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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진경)

 

1. Ant와 스피노자—-
스피노자에겐  인간이나 생명이 별다른 존재자가 아나다. 존재하다=살아있다=작용하다/행동하다.
Actant은 행위자보다는 작용자로 번역하는 게 더 좋을 수도...
행위하다는 주로 인간에, 혹은 생명체에 국한된 단어인데 작용하다는 무생물에게도 해당되는 단어다.
스피노자의 경우 모든 양태는 다른 양태와 결합하여 작동한다는 점에서 작동자다.

2  “실재는 만들어진다.”

만들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허상이란 말은 아니다.

어던 재료가 잇고 그ㅡ재료가 파악되느느방식으로ㅜ만들어지느느것이고, 만들어면서 무언가가 더해지는 것이다.
실재에 대한 오래된 유물론이나 새로운 실재론은 실재에 대한 규정과 무관한 실재성에 집착한다.

그렇기에 오히려ㅜ칸트나 현상학에게 무력하다.
실재는 언제나 그것과 만나는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신체와 만나는 양상을 통해 신체는 잇다 없다도 판단한다.

그 만남 속에서 신체 및 감각이 실재를 포착하는 방법은 실재와, 실재가 존재하는 양상 중 하나와 연속성을 갖는다.

 빛이나 소리를 포착하는 방법은 파동인데 이는 실재와 연석적이다.

이점에서 실재와 지각된 것은 연속적이다. 물론 이 지각에 기억이나 뇌에서 편집된 것이 더해지며 현상화되지만 이 역시 전기적이고 파동적이란 점은 연속적이다. 

3. 실재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것은 단지 인간의 지성만은 아니다.

감각을 확장하는 장치들, 분석잘치들, 그리고 개념들.... 모두가 관연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 기계, 장치들, 개념들이 하나의 실재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이다. Involution


주어지는 것에 뇌가 만든 상이 더해질 때, 말려들어가느것이 실재에 다시 말려들어가는 것이다.

Convolvution개념이나 운동, 접촉을 통해 사물이 전달된다 함은 그 사물, 실재 속에 말려들어가느것들이 튀어나오고 펼쳐지는 것이다.

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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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의 지적 계획의 두가지 축]


1.주제적 축
2.존재 형이상학적 축

 

[주체적 축-과학적 사실과 실험실]
;과학적 사실이 생산되고 (구성되고, 제조되고) 생산장소를 넘어 분포하게되는 방식에 대한 다면적인 연구
“사실이란 주어진 것도, 불가피한 것도, 보편적인 것도 아니다”
->과학 행위의 탈자연화
->라투르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철학적이기보다는 인류학적이다.
->>”사실이 제조되는 것”이라면, 이러한 반인식론적 접근법은 과학과 인식론, 사회 관계 전체를 재평가해야한다.
->>근대성의 문제, 비서구 세계와의 관계,과학적과 정치적 대표 형태 간의 관계, 사회적 실천들 간의 관계 등을 재검토 해야한다고 주장.
(시간, 공간, 행위성 등) 세계를 인식하고 평가하고 변형시키는 방식을 어떻게 배울수록 있는가?

 

[사상사를 세가지 원천]


1.화이트헤드- 과정 철학
2.질 들뢰즈- 내재성 개념
3.미셀 세르 -매개의 존재론

 

라투르의 반인식론적 접근법과 반 이원론 기획은 일원론이라면 형이상학적 전통의 연쇄 안에 스스로를 기입한다. 
이 연쇄의  준거점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의 영향과 일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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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는 누구인가?             (로라)

 

「브뤼노 라투르의 사유 」

과학과 기술의 내적 작동, 근대성의 역사, 세계화의 정치적 도전, 생태 위기의 도덕적 의미


「브뤼노 라투르는 누구인가」

1947년 프랑스 부르고뉴주, 본 마을에서 포도농장 (메종 루이 라투르) 주의 아들로 태어남.

대학- 성서주석학, 철학, 신학, 인류학 전공

->마르크스의 사회이론이나 소쉬르의 구조주의보다는 화이트헤드의 기독교형이상학에 더 가까운 연구 작업들

->인류학: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오스트롬 (ORSTROM :개발과 협력을 위한 프랑스 과학 연구소)에서 접함.

프랑스의 기술교육 및 훈련 전통에 대하여 인류학적 민족지적 보고서를 출간.

비서구세계, 과학과 기술의 복합적 역사를 동시에 접하게 됨. “과학과 기술의 인류학”으로 연결.

국립 광업학교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1982년~2006년)-“혁신 사회학”의 특정 버전을 개발

2006년~ :시앙스포(파리 정치대학)에서 연구학장, 가브리엘 타르드의 이름을 건 교수자리.

“20세기에 사회학에 뒤르켐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타르드“화를 추구한다..”

*ANT (행위자 연결망 이론): 동료 미셸 칼롱, 존 로 등과 함께 발전시킨 개념

“번역의 사회학”으로 구상됨, “번역”은 기술혁신을 설명하기위해 사용한 개념.

기술혁신이란 다수의 이종적 요소를 강력한 대표자의 영향력 범위 안으로 ‘번역’해 넣는 과정으로 묘사. 번역, 즉 강제하고 구부리고 회유하고 조직화.

번역과정은 행위자들의 연결망 속에서 발생한다.

*파스퇴르의 1860년 미생물 연구에 대한 책 저술

-미생물 자체에 현저한 역할을 부여

->“비인간 행위자”로 지칭되는 기술, 기계, 동물, 유기체 등에 초점

 

라투르는 과학 인류학자, 형이상학자, 사회학자...

라투르는 하나의 단일체나 복수의 존재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연결된 광범위한 연결망

[저서]

1979년 「실험실 생활 」: 과학적 사실의 사회적 구성 (인류학적 여행기)

젊은 과학의 전선 :법정드라마

아라미스: 추리소설

비환원: 고전적인 철학논고

1991년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근대주의적 서구 사상의 역사를 탐구

->대칭적 인류학

1999년 「판도라의 희망」 : 라투르의 과학철학

2004년 「자연의 정치학」: 라투르의 정치생태학 개념을 제시

2005년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 :“번역의 사회학”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결합의 사회학”을

소개, ANT의 포괄적 개론서

 

󰡔브뤼노 라투르의 이론적 입장󰡕

사회구성주의자, 탈근대주의자, 상대주의자로 규정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구성주의, 비근대주의, 관계주의와 연결하는 것은 타당.

지적 다원성을 지닌 학자

라투르의 지적 세계는 인식론, 존재론, 형이상학의 고전적 물음에 관한 철학적 입장이 아니다.

->철학적 인식론을 지적 주류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경험 철학”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로 대체.

->대칭적 인류학->결합의 사회학->정치 생태학으로 지칭 될 수 있다

 

 

「라투르의 지적 작업을 관통하는 공통 가닥」

-자연과 문화 간의 분리를 가장 급진적으로 탐구하고 해체하며 신중하게 재묘사한 가장 중요한 동시대 지식인.

-자연과학의 실천을 더욱 잘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시도

-일관되게 추구해온 근본적인 관점:

“자연을 과학적 실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간주해야한다”

“과학적 사실은 인간적 이해관계와 비인간적 기술이 협상과 결합을 통하여 일체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구성된다.”

->자연과 문화 사이에 존재론적 차이가 없다고..

-자연과 사회의 밀접한 상호 연결에 대한 연구

;자연과 사회가 결코 분리된 영역이었던 적이 없었고, 인간적, 비인간적 요소들의 하이브리드 연결망에 얽혀 있다. (우리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자연과 사회는 새롭게 정의되어야한다.

->>1990년 이래 많은 논문을 통하여 이 두 영역을 생태적이고 협상이 지속되는 단일한 결합체의 일부로 재묘사해옴

 

「중심적인 문제」

1. 과학이 창출한 확고부동한 진리를 벗어나 있는 세계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사실이 제조되는 것이라면 과학, 정치, 사회, 기술, 자연, 근대성, 신 등등 우리 삶의 핵심적 구성요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떻게 될 것인가?)

2.우리가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었으며 또한 무엇이 되려고 노력해야하는가?

 

「라투르의 지적 세계」

지식, 사실, 근대성이라는 핵심문제들에서 철학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전통과 결별한다.

(약간 사회학과 인류학 쪽으로 기운다)

 

「라투르의 대안적 연구방법」

경험적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경험철학자 VS 경험주의 철학자

 

「프롤로그 : “당신은 실재의 존재를 믿습니까?”」

 

「라투르에 대한 오해」

라투르는 과학을 역동적인 사회활동으로 연구하여 더 실재적인 과학의 상을 구현하려고한다.

실재론자 VS 사회구성주의자

근대주의자 VS 탈근대주의자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정형화된 유형 간에 벌어지던 논쟁

-마치 전쟁처럼

근대 과학철학이 만들어낸 “실재론”

근대 서구인들이 세계에 대한 일상적 해석에서 사용하는 일련의 범주화는 얼마나 무의미한가?

->우리가 진정 근대적이었던 적이 결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 그런 범주를 넘어서야한다. (1993)

cf.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라투르의 4단계 전문적 정체성

(유동적 이동과 결정적 변화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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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장              2020.09.19             (진경) 

 

1. '저기 바깥'

 

과학적 사실은 개별 화학자들의 마음 바깥이자 실험실 바깥이라는 의미에서 '저기 바깥에' 존재한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은 특정한 연결망 안에서만, 그리고 그러한 연결망을 통해서만 존재한다.(76)

 

--바깥으로서의 연결망, 외부란 연결망이고, 그렇게 연결된 이웃항들이다.

 

 

"자연은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작업의 결과물이지 전제조건이 아니다.(85)

 

 

2. ANT와 존재론적 평면화

 

라투르는 ANT의 행위소에 대해 일반화된 대칭의 원칙을 말한다.

 

이를 위해선 행위소들 가운데 특정한 것들의 특권적 지위나 그것들 사이의 심연을 제거하는 존재론적 평면화가 필요하다.

 

 

3. 구축자중심주의의 문제

 

수전 스타의 백도널드 양파 제거...와 ANT의 구축자중심주의 비판

 

들뢰즈/가타리 배치에서라면 어떨까?: 영토화와 탈영토화의 연쇄 속에서, 탈주선이 권력에 선행한다는 것, 그러나 영토성이 안정화됨에 따라 그것은 권력이 된다는 것, 동시에 배치에는 탈영토화의 첨점이 있다는 것.....멈추지 않는다..

 

라투르는 블랙박스화라고 명명되는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메이저화 된다

마이너와 메이저의 문제


4. 근대성과 분리의문제

보일과 홉스로 요약되는 자연과 사회의 분리가 야기하는 효과는 양자를 분리하지 않는 전근대인들의 조심성, 즉 하나를 건드릴 때 분리되지 않은 다른 것에 비치는 효과에 대한 고려가 야기하는 조심성을 통해 역으로 드러난다(122). 실제로는 분리되지 않는 하이브리드 밖에 없음에도 분리되며 분리했다는 근대적 믿음은 빠르고 성급한 자신들의 조치들이 야기하는 교란을 보지 못한다.

 

5. 수행적 언표와 역사적 의미의 구별

 

프랑수아 퓌레를 빌어 라투르는 당사자들이 '혁명'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으로 혁명을 뜻하는 건 아님을 받아들인다(126-7).

이 지적은 중요하다.

스스로 혁명을 말했던 쿠데타 당사자들의 경우도 그렇고....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다른 해석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혁명은 끝났다'고 할 순 없으며, 근대의 다른 선택지들이 있다고 해서 근대는 없다(129)고 할 순 없다.

라투르는 가령 홉스와 보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시만 해도 자연의 대표와 사회의 대표를 선명히 분리시켜 놓는 게 가능했다"고 한다(129)고 저자들은 요약하는데, '당시'는 분리된 시대로서의 근대였음을 뜻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말은 적어도 그 당시에 대해선 부적절하다.

 

6. 라투르의 나선형 시간 개념의 문제

 

라투르는 최신 차량에 들어가 있는 부품들의 다른 시간들을 들어 동시대적인 것의 허상을 지적하며, 수많은 과거들이 혼합된 것이 현재임을 지적한다.

과거의 재조립...(134-135)

 

그러나 발명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요소의 발명이 아니라 '배치'의 발명이고, 라투르 식으로 말하면 새로운 연결망의 창안이다.

발명의 시간은 새로운 배치가 발명된 순간으로 귀속된다.

그럼에도 그 발명을 요소들의 시간으로 쪼개는 것은 연결망이나 배치가 갖는 의미가 요소들의 시간 속으로 분리되어 흩어짐을 뜻한다. 이는 라투르의 입장과도 상충되는 것 아닐까?

 

나선형의 시간이란 요소들의 상이한 시간들이 섞여 있음을 주목하여 제안한 개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시간이란 배치의 발명처럼, 상이한 요소들을 종합하는 공시화의 결과물이다.

새로운 배치를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새로운 시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라투르는 시간에 대해선 구성주의의 입장이 아니라 원자론적 실체론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7. 비근대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입장

사소하다 할 수도 있지만, 인류학자들의 입장에 대한 라투르의 분류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특히 레비트스로스가 과학과 혼합을 분리했다면서 자연의 보편성과 서구적 접근법이 특권성을 주장했다고 하는 부분(137, 139)은 부적절한 요약인 듯하다.

<야생적 사유>에서 레비스트로서의 입장 참조.

 

139쪽 밑에서 3행 '문화적 상대주의'는 절대적 상대주의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8. 자연과학의 힘은 확대되는 하이브리드들을 창출하고 동원하며 새로운 집합체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서 나온다(140)는 지적은 기억해 두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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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 창근)

 

사실은 구성된다.

하나의 사실은 어떠한 물질이 다른 물질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구성된다.

하나의 물질(실험질 생쥐)은 기입장치라 불리는 기계의 개입에 의해 다른 물질(종이 위에 표시되는 그래프)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번역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때 개입되는 기계는 하나의 물질을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물질을 적극적으로 변형시킨다.

사실의 구성은 하나의 번역만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연결되는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번역된다.

사실은 서로 다른 연결망 속에서 계속해서 번역되며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디젤의 아이디어의 계속되는 변형)

이러한 번역 과정 속에서 사실은 조금씩 다른 의미들로 작용하며 자신의 실재성의 정도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진리나 실재성은 있냐, 없냐의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번역되며 작용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정도의 문제가 된다.

강한 실재성을 가진 사실은 그것이 끌어들인 여러 작용자에 의해 끊임없이 작용한다.

강한 실재성을 가진 과학적 사실의 경우 실험실뿐만 아니라 과학 논문, 일반적으로 인정된 지식, 삽화 등에서 끊임없이 작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실재한다는 작용한다와 같다.

 

실재성의 정도는 반복가능성에 의해 좌우된다.

실재성의 정도는 그것이 얼마나 더 많은 이질적인 연결망 속에서 반복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또한 연결망 속에서 번역을 통해 의미를 얻는 과정을 반복할 때, 그것은 차이화하는 반복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사실이 더 많이 번역될 때, 그것의 의미는 더 많이 변하고, 하나의 사실이 더 이질적인 작용자들과 연결되어 더 많이 반복될수록 그것의 실재성의 정도는 높아지고 그만큼 변화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라투르가 파악한 근대 헌법은 이분법에 바탕을 둔 범주들을 통해 작동한다.

새로운 유형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실천은 언제나 하이브리드의 번역작업을 통해서 이뤄지지만 그것이 파악되고 평가되는 방식은 정화작업이라 불리는 비판 작업을 거치게 된다.

자연과 사회라는 양극의 범주는 선험적인 준거점으로 하이브리드의 생성적 실천을 시작과 끝에서 비판하고 정당화한다.

실천은 자연과 사회라는 따로 떨어진 각각의 범주 안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된다고 간주되고, 실천의 결과 역시 비판이라는 정당화 작업을 거쳐 파악된다.

이 과정에서 하이브리드의 중간적 생성 과정은 범주적 절단에 의해 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나 비판의 초월적 기준이 되고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이분법적인 범주는 하이브리드화가 수행하는 중간적 작업의 관념적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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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장        세미나 메모         2020/09/19  효영

 

미생물의 발견-도끼설?

자석-고대에 이미 발견됨

구성된 자연-특히 음악에서 선율

탈근대주의 ; 지식을 텍스트로 , 담론으로 담화자의 수사적 실천의 결과로 간주한다.

라캉의 상징계, 상상계 ..등 부정으로 정의된다. 물질은 관심없음, 언어만 남음

푸코는 말기에 벗어나려한다. 사건-사건은 담론 밖에 있다.

구축자 관점은 진리가 권력이 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성적 사유-서양은 과학이고 추상의 .. 미개는..실재 야성적 과학이다.

-->>확인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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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과학인류학, 3장 근대성의 철학                                 2020.09.19. (로라)

 

1. 과학기술학 (STS)방법론에서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비인간 자원을 동맹구성 목록에 포함한다.

이 것은 과학역사에서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그런데 어떤 유형(물질, 인공물, 행위자)이든지 간에 동맹 형성의 모든 측면에서 테크노사이언스의 행위자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타르드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떤 유형이든지간에 해당하는 유형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윤리적인 문제는 인간중심주의적인 관점으로 비판 받을 수도 있다.

이 방법론을 일반화 할 수 있을까?

 

2. 확산이론가들의 설명은 비대칭적 분석이다.

즉, 기계가 전파되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않으면 사회 집단의 저항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여기에 대하여 라투르는 대칭적 분석

의 원칙을 주장한다.

말하자면, 성공과 실패, 실현과 비실현, 전파와 붕괴를 동일한 요소로 설명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지만 ANT가 구축자 중심적이다 라고 하는 수전 라이 스타의 비판에 대한 설명으로 우선 순위를 말하였다.

대칭적 분석의 원칙에 우선순위로 응답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

ANT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즉, 효율적인 메카니즘에서 소외되는 소수자들 (여성과 기타 약자들 등등), 인간과 믿음과 욕망, 비인간의 관성이 ANT내부로 또는 ANT가 그 들 (그 것들)로 확산 될 수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

그것은 더욱 세분화하는 것이고 미세화하고 더 작은 것들로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3. ANT는 행위자, 연결망, 번역의 개념을 통해 특정한 존재론을 정의한다. 철저하게 관계적인 존재론이다.

연결망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본질도, 근본적인 요인도, 맥락도 없다고 하며 세계는 다수의 점들과 연결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자- 연결망의 정의는 불교의 연기 개념, 들뢰즈의 잠재성, 미규정성의 철학 등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지만 연결망에 비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 과학과 기술을 번역으로 사회와 이종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반인식론적 통찰은 과학적 사고와 전과학적 사고 즉 근대인과 미개인 그리고 탈 근대인으로 부를 수 있는 현대인으로 나누어지는 서구의 이분법적인 근대적 사고 방식을 부수어버리는 통쾌함이 있다.

 

4. 서구에 뿌리박힌 오랜 인종주의 역사를 보아왔기 때문에 서구인들의 사고에서 비서구에 대한 관용의 한계는 문화상대주의(자연에 대하여 개별 문화가 어느 정도 정제된 이해를 갖는다는)로 여겨졌었다.

라투르는 개별 문화를 서로 통약될 수 없고 어떠한 형태로도 위계적으로 배치될 수 없다는 절대적 상대주의마저도 자연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비판한다.

특히 라투르가 주목한 특수한 보편주의는 자연이 보편적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 가운데 오직 서구적 근대 문화만이 자연과학을 통해 자연에 대한 특권적 접근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즉, 우리(서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범주를 투영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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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장        2020.09.26.  (진경)

 

 

1. 메타언어와 인프라 언어(216); 

 

사회에 대한 강한 설명을 제공하는 메타담화가 아니라 약하고 추상적인 인프라언어(242)

 

이 구별은 유용하다. 모든 것에 대해 설명의 설명 역할을 하는 메타언어와 달리, 라투르는 연결망의 구체성을 보자고 한다는 점에서 다르며, 약한 인프라언어다.

 

이는 배치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배치와 영토화/탈영토화 등의 개념은 현상에 대해 어떤 설명의 틀을 제공하지 않는다. 설명의 틀이 제공된다면, 그것은 특정한 배치를 통해 현상을 항상 설명할 때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배치와 연결망의 이론은 '어떤 배치인가?', '어떤 연결망인가?'라는 질문으로 변환될 수 있는 '문제'들일 뿐이다.

 

반면 정신분석학이나 맑스주의, 페미니즘, 덧붙여 '비판사회학' 등은 문제 아닌 답을 이미 갖고 있으며, 그 답을 '적용'하려 할 뿐이란 점에서 일종의 메타이론이다. 즉 성욕과 오이디푸스, 계급, 성적 억압 내지 젠더적 대립, 이러한 사회적 변수들 일반으로 어떤 현상도 설명되어야 하며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정되어 있다.

 

ex. 사변적 실재론자들: 관계와 무관한 것은 없다에 대하여 메타 언어로 설정해버리면 ..

아르케이 있다..항상 답이 있다.-> 메타 언어

 

2. 상호주관성과 상호객관성

 

구조적 설명에 대한 비판 속에서 가변성과 행위자의 주체성을 강조한다며 제시되는 상투구가 상호주관성이다. 그런데 상호주관성은 그것이 주관성이기에 '상호성'이 가능하려면 다른 주관성들이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지반을, 해석학의 개념으로 말하면 일종의 '지평'을 전제한다. 이는 결국 이미 공유된 의미로 주관성이 환원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반면 상호객관성은 종종 인간 이상의 힘과 지속성을 갖는 비인간적 요소들, 물질적 요소들이 인간 같은 주관적 요소나 지식 같은 비물질적 요소들과 연결되어 지속성을 갖고 효과를 생산하는 어떤 '객관성'을 형성한다. 물론 이 연결에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의미나 지반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연결, 새로운 배치는 기존의 의미나 지평을 깨며 새로운 것을 형성할 수 있다. 새로운 발명이란 배치의 발명이란 말은 이런 의미에서 강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상호객관성은 유용한 무지, 기존의 지평이 객관성을 갖고 작동하게 하는(파노라마, 올리곱티콘) 효과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깨는 효과를 생산하기도 하는 배치의 효과를 다루기에 적합해 보인다.

 

 

3. 진리의 생산

 

모든 언표행위의 배치(언명체제)는 각자의 진리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갖는다.(227) 

에농사시온

-->이런 점에서 언표행위의 배치란 각자의 진리생산방식을 가지며 진리생산체제를 가동시킨다고 할 수 있다.

 

라투르는 과학, 법, 종교를 분석해서 보여주는데, 이는 진리생산방식이란 말로 포괄할 수 있지만, 각각의 배치의 고유성에 따른 형식을 고려하여 (과학)진리의 생산, (법)정의의 생산, 인격의 생산(도덕의 생산)(226-230)이라고 요약할 수도 있겠다. 

 

-->각각의 배치마다 상이한 진리의 형식이, 진리생산의 방식이, 진리의 가동체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표행위의 배치는 그 배치가 진리를 생산하고 작동시키는 체제의 분석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

 

 

4. 블랙박스와 권력

 

사회적 삶에서 규모의 차이는 권력과 결부되어 있다. 블랙박스 개념.(234)

연결망 내에서 중심적이고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소수의 대변자들을 극도로 강력하게 만드는 연결망은, 당연시될 뿐 아니라 보이지 않기에 확실히 블랙박스다. 

 

더불어 이 블랙박스들이 샌다(235), 즉 누수한다는 것은 이와 더불어 유심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5.올리곱티콘과 파노라마

 

올리곱티콘은 제한적이지만 견고한 대표를 창출하는 모든 종류의 배치. 이 배치가 사회의 부분들을 거시구조화한다.

 

판옵티콘의 거시적 행위자나 그런 포지션은 없다. 복수의 경쟁하는 올리곱티콘만이 있을 뿐이다(236). 

 

파노라마

=국지적 상호작용들이 해석되고 분류되는, 상상된 전체에 대한 이미지.(237). 이는 모든 것을 보게 해주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사회적 지도. 물론 국지화 역시 사회적으로 생산된 산물이지만....(238)

 

-->그런 점에서 파노라마는 지식이나 이데올로기 등이 제공하는 지도지만, 그것이 전체성의 허상을 동반할 때에만 사용해야 할 것 같다.

 

cf.유용하고 필연적인 무지의 파노라마 효과!

 


6.정치생태학과 사물의 의회

브루노는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의 가로지르는 '사물'들의 의회를, 사물들의 대표와 대의를 말한다. 자연이나 인간을 대신해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번역의 연쇄. 인간과 객체가 동시에 대표되는 사물의 의회(154-5).

 

--그러나 대표와 대의, 의회라는 근대적 개념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닐까?

 

cf대의, 대표는 대신해서 말하는 것의 '정확성'과 단일성이란 개념을 모면하기 어렵다.

가령 대의를 주장하는 자가 둘만 있어도 대의는 정확성의 증명 문제에 빠지게 되고 정당성을 유지할 수 없다.

또 복수의 '대표'들이 상이한 방식으로 말하는 것도 허용하기 어렵다.

 

반면 사물-되기, 동물-되기, 지구-되기 같은 개념은 되는 항 자체의 변이를 포함하기에 대의나 대표란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이한 양상의 되기에 열려 있어서 복수적인 되기들의 공존이 가능하다. 

 

cf..동물들의 의인화, 인간화: 동물권의 내적 가치, 동물 본성/자연성의 가정 비판(179) 동물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를 갖는 게 아니라 인간 및 비인간 행위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치를 갖는다.(180)

 

-->이렇게 볼 때,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대표자들의 의회를 구성하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 이런 요소들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가령 몽골에서 나무심기 운동이 성공하려면 주민들을 포함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도 이와 관련해서 볼 수 잇겠다. 라투르가 코끼리와 케냐 농민에 대해 하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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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장         (창근)

 

현대 세계에 이르러 자연과 사회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하이브리드들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분법적 경계를 공고히 하는 근대 헌법을 넘어서 하이브리드의 작업들을 명시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현대의 환경 위험은 자연과 사회의 경계를 뛰어넘는 하이브리드의 전형이다.

현대의 환경 위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민주주의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는 과학과 정치를 분리된 것이 아닌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즉 과학과 정치의 접합을 통해서 환경 위험을 바라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과학과 정치의 결합을 통한 하이브리드의 포착은 그것을 통해 집합체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에 이른다.

과학과 정치의 연결을 통한 ‘정치적 인식론’은 이미 분리된 영역으로 정립된 과학과 정치를 한데 뒤섞는 것이 아니다.

객체인 자연물과 그것을 파악하는 기호는 서로 존재론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객체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사실로 파악되지 않고, 그것을 세계와 연결시키는 명제를 통해 더욱 가시화되고 실재적인 것이 된다.

하나의 명제로 표현된 객체는 그 명제와 분리될 수 없다. 의미는 다르게 번역된 명제와의 차이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이러한 번역의 연쇄 속에서 적당한 조건이 주어지면 사물 역시 견고한 객관성을 획득한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적 명제와 비과학적 명제는 구분되지 않는다.

---->>> 2장에서 나온 과학적 사실의 구성과 같은 것처럼 보이는데 우려물을 설명하는 곳에서 포럼을 통한 사물의 미래가 협상된다고 할 때 그것은 새로운 사실인지 새로운 의미인지?

또한 영장류를 예로 들어 설명할 때(166) 현상을 파악하는 해석적 제안들과 사물을 표현하는 명제는 같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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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정치생태학                                                       2020.09.26. 로라

 

새로운 정치생태학을 위하여

이 책은 N, 자연(초월적 자연) 개념과의 대결

-그 어떤 자연개념과도 무관하다

->갈림길에 서 있는 인류.

: 자연이 있거나..민주주의가 있거나..

->> 테크노사이언스적 근대화를 계속할 것인가?

“생태화” 할 것인가?

 

<생태정치철학자 라투르의 해결방안>

-인류와 공존하는 비인간적, 생태적 존재들을 다루기 위한 새로운 민주적 절차의 윤곽을 그리는 것.

- 생태위협은 현대 세계를 결정적으로 정의하는 요소.

- 환경 위험은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하이브리드의 전형.

->환경위험은 라투르의 비근대적 정치사유에 대한 중요한 리트머스시험이다.

 

<정치철학의 최대 과제>

정치기구는 사람들의 대표 뿐만 아니라 자연과 과학, 비인간 행위소들이 어떻게 공동의 토론과 의사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명시해야한다. 즉, 번역의 연쇄를 확립하는 문제.

생태 위기로 인해 새로운 자연-문화 하이브리드들이 증가, 가시화

->근대헌법이 금지해온 정치적 대표와 과학적 대표의 통합이 불가피해짐

->인간 대변자와 비인간 대변자 간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짐

 

<라투르의 「자연의 정치학󰡕>

-비근대헌법의 초안: 인간과 (유사)객체가 동시에 대표가 되는 “사물의 의회”의 창설

-이종적인 집합체를 민주적으로 정당하게 조립하기위한 제도적 보장을 구체화

->주체와 객체, 가치와 사실, 정치와 과학에 대한 정신적 지평을 재편할 기회를 준다.

->“정치적 인식론”의 수행

 

<라투르의 정치철학적 사유가 반영된 2가지 논의>

1.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수준의 문제: 대표의 문제

- 사실과 가치의 범주들을 재사유할 것을 요구

「판도라의 희망」

2.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수준의 문제

- 환경 위험, 하이브리드들, 생태적 유사객체와 연관된 문제

-우리 시대의 가장 커다란 정치적 도전 중의 하나

 

=>>라투르의 정치적 입장

: 그가 정치생태학과 정치적 생태주의에 관여하는 것은 이 운동이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적인 역사적 투쟁을 재정식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

 

정치적 인식론과 이중의 대표

 

라투르의 근대라는 시대에 대한 인식: 집합적 삶을 자연과 사회, 과학과 정치로 분리하는 근본적 인 이분법

*근대과학철학 (사회가 과학을 침범하는 비판)

:과학의 순수성과 진리 그리고 계몽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는 파괴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요소들을 과학으로부터 제거하려는 지속적인 노력.

(ex. 나치의 인종주의 중책, 소련의 “리센코주의”-과학이 정치적 고려와 이데올로기를 따르도록 강요되었을 때 어떻게 잘못되는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인용됨)

*독일의 사회이론 (과학이 사회를 침범하는 비판)

:사회의 과도한 사회화와 기술관료화로 인한 사회적, 정치적 소외를 경계하는 경향을 보임

 

*근대과학철학과 독일의 사회이론에 대한 라쿠르의 비판

-정반대로 보이는 두 가지 형태에 대한 비판 모두가 근대 헌법으로 인해 가능해지고 심지어 강화되어왔다는 것

-「판도라의 희망」에서, 근대 헌법에 입각한 근대주의적 반응을 보여주는 예인 “과학 전쟁”의 논쟁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한다.

 

*과학 논쟁의 당사자들이 비실재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전쟁은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라투르와 동료들은 과학 실험실의 실천들이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들과 긴밀히 얽혀 있다는 것을 경험적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이론적, 철학적 측면에서 라투르가 보는 현대 세계의 특징>

-자연과 사회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따라서 과학적 대표와 정치적 대표의 경계를 넘어서는 하이브리드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 근대 헌법을 고수하는 한 하이브리드화 작업은 은폐되지만 생태위기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하이브리드의 효과들은 여전히 느낄 수밖에 없다.

->하이브리드화 작업을 명시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정치적 집합체로서 우리의 과제라고 라투르는 주장한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정치는 존 듀이의 “정당한 절차” 즉, 타당한 민주적 절차를 따라가야 한다.

->>>과학적 대표 메커니즘과 정치적 대표 메커니즘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재사유하여

->>>>인간과 비인간들의 집합적 삶을 질서화하는 하나의 통합적이고 집합적이며 “실험적으로 형이상학적인”과정에 도달하는 데 있다.

->>>>>자연-사회 하이브리드들이 하나의 동일한 집합적, 실험적, 민주적 과정으로서 다루어지는 이른바 사물의 의회를 주창

 

<라투르 기획의 기본적 성격>

1.사물의 의회가 “과학의 정치화”, “정치의 과학화” 사이의 끈임없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당면 도전이다. 이를 위해 근대주의의 핵심 이분법, 특히 사실과 가치의 분리와 급진적으로 단절해야한다.

2. 근대주의적 사고와의 대결이 갖는 급진성으로 생태정치적 저작은 경험적 세계와 맺는 관계에서 양면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

: 정형화된 경험적 사례 VS 추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미셀 세르의 「자연 계약」에서 영향을 받아 라투르의 분석적 접근법은 추상적이고 급진적이다.

-반인간중심주의적 관점

: 테크노사이언스적인 진보에서 비롯된 주인으로서의 인간, 주변환경과 “기생”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르의 근본적인 질문 : 인류가 자연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테크노사이언스적 우월성이라는 관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연의 정치학」의 부재 “어떻게 과학을 민주주의 안으로 가져올 것인가?”는 라투르의 정치철학적 논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이 비정치적으로 여겨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테크노사이언스적 하이브리드라는 형태로 사회의 집합적 삶을 이루는 수많은 주요 구성 요소들을 암묵적으로 제공해왔다.

->그런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직 과학만이 자연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초월적인 과학, 진리, 자연 관념에 헌신하는 인식론적 철학의 도움을 구한다.

->이런 인식론은 순수하거나 자명하지 않다. 태생적으로 정치적이다.

: 왜냐하면 “자연적 질서”라는 인식론적 관념이 사회의 정치적,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매우 부당하게 건너뛰는 데 이용되기 때문. 이러한 특정 과학철학자들을 라투르는 “인식론적 경찰”의 입장 이라고 부른다.

*라투르의 과학과 정치 사이의 권력의 분배롸 균형에 관한 명시적인 성찰로서의“정치적 인식론”

-이자벨 스텡거스의 “코스모폴리틱스” 개념 차용

-정치는 자연 안에 존재한다

-코스모폴리틱스의 근본적인 질문: 사람과 사물을 모두 고려하는 좋은 공동세계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환경운동은 자신의 과학학 연구에서 유래하는 새로운 “지식정치”로부터 혜택을 받은 유일한 사회세력(과학으로부터 연구로의 이동, 연구란 열려있고 지속적이며 집합적이고 불확실한 탐구의 과정)

->열린 실험적 연구의 형태를 통해서만 과학은 정치적 민주주의로 통합될 수 있다

(라투르의 주된 메시지)

 

*사물의 의회를 형성하는 데 있어 주된 과제

-과학과 정치 양자의 강점과 특이성을 동시에 존중하는 방식으로 집합적인 실험적 과정을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어떤 균형을 유지하는 문제이다.

-공중으로서 우리는 집합적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조직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한다.

-하이브리드를 대표하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도전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기획이다.

-좌파 정치의 개혁을 위한 “선언”(1998)에서 라투르는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어디에 초점을 맞추든..그 미래는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근대화를 근대화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신 “생태화”라는 비근대적인 길을 불확실성과 사전예방 그리고 집합적 무지가 일상의 질서가 되는 길을 택해야한다. 자연과 과학이 탈정치화된 정치에서 벗어날 준비 단계들이 필요하다.

 

인식론에서 절합으로 : 순환하는 사실들

 

<라투르에 대한 오해>

1.과학적 이성에 대한 공격이라는..

2.“탈근대주의”자...

3.인식론적 무정부주의와 관련-파울 파이어아벤트, 과학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4. 1,2,3의 관점으로 본다면, 정치 생태학 역시 확장된 정치적 권력 게임으로 과학의 세계를 말소하려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라투르는 과학과 정치의 의미를 재정의한다는 것을 간과한 오해이다.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 지식을 구분하는 새로운 규범적 기준을 도입

-라투르의 신조어 “사물정치”thingpolotics를 통해 정치의 의미를 재정의

 

“순환 준거”

:라투르의 규범적 과학철학을 논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는 개념

-“사실”이 기호적, 물질적 연결의 복합적 연결망들을 통해 순환하는 존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는 것. 번역의 긴 연쇄를 통해 만들어지는 생물학적 사실들..

-순환 준거에 대한 분석은 전통적인 인식론과 완전히 단절한다.

(전통적 인식론: 세계(자연, 객체)와 언어(사회, 주체) 사이에 심연과 같은 간극이 있다는 관념으로서, 과학은 세계와 언어 사이에 대응을 창출하는 것으로 “저기 바깥에” 존재하는 객체를 어떤 의미에서 가시화하는 언어적 표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라투르는 언어와 세계는 과학적 실천 안에서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에, 언어와 세계의 분리를 상대화하는 접근법으로 근대주의적, 시각적 은유를 대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순환준거의 의미)

즉, 기호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결합되고 얽혀있어서 그 둘 간의 어떠한 존재론적 분리도 인식될 수 없다.

->견고하게 구성된 사실들에서 다수의 상대적인 차이들은 번역의 연쇄를 따라 양방향으로 이동을 허용한다.

-순환준거라는 개념을 통해서 라투르는 과학 지식에 대한 완전히 실재론적인 이해에 가까이 다가간다. 특정 연구 대상과 언어적 진술을 상응하도록 만드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만 달성가능하다. 번역에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하며 이 과정은 과학적 언어등록과 비과학적 언어등록을 엄격히 분리할 것이 아니라 양자 간에 일종의 교차교배를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

->성 문제에 대한 전통적 인식론의 시각에서는 대형 영장류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견해들이 진실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인식을 왜곡하는 필터로 간주되지만 라투르는 이를 영장류의 삶을 보다 섬세하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허용하는 “다리”로 봐야 한다는 것.

*화이트 헤드의 ‘명제’proposition개념

-명제란 새롭고 특수한 때로는 놀라운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단순히 언어적 진술에 한정되지 않는다.

->하나의 연결망을 통해 결합되고 연결되는 수많은 이종적 요소들로 이루어지는 것.

->전통적 인식론적 의미에서처럼 참 또는 거짓일 수 없다.

->명제를 대응의 문제로 보는 인식론에 대한 대안으로 라투르는 잘 절합(articulation)되는가 아니면 부실하게 접합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ex. 공동체 기반의 자연보존프로젝트: 아프리카 농업지역에서 코끼리 개체 수 관리에 대한 결정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경우)

 

=>> 이러한 문제는 다시 정치생태학으로 돌아오게 한다.

라투르는 정치 생태학에서 “정치적 인식론”이나 “코스모폴리틱스”를 논할 때 과학이나 지식을 단순한 권력 행사의 도구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다.

라투르는 하이드리드들이 가장 잘 절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사물의 의회”를 추구한다.

->동일한 문제의 해결에 여러 가지 상이한(과학적, 정치적, 도덕적, 외교적)기술들을 한꺼번에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현실정치에서 사물정치로 : 객체지향적 민주주의

 

사물정치란?

:사물과 집회를 함께 뜻하는 단어 ‘Ding'에서 따온 것, 질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정치를 가리킨다.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적 객체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정치를 가질 이유가 있다. 사물의 의회는 사물정치의 문제이다.

라투르는 우리시대의 가장 커다란 정치적 도전으로 인간과 사물, 자연-문화의 하이브리드들의 이중적 대표를 문제로 진단하고 있다. 사물의 의회와 사물의 정치는 사물(유사객체, 하이브리드, 물질적 객체)을 정치적 토론과 갈등, 타협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현실정치에 대한 대안.

현실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의회에서 주로 벌어지며 흔히 진보와 자유를 찬양하고 낡은 “좌우”이데올로기들을 표방한다.

이런 종류의 정치는 구시대적인 것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진보적인 정치 기획의 구성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정식화를 필요로 하는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주장. 환경정치가 그 핵심 주제이지만 생태주의에 한정되지 않는다.

치열한 전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물질적 객체들이 놓여있다. 객체지향적 민주주의는 대표들의 합법적인 의회뿐만 아니라 사실과 객체를 공적으로 대표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의 확립을 요구한다.

테크노사이언스의 객체는 하이데거의 머그컵처럼 능숙한 솜씨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더 이상 객관적이지 않다.

라투르는 사물의 객관성을 다른 각도에서 묘사한다. 사물들을 우려물(matter of concern) -해석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로 제시하는 것이다.

우려물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사실이 행사하지 않는 온갖 특성들이 있다.

풍부하고 복잡하며 불확실하고 놀라우며 인공적으로 구성되는 우려물은 오히려 실재적인 것이되며 , 이런 의미에서 더욱 객관적인 것이 된다.

우려물 즉 하이브리드 유사객체는 근본적으로 열려있고 불확실한 특성으로 인해 태생적으로 정치적이다. 미래의 집합적 세계에서 우려물의 위치는 정해져있지 않다.

다양한 관점들, 삶의 형태들, 다른 정치적 실천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물주위에 모여들고 다양한 공적 포럼들이 간헐적으로 만들어지고 여기서 사물들의 미래가 협상되고 영향 받는 것이다.

->사물회의의 윤곽

라투르는 단 하나의 단일한 사물의 의회를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객체들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사물들의 의회들, 즉 “하이브리드 정치 포럼들”을 구상한다. ex. “물의 의회”,‘기후변화에 고나한 정부 간 협의체’

라투르의 정치철학은 과학과 정치의 의미를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재정의하려는 대칭적 전략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과 정치를 두 가지 본질적으로 상이하고 존재론적으로 분리된 활동으로 인식해서는 안되다고 주장한다.

매우다른 수단과 자원을 이용하는, 서로 보완하고 서로를 풍부하게 하는 실천의 형태로서 과학과 정치의 상을 그리려한다.

*새로운 실험적 생태 민주주의에서 과학의 중요한 의무

: 현재 집합체에 침입하는 비인간 행위소들의 범위를 갈수록 정교한 방식으로 탐구하고 절합하는 것.

*정치의 과제는 하이브리드적 우려물들을 다룰 민주적으로 정당한 과정을 설계하는 것.

==>> 근대화 할 것인가, 생태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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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장 쪽글                                                                              2020/09/26 로라

 

1. 라투르의 정치 생태학은 수행적이고 실천적이다.

라투르가 구체적인 형태로 제안하는 사물의 회의에서 객체지향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위해 모든 목소리들을 대변하는 대표들의 의견들이 협의와 의사결정과정에 개진되어야한다는 공동의 경계상태는 이상적이다.

라투르가 말하듯 이것은 상식의 형태이다.

지금 현재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현대의 우려물) 환경 위험에서 지구 온난화의 위협은 유엔의 IPCC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왔지만 IPCC는 과학과 정치 간의 매우 근대주의적인 경계선을 따라 조직되고 운영되어 왔다.

(라투르가 말하는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포럼이 아니라는 뜻).

그러나 그조차 석유산업과 보수적인 연구기관들이 IPCC가 제시하는 과학적 권고의 유효성에 대한 의심을 체계적으로 조장하고 유포시킴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논쟁을 방해해왔고 각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히 미국)IPCC의 권고가 잘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의 자발적 이행 서약인 파리협약의 탈퇴를 선언했다.

기후변화 원인 제공자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부유한 나라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피해를 보는 불평등의 결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나라는 가난한 나라에서 탄소배출권을 사서 쓰기도 한다.

2019년에는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운동을 이끌어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세계 민간인들이 중심으로 된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행사들이 있었다.

근대주의적인 기후대책 구성체로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한계를 드러내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근대성의 현실정치가 실현하려는 “진보”와 “발전”은 그 대책이 될 수가 없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다.

라투르가 주장하듯 “동시성”의 코스모폴리틱스 라는 관념을 통해 이해되는 비근대적 사물정치의 실현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다소 추상적이고 이 후에도 계속 논쟁의 여지를 남길 것으로 예상되므로 라투르의 제안은 실질적으로 선택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졌지만 국가라는 거대 사회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개인들의 미시적 움직임과 운동들이 적극 개입하고 그 들이 비인간들을 대신하는 대표성을 획득하게 되면 라투르가 제시하는 사물의 회의를 통한 객체지향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2. 사회학적인 것이 무엇인가.

 

라투르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란 도발적인 구호로 “사회”를 “집합체”로 대체하려고 한다.

라투르의 결합의 사회학에서는 “사회”라는 개념이 적어도 3가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결함들이 그의 대안적 사회학의 예비적인 요약본이 된다.

그 결함은,

첫째, 사회라는 용어는 너무 많은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너무 적은 것을 나타낸다.

모든 것이 사회이면서 또한 국민국가라는 오직 하나의 인간 공동체와 동의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헌법의 일부로서 사회는 이제 집합체라는 비근대적인 개념으로 대체해야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라는 개념이 공간적, 지리적 범위를 너무 경직되게 구획한다.

사실 테크노사이언스들은 세계적인 공간 분포를 갖는 경우가 많으며 행위자-연결망들은 고정불변의 지리적 경계를 갖지 않는다.

세 번째 결함은,

“사회”라는 용어가 오직 인간만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가정한다는 점이다.

라투르는 사회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고자 한다.

사회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행위자들과 비인간행위자들 간의 모든 연결 또는 결합을 묘사하는 것인데 이 것은 이종적이고 비사회적인 요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관계들의 궤적 즉, 새로운 유형의 연결들이 만들어지는 이동이나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라투르는 사회학은 비인간 행위자들을 연구 범위에 넣어야한다는 것인데,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을 사물로 간주해야”한다고 했던 데 반해 라투르는 “사물을 사회적 사실로 간주”하라고 한다.

또한 라투르의 “결합의 사회학”은 언제나 새로운 연결의 문제이며 끊임없는 이동과 변화를 겪고 있는 집합체를 다룬다.

사회적인 것은 끊임없는 변형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합의 사회학이 추구하는 목표는 이종적 집합체를 재구조화하고 있는 “행위자들 자체를 따라가라는 것”이다.

라투르는 “사회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설명되어야한다.”라는 명제로 “거시사회적”요인(사회적인 힘들)들로 설명되는 과학 기술의 역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인 것의 형성과 발전에서 핵심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이 상당히 테크노사이언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라투르는 사회적 환원주의로 기우는 모든 생각들에 대해 비판적이다.

사회적인 것의 사회학은 비가시적인 실체(예를 들면, 개인화)를 이용하고 메타언어를 구사하여 수 많은 상황에 쉽게 적용할 수 있지만 평가하기가 힘든 표준화된 설명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투르는 결합의 사회학의 주요 과제는 소위 “강한”사회적 설명에 대한 대안을 확립하는 것이다.

민족지 방법론의 영향을 받아 “행위자들을 따라가라”로 대안을 제시한다.

즉 어떻게 행위자들 자신이 상호갈등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세계들을 창출하고 질서화하는지 따라가는 것이며 또한 특정한 상호작용과 수많은 연결가닥들을 추적해야한다는 의미이다.

 

결합의 사회학의 기본적인 논점은 “무엇이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가”라는 물음은 단번에 대답할 수 없고, 대답해서도 안 되는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 질문이다는 것이다.

결합의 사회학은 이론인 만큼 방법이며 라투르는 경험주의적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좋은 사회학이란 사회적 실재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행위자들을 따라감으로써만 수행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행위자-연결망을 유지하는가라는 사회적 질서의 문제에서 라투르는 일반적인 해답을 없다고 말한다.

해답은 사람들 간의 상호 주관적 관계 속에서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상호작용이나 상징, 언어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현상들에 존재론적 우선성을 부여하는 관념을 자신의 사회학의 기초로 삼는 것을 거부한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영장류 사회를 묘사할 때는 완벽하게 들어맞지만 인간사회를 묘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인간 집합체에서는 상호작용의 프레이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광범위한 비인간행위자들이 인간 집합체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라투르는 인간의 상호작용은 기본적으로 상호주관성의 문제(김상봉, 서로 주체성..등등)가 아니라 상호 객관성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연결망을 다른 식을 표현한 것)

 

“상호작용이 언제나 시간적, 공간적 외부 연장을 갖는 것은 인간이 비인간과 더불어 그것을 공유해 왔기 때문이다.”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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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인터뷰                            (로라)

 

1. 마르크스가 현존한다면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가장 고민할까.

즉 라투르가 말하는 우려물‘matters to concern'이 무엇일까.

그것은 지구 생태문제이고 정치적인 실천으로 인류의 집합적 삶들을 변화 시켜 나가야하는 것이다.

‘정치생태주의’ 대열에 선 사람들이 실천적인 적실성이 있다.

“독자들에게는 책들이 일종의 동일한 판 위에 놓여 있겠지만 저자가 20면, 30년, 또 그 이상으로 책들을 쓰게 되면 그것은 어떤 형태의 운동이 됩니다.”(P301)

 

2. 존재 양식에 관한 현장연구에서 유일한 좋은 방법은 예술에서 큐레이션 작업이다.

“사물을 공공적인 것”으로 만들기 작업에서 전시는 매체를 책에서 설치로 바꿀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시간의 시간으로부터 공간의 시간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우리는 공동으로 거주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적대에 관한 모든 질문은 중요하다.” (P304)

 

3. 유일하게 마르크스주의자답지 않은 부분은 종교에 관한 라투르의 견해이다.

근대화가 종교현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하여 라루르는 종교 현상을 재생산해야한다고 말한다.

이유가 매우 개인 적인 것이다.

첫째는 라투르 본인이 카톨릭 신자라는 것.

둘째는 성서주석학을 연구했던 경험을 통하여 매개가 실재와 진리를 생산하는 확고한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또한 관료적이고 위생학적인 생태학에 대한 대안으로서 종교가 필요하다고 한다.

근대화가 유일하게 잘한 것으로 종교적 현상을 희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관료적인 생태학에 대한 대안이 종교적인 것인 것 말고도 얼마든지 많다.

차라리 종교는 과거에 대한 아름다운 노스텔지아로 남겨놓자고 말하는 것이 더 라투르다운 말이 아닐지.

 

4. 강하게 범주화된 기존 모든 학문, 특히 사회학에 작은 구멍 내기 일환으로 라투르가 타르드를 부활시킨 것은 탁월했다.

주류라는 큰 흐름에 속해있으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타르드가 포착했고 그 것의 전통을 라투드도 이어 받은 듯.

흥겨운 파티에 잡음 일으키기, 거대 구조에 흠집내기 등은 강한 위치가 아니라 약한 위치라는 조건에서 문제 제기할 때 필요한 방법이다.

 

5. 우리가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면 무엇이었나?라는 대목에서 라투르는 자신의 작업이 근대인에 대한 인류학을 비판적이 아닌 긍정적으로 하기 위한 길을 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중국인, 인도인, 브라질인들이 우리 대신 근대화하고 있다.

그러니 그것을 잊어라. 우리는 이제 탈지배 또는 탈통치의 위치에 있고 그래서 상황이 흥미로워지고 있다.”P319

지구 전체 공동의 코스모스를 이야기하면서 유럽 집합체에 한정된 이러한 생각들은 혼란스럽다.

유럽 이외의 나라들이 전통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이 겪고 있는 하이브리드 현상 역시 동시에 겪고 있다.

그래서 더욱 복잡한 문제가 유럽보다도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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