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와 <광인>은 간극과 공백, 틈을 지닌채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17세기~18세기에는 19세기 이후에 말하는 '광인과 광기를 잇는 관련성으로서의 정신질환'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하는데,
고전주의의 '광인'은 비이성의 형태로서 직접이고 경험적인 식별에 의해 수용된다.
여기서 수용은 사회적주체(사회인)로서의 자격의 박탈이며,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이성, 도덕을 갖추지 못한데 대한 응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런 사회적 주체의 개념과 나란히 법적 주체의 개념이 함께 병존했었다.
법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검증하여 자립적으로 경제적 책임을 질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별하여
무능력자에게 법적 대리인을 필요로 하는 금치산을 선고하는 데에는 직접적 식별만으로는 부족하고 의사들의 검증이 필요하였으며,
이때 어떤 '지식, 앎' 으로 즉 판별기준으로 작동하는 '광기'의 규정은 '광인'의 식별만큼 단순하지가 않았다.
확실히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이유를 포함해서
(앞장에서 법적 주체를 판별하는 의학적 판별의 시도가 고전주의 시대에 치료적 정신의학으로 정립되지는 못했지만,
정신의학 발전의 계기가 되긴 했다 뭐 그런 내용의 글이 나오기도 하고.... )
광기의 형태를 증세와 징후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하려는 계획이 진행된다.
그런데 영혼과 육체의 근사한 통일성을 인정하던 이 시대에 광기는 육체, 영혼이 함께 문제되는 어떤 것을 가리켰고,
그런 광기를 구체적 인간에게서 경험적으로 파악하고자 할 때,
광기는 어떤 자체의 진실로 파악되기 보다는 '도덕적 오류 및 과오' ' 물리적 장애'의 모습으로만 포착된다.
고전주의시대의 철학자, 의사들은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하여 '도덕적 오류 및 과오'와 '물리적 육체적 장애'의 사이에
오류, 망상, 추정이 깃들여 있고 육체의 모든 메커니즘이 요약되어 있는 '상상력'의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정신착란의 명칭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결국 경험적이고 직접적으로 식별되었던 <광인>과는 달리 <광기>는 선험적으로 규정되었다.
정신착란의 선험성은 세가지 계열들의 관계성 속에서 구성되는데,
우선 인과관계의 순환을 토대로 한다.
가까운 원인을 '인접성'(영혼과 가깝다고 생각되는 신경계)에 의해 설정 하고,
이러한 가까운 원인에서 확장하여 먼 원인(영혼, 육체, 자연과 사회)으로 나아간다.
또 육체와 영혼사이의 접속면에 존재하는 광기의 가능조건으로서의 정념이 설정되며
광기는 정념현상속에서 육체와 영혼의 동시적 통일성이 풀린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광기는 이미지에 진실의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속에 존재한다.
고전주의의 이성은 진실과 빛의 이미지로 구현되며,
이에대한 대립항으로서의 광기의 본질은 정신착란, 현혹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이러한 광기-이미지는 비존재로서의 광기의 역설적 발현으로
비이성이라는 부정(무)을 드러내는 것이며 기호, 말, 행위로 확연히 드러나게 한다.
범위가 많다는 이유로 설렁설렁 읽고 가다보니 후기를 통한 나머지 공부가 필요한 처지가 됩니다. ㅡㅡ;;
궂이 후기를 써 보는 것은 이상한 내용은 누구든 지적해주심을 영광으로 알겠다는 표현입니다.
담시간에는 열라 읽어가야 겠다는 결심도 불끈 ~!!
1부에서 고전주의 시대의 대감금은 '비이성'을 통틀어 행해졌고,
그 안에서 광인은 비이성의 범주 안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포착되는 것을 보여주길래
그러한 감금의 과정과 비이성의 데이터 속에서 광기가 규정되었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엔 또 전혀 다른 말을 하네요.
그렇게 광인이 비이성의 범주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포착되었던 '수용'의 경험과 나란히 진행되었던 '광기'의 규정은
공통항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계열을 통해 구축되었다고 하니까요.
광인-광기의 묶음항으로만 광인을 바라보는 제 에피스테메로는 도대체 어찌 저런일이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데만도,
아니 푸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들춰내는 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어느 다른 시대에서...... 혹은 먼 미래쯤에서......
지금의 우리들이 광인을 규정하는 모습도 저렇게 '이해불가'하고 '모순'스러운 형태로 포착될수 있겠죠?
세미나 시간에 오고 간 말들처럼, 저도 읽으면서 몇번이고 '그래서 어째야 하는걸까?'를 질문하곤 하는데.....
아마 푸코는 그런 질문을 일으키는 것 까지가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광기와 광인에 대한 푸코의 길고긴 연구를 쫒아가면서,
광기와 광인에 대한 다양한 에피스테메를 포함한 신체를 만들어 본 후에......
그때 쯤에 '그래서 어째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는건 어떨까 싶기도 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