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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세계였습니다. 
시사회 후에 누군가 말했듯이 나이든 성소수자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는 제게 처음이었습니다. 그 당시 남성 역할을 하는 레즈비언을 바지씨라 부르고, 여성 역할을 하는 레즈비언을 치마씨로 부른다는 점도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바지씨는 돈을 버는 역할을 해야하고 치마씨는 가정 일을 해야한다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들에게도 있었다는 점도 특이하게 들렸습니다. 바지씨인 주인공이 가슴을 가리는 속옷을 특별 제작해서 입고 다니고,  당시 여성 운수기사(주인공도 운수기사입니다)들이 지금 제가 사는 동네에서 활동했다는 점도 다 제겐 특별하게 들렸습니다. 그가 14번 화려한 연애사를 가진 점도 부러웠지요. 다만 그의 이야기를 좀 더 길게 깊이 있게 다뤄졌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일본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부부가 된 커플 이야기가 더 길어졌어도 좋았겠지요. 
 
일본 커플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했거든요. 동일본 대지진 후에 남들에게 레즈비언이라고 알려지는 것보다 연인을 못 찾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서 부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부부가 되면 가족이라서 또 다시 지진이 일어나면 경찰서나 기관에 찾아달라고 요청할 수 있으니 결혼을 결심한 것이지요. (아마도 일본은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지역이 있나 봅니다)  
 
영화의 절반인 다른 부분은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조례를 반대하는 종교 집단과의 다툼이 길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월호유족을 비난하다가, 나중엔 세월호를 이용해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그들은 그저 혐오를 찾는 사냥꾼으로 비춰지지요. 그들의 혐오를 우리는 혐오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런 모습이 신선하지 않은 장면으로 비춰졌습니다. 한 인물에게 집중하고 그가 겪는 일을 쭉 그려준다면 더욱 감독이 원하는 바가 보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소수자 당사자인 감독이 굳이 이런 장면을 넣은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2016년 어느 토요일 저는 그날 수유너머에서 오전에 강연을 듣고(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요. 세미나를 들었을 수도) 잠시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몇 명이 제게 시청에 놀러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퀴어퍼레이드가 있다고 했지요.  저는 그들을 따라 갔습니다. 그날 하루는 정말 멋진 자유의 날이었지요. 당시 보수적인 제 감수성에 맞지 않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흔하진 않았지만 팬티만을 입는 게이도 있었고, 여성의 성기를 내세운 단체명도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퍼레이드 안에서는 길거리에서 막춤을 춰도 어색하지 않은 자유로운 기분을 주었습니다. 그날 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착각이었지요. 다녀와 뉴스 댓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변하지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퀴어 퍼레이드 며칠 후에 회사에서 협력업체 직원과 미팅을 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주말에 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저는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웠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실수였을까요? 옆에 있던 분이 '그런 데를 왜 가느냐?'고 뜬금없이 제게 질타를 했습니다. 저는 황당해서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몰라서 멍한 표정을 지었지요. 그러자 내 앞에 앉은 분이 그의 말에 발끈해서 '그런 데를 왜 가면 안 되느냐?'고 화를 냈지요. 두 사람의 언쟁이 길어지고 목소리가 커지더라고요. 저는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낸 제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날 모임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났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감독이 굳이 혐오를 드러내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아, 그리고 이런 현실은 너무나 익숙해서 제게 낯설게 여겨지지 않았나 봅니다. 
 
 
추신 : 토요영감회 재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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