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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아포리아

 

전성현

 

 

자유는 비실체적이다. 자유가 실체화될 때, 즉 자유가 어떤 명사적 형태로 구획될 때,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억압하는 대상을 적대하고 비판할 때 그 가치를 갖는다. 억압을 고발하고 그 억압을 넘어서 새로운 이상향에 대한 노래를 부르짖는, 그러한 역동적 과정이 자유 그 자체이며 고로 자유는 실천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러한 실천은 항상 억압을 매개로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실상 자유의 존재론적 토대는 억압이 아닐까. 억압과 자유는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근거를 부여해준다. 고로 두 항 중 한 항이라도 스스로에게 자기근거를 부여하며 그 자체로서 존속하려고 하고 동시에 자신의 반대 항을 부정하려고 할 때, 그때는 고담준론이 되거나 파시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근데 살펴보면 억압으로 인해 자유가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는 것은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자유에도 억압이 필요하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 또한 이 문제가 항상 난제였는데, 근데 이 책을 보면서 나름 생각이 정리된 것 같다. 4*19는 이승만 정권의 폭압적인 행태에 반발하여 일어난 혁명이다. 비록 혁명이 시작에서부터 목적과 적대의 대상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 혁명을 통해 이승만의 하야를 달성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단절을 만들어냈다. 근데 중요한 건 이 책에 나왔듯이, 어느 순간부터는 혁명과 폭동의 분간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파괴 그 자체가 마치 자유의 실천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대중들은 국가장치만이 아닌 수많은 비국가장치까지 파괴하였고, 그들은 정말 ‘대중들의 공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이렇듯 자유 그 자체만이 부각이 될 때, 자유는 실천적인 측면에서 그 경계가 희미해진다. 억압되지 않는 자유는 말 그대로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기에, 그때의 자유는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의 양가성은 4*195*16으로 귀결되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확고해 보인다. 어떠한 척도도 존재하지 않은 채, 일종의 악무한만이 존재했다고 평가받는 4*19 이후의 1년 동안, 대중들은 결국 강력한 척도(지배)를 갈망하게 되고 그래서 5*16이 터졌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1년 동안 존재했던 수많은 갈등들, 중요한 건 그 갈등들이 제대로 대리(표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 저기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억압당하고 배제당하며 착취당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 목소리 높여 울분을 토했지만, 당시 한국의 정치적 제도는 그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대리하지 못했다. 대리(표상)도 본질적으로 보면 억압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한국사회에서 대리를 거치지 않은 목소리는 고립되어 흩어질 수밖에 없다. ‘고귀한 무질서’, ‘무질서의 위대한 실험’이라고 그 1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대중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산화되고 있는 당대의 현실을 오히려 억압적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결국 이렇게 보면 ‘자유 그 자체’나 ‘억압 그 자체’나 본질적으로 다수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못하는 억압적인 상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러한 당대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억압의 상징적인 대표로 ‘빵’이 치고 들어왔을 때, 그래서 그 빵이 자유의 가치를 무력화시켰을 때, 목소리도 드러낼 수 없는 무질서의 상황에서 배고픔까지 겪었던 당대의 사람들이 쿠데타에 체념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자유가 먼저냐 억압이 먼저냐 누군가 내게 물어본다면, 선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성의 문제로 판단할 때, 나는 단연코 자유가 먼저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대리(표상)가 먼저냐 폭력이 먼저냐 물어볼 때, 그때 또한 나는 단연코 폭력이 먼저라고 할 것이다. 다만 대리되지 않은 자유는 무책임한 폭력으로 귀결되기 십상이고, 목소리가 묻힌 자들이 사용하는 폭력이 아닌, 무분별한 폭력은 억압 그 자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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