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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 세미나] 3월1일(목) 참고

타락천사 2012.03.01 00:01 조회 수 : 4164

데이비드 흄의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 -한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중에서-

 

흄은 회의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자들과 달리 모든 문제에 대한 판단중지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자연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이미 잘 마련해주었고 어떤 한계점에 이르면 본능과 느낌이 주도하게 되어, 철학적 회의는 ─ 온당하게도 ─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고 흄은 믿었다. 흄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문제 삼았다. 그는 인간 삶에서 이성의 역할이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대부분의 선배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제한되어 있음을 논증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저술은 매서움과 독창성으로 번득이는데, 특히 그가 자신의 철학적 상념의 대부분을 25살 이전에 완성하여 출간했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의 첫 번째 책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A Treatise of Human Nature』(이하 『논고』)는 그의 바람보다 훨씬 덜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책을 ‘인쇄될 때부터 죽어서 태어났다’고 서술했다.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이하 『탐구』)는 『논고』의 재작성 및 확장본으로 『논고』의 내용을 더 쉽게 만들고자 의도되었다. 그는 독자들이 그의 표현방식 때문에 흥미를 잃었다고 느꼈지만 『논고』의 내용에는 대체로 만족했다. 요즈음의 철학자가 독자를 위해 이 정도까지 수고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로크와 마찬가지로 흄도 보통 경험주의자로 기술되며, 로크처럼 그도 마음의 온 내용은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온다고 믿는다. 흄은 경험주의자이다. 그저 우리 사고의 근원에 대한 그의 결론 때문이 아니라 그의 방법론 때문에도 그는 경험주의자이다. 그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첫 번째 원리로부터 이끌어내고자 시도하기보다는 관찰 ─ 대개는 내성의 형태로 ─ 에 의존한다. 그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일관된 과학적 견해를 세우는 것이다.

마음에 관한 그리고 이것과 세계와의 관계에 관한 그의 견해 가운데 많은 것은 로크의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에세이』에 의해 영향을 받았지만, 흄은 이것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켰다. 그의 철학 가운데 로크의 것과 매우 유사한 측면 한 가지는 그의 관념이론에 대한 신뢰이다. 그렇지만 흄은 몇 가지 새로운 용어를 도입했다. 로크가 그냥 ‘관념’이라는 말을 사용한 곳에서 흄은 ‘지각’, ‘인상’ 및 ‘관념’에 관하여 말한다.

 

관념의 기원 the origin of ideas

흄은 경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지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는 로크의 ‘관념’에 해당한다. 지각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등을 할 때 발생하는데, 오늘날 이 용어를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의 정신활동을 포함한다. 흄에게 지각은 기본적으로 두 종류로 이루어진다. 인상과 관념이 그것이다.

인상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구하고, 또는 의지할 때 갖는 경험이다. 흄은 이것을 관념보다 더 ‘생생하다’고 설명하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더 분명하고 자세하다는 것인 듯싶다. 관념은 인상의 복사물이다. 즉 관념은 우리가 우리 경험을 회상하거나 상상력을 가동할 때 그 대상이 되는 것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도서관에서 내 앞의 종이 위에서 움직이는 펜의, 그리고 내 뒤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어떤 사람의 인상을 가진다. 나는 또한 내 손 밑에 있는 종이의 재질에 대한 인상을 가진다. 이런 감각 경험들은 생생하다. 다시 말해서 내가 그저 앞선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거나,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믿기는 힘들 것이다. 나중에 내가 컴퓨터에 이 글을 입력시킬 때, 나는 물론 이 순간을 회상할 것이고 나의 인상들을 되살릴 것이다. 그때 나는 인상들이라기보다는 관념들을 가지는 것이 된다. 이 관념들은 현재의 감각 인상들의 복사물들로서, 이 인상들과 똑같은 생생함을(또는 흄의 용어로 ‘선명함’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흄은 로크의 주장을 용어만을 바꾸어 다시 사용한다. 즉 ‘우리의 모든 관념은 인상의 복사물’이기에 본유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처음에 인상으로서 경험하지 못한 어떤 것의 관념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래서 그것의 인상을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데도 황금산을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흄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의 답은 단순관념과 복합관념의 구분에 의존한다. 단순관념은 모두 단순 인상에서 온다. 이것들은 색깔, 모양과 같은 것들에 대한 관념, 즉 더 이상 부분들로 나뉠 수 없는 관념이다. 복합관념은 단순관념들의 결합물이다. 따라서 나의 황금산의 관념은 ‘산’ 과 ‘황금’이라는 단순관념들로 이루어진 복합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관념은 궁극적으로 산에 대한, 그리고 황금으로 된 물건들에 대한 나의 경험에서 온다.

모든 관념은 그것에 앞선 인상에서 온다는 신념을 지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의 모든 관념이 생각 속에서 여러 구성요소들로 나뉠 수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인상들로부터 왔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이다. 이런 설명에 대한 더 큰 뒷받침은, 날 때부터 완전하게 눈이 먼 사람은 색깔에 대한 시각 인상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빨강이라는 색의 관념을 가질 수 없다는 관찰에서 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다소 논란거리로서, 흄은 이기적인 사람은 관대함의 느낌에 대한 관념을 형성할 수 없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흄은 비록 자신이 개편한 로크의 관념이론이 어떤 특정한 관념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이 원리에 대한 한 가지 예외를 확인한다. ‘빠져있는 파랑 명도missing shade of blue’가 바로 그 예외이다. 서로 다른 밝기의 많은 파랑 계열 색깔들을 접해본 사람이라도 그는 그 가운데 특정한 명도의 인상을 가져보지 못했을 수 있다(가령 1에서 10까지의 명도로 나열된 파랑의 명도 표에서 5번 명도가 빠져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옮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빠져있는 파랑 명도에 대한 관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흄의 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불가능해야 한다. 그는 그 색깔의 관념에 대응하는 단순인상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당하게도 흄은 이것이 극히 예외적이라는 이유로 이런 명백한 반대사례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이 예외를 통해 자신의 근본원리를 더욱더 다듬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만다.

 

관념연합 the association of ideas

흄은 관념들 사이에 세 가지 유형의 연합을 제시한다. 바로 이것들이 어떻게 우리가 하나의 사고에서 다른 사고로 옮겨가는지를 설명해준다. 유사성, 근접성, 그리고 원인과 결과가 그것이다.

만일 두 사물이 서로 ‘유사하다’면 하나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다른 하나의 사고로 이끈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딸을 그린 그림을 볼 때 나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나의 딸에게로 이끌린다(즉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딸을 연상한다: 옮긴이). 만일 두 사물이 시간 또는 장소에 있어 ‘근접하다’면, 즉 이것들이 서로 가까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하나의 관념이 다른 하나의 관념에로 옮겨간다. 따라서 내가 우리 집 부엌을 생각한다면 나의 사고는 쉽게 그 옆에 있는 거실로 옮겨갈 것이다. 이것들은 서로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사물이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됨으로써 서로 관련된다면 원인에 관한 사고는 우리를 그 결과에 대한 사고로 이끌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발부리를 채인다는 관념을 가진다면 이것은 아픔의 원인이기에 나의 사고는 곧바로 아픔의 관념으로 옮겨갈 것이다.

관념과 인상의 구분 그리고 세 가지 관념연합 원리로 무장한 흄은 이제 자신이 인간 마음의 모든 의식작용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과성 causation

당구공 하나가 다른 하나를 치면서 그 공의 움직임을 일으킨다. 이것이 우리가 관찰하는 전부요 그것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하나의 사물이 다른 하나를 ‘일으킨다’(원인 짓는다: 옮긴이)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흄의 근본 물음이다. 그가 지적하듯이 사실에 관한 우리의 모든 사고는 알려진 원인에서 예상되는 결과로, 또는 관찰된 결과에서 있을 법한 원인으로의 논증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내가 사막에서 시계를 발견한다면 나는 이렇게 가정할 것이다. 즉 그것이 거기에 있게 된 원인은 언젠가 누군가가 그것을 그곳에 남겨두었다고. 내가 어둠 속에서 말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거기에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할 것이다. 이것들은 결과로부터 원인들을 추리하는 것의 사례들이다. 당구공 하나가 다른 공을 향해 굴러가는 것을 볼 때, 나는 그 결과로서 그 공이 부딪히는 순간을 예상한다. 결국 나는 원인으로부터 있을 법한 결과를 추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추리 역시 원인과 결과에 관한 추리에 기초한다.

그러나 흄은 우리가 대개의 경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듯이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당연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그런 관념을 어디에서 얻는가를 물었다. 내가 당구공들의 부딪힘을 아무리 많이 관찰할지라도 나는 첫 번째 공에서 그 어떤 것을, 즉 두 번째 공이 일정한 방향으로 ‘반드시’ 움직이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그 어떤 것을 관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흄은 인과관계에 관한 모든 지식의 원천은 경험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두 당구공의 충돌(또는 적어도 이와 유사한 사건)을 관찰하기 전에는 결코 무엇이 발생하리라는 것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자기의 머리가 물에 잠기는 것의 결과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물을 경험하기까지는 그 결과를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한 번 아담이 물의 결과에 대해 어떤 것을 배우고 나면 그는 그 일이 동일한 방식으로 지속해서 일어나리라고 예상할 것이다. 이런 형태의 추리, 즉 과거의 규칙성에 기초한 미래에 대한 추리는 귀납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사한 원인들은 유사한 결과들을 낳으며 우리는 이런 점에서 미래는 과거와 유사할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이른바 귀납의 문제가 정체를 드러낸다. 미래가 과거와 유사하리라는 가정의 정당성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고 전체의 토대인 것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귀납추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연의 규칙성에 대한 가정이 과거에 나에게 잘 맞아떨어졌다고 하는 사실을 사용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귀납을 정당화하기 위해 귀납을 사용하는 악순환 논증에 빠지기 때문이다. 사실로서 남는 것은 귀납이란 그저 인간이 가진 습관, 그렇지만 대체로는 잘 작용하는 습관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것은 관습과 습관이지 이성의 힘은 아니다. 원인과 결과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면밀히 조사해보면 결국은 다음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즉 두 개의 사물이 서로 앞뒤로 함께 붙어서 발생하는 일이 변함없이 관찰된다면, 우리는 앞의 것을 뒤의 것(즉 결과)의 원인이라고 부른다는 가정 말이다. 흄의 이른바 ‘항시적 동반’constant conjunction (또는 ‘늘 붙어 일어남’: 옮긴이)과 ‘결과에 대한 원인의 시간적 우선성’ 말고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결합necessary connection’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흄이 우리가 인과관계에 대한 신뢰를 버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밝히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적게 이성에 의존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크게 물려받은 본성과 습관에 의존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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