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후기를 쓰기로 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큐비즘이란 말을 만들어냈고
또 '초현실적'이란 말을 만들어냈죠.
큐비즘은 큐비스트 친구들이 많았으니 동시대적이었지만
초현실적이란 말은 초현실주의 이전에 만들었으니 비동시적이었습니다.
달리기 위해 다리를 쓰던 것을,
달리기 위해 바퀴를 쓰게 될 때, 우리는 부지중에 초현실적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해 어떤 것을 다루기 위해 부재하는 것을 불러내는 것을 그는 초현실적이라고 했던 셈입니다.
티레시아스의 유방은 선구적인 트랜스젠더 얘기입니다.
티레시아스는 임신, 출산을 거부하며 남자가 되고
그 남편은 대신 엄청난 수의 아기를 '출산'하는....
무대연출이나 의상만큼이나 '초현실적'인 작품이죠.
당시 어느 평론가는 반페미니즘적 연극이라고 했다던데,
요즘처럼 생물학적 성이 문화적 개념인 젠더를 대신하며 되돌아와
남녀의 '자연적' 이항성이 복권되는 시절이라면 쉽게 받아들여질 평가 같기도 합니다.
아폴리네르는 이 연극의 주제를 스스로 '인구감소'를 비판하려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심지어 극단장의 기나긴 모두발언을 통해 반복하는데
이것이 정말 진지한 반맬서스적 문제제기, 인구=국부라는 애국주의적 관심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초현실적 성향의 시인이 무언가를 직설적으로 말할 때는
대개는 아이러니(반어)로 읽어야 하지요.
더구나 자기 작품의 주제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리얼리즘 작가가 아니라면, 20세기 예술에선 상상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남편'은 애를 그렇게 많이 낳는 것을
대구가 엄청난 양의 알을 낳는 것에 비유합니다.
이쯤되면 인구증가에 대한 진지한 주장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조롱하는 대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차대전 직후, 애국주의가 기승을 부렸을 때,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에 대해 '국부론적' 관점에서 인구증가를 주장하는 입론들이 드셀 때
그걸 조롱하기 위한 반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탈리아 출신 불법체류자로서 애국주의를 과시하여 국적을 얻고자 했다고
그러기 위해 인구증가=-국부증가의 애국주의를 과시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애를 낳는 것을 대구알에 비유하는 발상이란 스스로의 목적에 반하는 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논란을 정리할 전기적 자료를 보지 못했으나,
문학 내지 예술작품을 그 텍스트나 작가가 직접 표명하는 말로 귀속시키는 것은
그리 현명한 독서의 방식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저는 아폴리네르의 유머감각을 믿는다면
그의 이 작품을 인구증가 선동을 위한 것이라고 읽을 이유는 없다고 믿습니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은 프란시스 풀랑크(풀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위키에는 발음 표기가 풀랑크라 되어 있네요^^;;)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졌고
이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더군요.
좋은 세상입니다.호호호
세미나 후기, 잘 읽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