요. ‘건강한 몸’을 선망하며 그렇지 못한 삶을 탓하는 대신 ‘아프더라도 그 나름으로 잘 지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지향한다고도 말하고요. 아픈 몸을 통해 문제가 없는 삶 대신 문제와 함께 하는 삶으로 시선이 달라지고 느슨하지만 세심한, 새로운 연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척 공감했던 생각이 납니다.

라온제나 선생님이 나눠주신 이야기를 통해 저 역시 자신을 돌보는 일, 가까운 이를 돌보는 일에 조금 더 마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한 해 감사하게도 저 자신을 돌보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을 통해 튼튼해진 몸과 마음이 올 3월을 시작하는데 힘을 발휘하더라고요. 결국 자신에 대한 돌봄이 가까운 이들을 향한 돌봄으로 연결되면서 선순환을 만들어 가고요. 선생님이 지금 보내고 있는 쉼의 시간을 선생님이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사랑의 향기>

같은 책을 저도 읽었지만 향수에 대한 상상을 이렇게 발전시키다니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관계를 향기로 만든다면, 이라는 질문이 정말 신선했습니다. 어떤 향수를 만들어낼지 흥미롭게 실험하는 과학자같기도 하고요. 불륜의 향기를 상상한다는 점에서는 악당과학자라고 해야할까요. 농담입니다. 만약 저에게 연구기회가 주어진다면 글쓰기 모임 선생님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어떤 향기가 날지 실험해보고 싶군요, 물론 다들 실험에 응하는 걸 마다하시겠지만요.

그래서 정념情念이라는 낱말이 있나봅니다. 그 형태와 모양이 어떻든, 그 생명을 다하기 전에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어떤 마음. 그러고 보면 향기는 후각으로 시작해 통제하기 어려운 말초신경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정념과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지배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요. 영원한 정념이나 영원한 향기같은 표현은 쓰지 않으니까요. 정념과 향기, 갈망과 체념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적이기도 하네요. 상대방이 안부를 묻는 말에 별일 없이 지내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사실은 살아있는 감각이 좀 무디어진 것 같아, 라는 의미를 담는 날이 있는데 그럴 때, 그 대상이 무엇이든 향기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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