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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1권 발제

몽사 2009.12.02 17:28 조회 수 : 5654

 

수유너머N 고대정치철학 세미나 | 플라톤, 박종현 역,『국가/정체』,서광사, 1권 (p.53-120)발제문, 09.11.12.


정의(올바름/dikaiosynē)의 속성들에 관한 대화


정정훈


Ⅰ.

첫 번째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세 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첫 번째는 케팔로스, 두 번째는 케팔로스의 아들인 폴레마르코스, 세 번째는 소크라테스에게 적대적인 트라시마코스이다. 이 대화들의 주제는 ‘올바름/정의’(dikaiosynē)이다.


Ⅱ.

1.케팔로스와의 대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올바름이란 ‘남한테서 받은 것은 갚는 것’이 올바름/정의인가하는 것이다. 케팔로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논박을 통하여 그러한 규정이 충분하지 못함을 논증한다. 소크라테스가 그 규정이 불충함을 보여주기 위해 든 사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정신이 멀쩡한 친구의 무기를 잠시 맡았다고 하자. 그런데 그 무기의 주인이 미쳐버렸다. 그럴 때 그 무기를 맡아 둔 사람은 미친 친구에게 무기를 돌려주는 것이 정의로운 일/올바른 일인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2.하지만 폴레마르코스는 시모니데스를 인용하여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 정의/올바름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대화는 이제 폴레마르코스에게 인계/상속된다. 여기서 문제는 도대체 시모니데스가 말한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가이다. 폴레마르코스는 ‘친구끼리는 서로에 대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하되, 나쁜 일은 하지 않음이 마땅하다는게’(65) 시모니데스가 말한 문장의 취지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적의 경우는 어떤지 묻는다. 시모니데스는 적에게는 갚을 것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 논의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진전된다. “그는(시모니데스)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갚는 것, 이것이 올바른 것(정의로운 것)이라 생각하고, 이 합당한 것을 갚을 것이라고 일컬은 것”(65)이다. 그러나 과연 이 규정은 옳은 것일까? 논의는 다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친구들한테는 잘 되게 해 주되, 적들한테는 잘못 되게 해주는 것이 올바름(정의)이라는 게 그가 말하는 것일까요?”(66) 결국 소크라테스는 예의 산파술을 통하여 친구는 물론이고 적에게도 해를 입히는 것이 결코 올바른 일/정의로운 일이 되지 못함을 논증해간다. 올바른 사람이 올바름에 의해 사람들을 올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수는 없다는 것이다. 폴레마르코스 역시 결국 소크라테스에게 동의한다.


Ⅲ.

1.그러나 진짜 대화는 이제부터이다. 트라시마코스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정의/올바름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82)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통치자들이 정하는 법이야말로 정의/올바름의 대표적 표상인데, 통치자들은 강한 자들이고, 국가의 법은 통치자, 즉 강한자의 편익에 따라 제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문제제기는 이렇다. 우선 피차자가 통치자에게 복종하는 것도 올바른 것이다.(트라시마코스는 이에 동의한다.)통치자들은 실수를 하는 존재들이다.(트라시마코스는 역시 동의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수로 자신에게 편익이 되지 않는(옳지 못한) 법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피차자는 그 법이 어떤 것이건 복종해야한다. 고로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더 강한 자의 편익 뿐만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 즉 편익이 못 되는 것도 이행하는 것이 올바르오”(85)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러나 트라시마코스는 강한 자, 통치자는 그 엄밀한 개념에 따르면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통치자는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것만 법으로 제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의사와 키잡이의 경우를 들어서 반론을 시도한다. 이들 역시 다른 이를 통솔/통치하는 자이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를 통솔하고, 키잡이가 선원을 통솔한다고 할 때는 누구의 편익을 위한 것인가? 엄밀한 의미에서 의술, 조타술, 기마술은 과연 자기 자신의 편익을 위하여 사용되는가? 아니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주장이다. “다른 어떤 기술도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에 필요한 것이 없으므로, 그 기술이 관여하는 대상에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91)한다. 그런데 이 기술들은 그 대상을 관리하고 지배한다. “그렇다면 그 어떤 전문적 지식도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약한 자이며 제 관리를 받는 자의 편익을 생각하며 지시”(92)하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어떤 통솔(다스림 : archē)을 맡은 사람이든, 그가 통솔자(다스리는 자)인 한은,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허가나 지시하지 않고, 통솔(다스림)을 받는 쪽 그리고 자신이 일해 주게 되는 쪽에 편익이 된느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오. 또한 그가 말하는 모든 것도, 그가 행하는 모든 것도 그 쪽을 염두에 두고서 그 쪽에 편익이 되고 적절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고 행하오.”(92-93)


2.트라시마코스는 새로운 쟁점을 제기한다. 정의/올바름은 언제나 불의/올바르지 못함에 대해서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 다시 말해 불의/올바르지 못함은 정의/올바름 보다 언제나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령 양치는 기술을 보자. 그것이 양을 돌보는 기술, 양을 다스리는 기술이라면 그것이 훌륭한 기술이기 위해서는 양들에게 유익해야한다는 것이다. 동일하게 “모든 다스림(통솔: archē)은, 그것이 다스림인 한은, 나라의 다스림이든 또는 사사로운 다스림이든 간에, 다름 아닌 다스림을 받는 쪽 그리고 돌봄을 받는 쪽을 위한 최선의 것을 생각하게 된다”(98)는 것이다. 이는 기술로 인한 이득의 문제로 연결된다. 의사가 의술을 행하는 것과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은 별개의 기술영역이다. 병을 고치는 것은 의술이라는 기술영역이고, 돈을 버는 것은 보수획득술이라는 기술의 영역이다. 그 기술에 보수가 추가되지 않으면 전문가는 별다른 이득이 없지만, 그 기술의 대상은 분명 그 기술로 말미암은 이득을 얻는다. “그 어떤 기술이나 다스림도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줄곧 말해 왔듯, 그 다스림을 받는 쪽에 이득이 되는 것을 제공하며 지시를 내린다는 것, 다시 말해서, 더 약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지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100)이 명백하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3.이어서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에서 검토해야할 세 번째 논제로 진입한다. 즉 ‘올바르지 못한 사람의 삶이 오랍른 사람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하는 주장(102)에 대한 검토이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각종 기술의 훌륭함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훌륭하고 지혜로운 이는 자기와 같은 이에 대해서는 능가하고자 하지 않으나, 자기와는 같지 않고 반대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능가’(109)하고자 함과 ‘못되고 무지한 자는 자기와 같은 자에 대해서도 그리고 반대 되는 자에 대해서도 능가’(109)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올바른 이는 지혜롭고 훌륭한 이를 닮았으며,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무지한 이를 닮았으니 “따라서 올바른 이는 훌륭하고 지혜롭되, 올바르지 못한 이는 무지하고 못된 것으로 우리한테 판명”(110)되었음을 소크라테스는 주장한다. 물론 훌륭하고 지혜로운 것이 무지하고 뭇된 것 보다 이득이니 올바른 자가 올바르지 못한 자보다 더 이득을 누린다는 것이다.


4.다음으로 그는 ‘올바르지 못함이 강력하다’(11)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검토한다. 만약 어떤 나라가 올바르지 못함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나라 내부에서도 올바르지 못함이 지배적이라면 과연 그 나라는 하나로 연합되어 적을 정복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올바르지 못함을 불화를 가져와 단합을 방해한다. 단합되지 못한 자들은 결코 단합된 자를 이길 수 없다. “올바르지 못함이 서로간에 대립과 증오 및 다툼을 가져다 주나, 올바름은 합심과 우애를 가져다 주기때문”(112)이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가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였다고 하더라도 정복한 나라 안에는 올바름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강하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올바름을 어느 정도는 포함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한결 더 지혜로우며 훌륭하고 한결 더 유능하게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 쪽이 올바른 이들인 반면에, 올바르지 못한 이들은 아무것도 서로 어우러져 해낼 수가 없는 것으로 이제 밝혀졌소.”(114)


5.이제 마지막 논제를 소크라테스는 토론한다. ‘올바른 이들이 올바르지 못한 자들보다 또한 더 훌륭하게 살며 더 행복한가’(114)라는 문제이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그것만이 뭔가를 해낼 수 있거나 또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것이 가장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그런 것이 각각의 기능’(115, 116)임을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어떤 기능이 부여되어 있기도 한 각각의 것에는 훌륭한 상태(훌륭함 : aretē) 또한 있다’(116)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그 특유의 훌륭한 상태에 의해서는 그 기능이 제 할 일들을 훌륭하게 수행하게 되지만, 나쁜 상태에 의해서는 나쁘게 수행하게 되는 것’임을 말한다. 훌륭한 상태를 상실하면 그 기능 역시 훌륭하게 수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자신과 트라시마코스가 올바름은 혼의 훌륭한 상태이지만 올바르지 못함은 그것의 나쁜 상태라는데 동의했음을 상기시키며, 올바른 사람은 휼륭하게 살게될 것이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잘못 살게 될 것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훌륭하게 사는 사람은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는 그 반대의 상황에 처하는 것이 당연함을 말한다. 올바른 이들이 올바르지 못한 이들 보다 더 훌륭하게 살며,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Ⅳ.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직 정작 중요한 문제, 즉 정의/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에는 도달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이제는 정의/올바름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화는 2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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