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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세미나) 서신 42. 43.69. 45-49

20191228 발제: muse

 

서신 42. 람베르트 판 벨튀센이 야콥 오스텐스에게

 

***『신학정치론』 책에 대한 견해와 평가. 종교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사유에 대하여

*저자(스피노자)는 선입견을 배제할 때 사람들이 분파로 갈라지고 서로 대립하는 입장을 취하게 하는 견해들을 제대로 검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연 신교들 가운데 이런 혐오스러운 논고를 이토록 악한 정신으로 능숙하고 교활하게 옹호한 사람은 그 저작의 저자 외에 거의 없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는 자연 신교들의 한계에 머물지도 않고 사람들 사이에 종교의 아무런 부분도 남겨놓지 않는다. 신을 인정하고 신이 우주의 설계자임을 고백하지만 신의 본성과 신의 자유의지 없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하고자하는 영원한 진리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형상, 본질, 질서가 전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 규범들에 대한 불복종이나 복종이나 모두 악이나 선을 가져오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기도도 신의 의지를 변화시킬 수 없고 신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결정을 바꿀 수 없다. 규범들에 대한 불복종이나 복종이나 모두 악이나 선을 가져오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기도도 신의 의지를 변화시킬 수 없고 신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결정을 바꿀 수 없다. p.255

​* 모든 것이 숙명에 의해 쓰여 있고 모든 것이 불가피한 필연성에 의해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할 경우, 더 정확히는 우주 전체가 신이라고 주장할 경우, 실제로 최후의 심판을 위한 여지가 있을 수 있고 어떤 보상과 벌을 예측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저는 저자가 이와 같은 견해와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신의 본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는 것과 우주가 곧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저자는 보상의 희망이나 벌의 불안에 의해 덕을 쌓는 것이 아니라 덕의 실천에서 지각하는 덕의 아름다움과 정신의 기쁨이 덕에 제공하는 매력 때문에 덕을 쌓을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p.256

선지자들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학설이 아니라 덕의 경배를 증진시켜주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p.257

*저자는 이성과 철학이 성서의 해석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저자는 성서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고유의 자의적 결정과 추론에 따라 해석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평가한다.

만물의 숙명적 필연성에 대한 그의 원리를 따라 저자[스피노자]는 자연 법칙에 대립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점을 부정한다. (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린다. 왜냐하면 제가 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기적이 신에 대한 아무런 인식도 주지 않고 그 반대로 우리는 자연의 한결같은 질서를 통해 신에 대하여 훨씬 더 나은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스피노자의 네덜란드어 유고집에서) 그는 현존하는 만물의 본성과 그 질서가 신의 본성 및 영원한 진리들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p. 259

*신은 대중이 특수한 개입의 효과에 귀속시키는 사건들을 영원으로부터 결정한 것이며, 따라서 결정의 원인이 기도가 아니라 결정이 기도의 원인인 것이다 p.260

* 신의 의지와 지성은 명칭이 다르지만 신에게는 실제로는 동일한 하나다. 신이 이 우주 및 그 법칙들을 우주에 포함된 영원한 진리들로서 인식한다면 신은 사물들의 본성을 뒤바꾸고 2×3=7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우주를 만들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는 이 우주 및 사물들이 생멸하게 하는 우주의 법칙들과 다른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으며 이런 식으로 우리가 가공해내는 모든 것은 스스로 파괴된다.

*신은 그 자체로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현재 실현할 수 없으며 현재 존재하는 것들과 다른 본성들을 가공해낼 수도 없고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러한 인식과 본성들의 이해와 인식은 현재 존재하는 것들과 다른 것들의 산출이 현재 불가능할 만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본성은 우리가 그것들을 현재 존재하는 것들과 다른 것으로 생각한다면 현재 존재하는 것들과 필연적으로 상충될 것이다. 우주에 포함된 사물들은 본성상 필연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필연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필연적으로 유래하는 신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는 데카르트처럼 모든 사물의 본성이 신의 본성 및 본질과 다르기 때문에 신이 그 사물들의 관념들을 자유롭게 자신의 정신에서 형성한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p.262-263

저자는 신에 대한 어떠한 종교의례도 신을 불쾌하게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저자는 윤리적 덕을 확립하지도 손상하지도 않으며 덕에 대립되지도 않고 불리하지도 않은 성례, 그러나 참된 사람들이 참된 덕의 버팀목으로서 채택하고 존중하는 성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의 사랑을 더 받은 것은 아니고 신은 모든 인간에게 자비롭다고 결론내린다

* 다른 민족의 종교의례도 그것이 미신에 의해 인간들을 참된 성스러움과 멀어지게 할 정도로 오염되지 않았고 역시 미신에 의해 인간들이 덕과 대립하는 모순된 행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떠밀리지 않는다면 신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교도의 작은 신들을 숭배하지 않도록 신이 금지한 것은 이교도의 작은 신들은 유대인들의 국가 수호자로 간주된 천사들이 유대인들에 의해 그들의 방식대로 작은 신들로 여겨지고 그들에 의해 신적인 영광과 더불어 숭배되었던 것만큼 신의 제정 및 위임을 통해 이교도들에 의해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P263-264

* 종교의식이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존중과 덕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신과 부합한다면 그는 종교의식을 구성하는 의례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P.265

* 바울과 야콥의 학설은 시대 사람들의 조건,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인간 영혼의 경건으로 향하게 하기 위한 대단한 효과를 갖는 바, 저자는 사도들이 때로는 바울의 학설을 때로는 야콥의 학설을 사용하는 신중함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신성한 텍스트를 이성을 통해 설명하고 이성을 성서의 해석자로 만들거나 신성한 박사를 다른 신성한 박사를 통해 해석하고자하는 것이 진리와 전적으로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모두 동일한 권위를 가지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담론의 형식 및 그들 각각의 고유한 특수성에 의해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서의 참된 의미를 찾으려면 사물의 본성이 아니라 오직 문자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 정부 당국은 종교의 식과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로써 덕에 손상을 가하는 사람들이 인정되지 않도록 처리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정부 당국은 신성을 침해하지 않고도 국가의 다양한 성례들을 관용할 수 있다.

* 사회에서 실천되며 외적행동에 해당하는 윤리적인 덕은 그 누구도 그것을 사적인 판단과 개인적인 자의에 따른 결정에 의해 실행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P.268

* 대중에게 출간하고 유포하는 것이 시민들과 신도들에게 유용하기 보다는 유해할 정도로 국가나 교회를 동요시킬 일이 걱정될 때는 대중에게 그런 항목을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사람의 의무에 속하지 않는다고 역시 평가한다.

* 신성에 대한 외적 종교의식에 정부 당국에 결정권을 부여해야하며 이는 사회에 가해진 손해를 평가하고 죄인들을 힘으로 처벌할 권리와 권능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 당국이 성례들이 윤리적 덕에 대립되지 않고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당국의 판단에 부적절한 성례들이 국가에 있다는 것을 허가한다고 해서 신의 분노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학설은 모든 신앙행위와 종교를 파괴하고 그 기초를 무너뜨리며 은폐된 용어로 무신론을 설파하거나 또는 신성이 인간들에게 존경심을 갖도록 영향을 가하는 것이 전혀 없는 신을 만들어낸다. 왜냐면 신 스스로가 숙명에 종속되고 신적인 섭리나 통치를 위한 여지가 전혀 남아있지 않으며 벌과 보상의 분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으로부터 심지어 코란도 신의 말씀과 동일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저자를 은폐되고 위장된 논변을 통해 전면적인 무신론을 설파한 것으로 고발하는 것은 진리에서 너무 벗어나는 일도 아니고 그에 대해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서신 43. 스피노자가 야콥 오스텐스에게- 서신 42에 대한 회신

저자(벨튀센)은 나(스피노자)의 출신이 어디인지 또 내가 어떤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관심 없다고 말하는데 그가 알았더라면 내가 무신론을 설파한다고 확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데 나는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허구가 진리 만큼 견고하게 증명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떤 작가를 진실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미신의 오류를 피하기 위하여 내가 모든 종교를 제거한 것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 신을 최상의 선으로 인정하고 신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랑하며 오직 그럴 때만 우리의 최상의 행복과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종교를 제거한 것인가? 덕의 보상이 덕 자체이고 어리석음과 무능력의 벌이 어리석음 자체이며 각각의 사람은 이웃을 사랑해야하고 최상의 권능의 명령에 따라야한다는 것이 종교를 제거한 것인가? 그(발튀센)은 덕 자체와 지성에서 그를 만족시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는 벌 받은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이 없다면 그의 충동에 따라 살기를 선호할 것이다. 그는 노예상태에서 마지못해 악행을 자제하고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는 내가 신의 자유를 제거하고 신을 숙명에 복종시킨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신의 본성으로부터 신이 자신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도출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것이 신의 본성의 불가피한 필연성과 함께 도출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필연성은 신법도 인간 법도 제거하지 않는데 도덕적 가르침은 신 자신으로부터 법의 형태를 받는 받지 않든 간에 항상 신적이고 구원을 위해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p. 277

*내가 “인간은 신의 명령과 율법을 근거로 또 보상의 희망이나 벌의 불안에 의해 덕을 쌓을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등”의 주장을 한다고 저자는 교묘하게 첨언하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또한 나는 신이 신법을 선지자들에게 계시했다고 제시했다. 이 법이 신 자신으로부터 법적 형태를 부여받았다고 제가 주장하거나 또는 그 법을 영원한 필연성과 진리를 포함하는 다른 결정들로 내 가 파악하든 간에 그것은 신의 결정과 구원의 가르침이다. 내가 신을 자유롭게 사랑하거나 또는 신의 결정들의 사실로부터 신을 사랑하든 간에 나는 항상 신을 사랑할 것이며 구원될 것이다. p.279

* 그는 내가 마호메트가 선지자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했지만 내 주장에서 나오는 결론을 마호메트가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저는 자연적 빛과 더불어 선지자들에게 게시된 빛에 따라 보편적 종교가 인정하는 자유는 완전히 인정되어야 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자유를 완전히 제거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떤 선지자가 거짓 선지자임을 증명해야하는가? 그들이 진짜 선지자임을 증명해야하는 것은 선지자들 자신이다. 어떤 사람이 마호메트 또한 신법을 가르쳤고 자신의 사명으로 확실한 징표를 주었다고 답한다면 이 사람 역시 마호메트가 진짜 선지자라는 것을 부정할 아무 이유가 없다. 터키인들과 이교도들도 그들이 이웃에 대한 정의와 자비의 경배로써 신을 숭배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들 안에 있는 것이고 그들이 무지에 의하여 마호메트 및 그의 신탁에 대하여 주장하는 신앙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들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라도 적을 만들거나 성나게 하려는 생각이 없지만 결과는 그런 논의들이 드러나기에 답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기 어려웠다.

 

**서신 69. 스피노자가 람베르트 판 벨튀센에게

뉴슈타드씨가 나의 원고에 반대하고 논박할 계획인데 발튀센에게도 논박할 것이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겠지만 벨튀센이 출판을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

 

*****서신 45.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에게

광학지식에 관한 책인 「새로운 광학개념」 책을 보낸다. 예수회 소속의 프란체스코 라나는 굴절광학과 관련된 몇몇 설명을 제시하고, 요한 올티우스는 모든 종류의 렌즈를 연마하기 위한 단순하고 보편적인 사용법의 기계를 언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한 대상의 모든 점에서 오는 모든 광선을 그들에 조응하는 점들로 모으기 위한 방법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대상이 일정한 거리에 있고 또 정확한 형태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가정한다. 나(스피노자)는 모든 점의 모든 광선을 정확히 모으는 것이 관건이 아닌데 왜냐면 대상이 어떤 거리에 있든지 간에 우리의 현재 인식의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관건은 광축 바깥의 점들에서 온 광선들이 광축에 위치한 점들에서 출발하는 광선들처럼 모이게 하고 그 결과로 렌즈의 개구부가 명확한 이미지를 보존하면서도 더 크거나 작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671년10월 5일

 

***서신 46. 스피노자가 라이프니츠에게- 서신45에 대한 회신

 

렌즈의 개구부를 줄이기 위한 이유로 하나의 점으로부터 오는 광선들이 다른 점에서 정확히 모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계론적 점’이라고 통상적으로 명명하며 그 크기가 개구부의 비율에 따라 변하는 작은 공간에 모인다는 사실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서신 47. 파브리키우스가 스피노자에게

 

군주 팔츠 선제후가 스피노자에게 저명한 아카데미의 철학 정교수직을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라는 임무를 맡겼다. 당신은 철학자에게 걸맞은 쾌적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서신 49 스피노자가 요하네스 게오르기우스 그래비우스에게

 

데카르트의 죽음에 대한 편지를 빨리 보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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