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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세미나] <세미나11 10장~12장> 발제문

박모군 2011.12.06 04:09 조회 수 : 4463

2011.12.8. 박모군

10 분석가의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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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기술은 올바로 말하는 기술만큼 중요하다. 전이는 분석가라는 타자와 맺는 모든 특수한 관계를 구조화하는 것이다. 주체는 자신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전이를 중심으로 재편성한다. 전이 개념은 분석 실천 속에서의 기능에 의해 결정되고,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을 지휘한다. 동시에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 전이 개념을 지배하기도 한다. 전이는 분석 상황의 산물인 동시에, 분석 상황 바깥의 가능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배합하는 것이다. 전이 효과는 분석가 없이도 생겨날 수 있지만 개념적 전이는 그것의 구조적 근거들이 자리 잡는 분석 속에서 출현함으로써만 자신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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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가의 현존은 그 자체로 무의식의 한 가지 현시물이다. 그것이 오히려 무의식을 닫아버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시간적인 박동 속에서 열리자마자 닫혀버리는 주체의 운동을 드러낼 것이며, 그 박동이야말로 무의식에 있어 근본적이다.

프로이트 이전에도 무의식이라는 말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나 분석가의 분석 경험과 무관하다. 무의식은 주체가 시니피앙의 효과들을 통해 구성되는 수준에서 말이 주체에 대해 발휘하는 효과들의 총체이다. 여기서 주체는 의심이 확실성으로 식별되는 순간에 나타난 데카르트적 주체이며, 그 주체의 기반은 주체가 놓쳐버린 확실성에 훨씬 더 종속된 밝혀지는 지점이라 할 무의식에 달려있다.

무의식이라는 장은 그 장이 드러난 시점인 프로이트의 시점과 관계한다. 그것이 본성상 상실되는 장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프로이트적 장의 확실한 존속을 보장하는 것이다. 정신분석가의 현존은 그 상실의 증인이며, 분석가의 담화가 찌꺼기와 같이 공허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측면을 통해서 무의식 개념 속에 포함된다. 그것은 소위 미국식 몽매주의처럼 자아 기능의 우월성 아래로 환원되지 않는다. 분석은 그 자체로 갈등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개입이며, 그런 분석을 통해 근본적으로 상실된 원인이라 할 무의식의 원인과 만나기 위해서 전이적인 영향력은 필수적이다.

효과들은 오직 원인이 부재할 때만 제대로 발휘된다. 무의식적인 원인은 확실성의 토대가 되는 불가능성의 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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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는 주체의 비규정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제시되는 무의식의 원초적인 위치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전이 개념은 반복 개념을 통해 이해될 수밖에 없지만 반복 개념 자체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순간적인 열림일지라도 무의식이 열릴 때마다 그곳에는 항상 대타자가 있으며, 전이는 오히려 무의식의 소통이 중단되도록 만드는 수단이다. 전이에 대하 분석이 주체의 자아의 건강한 부분과의 유대관계를 기초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전이저항을 간과하고 있다. 무의식이 타자의 담화라고 할 때. 실현시켜야 할 타자의 담화, 무의식의 담화는 닫힘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있는 것이다. 전이 기능의 모순은 전이가 무의식이 닫히는 순간이라는 사실 자체에 의해 그 전이가 해석의 영향력을 발휘되는 지점이 된다는 데 있다. 고로 전이는 하나의 매듭이며, 항상 위상학적 고찰을 통해 해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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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를 분석가의 방어(제도 영합적;은신처)로 간주하는 토마스 자즈의 견해는 전이를 자아의 건강한 부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만 바라보게 만든다. 허나 진리는 말이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오로지 진리에 호소하며 진리를 촉구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분석가가 해야 할 일은 가능한 속임수의 영역을 드러내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확실성의 주체가 결코 기만하지 않는, 신과 같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분석에서의 위험은 오히려 그런 타자가 속을 수도 있다는 것에서 생겨난다. 속임수에 걸려드는 순간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주장이 진리임을 타자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차원의 기본 구조가 그러하듯, 타자에게 그가 우리를 완전하게 해줄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설득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에게 결여된 무언가에 대해 계속 몰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것은 전이가 내포하고 있는 담힘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전이를 초래하는 것은 대상 a.

 

11 분석의 진리 혹은 무의식의 닫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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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즈의 논문은 분석가의 역할과 관련해 의식의 위기를 드러낸다. 이는 전이의 분석 실천을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론화할 때 생겨나는 당연한 결과이다. 분석 상황에서의 진리추구는 안다고 가정된 주체와의 비대칭적 관계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이때 주체는 역동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담화 속에서 본질적으로 오류를 범하는(자신을 속이는)’ 차원에 자리 잡는다. 분석에 참여한다는 행위 자체가 처음부터 양면적인 것이다. 분석에서 진리는 항상 기만 속에서, 기만에 의해서만 수립되게 된다. 진리가 기만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 이유는 기만 자체가 이미 자신을 진리의 차원 속에서 정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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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앙과 주체의 관계는 무의식의 근본 기능을 구성하는 것만큼이나 분석 경험의 정립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나는 거짓말한다에서 드러나듯 언표를 진술하고 있는 ’, 언표 행위의 는 언표의 ’, 언표 속에서 를 지칭하는 연동소와 동일하지 않다. 분석가가 주체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주체 자신의 메시지를 전도된 형태로 되돌려보내는 지점으로부터 언표인 나는 거짓말한다로부터 도출된 언표 행위 나는 너를 속인다가 나온다. 이렇게 주체가 헤쳐나가는 속임수의 여정 속에서만 분석가는 너는 진실을 말한다라고 진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확실성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조산(助産)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코기토수준에 욕망을 위치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여기서의 욕망은 대상 a와 관련된 타자의 욕망의 욕망일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기능이 사유 속에서 나타난 퇴보로서의 소인간이라면, 주체는 빗금친 S로서, 항상 단항적 표지로 자신을 표시한다. 주체가 자신을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하나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하나가 한 개있는 수준, 즉 셈의 수준이다. 처음에 주체가 주체로 구성될 수 있도록 해준 기호로부터 주체 그 자신을 구별하는 첫 번째 분열이 각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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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위치를 현실적 맥락의 관계로부터 확인하는 심리학은 정신분석 경험과 무관하며, 오히려 주체의 빈곤을 오히려 극도로 심화시킨다. 자아 개념 속에서 다시 등장하는 심리학적 고립자는 내적 대상의 기능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반드시 주체와 구분되어야 한다. 전이가 무의식 속에 숨겨진 것에 접근하는 것인 이상, 그것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길일 수밖에 없다. 전이가 반복을 통해 역사의 연속성을 복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본질상 소실된 관계를 소생시킴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주체가 자신을 보는 곳, 자아 도식에 주어진 자신의 몸에 대한 전도된 실상이 생기는 곳은 주체가 스스로를 응시하는 지점이 아니다. 타자를 통해서만 주체의 상상적 현실이 구성된다. 동시에 주체가 자기를 보는 것은 타자의 공간 속에서이며 그곳은 그가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지점이며 그가 말을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말을 하는 존재인 한 주체는 타자의 장소에서 무의식적 욕망의 성질을 띠는 것의 출발점이라 할 진실한 거짓말을 구성하게 된다.

주체는 통발에서, 그 구멍과의 관계에 있어 안쪽에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으로 들어가는 무엇이 아니라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무언가다. 무의식의 닫힘은 대상 a의 효과이며 내부의 자유 연상의 첫 언표들의 뒤섞임이 대상이 틀어막지 못한 구멍의 간극을 통해 빠져나온다. 이처럼 전이는 기억하기에 대한 장애물인 동시에 항상 적절한 시점에 절호의 만남을 그르치는 무의식을 닫힘을 현전화하는 것이다.

전이는 치료의 종착점과 전혀 별개의 것이며, 전이를 단순한 수단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전이는 동일시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이는 전이를 정확히 분석해내지 못한 한에서만 그렇다. 전이 기능은 절대로 현실에 적응시키기 위한 교정 수단이 아니다. 전이는 무의식의 현실을 현행화mise en acte하는 것이다.

 

12 시니피앙들의 행렬 속에서의 성욕

전이가 무의식을 현행화한다고 할 때 예고되는 것은 전이 분석에서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는 경향, 즉 성적인 무언가이다.

1

전이의 교육으로서의 세미나는 가르치는 자의 말이 출발하는 수준에 따라 공식화가 청중에게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를 개념을 다루는 과정 자체 속에서 고려하고 있다. 세미나라는 개입은 무의식의 현실을 해명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그것을 발생시킨다.

근본적 교환이 행해지는 것은 생물학적 혈통이나 자연적 출산과 대립되는 결연의 수준, 즉 시니피앙의 수준에서이며, 사회적 작용의 가장 기초적인 구조들, 즉 어떤 조합의 항들로 기록될 수 있는 구조들이 재발견되는 것 또한 그러한 수준에서다. 유전학을 통해 밝혀진 성세포의 성숙, 두 차례의 감수분열은 유기체의 결정에 있어 조합의 기능, 일정 단계를 거쳐 잔여물을 배제하면서 작동하는 기능을 보여준다. 시니피앙의 도입과 성적 현실이 일종의 친화성을 가지는 것이다. 중국의 천문학이 음양의 이치로 변화를 기록하고 예측했듯이, 대립항들의 춤은 근본적으로 사회 속의 성별 분류에 의해 촉발된 춤 의식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커니즘을 움직이는 성적 기원과의 닻줄이 끊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별의 화학적 성분에 대해 우리가 영원히 무지할 것이며, 별이 제 자리에서 순수한 시니피앙 기능으로 붙박여 있을 것이라는 콩트의 예측과 달리, 거의 같은 시기에 빛의 분석이 가능해짐에 따라 별들의 화학적 조성은 일거에 이해되고 점성술과 천문학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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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현실로서의 성욕은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만 해명 가능하다. 융이 거부한 프로이트의 리비도는 욕망의 현존이며, 욕망을 통해 현재에도 계속 겨냥되어야 하는 무엇인 것이다. 리쾨르는 해석학의 관점을 통해 분석가들이 다루는 것은 순전히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분석은 오히려 무의식의 박동을 성적 현실과 결합시키는 욕망이라는 결절점(매듭)을 드러낸다. 욕망은 요구에 의존한다. 요구는 시니피앙들 속에서 분절됨으로써 환유적 잔여물(대상 a와 관련한 욕망)을 남겨놓고 이를 자기 밑으로 흐르게 한다. 욕망 기능은 주체에게 시니피앙이 낳은 효과의 최종적인 잔여물이이며, 이것이 프로이트의 코기토이다. 지각의 동일성이 결정되도록 하는, 그 자연적인 은유의 차원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오로지 성적으로 욕망하는 주체의 현존뿐이며, 환각에 현실성이라는 함의가 주어지는 것 역시 주체가 욕망하는 시점부터이다. 이는 정확히 거기서 현실이 탈 성욕화된 것으로 규정되는 한에서다. 성적 현실의 무게는 전이 속에서 새겨진다. 성적 현실은 분석 담화 요구의 담화로 구체화되어 우리의 이해를 좌절과 만족이라는 용어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 아래로 흘러간다.

리비도는 무의식의 장이 전개되어 성적 현실이라는 또 다른 면에 겹쳐지고 마침내 그것을 덮어 감춰버리는 지점에 위치한다. 그러나 두 개의 장이 겹쳐 있는 듯 보이는 부분은 빈 공간이다. 구가 마치 하나의 원이 안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양 그것을 봉해버리기 위해서는 요구에서 출발해 표면을 가로지르는 욕망의 선이 필요하다. 바로 이 선에 의해 성적 효과가 경험 속에서 현전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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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소문에 치료를 중단하려는 브로이어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안나O(베르타)의 상상 임신은 하나의 증상일 뿐 시니피앙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니피앙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어떤 다른 시니피앙에게 하나의 주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한 브로이어에게 건낸 그건 타자의 욕망이야라는 위로는 그가 브로이어를 히스테리증자처럼 다루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례에서 드러나는 프로이트의 욕망은 이후에 브로이어의 자녀가 자살을 선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동시에 그것은 이후의 분석가들이 전이에 대한 이해 전반을 어그러뜨려 현재와 같이 극도로 터무니없는 방향의 이해(ex 토마스 자즈)를 낳았다.

프로이트의 욕망, 타자의 욕망은 곧 분석가의 욕망이다. 분석가의 욕망은 단순히 사태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전이 이론의 기저에 깔린 욕망의 문제를 드러낸다. 프로이트 이후, 분석가 각각의 욕망은 프로이트가 계시한 분석의 역사 속에 연루되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작은 세부, 보충 소견, 우발적 사건을 덧붙임으로써 분석가 각각이 욕망의 수준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규정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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