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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들의 만남과 새로운 시작

2018년 9월 8일은 축제로 가득하여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먼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깊이 읽기] 세미나가 시작된 날이기도 했지만, 수유너머104에서 만난 멋진 두 선생님의 결혼 피로연이 있었고, 이진경 선생님의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이라는 아주 감동적인 책이 나온 날이며,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날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처럼 나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펼치면, 가을이 시작되는 9월 8일, 기쁨으로 넘치던 수유너머에서의 토요일 저녁이 떠오를 것이다.

2. ‘프루스트-되기’ 혹은 새로운 감각으로 현재를 기억하기

세미나의 첫 시간이어서 반장이신 알렉스 선생님께서 이 세미나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셨고 함께 하신 선생님들의 각자 자기소개가 있었다.

나는 왜 프루스트를 읽고자 하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이 주는 의미는 모두에게 다르겠지만, 아마도 이번 기회에 이 거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한번쯤은 ‘프루스트-되기’의 시간을 갖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루스트를 읽고 난 후에는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책읽기가 단지 지식의 습득이 아닌 새로운 감각의 습득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될 것이다. 알렉스 선생님께서 들뢰즈를 인용하여 말씀해 주신 ‘진리찾기’로서 프루스트는 단순히 과거와 기억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배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도 이 책의 1부를 읽었을 뿐인데도 나의 모든 경험들이 새롭게 천천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 흐름이 마르셀의 고백처럼 새겨지면서 지워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의 ‘작은’ 변화가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이런 경험은 참으로 놀랍고 멋지지 아니한가.

그리고 우리는 프루스트에게 ‘기호’의 의미에 대해서, 우정과 철학 그리고 사랑과 예술에 대해서, 결국엔 우리가 얼마나 멋진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들뢰즈도 끌어들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특히 철학과 예술의 비교는 철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마저 통쾌하기까지 했다. 구술로 진행된 토론이었지만 ‘문헌’을 뒤져서 적어본다. (이럴 땐 나도 어쩔 수 없는 철학전공자다)

철학자는 사유란 참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랑이며, 진리란 자연스럽게 생각된 바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프루스트는 우정과 철학이라는 전통적인 커플에다가 사랑과 예술이라는 보다 막연한 커플을 대립시킨다. 평범한 사랑이라도 위대한 우정보다 낫다. 왜냐하면 사랑은 기호의 측면에서 볼 때 풍부하고, 무언의 해석을 자양분으로 삼아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 철학적 작업보다 낫다. 왜냐하면 기호 속에 감싸여 있는 것은 모든 명시적 의미들보다 더 심오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우리의 선의지와 우리의 사려깊은 노동이 낳은 모든 성과보다 더 풍부하다. 그리고 사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사유의 재료를 주는 것>이다.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59쪽)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 영역판 서문에서 밝힌 바 있듯이 고전적인 사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배우게 된 것은 프루스트에게서였다. 사유의 선의지와 자발성에 맞선 사유의 강제성과 마주침은 우리로하여금 해답이라고 가정된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에까지 이르게 한다. 사유를 가두고 있는 이미지들에서 벗어나는 사유의 해방. 우리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그 해방의 원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3. 출렁이는 바다로 항해하는 감각적 기억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출렁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감각적 기억의 흐름이다.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기에 어디로도 갈 수 있는 기억은 현재와 순수과거를 지나 미래를 향하고 있다. 현재 나에게 펼쳐지는 모든 현상에 대한 묘사는 기억의 서사가 되고, 과거에는 모르고 지나갔던 의문들은 하나씩 밝혀지면서 배움의 과정이 된다. “우리가 시간을 헛되이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기호들을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게으른 삶이 바로 우리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앞의 책, 51쪽) 마르셀의 기억은 출렁이며 흐른다. 파도가 현재의 감응을 나타낸다면 저 깊은 바다의 심연은 기억으로 잠긴다. 나는 그 바다의 신비를 아는 것을 ‘배움’이라 부르겠다. 일찍이 철학과 문학의 구별을 알지 못했던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이런 구절은 반가웠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이란 남들의 생각이 만들어낸다. ‘아는 사람을 본다’고 하는 단순한 행위마저 어느 정도는 지적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의 외모에, 그 인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채워넣는다. 그리하여 전체 모습을 마음속으로 보았을 때 그 대부분은 역시 이러한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러한 관념이 그 인간의 뺨을 부풀리고, 콧날을 또렷하게 그려내며, 목소리 울림이 하나의 투명한 껍질에 지나지 않는 듯이 그 안에 들어가 울림에 뉘앙스를 섞으므로 실제로 우리가 그 인간의 얼굴을 보고 듣고 할 때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은 결국 이러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동서문화사, 61쪽)

이 작품이 단순히 기억이나 추억찾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무의식적 기억의 나열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던 ‘사유의 재료들’, ‘배움의 원료들’을 기대어 배움의 선들로 그려 나가는 소설이다. 우리는 마르셀의 선들을 따라가면서 동시적으로 우리들의 감각적 기억을 지금, 이곳에서 만들어간다. 세미나에 모인 여러 선생님들이 자신의 책읽기를 통해 그려진 기억들을 말씀하실 때, 그 촉발된 기억이 남긴 인상은 현재를 다르게 보이도록 ‘강요’한다. 함께 나누는 시간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기대어 있지만, 그 나눔의 시간이 배움이 되는 이유는 각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고, 나의 경험이 다시 말들을 통해 반복되기 때문이다.

4. 우리 마음속의 ‘콩브레’, 수유너머

우리 마음속에도 마르셀의 콩브레와 같은 그런 추억의 장소가 있지 않을까요?

어느 선생님의 이런 질문에 참석했던 이들 모두 자신의 콩브레가 어디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은 전남영광이 자신의 콩브레라고 하시며 어렸을 때의 추억을 말씀해 주셨는데 듣고 있으니 정말 마르셀의 고백만큼이나 따스하고 좋았다. 닭을 키우고 달걀을 주웠던 어렸을 때의 경험은 지금 수유너머104에 와서도 화분을 키우고 음식을 만들고 주위 환경들을 돌보는 습관으로 남게 되었다고 하신다. 자신의 콩브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서울이 고향인 나는 선생님이 간직하고 있는 콩브레라고 할만한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어쩌면 ‘수유너머’라는 이 공간이 먼 훗날 나의 ‘콩브레’로 기억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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