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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하나에 대해 슬라보예 지젝, 박정수 역,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사랑, 2005

 

1. 하나에 대해

.주인기표의 탄생

 

분석되지 않는 슬로베니아인

주인기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지젝은 이 질문에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이리 저리 우리를 끌고 다니면서 어지럽게 만든다. 우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는 수밖에... 그는 먼저 프로이트의 슬로베니아인을 통해 우리의 언표행위의 위치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프로이트와 에두아르도 바르도의 편지에서 등장하는 슬로베니아인은 프로이트에 따르면 분석할 필요도 없고 분석될 수도 없다. ? 슬로베니아인은 분석될 수 없을까? 그의 증상은 과도한 억제와 엄격한 도덕적 감수성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의 증상은 라캉에 와서야, 즉 초자아의 외설성이라는 개념 아래에서만 설명된다. 그의 상태는 법/금지가 부재한 결과로, 법의 부재로 금지가 보편화된 상태를 보여준다. 반면 우리의 향락은 위반으로 경험되는 것으로. 즉 우리는 자발적으로즐기는 게 아니라 언제나 어떤 강제적인 명령에 따른다는 것이다.(156) 이처럼 슬로베니아인의 사례나 지젝이 인용하는 성교육에 관한 에피소드는 우리의 향락은 가혹한 초자아의 명령에 의해 지속된다는 것을, “정상적인사태의 은폐된 진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도된 반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전도된 반사를 상상계의 영역으로 환원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157) 상상계 안에는 언제나 상상적인 것을 상징계로 낚아 올리는 이중적 반영의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재는 이것이 현상 너머가 아닌, 현상의 배가doubling로부터 출현한 것(2판 서문 참고, 33)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임금님이 자기 옷을 입게 하자!

링 라드너의 단편 누가 패 돌렸어』에서 서술자는 라캉의 분열된 주체를 보여주는 예이다. 상상적 경험의 무지와 그녀의 말이 큰 타자의 장에서 떠맡게 되는 무게로 분열되어 있다. 이 두 수준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이 둘을 분리하는 간극은 구성적constitutive이다. 그리고 주체는 정의상 자기 발화의 효과를 제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타자가 그것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술자에 제한된 관점은 다시금 이중적 거울반사 구조이다. 이것은 순전히 가상적인 속성을 지닌 어떤 상징적 지점인데, ‘내가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나를 보는 방식도 아니고 타인이 나를 보는 것을 내가 보는 방식이다. 이 세 번째, 순전히 가상적인 자아-이상의 관점을 통해 독자는 서술자의 수다스런 말의 파국적 결과를 알아차린다.(162) 이중적 반영의 기본적 교훈은 상징적 진실은 모방의 모방을 통해 나타난다. 지젝이 예를 들고 있는 히치콕의 <현기증>은 모방의 모방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누빔점

지젝에 따르면 종교의 작용은 지상적 공포와 불확실성을 또 다른 세계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지복의 약속으로 보상해주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작이 가능하려면 제3의 순전히 상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두려운 지상 세계 대 성스러운 지복의 내세라는 상상적 이자성을 매개하는 항으로, 그 제3의 계기가 바로 신의 공포, 즉 천상적 내세 자체의 소름끼치는 이면이다. 예호아다의 나는 신이 두렵네. 아브넬, 나는 그 밖에 다른 어떤 두려움도 없네라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 아브넬을 설득시킨다. 히틀러에게 있어서 유태인의 음모도 같은 맥락에 있다. “유태인의 존재는 독일 국민의 위기를 거대 서사로 통합시켜주는 장치, 누빔점으로 기능한다.

그런데 여기서 지젝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이러한 누빔점을 폭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유태인은 가짜야! 없어!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진짜 문제는 어떻게 이처럼 순수하게 형식적인 전도가 가능한가, 그것은 무엇에 의존하는가?이다. 이 메커니즘이 기대고 있는 잉여는 유태인에게 우리에게 훔쳐간 불가능하고 불가해한 향락을 전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누빔점을 통해 해체주의에서 간과된 봉합을 파악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탈-봉합하는 것은 봉합 자체라는 것. 알듯 모를듯한 이 말은 지젝이 예를 들고 있는 민족의 경우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민족은 전통적인 유기적결속으로부터 해방된 근대적 공동체이다. 이러한 탈봉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근대적-민족국가라는 새로운 봉합 뿐이다.

 

하나의 기표는 다른 기표를 대신해서 주체를 표상한다

라캉에 따르면 언어는 기표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지젝이 보기에 기표의 논리란 단순히 두 항의 변별적 차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표에서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은 공백이다. 기표는 바로 이 공백, 즉 자신의 잠재적 부재를 배경으로 해서만 나타난다. 낮은 밤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낮의 잠재적 부재가 먼저 있고 그 속에 밤이 자리잡은 낮의 부재를 배경으로 해서만 낮으로 현존”(173)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백을 메우는 일련의 기표들이 발생한다. 이제 이 등가물의 연쇄를 역전시켜서 하나의 기표에 다른 모든 기표를 대신해서 주체를 표상하는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고유한 주인-기표가 생산된다. 지젝은 여기서 화폐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자본』에서 하나의 상품B가 상품A의 가치표현으로 드러나고, 다시 일련의 상품 B, C, D에서 자신의 등가물을 발견하고, 이 확장된 가치 형태를 역전시켜 일반적 가치 형태수준에 도달할 때 이제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은 상품A 자체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주체를 완전하게재현할 수는 없다.(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어긋남) 상품 A반영적인 기표이고, 이 반영적 기표에는 실패 자체, 기표적 재현의 불가능성이 반영된다. 반영적 기표는 라캉이 남근 기표라는 말로 지칭한 것이다. 우리는 이 반영적 기표를 통해 주체를 표상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반적 형태로 전도되면서 특정한 결합들의 무정형적 네트워크는 하나의 예외적 위치를 통해 총체화된 일관적 장으로 변형이 된다. 하나가 다수의 장을 꿰맨다를 바꿔말하면 대상a를 통해서 지지되지 않는 주체란 없다.(22)

 

왜 도덕이야말로 가장 은밀한 음모인가?

이 절에서 지젝은 다시 누빔점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지젝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새로운 독해를 시도하는데, 드레퓌스 사건의 전환점은 에밀졸라가 아니라 샤를 모라스의 개입이다. 그는 최초의 희생양신화와 공적을 창조해냄으로써 기이한 반전을 일으켰다. 누빔점이란 바로 이런 것. <아탈리>1막에서 신의 공포가 개입함으로써 모든 두려움이 자신의 대립물로 전화되는 것 처럼. 모든 무의미와 두려움을 돌연 이해 가능한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이한 전도는 탐정소설에도 드러난다. 법을 수호하는 탐정은 가장 위대한 법의 파괴자로 그려진다. 법 자체도 마찬가지다. 무수한 위반과 그것을 통제하는 보편적인 법은 함께 존재한다.

 

-사도 바울의 전환

신의 공포가 개입함으로써 순식간에 다른 모든 두려움들이 신의 대립물로 전화.

 

-가장 심각한 위반은...

법 자체, 향락을 부과하는 미친초자아의 법.

:정립과 부정의 단순한 대립이 있다

:유일하게 진실한 위반, 유일하게 진정한 부정은 다른 모든 평범한 범죄적 위반들을 나태한 실정성으로 바꿔놓는 법 자체의 부정

 

. 제로를 하나로 세는 방법

헤겔의 독자로서의 데리다

지젝은 데리다에게서 헤겔주의적 독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를 헤겔주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출발점을 부정하는 계기가 자기 극단에 이른 출발점과 일치하게 되는 전도이다. 수사학과 진리의 차이는 수사학의 장 내부로 기입되고, 신화/로고스의 차이는 신화의 장에 내속하는 것. 이로써 변증법적 과정에서 출발점의 외적 한계로 보였던 계기가 부정적 자기-관계성의 최종 목적지에 다름 아님이 밝혀진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데리다는 헤겔의 변증법을 개념의 목적론적 자기-매개의 회로로 환원시켰고 바로 이 지점을 지젝은 비판한다.

 

반영적 규정으로서의 동일성

지젝이 지적하는 동일성의 특성은 첫째, 변화의 역동성 자체를 관통하여 지속되는 동일성, 구체적 동일성이다. 생명과정 자체의 동일성으로 차이를 배제한 추상적동일성과는 다르다. 둘째, 이 자기와의 동일성은 절대적인 모순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은 법이다라는 동어반복은 이러한 모순을 드러낸다. 앞의 법(법은~)은 범죄에 추상적으로 대립한다는 측면에서 보편 법이다. 반면 뒤의 법(~법이다)은 앞의 법의 은폐된 진실, 법 이면의 외설적인 폭력성, 절대적으로 보편화된 범죄성을 드러낸다.

신은 신이다, 법은 법이다. 이런 명제의 형식은 추상적인 보편자가 명제 뒷부분을 통해서 특정한 규정성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를 일으킨다. 이게 왜 중요한가. 간단히 말해 완전한 자기 동일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편자의 동일성이란 궁극적으로 모순이다. 이 모순은 그 공백을 통해서만 메워진다. 신은 신이다라는 명제에서 보편으로서의 신은 대립물로서의 그, 증오와 파괴와 분노의 미친 신을 지닐 때에만이 비로소 신이라는 보편적 개념은 완성된다.

 

속성의 교차변환

바민스키의 속성의 교차변환은 사례가 능동적으로 사례 자체와 사고간의 차이를 발생시키며, 내적 사고는 사례의 도움을 받아 그것의 내용에 도달하는 수동적 매개체로 남게 된다. 이러한 속성의 변환을 통해 더 이상 사고와 사례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하나의 사례는 더 이상 외적이고 수동적인 방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헤겔적 관념이 이것을 보여주는데, 인간 개별자들은 신적 관념의 예시이다. 그러나 이 관념은 그리스도라는 사례가 육화됨으로써만 온전히 자신을 실현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사례의 예가 진실 자체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속성의 변환을 통해 실체는 주체가 된다.”

 

기표의 논리

이 절은 앞서 신은 신이다에서 설명했던 보편과 특수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보편은 자신의 특수성 속에 대립물의 형태를 한 유적 보편성을 체현하고 있는 역설적 원소를 추가해야만 가능하다. 왕정주의라는 보편적 유는 왕정주의 일반의 직접적 체현으로서의 공화주의를 추가할 때 비로소 총체화된다. `녀 이론도 마찬가지. 남성 이라는 유는 여성이라는 하나의 종만을 가진다. 이 성차의 기입을 통해 인간 보편성이 정립된다. 그러므로 라캉에게 있어서 남녀는 종차가 될 수 없다. 이처럼 남성이라는 보편적 유가 중층결정되는 과정은 지젝이 보기에 매우 헤겔적이다. 전체는 언제나 나의 반정립적 규정을 포함한다.

 

주체화된 구조

기표의 구조가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것은 자기 부정의 형식으로 보편성을 체현하고 있는 잉여 원소에 의해서, 또는 보편자가 반정립적 규정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지점을 통해서이다. 주체는 보편자와 특수자 사이의 실패한 만남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때의 주체는 특수자들의 연쇄 안에서 보편자 자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역설적 특수자가 다른 기표들 대신 주체를 표상하는 기표인가? 그렇지 않다. 지젝은 이런 단순한 독해로는 결여와 잉여의 변증법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직 하나(라캉의 나머지 하나plus-One”)는 제로의 외적 형식이고 바로 이 나머지 하나가 주체를 표상하는 기표이다.

 

 

주체의 은유

지젝은 주체에 대한 두 가지 상보적인 독법을 소개한다. 주체는 은유인가. 환유인가. 주체는 하나라는 대립물 형식 속에 나타난 무이다. “기원적 은유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으로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떤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대체 행위를 통해 아무것도 아닌 것 대신 어떤 것이 있게 된다.”

 

헤겔 하나의 일자  

다시 헤겔의 논리학에서 확인하는 일자. 일자의 상관물은 타자가 아니라 공백이다. 일자는 이미 자기 자신과 자기 타자의 통합이기 때문에, 즉 자신의 타자가 자기 자신으로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헤겔은 이러한 공백을 외재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젝이 보기에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공백은 일자에 대해 외재적이지 않다. 이것은 일자 한가운데 존재하며 일자 자체가 공백이고, 공백은 일자 자신의 유일한 내용이다. 이 일자가 다른 기표들을 대신해서 공백(주체)을 표상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일자das eine Eins라는 역설적 표현이 헤겔에서도 나타난다. 존재는 무이다라는 악명 높은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존재는 공백을 진리(내용)으로 한다. 주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떤 것으로 대체했듯이 존재는 형식적으로 소유하나 그 소유의 내용은 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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