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세미나 3주차 후기

폴구 2017.05.05 13:30 조회 수 :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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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통해 담화를 나누며 아주 오랜만에 한국적 가족주의를 느꼈다. 같이 대화를 나누었던 한 분의 가족과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였고 나라면 어찌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가족과의 (혹은 그동안 나와 함께했던 이들로 확장해볼 수도 있겠다.) 언어가 달라져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가족의 서운함이 느껴져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뭐, 페미니즘 공부하다보면 이런 간증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런 것을 '빨간 약을 먹었다.'라고 일컫거나 변해버린 자신을 '프로불편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보수주의 기독교 정신이 삶의 일부였던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변화하는 과정속에서 한국기독교 체제에 환멸을 느껴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해방신학의 가치를 실현하는 성전으로 삶의 궤적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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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이 관점으로 되돌아보자면, 나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남의 감정 변화를 생각해야되는 상황과 일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굉장히 어린 나이에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깨달았기에 친한 친구들과 이런 상황 때문에 어색해졌던 적이 있긴 했었지만, 그것은 철저히 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부하며 변해가는 내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통해 다른 사람이 되었다기 보다 조금 더 내가 원하는 내가 된 것이 아닐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령대마다 상호작용해야하는 공동체가 특정지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 그 중요도도 잘 모르겠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가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 굳어졌고, 멀리 갈것도 없이 내 나이 또래 애들은 호주제 폐지의 수혜를 자녀로서 느낀 세대기도 하고, 이혼가정도 이미 너무 흔하다. 가정의 영속성을 신봉하지 않는 세대이다. 특히 대학 진학 이후에 친해진 이들은 시각예술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이다 보니 내 주변을 둘러싼 시선의 집중에서 나의 시선의 집중으로 사고의 관점이 이동한다. 따라서 뭐랄까 이런 끈적한 정을 대면할 때는 상당히 건조해진다. 그것이 내 자아의 확장을 발목잡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특히 나는 이런 미술교육과 함께 섹슈얼 마이너리티의 삶에서 몇가지 생존기술을 익혔다.그 중 하나는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전달하는 말과 행동을 분절하여 분석하고 호의적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고 다음 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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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부모님은 나를 인정해주고 화목하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졸업 후, '개인 해방'의 관점에서는 다시 합가한 것이 때때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는 관심사나 취향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다. 가정/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엑셀러레이팅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다만 '맹모삼천지교'로 대변되는 역사적인 배경상 아시아적 가치가 현재에도 작용하는 점, 대가족/가부장 시스템안에서 모든 복지를 가족안에서 해결했던 가까운 과거, IMF이후에 대학진학률 급등(부모세대가 빈곤의 원인을 자기개발 부족으로 돌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성장시대에 개인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점 등이 '빨간약'을 먹은 개인에게도 부모와의 어색하고 불편한 환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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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정은 단순히 가정의 문제는 아니고, 가정의 욕망을 좀더 들여다 볼 필요는 있다.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는 식물과 같이 지금의 가정은 아파트단지에 모여 비슷한 것들을 욕망한다. 내가 살았던 분당은 엄마의 마스터플랜으로 아이가 성장하는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목표하는 대학이 뚜렷다고 그 목표가 국내대학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파주-대안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문을 두드렸던 1년간의 대안학교 생활은 제도권의 다른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평가제도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욕망을 더욱 적극적으로 욕망하게 하여(학생들에게 이는 졸업 후 삶의 문제로 이어진다.) 비슷한 류의 인간군상의 생성이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제도권에 대항하는 기조를 띈다는 점(그러나 제도권에 대한 이해를 수반하지 않는다.), 인원수가 적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적인 속성을 띌만한 위험요소가 많았고 실제로 보수주의로 흘러가는 양상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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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식사를 할 때 부모가 반찬을 권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학원 스케줄 관리, 목표하는 대학, 선생님이 추구하는 가치 등등. 쉽게 타자의 시선에 포박될 위험이 온천지에 도사리고 있다. 이미 시선의 흐름이 개인으로 이동했다면 풀어야할 문제가 거기에서도 산적에 있지 않은가. 친구들과도 어제와 오늘 대화를 나눠봤으나 아무래도 결론은 선택과 집중으로 좁혀지는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부모라 할지라도. 그냥 내 삶에서 보여주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쯤에서 다시 책 말미에 구절을 불러오고 싶다.

"밖을 향해 있던 시선이 안을 향한다 함은 대상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향해 돌리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몸은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향하게 된다. 장인적인 기술이나 술법의 숙련은 필요한 동작을 아무생각
없이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중략)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그 습관적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을 ‘행하고 닦는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부는 ‘수행’이다. 그것은 삶에 던진 시선을 통해 길어 올린 다른 삶의 가능성,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의 가능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공부란 그런 식으로 다른 삶을, 도래할 삶을 만들어낸다."

나는 가정의 해체를 생각하고, 학교의 해체를 생각한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양상과 개인의 가치관 변화, 사회민주주의제도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이야기로 봤을 때, 이는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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