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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세미나] 멸치대왕 욕망하다

버들 2021.06.11 09:07 조회 수 : 1688

 

        멸치대왕 욕망하다

                                                                                                                <버들>

 

                                    멸치.png                                 

                                                                <욕망 덩어리 ⓢ 은섭>

 

  동해에 사는 멸치 대왕은 꿈을 꾸었다.

 하늘을 날았다. 태양이 가까워지자 몸이 뜨거워졌다. 갑자기 천지개벽하듯 흰 눈이 내렸다. 차가운 눈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붉은 고개를 넘어갔다.

 꿈에서 깬 대왕은 가자미 신하에게 용하다는 서해의 망둥이 무당을 데리고 오라 한다. 납작 가자미는 왕복 20일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망둥이를 데리고 왔다. 도착한 망둥이 무당은 꿈 이야기를 듣더니 무릎을 딱 친다.

​ "대왕마마, 용이 되는 꿈입니다."

"하늘을 날며 날씨를 마음대로 다스리는 용이 되는 꿈입니다."

 멸치 대왕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망둥이에게 큰 상을 내렸다. 가자미 신하는 대왕을 위해 힘들게 서해까지 가서 망둥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무런 칭찬을 못 받자 화가 났다. 가자미는 멸치 대왕을 향하여 말한다.

" 내가 제대로 그 꿈을 풀어드리다. 낚시꾼에게 잡혀, 뜨거운 연탄불에 올려진 멸치 위에 소금 팍팍 뿌려, 간이 되도록 엎치락뒤치락하다, 구운 멸치 입안으로 쏙 들어가는 꿈에다."

 놀란 멸치 대왕은 가자미의 뺨을 세게 때렸다. 그러자 가자미 눈은 옆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에 놀란 망둥이는 눈알이 튀어나왔다는 전래동화를 읽고,

 

 멸치를 바라본다. 보잘것없는 작고 마른 몸매, 아무리 큰다 해도 노가리, 명태, 대구가 될까. 멸치의 눈과 마주친다. 허연 눈동자, 그 속에 아직 검은빛을 뿜어내며 꿈틀거리는 몸의 선, 그 선을 따라 아직 반짝이는 은빛. 그 시선의 끝, 치켜진 꼬리를 잡아 입안에 넣어 천천히 씹어본다. 한 입도 안되는 멸치의 욕망을 먹는다. 짜지만 달큼하다. 약간의 비릿한 냄새.

​ 넓은 동해에 많고 많은 물고기 중 멸치. 그것도 멸치 대왕. 호칭에 벌써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작은 덩치의 대왕, 왕중의 왕이 되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은 더 나아가 용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뱀이 이무기를 걸쳐 용이 되기 위해선 몇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 전래동화에서 이무기는 대부분 욕심으로 인해 승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멸치가 용이 되려면 몇천 년이 아닌 종의 변이 과정을 먼저 거친 후, 그 나름 도를 닦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멸치가 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망둥이는 그렇게 말했을까? 멸치가 폭군이란 내용은 없는데. 어쩜 지배계급을 희롱하는 풍자적 동화인지 모른다.

 ​멸치 대왕의 꿈은 한낱 꿈이다. 한낱 꿈이지만 멸치 대왕은 그 꿈을 꾸고 싶어 한다. 그것이 욕심이 아닌 욕망이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가는 꿈, 그것을 바라고, 꿈을 향해,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손안에 꿈을 가지기 위한 시간 싸움. 문득 나도 멸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낱 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한낮에 시를 향한 달큰한 꿈을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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