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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공동체 세미나 발제문 3부(마지막)

영용 2019.11.03 11:30 조회 수 : 344

발제문 올립니다~ ............................

 

“영혼의 운명은 바뀌고

바늘은 앞으로 움직여가며

비극이 시작되리라.”

 

여러분은 비극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나요?

저는 그런 건 아직 잘 모르겠고, 이 세미나가 끝나면 차라투스트라를 읽어 보고 싶어요.

그런데 3부 내용에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니체에게 잘 낚이는 방법이 나와 있네요?

함께 보시죠.ㅎㅎ

 

원래 책에서는 차라투스트라의 구성과 스타일이라는 제목으로 책 내용 구성과 니체의 스타일이 순차적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아직 책도 안 읽어봤는데 바로 내용부터 나와 버리니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스타일부터 먼저 얘기하고 책 내용 구성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참고로 제 발제는 책의 내용을 모두 담지 않고 제가 내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느낀 점을 정리한 것이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나 제 설명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펜으로 체크해두셨다가 나중에 함께 얘기해봐요.

 

1. 차라투스트라의 스타일(문체)

 

스타일은 크게 내적상태의 다양성, 실제적인 정서작용, 독자를 선택한다는 점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내적상태의 다양성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니체는 최고의 스타일을 자기 감흥을 가장 잘 표현하고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말하고, 글을 쓸 때도 논문, 에세이, 시집, 희곡, 서평, 설교, 노래, 몇십 쪽에 달하는 주제, 단 한 줄의 아포리즘 같은 여러 방식들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니체의 글들은 내적상태의 다양성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굳이 왜 이렇게 쓰는 걸까 궁금했는데 책 내용을 찾아보니 이 문구가 눈에 띄었어요.

 

‘가르치려는 진리가 추상적이면 추상적일수록 감각을 진리에 끌어들여야 한다.’

[유고] 스타일을 위해, 10개의 아포리즘 중 8번-

 

아, 그럼 감각적으로 글을 쓰는 건가? 싶었는데 아닌 거 같아요. 보통의 감각적인 느낌과 얼핏 보면 미친 사람이 쓴 것처럼 보이는 정도의 느낌도 포함하는 거 같아요. 이거와 관련해 두 번째 특징은 실제적인 정서작용이 글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상징이며 무엇이 비유인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명백하고 단순한 표현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것을 보면 암시를 얻을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스스로 접근해 와서 스스로 비유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생성은 너에게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한다.’ [이 사람을 보라]

 

아래 그림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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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설교자

순수한 인식을 꿈꾸는 자

시장에 모인 사람들

* 위 사진은 니체의 정서작용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징그러웠다면 죄송합니다.

 

이처럼 차라투스트라에는 다양한 은유와 상징이 나옵니다. 이는 정서작용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인데요. 그는 평등의 설교자들을 독거미로, 순수한 인식을 꿈꾸는 자들을 도둑 고양이로, 시장에 모인 사람들을 파리떼로 느꼈습니다. 왜 이렇게 보였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근데 저는 니체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관념적인 얘기긴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를 읽을 때 니체가 서술한 그 사람들은 내게 어떤 동물들로 보일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네요.ㅎㅎ

 

마지막으로 니체는 독자를 선택한다고 하는데요. 이건 먼저 했던 발제에서도 언급이 돼서 생략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얘기한 내용 중에서 궁금한 점은 10개의 아포리즘 중 2번의 의미는 무엇인지에요. ‘스타일은 네가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바로 그 사람을 고려해 항상 너에게 적합해야 한다.’ 니체는 이 말을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같이 얘기해보고 싶네요. 여기까지 차라투스트라의 스타일이었습니다.

 

2. 차라투스트라의 구성

 

(1) 차라투스트라는 여행자

차라(차라투스트라의 줄임말)는 산과 계곡, 섬과 바다,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산을 올라갈 때 고도의 변화, 여행 중 변화하는 계절, 하루 중 시간, 여행 중 만나는 동물들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 고도의 변화 : 동굴 → 얼룩소 → 동굴 → 지복의 섬 → 동굴 → 하산 → 동굴

영원회귀의 반복과 관련.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을 통해 건강한 신체로 변신.

결국 중력으로부터의 자유와 세계를 여러 가지 시각으로 통찰할 수 있게 됨.

 

- 계절 : 여름 (천한 자들의 도덕에 역겨워하는 자들이 심한 갈증을 겪는 계절)

겨울 (왜소한 덕들을 모두 쫓아내는 계절, 사람들의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킴)

봄 (모든 신성한 것들의 거짓을 파헤쳐 태양 아래 놓는 계절)

가을 (결실의 계절, “제때 죽어라”, 모든 익은 것들이 때를 맞추어 떨어지는 것,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계절)

- 하루 중 시간 : 오후 (태양은 사라져가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때 – 황혼녘)

헤 겔

니 체

철학의 시간(황혼의 철학)

철학은 늙은이의 직업

(미네르바의 부엉이)

황혼의 철학은 위험한 것

낡은 것들이 사라지는 시간

(불확실하고 걱정스런 시간)

밤 (“밤은 오히려 밝고 조용했으며, 밤에 찾아온 것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 어린아이가 되어야 할 시간)

새벽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시간)

해뜨기 전 (위버멘쉬로 변신!)

 

- 동물들 : 독수리 (긍지, 고독, 강함, 공격하고 행동,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대비)

뱀 (지혜, 영원회귀 / 삶에 대한 긍정을 시험하는 끔찍한 고통, 신체를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는 여러 충동들)

낙타와 사자 (이전에 얘기한거니 넘어가겠습니다.)

새 (중력으로부터의 탈주) / 난쟁이와 두더지 (중력에 대한 철저한 예속)

말 (자유롭게 뛰고 춤) / 타조, 코끼리 (머리가 무겁고, 춤추기 서툰)

독거미 (자기 능력과 덕에 기초하지 않고, 타자의 능력과 덕을 사악한 것으로 비난하는 방식으로 자기 덕을 기초 지으려 하는 약자들)

거미 (객관성이나 확실성을 내세우며 사물, 사건의 고유한 생명력을 없애는 학자)

독파리 (상대를 아첨하며 무언가를 빨아먹으려 달려듦)

대지의 표면 불개(허세, 새로운 소란)와 대지의 심장 불개(긍정, 새로운 가치)

고양이 (고상한 학자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추잡한 속물,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물소 (지성과 감정 지수가 거의 제로), 황소 (강한 의지와 뚝심)

암소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염증을 느끼고 세상을 등진 채 모든 것을

오래 곱씹으며 반추함. 자발적으로 거지된 자가 되새김질을 보고 배움.)

돼지 (취향이 없는, 낙타와 비슷)

원숭이 (차라를 흉내내며 더러운 곳을 욕하기 위해 더러운 곳에 거주함)

곰 (꿀을 좋아하는 동물, 춤추는 곰으로서의 차라를 표현하기도 함)

 

(2) 차라투스트라의 ‘인간적 질병’ 극복기

 

형제들이여, 맹세코 대지에 충실하라.

하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간에

독을 타 사람들에게 화를 입히는 자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는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 고향을 떠나 동굴에서 십여 년을 수련했습니다. 이후 깨달음을 얻은 그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하산합니다. 이 장면에서 플라톤이 생각날 수 있지만 플라톤의 동굴과 차라의 동굴은 정반대입니다.

플라톤

차라투스트라

- 오류의 감옥

- 동굴 바깥으로 나간 철학자는 자신이 본

것을 동굴 속 사람들에게 알려주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의 눈을 파냄

- 진리를 깨닫는 장소

- 눈을 파낼정도로 진리에 목을 매지 않음

진리는 꿀. 동굴 바깥으로 나온 이유는

그 꿀(신의 죽음)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신의 죽음은 하늘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부수고 대지를 긍정하는 것. 그러나 차라는 사람들에게 대지에서 건강법을 찾으라 했지만 대지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잘 웃고 잘 춤추는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그렇게 행복해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사람들을 떠나 다시 고독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실존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신의 능력만큼 실존한다.

-스피노자-

 

몇 년 후 차라는 두 번째 하산(지복의 섬)을 합니다. 오랜 수련을 더한 그는 대지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고 이 과정에서 ‘권력의지’란 개념이 나옵니다. 신이 죽은 지금, 이 세계를 창조하는 업무는 우리의 몫이며 우리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우선 우리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고 차라는 말합니다.

 

권력의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이며 스스로 힘을 발생시키고 그 힘의 주인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차라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특히 생명체들에서 권력의지를 발견합니다. 생명체는 자기 주변에 있는 것들에 명령을 내리며, 주변을 굴복시켜 자기 삶을 구성합니다. 물론 그 명령의 과정엔 큰 모험이 따르고 이것이 자기 파괴의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한 자들은 일종의 주사위 놀이인 이 과정을 감행합니다.

 

그렇다고 약자가 권력의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이 되는 즐거움은 모두가 느끼고 싶어 하는데 약자는 자신의 힘이 아닌 타인의 힘에 빌붙으면서 이 즐거움을 느끼죠. 차라가 보기엔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강자로 착각하고 있는 약자들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덕의 주인이 아니며 덕에 주인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덕이란 모든 사람들이 따를 수 있도록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이죠. 다시 말해 덕의 주인을 밝히기보다 그 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보편적 가치 정립과 평등한 적용에는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폭군적 열망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덕을 평등하게 적용하기 전에 왜 덕이 같아야 하는지부터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이 따르는 덕이 내 몸에 맞는지 부터요. 차라는 명령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합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자기에게 좋은 것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건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그저 도덕과 관습이 시키는 대로, 또 법과 제도가 규정한 대로 살아가는 일은 약자가 사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근데 여기서 저는 니체가 도덕과 관습, 법과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건지, 시키는 대로만 또는 규정한 대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를 지적하는 건지 궁금해요. 또한 보편적 가치 정립과 평등한 적용에 반대한다고 하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에 대해서 니체는 어떻게 바라봤을지도 궁금합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들어가 차라는 사람들에게 창조하는 능력과 의지(권력의지)에 대해 가르치다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한 무리의 불구자들이 그에게 몰려와 자기들을 치료하는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는데요. 이 때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묻게 됩니다.

 

차라는 그것이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불멸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생성. 그런데 원한과 죄의식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차라는 시간의 흐름과 생성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원한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가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과거는 창조와 생성의 대상이 아니라면 이는 의지의 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시간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고민하게 되면서 차라는 깊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차라는 다시 동굴로 들어가게 되고, 과거에 대한 원한으로 만들어진 미래가 어떻게 구원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두 개의 환영이 나타나요. 첫 번째 환영은 반은 난쟁이, 반은 두더지인 악마 ‘중력의 영’인데요. 이 악마는 계속해서 차라에게 “너 그거 고민해봐야 부질없고, 어차피 다 옛날에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뻔한 것들이야.”라는 식의 말들을 계속해서 합니다. 괴로워하는 차라에게 성문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성문에서 두 개의 길이 만나는데 한 길은 뒤쪽으로 나 있고, 한 길은 앞쪽으로 나있었습니다. 차라는 어떻게 앞으로 나 있는 길과 뒤로 나 있는 길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냐고 하는데 저는 이게 그렇게 놀라운 건지 이해가 잘 안가요. 문은 원래 앞으로 나 있는 길이랑 뒤로 나있는 길이 만나는 지점 아닌가요?

 

여하튼 성문을 통해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차라에게 악마는 “곧은 것은 한결같이 속인다. 진리는 하나같이 굽어 있으며 시간 자체도 일종의 둥근 고리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차라는 악마에게 문제를 너무 쉽게 보지 말라고 충고하는데요. 하지만 악마가 말한 시간의 반복에 대해 차라도 동의했기에 그는 더 깊은 병을 앓게 됩니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다시 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고 작은 일이 다시금 되풀이 된다. [즐거운 지식]

 

악마뿐만 아니라 차라를 찾아와 항상 힘 빠지는 예언을 했던 예언자도 같은 말을 합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모든 것이 똑같고 모든 것이 지나간 것이다.” 차라는 이 말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져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쉬지도 못하고 말조차 하지 못 했습니다. 구역질을 계속 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차라의 병이 깊어질수록 치료법도 점차 부각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차라의 용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예전 발제에서도 언급됐던 ‘돌이 중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생이라면 좋다.’고 했던 말. 그리고 악마에게 너보다 내가 더 강하다 선언하며 서로의 권력의지가 부딪히는 모습. 이를 통해 차라의 용기를 느낄 수 있고, 권력의지에도 상이한 질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정되고 불멸하고자 하는 욕망,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이 원인인가, 아니면 파괴, 변화, 새롭고 기묘함, 미래, 생성의 욕망이 원인인가? 영원화의 의지도 이중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감사와 사랑으로 추진될 수도 있고, 깊은 병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즐거운 지식]

 

영원성을 말하는 권력의지 A

영원성을 말하는 권력의지 B

고정되고 불멸하고자 하는 욕망

창조와 생성의 영원성을 욕망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

파괴, 변화, 새롭고 기묘함, 미래, 생성의 욕망

부정과 원한(깊은 병)에서 비롯된 파괴와 부인

감사와 사랑에서 비롯된 파괴와 부인

우리는 이런 권력의지들을 실생활의 예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도 같이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첫 번째 환영인 악마에 이어 두 번째 환영이 나옵니다. 입 속으로 들어오는 검고 무거운 뱀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목동 이야기인데요. 목동은 입 속으로 들어온 뱀 대가리를 물어뜯었을 때 비로소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며 더 이상 양치기나 사람이 아닌, 변신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긍정의 권력의지에 대한 시험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했던 차라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당신은 견딜 수 있는지, 어떻게 나의 삶을 견딜 수 있는 지와 관련이 있는데 그렇다고 진정한 긍정이 낙타처럼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긍정은 과감한 실천을 요구합니다. 목동이 뱀을 물어뜯었듯이 우리가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대로 두지 말고 재창조하라는 것이지요. 또한 이 과정은 반드시 스스로가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책 마지막에 차라는 ‘보다 높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을 끊고 떠남으로써 위버멘쉬가 됩니다. 떠나는 자만이 새로운 곳에 도달하며 위대한 건강을 갖게 됩니다. 이는 하나의 건강 상태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건강을 갖는 것이죠. 차라투스트라는 신이라는 인간적 질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권력의지를 알게 됐고, 영원회귀를 발견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를 통해 권력의지의 개념을 확장해 위대한 건강에 이르는 길을 찾습니다. 아직 책을 읽진 않았지만 몇몇 내용들을 보면 차라는 특별하면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수치심을 버리고 어린아이가 되라”는 ‘가장 고요한 시간’의 요구에도 한 발 물러섰던 그는 처음부터 완전한 열매를 가진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환영들과 싸우면서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그가 당시에 즐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특별하다고 느낀 점은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용기 있게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책 내용을 정리했고 이제 느낀 점을 써볼게요. 우선 니체의 사상은 미래지향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만을 보며 산다.’는 말이 있죠. 이 말은 오늘 하루 먹고 사는 것만을 보며 산다는 말과 계속해서 변화될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만 본다는 말은 완전히 다른 의미라 생각됩니다. 니체가 말한 바는 후자의 의미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에 모두 들어가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를 찾을 수도 있고, 미래에서 과거를 찾을 수도 있고,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모두 다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좀 추상적인 말이라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저는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다보니 예전부터 친구들과 사회문제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그런 말들을 들을 때가 있었어요. 어차피 우리나라는 헬조선이라 바뀌지 않고 바꾸려 노력해도 대부분이 실패하고, 성공한들 그런 일들은 또 생긴다구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전보다 또 다른 의미를 가질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권력의지의 질적 차이를 얘기했듯 그 변화가 반드시 좋은 변화라는 법은 없죠. 그렇다고 좋지 않은 변화를 만드는 누군가를 또는 헬조선이라고만 얘기하는 누군가를 비난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저는 결국에 사회구조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되고, 당장 돈이 없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앞으로 변화될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라는 말은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번 발제에서 제대로 언급을 못했는데 니체는 자신을 철학하는 의사라 했고, 제대로 된 의사는 자신부터가 먼저 위대한 건강을 찾았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얘기해요. 남을 뭐라 하기 이전에 자신은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봐야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전 니체처럼 긍정하는 철학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감사와 사랑에서 비롯된 파괴라는 말도 마음에 들어요. 처음엔 정말 개인주의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부를 같이 하고 난 이후로 니체도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바라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건 니체와 다른 얘기이지만 제가 사랑했었고, 사랑하는, 사랑할 시간들을 맞이할 예정인 맑스가 쓴 구절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왜 맑스를 얘기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하는 공동체 세미나와 큰 줄기에서 보면 관련이 있다 생각하고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그동안 역사와 현실 정치로 인해 많은 편견과 오해로 얼룩졌다는 것을, 알고 보면 맑스가 쓴 책에서도 니체가 말한 부분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은 저의 욕심이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혹은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라 부른다. [독일 이데올로기] p66~67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제가 많이 참여를 못해서 개인적으로 정말 아쉽네요.

그래도 함께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저 포함 모두가 위대한 건강을 찾으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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