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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광기의 역사] 제 1부 3장 발제문

만 세 2010.08.08 12:40 조회 수 : 6500

푸코 세미나/ 『광기의 역사』 1부 3장 비행의 세계 / 만세 / 2010. 7. 4.

 

#기존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

 

수용된 이들은 공통된 특징을 쉽게 찾기 어려운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통상 수용에 대한 해석은, 수용이 사회에 해로운 존재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하지만, 이는 몇 가지 전제를 가진다. 예를 들어 광기를 특정한 형태로 변함없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전제(166). 그래야. 이 광기를 점점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그런 조치가 취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애매한 사회적 경험에서 과학적 인식이 발달했다는 전제(167). 그래야 조치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광기의 정체성에 변화가 없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수용조치가 광기를 대상으로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애들을 추방하려는 동기가 있었는지도 애매하다. 사실 이런 것들은 결과의 영역에 속한다. 즉 “격리활동 자체에 의해 이와 같은 인물이 생겨났”다는 말이다.(167)

추방활동은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의미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한 자를 떨쳐버리기 위해 1657년 무렵에 파리 인구의 100분의 1을 수용시설에 집어넣은 것도 아니다.”(168)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게 더 이상 친숙하지 않은 어떤 인간들을 만들어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의미가 반드시 사건 전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다. 푸코는 차라리 이런 활동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탐구하겠다고 한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어떤 단일한 동기/의미를 찾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것에 개입된 다양한 요소는 무엇인지 파악하겠다는 것.(푸코의 관점이 잘 드러나는 것이기도. 선형적 인과관계나, 단일 인과를 부정. 이시적 인과, 상호적 인과. 이른바 ‘사건’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질문의 전환. 168-9) 그리고 이는 광기가 따로 독립된 실체를 확립하기도 전에, ‘소외’가 우선적으로 구축되었음을 알려준다.

 

 

#누가 수용되었나?

 

그러면 누가 수용소에 수용되었나? 1690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살페트리에르에 수용된 대부분의 인물이 극빈자, 부랑자, 걸인이라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밖에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의 수용은 가난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양한 인물이 함께 수용된다. 광인과 범죄자가 함께 있어서 놀라거나 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뚜렷한 차이가 있어보이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 과정을 봄으로서 “광기가 세계 안에 얼마나 친숙한 것으로 자리잡고 있었는가를, 그리고 광기가 점차로 친숙하지 않은 것으로 변해갔는가”를 알 수 있다.(+여전히 광기의 영향이 남아 있다는 것도)

사실상 수용의 역할은 부정적 배제=긍정적 조직화였다. 별 유사성을 지각할 수 없는 이들을 묶어냈다는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비이성의 획일적 세계’(171)다. 이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알아보자.

 

 

#성병환자

 

성병환자들도 수용되었다. 애초에는 성병 환자를 다른 재난의 희생자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 말이다.”(173) 원인이 도덕적으로 파악되기 시작하고, 이들은 따로 구속되며, 정화의 의도의 연장에 있는 치료와 징벌이 가해졌다. 성병이 ‘동기’에 따라 구분된 것은 그 탓이다.(ex. 방탕한 남편에 의해 성병에 걸린 아내는 죄가 없다.) 치료법은 의학과 도덕의 공조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정화의 관행’에 의미가 부여되었다. 이 기법들은 질병을 치료하는 대신, 과오를 조정한 건강은 조금 손상시키는 방식이었다. 나중에 이는 광기 치료에 활용된다.(ECT 등이 그런게 아닐까?^^;;)

150년 동안 미치광이와 성병환자가 함께 존재했다. 이는 광기에 상처를 남겼다. 광기와 죄가 인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정신병자가 운명으로 느끼고 의사가 본래적 진실로 파악하는 죄의식과 비이성의 연결관계는 아마 이 인접부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맺어졌을 것이다.”(177) 징벌과 치료, 처벌과 치료가 혼동되는 것이 ‘합리주의’ 혹은 ‘이성’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은 참으로 신기하다. 19세기에 생겨난 최초의 보호시설에서 이것이 반복된다.

 

 

#가족 질서 파괴자

 

남색, 그러니까 동성애에 대한 조치가 점차 관용적이 되어갔다. 죽이는 대신 수용을 했다. 1726년이 마지막 사형이었다. 푸코는 이것이 동성애가 신성모독에서 비도덕으로 격하된 신호로 본다. 그냥 그게 별거 아닌 나쁜 짓이, 그래서 참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보다 일반적으로 사랑과 비이성 사이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과거 사랑, 그리고 그에 따른 광기는 거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었다. 그런데 선택의 폭이 좁혀 진다. 이성적 사랑과 비이성적 사랑. 성적 욕망이 광기 혹은 비이성의 근저에 자리잡는 일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다. 소위 이성적 사랑의 기준은 가족이다. 가족조직에 일정한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수용을 요청하는 것도, 수용을 허락하는 것도 가족이다. 성윤리는 가족 도덕에 흡수된다.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서양의 유구한 사랑의 형태들은 가족에서, 가족 내에 생겨나는 새로운 감성으로 대체된다.”(183) 가족 질서를 해치면 수용될 수 있다. 19세기에 개인과 가족의 갈등은 사적인 일이 될 것이지만, 수용의 시대에 가족은 공공질서와 관련된 문제였다. “누구라도 가족에 해를 끼치는 자는 비이성의 인간이 되었다.”(185) 동성애는 물론이고 방탕이나 낭비벽이 제재의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

그래서 고전주의 시대에는 성병, 동성애, 방탕, 낭비벽 등의 공통분모에서 ‘비이성’을 발견하게 함께 묶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는 죄와 비도덕의 개념이 들어간다. 정신병리학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185)

 

 

#신성모독자

 

수용의 관계를 신성모독행위를 하나로 모으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과거 신성모독자는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점차 신성모독 때문에 유죄선고를 받는 사람도, 처벌을 받는 사람도 줄어들게 된다. 대신 “18세기까지 수용시설들이 ‘신성모독자’와 신성모독을 나타내 보인 모든 사람으로 가득 찬다.”(187) 불경죄가 ‘무질서’가 되고 ‘괴상한 언사’로 여겨지기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건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 또라이다. 그냥 벌레라는 말이다.

이들은 성스러운 것에 저항하는 악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학개념과 실증주의적 분석이 확립된 19세기 이후에서처럼 병자라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이들은 신성모독과 병의 사이에 있는애매한 영역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것이 ‘고전주의적 비이성’의 영역이다.(187) 비슷한 것들, 예를 들어 자살이나 마법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원래 불경하다 혹은 신성모독이라고 여겨진 것들이 이제는 ‘비이성’(병도 아니고, 신성모독도 아닌 어중간한)의 영역으로 통합된다. 마법도 자살도 이제 감정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정신의 환각일 뿐이다.

푸코가 보기에 어떤 신성모독이 더 이상 효력을 인정받지 않았을 때, 그것이 바로 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서 그것은 중간단계를 거쳤는데, ‘죄의식’이 불어넣어지고 윤리적 관점에서 포착되는 ‘비이성’의 시대가 있다. “19세기의 정신의학을 출발점으로 하여 질병의 확실한 증상으로 바뀔 판이었던 그 모든 징후는 거의 두 세기 동안 ‘불경건과 괴상함 사이에서’, 신성모독적인 것과 병적인 것의 중간지점에서 분할되어 있었다.”(193)(그리고 지금 ‘병’의 체제에 죄랑 도덕의 색깔이 남아 있는 것도 그 탓이리라.)

 

 

#자유사상가들

 

자유사상가들이 화형을 당하는 게 아니라, 수용되기 시작한다. 이들 역시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 그냥 ‘잘못한 이들’이 되었다. 범죄가 아니라 비도덕이다. 즉 이들의 사상이 ‘감정의 쇠약’, ‘생활의 무질서’와 연결된다. 자유사상은 실상 이성과 비이성의 구분불가능을 지적하는, 이성의 내부에 비이성이 있음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7세기에 이성과 비이성에 근본적 단절이 실현되면서, 그 사이에 애매하게 있던 자유사상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계몽’과 달리, 비이성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18세기에 자유사상은 감성의 비이성 속으로 소외된 이성의 행사이다.(198)

이렇게 비이성에 새로운 영역이 추가된다. 여기에는 이성이 감성의 욕망에 예속되고 비이성의 행사가 부도덕하고 문란한 행위와 연관된다. 그리고 이는 자유사상이 윤리적으로 정죄되고 사유의 자유가 정신 소외에 대한 모델로 바뀌는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종합

 

성병환자, 방탕한 사람, 낭비벽이 있는 사람, 동성연애자, 신성모독자, 연금술사, 자유사상가 등이 모두 보호시설 안에 틀어박힌다. 이 공간은 빈곤의 공간도 질병의 공간도 아니다. 이는 고전주의 시대만의 특이한 감성과 관련된다. 이는 사실 법이나 정치비판의 관점에서 보면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 독단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푸코가 보기에 이 이면에는 ‘인식’의 일관성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비이성’이었다 그 비이성은 더 이상 인간의 질서를 위협하는 인간 이상의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사회인들의 장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변종”(202)이다. 이들은 과거 르네상스 시대 광인의 배에 타고 있었던 추상적 인물이 아닌 구체적 인물이었다.

이 모든 것은 고전주의 시기 비이성의 경험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된다. 비이성의 경험이 수용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용은 그건 보여주는 것이다. 정확히 알아먹기는 힘들지만, 푸코는 비이성이 드러난 것이 비이성을 사회 세계의 공간에 가두는 소외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즉 ‘비이성’이라는 중립적 대상이 출현하고 그걸 소외시킨게 아니라, 소외가 일어나고, ‘비이성’이 그 거리 덕에 포착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수용소는 그 거리를 물리적으로 가시화 시켰다. “우리 문화에서 비이성이 사전에 파문 대상임에 따라서만 인식대상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204)

16세기의 사상에서 이성이 등장하던 시기, 그것의 대쌍인 비이성은 바로 이런 영여겡서 구체적 내용을 부여받는다. “고전주의는 성을 대상으로 한 금지, 종교분야에서의 금기, 그리고 사유와 감성의 자유를 광기 옆에, 비이성의 영역에 병합시킴으로써, 정신병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인식에 대해 사실상 토양의 구실을 하는 도덕적 비이성의 경험을 형성했다.”(207) 그리고 이는 다양한 이들의 근저에 있는 공통성이었다. 광기가 정신병으로 ‘해방’되기 전까지 인식의 지평의 역할을 한 것은 ‘비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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