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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에서의 감성과 오성 그리고 상상력개념에 대하여

-종윤

 

『순수이성비판』에서 전개되는 칸트의 논의는 근대철학이 갖는 인식론적 아포리아와 흄을 비롯한 회의주의 철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사유하는 주체의 확실성과 의심불가능성을 증명하고 이를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의 토대로서 근거지웠다. Cogito를 통해 탄생한 데카르트적인 근대철학의 주체는 대상과 중세적인 신으로부터 독립된 범주로서 분리되며 성립되었지만 이는 주체와 인식된 대상의 일치, 지식의 확실성과 ‘진리’의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대상과 주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확고하게 정초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전략에 대한 탐구는 근대철학자들이 해결해야할 딜레마가 되었다.

인식하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칸트의 시도는 이런 점에서 시대적인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칸트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럽은 뉴튼에 의해 고전 물리학이 정립되고 화학과 천문학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며 자연과학의 지평이 확장되어 가던 시기였다. 그 당시 유행하던 철학, 신이 인간에게 태어나기 전부터 본유관념을 부여했기 때문에 인식의 객관성을 얻을 수 있다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이나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석판과 같은 인간의 정신이 경험을 통해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로크의 경험주의 철학은 각자가 내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의 확실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과학의 요구에 미약한 근거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확실성을 해체하고 물리세계의 인과성에 대한 확신에까지 망치질을 가한 흄의 회의주의는 객관성을 추구하던 근대철학에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 확실성을 확신하고 있던 칸트는 근대철학의 난점을 넘어서기 위해 주체와 대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시도하며 선험철학이라는 새로운 철학의 흐름이 형성되는 기점을 이룬다. 그것은 진리를 대상이 아니라 주체 자체에서 찾는 것,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따라 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인식론적인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순수이성비판』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진리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과 탐구를 진행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객관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성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인식능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 핵심과제로서 다뤄진다.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에서 선험적이며 우리가 갖고 있던 것에서 보다 확장된 인식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종합판단이다. 학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해야 한다고 본 칸트는 물리학 연구방법이 보여주는 것처럼 경험을 통해서도 선험적 종합판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선험적 종합판단이란 우리의 인식능력이 대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우리의 인식능력이 지닌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상과 물-자체에 대한 구분이 만들어지며 인식의 대상은 현상으로 한정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으로서의 대상만을 인식으로서 관계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인 인식의 틀, 그 형식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게 된다. 칸트는 선험적 주관의 인식능력을 감성과 오성, 사변이성이라는 세 개의 심급으로 나누고, 이 각각의 심급의 선험적 형식을 연구한다. 이 글에서는 논의를 감성과 오성에 한정하고 두 개념을 매개하는 상상력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서양 근대 철학』 『외부, 사유의 정치학』 『개념-뿌리들』 『칸트와 헤겔의 철학』 『서양근대철학의 열가지 쟁점』이라는 2차서들의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 글은 쓰여졌다.

칸트는 인식능력을 크게 감성과 오성으로 구분한다. 감성은 대상 자체와 직접 관계하면서 우리에게 감각기관에 의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또는 지각의 활동을 의미하며 오성은 대상 자체와 간접적으로 관계하는 대신 직관된 표상들을 비교/종합하여 개념을 형성하거나 개념에 따라 판단하는 사유작용을 뜻한다. 감성과 오성의 능력들은 각각 고유한 선천적 형식을 갖는다. 감성의 경우 그 선험적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며 오성은 12범주이다. 우리는 감성과 오성 능력이 각각의 고유한 형식에 따라 작용함으로써 선험적 종합판단을 얻게 된다. 선험적 인식이 두 가지 원천을 갖기 때문에 감성학과 논리학이라는 구분이 존재한다.

 

직관능력으로서의 감성과 선험적 감성학

선험적 감성학은 두 가지 순수직관의 형식으로서 공간과 시간개념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통해 그것의 기본 성격과 원천, 기능 등을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감성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해 지각하는 능력-직관을 의미한다. 직관은 단지 감각자료를 오감으로부터 얻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객관적 사물의 속성으로 인식한다. 즉, 직관에는 감각된 내용 외에 감각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이 요구된다. 그것이 시/공간이다. 외적 감각내용을 정리할 때 요구되는 형식이 공간이며, 내적 감각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이 시간이다. 우리는 무엇을 직관하든지 항상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의 것으로 직관하게 되는데, 이 시/공간의 형식은 객관적 사물로부터 이끌어내진 것이 아니라, 사물의 경험 자체가 성립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인식주관의 직관형식이다. 어떤 경험도 시간, 공간이란 형식 없이는 불가능하며, 그리고 그 형식에 의해 규정된다.

칸트 이전의 근대철학자들과 구별되는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시/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명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경험론자들의 논의와는 대조적으로 칸트에게 있어서 시간과 공간은 경험적이고 추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며 모든 현상의 근저에 놓여있는 필연적 표상이다. 어떤 경험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추출되는 추상개념도 아니다. 한편으로 칸트의 논의는 합리론자들의 시/공간에 대한 개념과도 역시 차이가 있다. 합리론자들은 시/공간이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생득적인 단순개념이 존재하는데 이는 이성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 단순개념들이 결합되어 복합개념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시/공간도 유한하고 부분적인 시/공간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유일하고 전체적인 공간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그는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부분 공간들을 갖기 이전에 하나의 유일한 시/공간을 먼저 표상한다는 점, 따라서 이것들은 개념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유일한 표상이라는 점에서 모순된다는 사실을 칸트는 지적한다. 또한 무한히 많은 표상을 포괄할 수 없는 개념에 비해 시/공간은 무한한 크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개념이 아니라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유능력으로서의 오성과 선험적 논리학

감성과 오성은 인식을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칸트의 말을 인용하면 ‘직관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개념없는 직관과 직관없는 개념은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인식이 아니다. 오성과 직관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인식의 원천을 갖고 있는 인간은 특정한 방식을 통해 서로 다른 능력인 오성과 직관을 결합시킴으로써만 인식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직관을 동반하는 개념활동이 이루어지는가, 직관 없이 공허하게 개념활동이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선험적 논리학은 분석론과 변증론으로 구분된다. (책마다 번역이 너무나 다르지만) 전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오성이며 후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사변이성이다. 여기에서는 오성에만 한정하여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사유할 때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어떤 양과 질을 가진다는 것, 속성을 지닌 실체라는 것, 특정한 원인의 결과로서 다른 것들과의 상호작용 안에 있다는 것 등등을 미리 전제한다. 대상을 경험하기도 전에 이미 그대상의 존재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유 안에는 단일성, 다수성, 전체성, 실재성, 부정성, 무한성, 실체성, 인과성, 상호작용성, 가능성, 현실성, 필연성 등의 개념 틀이 미리 짜여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경험하든지 그 틀에 따라 인식주체가 현상들을 종합해서 구성한다. 그 사유의 틀이 되는 것이 범주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사유의 형식이다.

감성과 오성의 매개, 상상력

상상력은 인식에서 커다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재생이라는 종합활동을 하는 재생적 상상력과 도식(Schema)을 산출하고 이 도식을 통해 감성과 오성을 매개하는 생산적 상상력이 바로 그것이다. 재생적 상상력은 일종의 기억의 과정이고 능력이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감각을 통해서 개별적인 낱낱의 성질들을 한 번에 하나씩만 수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대상이 갖고 있는 표상들은 직관의 내적 형식인 시간을 모음으로써만 입체적으로 표상할 수 있다. 상이한 시간대를 동시로 만드는 능력, 하나의 성질이 새겨진 시간표상이 사라졌을 때 그 표상을 다시 기억하는 능력이 재생의 과정, 기억과 연상 작용으로서 상상력이다.

생산적 상상력은 이질적인 능력인 오성의 범주를 감성에 적용시킬 수 있게 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도식이다. 도식이란 개념에 이미지를 부여하는 구상력의 일반적 방법을 의미한다. 도식은 경험을 통해 생겨난 특수하고 구체적인 형태로서의 형상(Bild)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써 하이데거식의 표현으로는 각각의 경우에 알맞은 모든 형상을 만들어내는 규칙의 색인이다. 생산적 상상력은 선험적 도식을 만들어내는데 범주가 분량, 성질, 관계, 양상의 네 가지로 나뉘듯이 선험적 도식 또한 네 가지로 구분된다. 이는 각각 수의 도식, 정도의 도식, 지속성/결과/동시존재의 도식, 어떤/특정한/모든 시간에서의 존재라는 도식과 대응한다. 이들 네 가지 도식들은 모두 시간형식을 의미한다. 오성 범주가 감성을 통해 들어온 자료들을 그대로는 통일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도식이 범주에 알맞게 적당한 시간형식을 고안해낼 때야 비로소 범주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식은 범주를 시간형식으로 번역해주어 감성의 시간형식과 시간형식으로 변형된 오성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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