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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세미나

라이너 포르스트 「중요한 일부터 먼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그린비 2016)∥ 최진석

 

1

- 비판적 정의론의 구성시도 중 가장 선두에 선 프레이저와 호네트는 각각 맑스주의 전통과 비판적 계몽주의 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자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 관계의 극복을 근본 목적으로 두며, 정치경제학적 착취를 주제화한다. 이 입장의 토대에는 힘의 불균형이나 정당화되지 않은 지배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성립시키려는 정의의 개념이 있다. 후자는 근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나타나는 개인적, 문화적 황폐화를 고발하며, 그 주제는 소외이다. 이를 위해 질적이고 윤리적으로 실체적 용어인 진정한 자아실현, 의미있는 삶의 형식, 다양한 형식의 상호인정과 사회적 존중을 통해 지양된 존재 등을 비판의 도구로 사용한다.

블로흐 식으로 인간 존엄성의 이념이나 인간 행복의 실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기도 하나, 프레이저가 행복에 무신경한 것도 아니요 호네트에게도 존엄성이 중요하기도 하다. 존엄성과 행복을 병치시키는 칸트주의와 헤겔주의의 차이 및 그 실현이 필요하다(본인이 그리하겠다는 뜻). 두 입장 사이의 논쟁은 사회 관계 안의 인간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사회 존재론의 쟁점을 반영한다. 프레이저가 소외 문제에 더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듯, 호네트가 개인과 사회의 통일성으로의 환원을 강변하지도 않는다(478).

 

2

포르스트가 보기에 프레이저와 호네트는 전통적 비판론을 극복하는 가장 최신 이론들이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프레이저는 현대 서구 자본주의가 두 가지 지배적 부정의 형식(그에 따른 주체의 두 경험)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하나는 경제, 정치적 불평등으로 인한 자원의 결핍에서 오는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존재 혹은 정체성에 대한 사회 문화적 인정의 결핍에서 오는 고통이다. 그녀는 인정과 재분배의 변혁적 전략을 목적으로 하는 이차원적 정의론을 제안하는 바, 이는 모든 구성원들 간의 참여동등이 존재하는 사회 기본구조를 성립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동등은 상호 인정받는 좋은 삶이라는 실질적 관념을 토대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율적인 삶을 이끌 동등한 기회를 확립하려는 ‘강한 의무론적 자유주의 형식’을 취한다.

호네트는 일원론적 인정 이론을 주장한다. 그는 인정과 인정을 통한 자아 실현의 세 차원을 분석한다. 그는 프레이저가 해명 못하는 고통의 형식들을 규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정 투쟁의 사회역학을 드러내야 한다고 본다. 경제적 재분배의 투쟁 문제는 그에게 특정 형식의 일과 경제, 사회 과정에의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고 인정할 것인가로 전환된다. 사랑, 평등한 권리, 사회적 존경이라는 세 영역에서 인정받는 삶의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의론은 허무하고, 좋은 삶은 망각된다.

호네트는 인정의 설명이 규범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회적, 개인적 삶의 차원에 접근하고, 이는 인간의 이해관계 구조에 밀착되어 있기에 매번 사회적 실재 속에서 규범의 가능성을 새롭게 출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프레이저는 ‘공적으로 이미 표현된 목표들’만을 다루게 되므로 일면적이다. 하지만 프레이저는 주관적 고통의 경험 역시 규범적으로 매개된 것이므로, 호네트가 규범 밖에서 고통을 찾아낸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프레이저)

포르스트는 프레이저와 호네트와의 대화를 통해 비판 정의론에 대한 제3의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그것은 중요한 일부터 먼저(first-things-first)라는 것으로서, 정당화 일원론과 진단-평가 다원주의이다.

인정 이론적 설명이 넓게는 사회적 고통 경험을, 좁게는 부정의를 좀더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필수적 감각중추를 제공하는지, 그러나 어째서 정의 주장과 정당화 기준이 문제가 될 때는 과정-의무론적, 담론-이론적 설명이 필요한지 설명하겠다. 정의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의 규범적 판단 영역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특별한 규범적 정당화 문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정당화 불가능한 주장들에서 정당화 가능한 주장을 가려내 분류하는 작업니다. 이는 타자존중이라는 실천이성의 맥락에서 나타나는 정의의 문법이다(483). 정의의 맥락은 항상 모든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기본 관계-기본적 경제 관계를 포함해-를 상호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당화시키는 특별한 정당화 맥락이다. 상호성과 일반성이라는 척도는 타당성 척도에서 담론적 정당화 척도로 변화한다. 이런 방식으로 볼 때 정의의 맥락들은 이 척도들을 토대로 하는 정당화 맥락들이다.

현실의 시각에서 볼 때 가장 자주 나타나는 정의의 맥락은 처음에는 부정의의 맥락이다. 따라서 모든 정의론은 복합적 부정의론을 요구한다. 부정의론은 규범적 설명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회 분석의 형식이기도 하다. 규범적 설명이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라면, 재귀적 주장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포괄적이고 성찰적인 정의 원칙을 정식화할 수 있다. 어떤 정치-사회적 맥락에 속하는 사람 모두에게 상호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적, 정치적 관계란 있을 수 없다.

정의는 원래 우리가 가진 것에 관한 게 아니다. 정의는 우리가 대우받는 방식이다. 정의는 목적론적인 개념이 아니다. 정의는 정의의 맥락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귀속시키는 의무론적 책무와 연관되고, 정의의 핵심은 상호적이고 일반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이유에서 주장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484). 정의는 정당화될 수 없는 지배를 종결시키는 것이며, 평등한 시민, 즉 정당화 기본권이라 부른 것을 갖춘 사람으로서의 지위와 연관되어 있다.

가장 근본적 정의 원칙은 정해진 재화를 분배하는 특별한 패턴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모든 분배가 가장 정당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완전히 다른, 경쟁적 배분방식들이 정의롭다고 혹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485).

이는 프레이저와 달리 정의에 대한 일원론적 접근을 제안한다. 그러나 호네트식의 인정과 자아실현에 대한 실질적 설명에 토대를 두는 접근법도 아니다. 이는 기본 사회 구조의 모든 구성원이 유효한 사회적 정당화 과정의 동등한 참여자로 존중받을 기본권에 대한 인정을 제안한다(인간 존엄성 존중).

프레이저의 참여동등이 하나의 일반 원리라는 주장도 있지만, 포르스터가 보기에 참여동등은 여러 다른 취지에 기여한다. 첫째, 참여동등은 공정한 사회적 정치적 구조, 즉 정의의 최종 상태를 확립시키는 목적이다. 하지만 또한 참여동등은 정의의 수단이다. 그것은 정당화 가능한 재분배 정책이나 인정 정책에 대한 민주적 논쟁에서 시민이 누려야 할 필수적인 정치적, 사회적 위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486). 이 모호함을 해결해야 한다.

< >, 기초적(최소치) 정의는 정당화의 기본 구조를 요청한다. 그것은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제도를 결정할 충분한 지위와 힘을 갖게 한다. 최대치 정의는 완전히 정당화된 기본 구조의 확립이다. 즉 정당한 사회의 시민이라면 상호 간에 부여해야 하는 권리, 삶의 기회 그리고 재화를 제공해 주는 기본 구조의 확립을 요구한다. 참여동등은 그 기초적 양식에서와 최대치 양식에서 매우 다른 것들이다. 기초적 양식에서 그것은 민주적으로 자기 변혁을 하는 성찰적 사회, 정치 제도들 안에서 유효한 정당화 권리를 갖는 것이다. 이는 재화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방식을 담는 기본 제도를 결정할 힘을 최우선적으로 포함한다. 우리가 사회정의에 대한 ‘변혁적’ 접근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우선 생산과 분배의 공정한 제도에 대해 말해야지 재분배 제도를 우선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참여동등은 과연 정의 주장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척도인가? 그녀가 제안하는 개념적 도구들이 부정의 현상을 분석하기에 충분한가?

(1) 참여동등에 대한 서로 다른 의미해석들 간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지 잘 모르겠다. 추측해 보건대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평등의 개념이지 좀더 실질적 이념으로서의 참여가 아니다(488). 인정이나 재분배 주장을 위한 척도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동등에서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평등이란 특정 사회 구조 및 관계에서 상호 거부할 수 없는 정당화를 의미한다.

(2) 부정의는 많은 면모를 갖고 있으며 경제적 착취나 배제 또는 문화적 인정의 결핍은 분명히 이 면모들에 속한다. 하지만 포르스트는 왜 우리가 사회 분석의 언어를 이런 형식들에만 제한시켜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미디어 조작이나 정치적 배제의 형태 비판 등도 있지 않나? 라고... 정치적인 것 그 자체는 이차원적 이론이 고려하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는 좀더 광범위하고 독립적인 영역이다.

 

4. (호네트)

- 사회적 인정 구조의 변화가 어떤 집단의 ‘기여’를 재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해도 그런 변화는 정의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목적 자체일 수는 없다. 목적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적 지위와 기회를 갖는 것이며 더 이상 차별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490).

인정 척도로는 무엇이 정당화 가능한 정의의 주장인지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 어떤 주장도 상호성과 일반성의 척도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무시’의 형식은 모두 상호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부정의’의 범주에 속한다(선험적 정당화). 무시를 부정으로 번역하고, 다시 정의 주장으로 번역하는 것은 호네트가 ‘정당화된’, ‘공평한’, ‘평등한’을 쓰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인정 주장은 토대가 굳건해야 하며 부정의는 정당화되지 않은 인정 관계의 표현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포르스트는 포괄적 정의의 원리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일원론적 접근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원론적 접근은 실질적으로 기본적 사회 정당화 구조와 관련해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최대치 정의의 의미를 따질 때는 급진적 다원주의를 택하겠다고 주장한다. 가령 노동이나 건강과 같은 재화의 분배 문제는 최대치 정의의 대한 주장과 연관되는데, 여기엔 많은 규범적 측면이 생각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의를 프씨나 호씨 식으로 한정할 이유는 없다. 만약 당신이 기초적인 정의의 구조를 가동할 준비가 되어 있고, 부당하게 한쪽만 편드는 주장을 제외시킬 수 있는 상호성과 일반성의 척도를 갖는다면, 논의는 광범위한 규범적 숙고를 향해 열릴 수 있다.

 

5

정의의 문제에서 권력은 그 어떤 재화보다 더 중요한, 진정한 최고선이다(494). 권력은 우선적으로 정당화된 기본 구조를 만들고 이를 유지하고자 할 때 요구되는 재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적 (부)정의론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기존의 정당화 관계(또는 정당화 권력)에 대한 비판을 시도해야 한다. 이 비판은 세 가지 측면을 갖는다.

- (1) 비판적 사회 분석의 목적은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2) 그런 관계의 거짓 정당화에 대한 담론 이론적 비판을 포함한다. 비대칭적 권력관계와 배제의 전통에 베일을 씌우는 정당화에 대한 비판. (3) 효과적인 사회적, 정치적 정당화 구조의 실패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며, 이를 통해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 관계의 베일을 벗기고 변화시키고자 한다.

- 규범적-제도적 견지에서 이런 종류의 정당화 접근은 오직 공평한 정당화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좀더 개별적인 정당화 관점들이 채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권력관계라는 정치적 쟁점을 우선적으로 불러내지 않고는 분배 정의를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인간을 정의의 수혜자로 놓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정의의 행위자,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생산과 분배 구조를 공동으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행위자여야 한다(495).

롤스의 순수한 배경적 절차 정의는 모든 사람이 공적으로 인정된 협력 규칙을 따를 때... 이로부터 도출된 개별적 재화의 분배가 어떤 결과를 갖든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롤스는 자본주의 복지국가를 자신의 재산-소유 민주주의와 구별한다(496 인용문).

재분배와 인정이라는 이차원적 정의관이 충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 실행에서 정치적 문제가 강조되어야 하고, 이는 프레이저의 최근 이론과 궤를 같이 한다. 정치적 차원은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차원 모두에 있는 경합을 무대에 올리고 해소하는 과정을 제공한다. 프레이저에 발맞춰 정치적인 것이 ‘정의의 주인 차원’이 되었다(497).

 

6

- 정당화 일원론과 진단-평가 다원주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포르스트의 비판적 정의론(과 부정의론)은 호네트와 프레이저 주장의 많은 특징들을 담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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