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름/정의(dikaiosyne)에 대한 문답으로 시작하는 제1권은 이 책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 같다.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정의(justice)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인 규정을 찾아보려 하는 것 같다.
그럼 왜 그렇게 궤변같은 질문과 논박을 거치면서 치열하게 "올바름/정의"에 대하여 질문하고 대답하려 하는 것일까?
오늘 세미나의 주된 토론 내용은 과연 정의에 대한 보편적인 규정이 가능하느냐 였다.
"올바름' 과 "올바른 상태"는 각 개인별로, 주체별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시대에 몰랐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를 앞세운 플라톤은 왜 그렇게 "올바름/정의"에 대하여 치열하게 사유를 밀어붙였을까?
아마도 바로 이 "올바름/정의" 에 대한 사유 자체가 바로 "국가"를 이루는 기본적인 조건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처럼 국가(政體) - 정치를 - 이루는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올바름에 대한 규정이고
올바름에 대한 본질적인 규정을 통해서 이상적인 국가란 어떤 것인가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과연 정의에 대한 절대적인 규정이 가능할까?
나에게 정의롭고 올바른 것이 상대방에겐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지 않은가 말이다.
1권에서는 소크라테스 조차 "올바름/정의"에 대한 절대적인 규정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에 계속적인 논박과정이 전개될 것이라 보인다.
늘 지나가는 말로만 듣던 플라톤의 사상을 원전으로 읽어보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루하고 따분할 것 같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바로 자기 앞에 닥친 현실을 견디기에도 버거운 젊은 나이에 접했더라면
두번 다시는 열어보지 않았을 책이지만
정의를 누구의 입장에서 규정하느냐에 따라 현실적인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하에서
누구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개념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책이다.
누구의 입장에서 정의를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개념이기에,
그리고 절대적인 규정이 불가능할 것 같은 개념이기에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사유할 수 밖에 없지 싶다.
강한 자의 입장과 소수자의 입장에서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개념이지만
드러내놓고 대립할 수 있는 여지, 바로 그 자체가 현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그렇기에 플라톤은 바로 그 기준점을 마련하기 위해 절대이상을 우리에게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흥분되는 책인 것은 확실하다.
고전이 주는 힘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몇 천년이 흘러도 계속 사유하도록 하는 힘,
바로 그 자체에서 오는 에너지가 오늘을 살아가는 근본이 되는 것 같다면 너무 감상적일까?
평소에 전혀 접해보지도 못하면서 "플라톤"하면
이데아를 떠올리며 "이상적"이라는 둥
알지도 못하는 자의 교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텍스트였다는 것이 오늘 드러났다.
겸손한 자세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P.S. 처음에 칙칙한 남자 넷이서 세미나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그만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지만
그 이후 계속 밀려드는 인파(?)에 그만 "플라톤 만세!"를 부르고 말았다.
고전은 영원하닷!
아직 머뭇거리는 그대! 주저말고 오시라...
월 15,000원에 이러한 흥분을 가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삶에 대한 '올바름'이 아니고 무엇이랴!!!!!!!!!!!!!
ㅎㅎ....마지막 문장(P.S)에 완전 공감.^^
많이 공감되는 후기입니다. 샘의 문제의식이나 고민도 느껴져서 고개가 끄덕거려지네요.
이 '오래된 새로움'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보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