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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광기의 역사』제 3부 1장 발제문

아샤 2010.08.11 10:40 조회 수 : 7580

2010.8.8/ 수유너머 N/ 푸코세미나/ 아샤

<광기의 역사>

제 3 부

 

-서론-

《라모의 조카》, 고전주의 시대에 비이성의 경험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텍스트. 즉 역사의 응축된 페러다임. 여기에서 라모의 조카는 광기와 비이성을 겸비하고 있는 마지막 인물인 동시에 광기와 비이성의 분리의 계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광기를 소유하는 이성. 그러나 광기에 의해서만, 광기를 소유하는 한에서만 이성은 이성일 수 있는 구조에서 비이서은 이성의 근거가 된다. 즉, ‘이성은 비이성을 소유하는 움직임 자체 속에서 자주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549)

 

《라모의 조카》는 반(反)데카르트적인 가르침을 제공한다. 데카르트의 기획은 자명한 관념의 실재를 통해 진실이 출현할 때까지 회의를 감내하는 것이었는데 반해 라모의 조카는 모든 진실의 안과 밖을 포괄하면서 현실의 존재와 비존재에 관한 망상을 삶으로 실현한다. 라모의 조카의 웃음은 19세기의 인간학의 발달방향을 예시하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헤겔 이후 인간은 정신과 이성의 활동에 의해 확실성에서 진실로 나아가게 되지만, 디드로는 그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이성이 비이성의 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했다. 비이성의 망상은 우리가 광기를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비이성의 경험은 라모의 조카부터 니체, 반고흐를 거쳐 레몽루셀과 앙토넹 아르토까지 지속되는데 그들 각자의 실존과 삶은 근대 세계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되풀이한다. 비이성이라는 차이를 보존하는 것은 왜 가능하지 않은가? 왜 비이성은 그 자체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비이성은 그 지점에서 언어를 박탈당할 수 있었을까? ‘비이성’을 검증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에게 ‘광기’의 판결을 내리는 권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558)

 

 

 

제 1장 대공포

18세기 《라모의 조카》가 쓰여진 무렵,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광기의 자연스런 형태에서 멀어졌던 비이성이 괴짜로서 재출현하여 사회적 풍경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19세기 일반적 삶의 불안과 고뇌를 나타낸다. 이성은 수용을 통해 비이성을 깊숙이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비이성은 질서의 경계에서 이성의 분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수용에 대한 불안에 항시 시달리게 되는데 수용의 장소는 이제 고유한 위력을 갖게 되었고, 병의 탄생지가 되었으며, 병을 퍼뜨리고 또 다른 공포를 확신시키게 된다.(562) 이러한 공포는 도덕적 신화에 의해 고조되는 공포이다.

여기에는 순환이 존재한다. 즉, 중세 이후부터 나병의 자리를 차지했고, 사회로부터 멀리 추방되었던 그 모든 비이성의 형태가 18세기 중엽부터 공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질병을 퍼뜨리는 가시적 나병으로 간주되어 사람들에게 부식성의 상처를 노출시킨다. 비이성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제 상상적인 질병의 표지와 더불어 공포의 위력을 부여받는다.(565) 이러한 공포는 의학적 사유가 아닌 환상적 주제들의 활성화를 통해 퍼지게 되고, 이를 통해 비이성은 질병과 대면하고 근접하게 된다. 그 당시 ‘의료인’이 범죄와 광기를 구분하는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막연한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호자’로 기능했다는 것은 서양에서 광기가 차지할 자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염병의 원인이 구빈원이 아니라는 점)

 

18세기 후반기에 전개될 개혁운동의 첫 번째 기원은 이러한 수용시설의 관리, 즉 정화를 통한 관리이다. (환기를 통해 물리적으로 정화하고 도덕적으로 홍보함)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도덕은 의학과 결탁하게 되고, 비이성은 도덕, 의학과 함께 3종 세트가 된다.

 

고전주의 시대의 수용소들은 사회의 표면에서는 이성과 비이성을 분할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심층적인 수준에서는 이성과 비이성이 뒤섞이고 혼동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광기의 이미지는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와는 달리 사람들의 감정, 욕망, 상상작용에 자리를 잡게 된다.(ex. 사디즘-에로스만큼 오래된 관행이 아니라 18세기 말에 서양적 상상력의 전환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 대대적 문화형상. 즉, 마음의 망상, 욕망의 광기 등을 통해 나타나는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의 의식과 비이성의 의식은 밀접하게 얽혀있었다. 수용의 시대에는 비이성의 경험이 중심이 되어 광기의 의식의 가장 특수한 면을 거의 상실할 정도로 광기를 은폐했으나, 18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광기에 대한 공포는 비이성 앞에서의 두려움과 동시에 심해졌고 바로 이런 식으로 광기와 비이성은 서로를 강화하였다.

 

18세기 말의 특징은 비이성의 의식과 광기의 의식이 상이하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비이성에 대한 관념은 정서적 이상, 상상적인 주제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지만 광기는 그렇지 않다. 또한 비이성은 시간의 틀을 넘어 스스로를 반복하는 반면 광기의 의식은 근대성의 분석(시간, 역사, 사회의 틀 안에 위치)을 동반한다. 바로 이 시기부터 비이성의 시간과 광기의 시간은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광기에 대한 시간적 의식은 일정한 과정을 통해서 이뤄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광기는 우주적 드라마와 주기전체에 연결되었고, 17세기와 18세기의 광기에 대한 의학적 사유는 광기와 세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받아들였다.(자연주의적 관점 & 신학적 관점) 그러나 곧 새로운 개념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18세기 말 증가하는 불안과 공포를 설명하는 요소, 즉 오늘날 우리가 ‘환경’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도출된다. 이것은 ‘침투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것은 적응과 근사현상보다는 변이과 질병을 설명하기 위한 부정적이고 야릇한 개념이다. ‘침투력’은 욕망을 더 이상 속박하지 않는 사회, 시간과 상상력을 더 이상 규제하지 않는 종교, 사유와 감성의 일탈을 더 이상 제한하지 않는 문명으로 대표된다.(576)

 

 

(1)광기와 자유

오랫동안 우울증의 몇몇 형태는 영국에 특유한 것으로 여겨졌다. (영국에서의 자살 vs 로마에서의 자살) 19세기 초 스푸르츠하임은 자신의 글에서 영국에서 더 빈번히 발생하는 광기는 영국의 자유와 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통제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는 방종을 조장하고, 방종은 광기의 성향을 유발시킨다. 이와 같은 분석의 요점은 자유라는 비자연적 환경이 광기의 심리와 생리의 메커니즘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2)광기, 종교, 시간

신앙은 광기를 유발시킬 수 있는 가공의 환경을 조장할 수 있다.(극단적 신앙심, 너무 심한 도덕적 엄격성 등) 그러나 피델 이전의 시대에서 종교는 정념을 충족시키거나 억제하는 환경, 즉 인간을 광기로부터 보호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종교는 점점 관념화되면서 광기가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종교는 인간과 과오, 인간과 징벌 사이의 매개물인 것이다. 즉 권위적이고 총괄적인 형태의 종교는 징벌을 실행함으로써 실제로 과오를 없애지만, 반대로 해이해지고 양심의 가책이나 영적 고행 같은 관념적 형태에 의해 유지될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광기로 치닫게 된다.(580)

 

(3)광기, 문명, 감성

광기는 문명에 의해서도 확대될 수 있다. 연구실 생활, 추상적 사변, 정신만이 영속적으로 활동하는 상태는 가장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이 추상적이거나 복잡할수록, 지식으로 인한 광기의 위험은 더 많아진다.(581)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습관이나 도시생활에 의해 지배되는 감성도 광기를 유발할 수 있다. (소녀가 소설을 너무 많은 읽으면 심한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가 되어 있을 것!)

 

 

 

17세기에 광기는 비이성의 풍경을 배경으로 도덕적 의미와 기원을 갖추게 되고, ‘과오’ ‘동물성’과 연관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는 반대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 인간이 유지하는 그 간격 안에 광기가 위치지어진다. 광기는 감성적인 것, 시간, 타자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변질되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인간의 자연의 직접적인 것과 단절 때문에 생겨나게 된다. 이제 광기는 새로운 영역에 속하게 되는데 이 영역에서 인간의 진실이 변질되는 형태인 ‘정신이상’과 ‘소외’라는 두 형상이 막연한 연관성 속에서 형성된다.

 

침투력의 작용은 광기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 된다. 침투력의 개념이 초기에 작용하는 방식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의 부정적 가치이다. 이 힘은 ‘우주’에서 ‘자연’과 대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환경’은 인간세계로부터 자연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환경은 자연의 실증성이 아니라 사람을 자연의 충만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부정성이다. 그리고 인위적 충만함과 반(反)자연이 예고되는 가공의 세계가 자연을 대체하게 되고 바로 거기서 광기의 가능성이 온전히 드러난다. 즉 광기는 잃어버린 자연이 되고 자연은 반대로 광기의 폐기가 되는 것이다.

 

환경은 예전에 동물성의 역할과 대칭적이고 전도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옛날에 동물성은 광기의 발현의 통로지점이었고, 인간의 본성은 반자연에 속하였으나 18세기 말에는 반대로 동물의 평온이 자연의 행복에 속하고, 인간은 동물의 세계를 벗어나 환경을 형성하는 순간 광기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때부터 광기는 인간 속의 변화형태에 연결되고, 시간적 출발점을 갖는다. 광기가 환경과 연결됨에 따라 광기는 진보의 이면이 되는데, 문명은 인간의 소외와 광기를 증가시킬 새로운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19세기에 ‘퇴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인간이 퇴보하는 이유는 과거가 전체화되고 생활에서 자연의 직접성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 모렐이 정리했듯이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회제도의 영향이나 도덕적 본성이 타락한 탓에 원시적 유형으로부터 퇴화하는 존재인 것이다. 즉 증가하는 광기의 모든 잠재력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인간의 환경에 있다. 여기서 소외의 초보적인 개념이 생겨나는데 이 소외의 개념은 모든 가능한 광기의 구체적이고 선험적인 조건을 인간환경에서 확인하게 해준다.

 

광기는 이제 비이성에서 떨어져나가고, 광기를 자연에 대립시키는 모든 것 속에서 본질적으로 역사와 아주 가깝게 된다. 광기의 이러한 역사적 상대성은 19세기 초에 어느 정도는 애매하게 나타난다.(대혁명이라는 환경이 정신이상의 원인으로 지목됨)

그러나 역사와의 관련성은 곧 사라지게 되는데 광기는 더 이상 역사의 보완물이 아니라 사회의 이면으로, 역사분석이 아니라 사회비판으로 전도되어 인식되기에 이른다. 광기는 역사성을 벗어나 사회도덕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고전주의 시대에 인간은 오류를 통해 광기와 소통하고, 광기에 대한 인식은 진실의 경험을 내포했다. 18세기 말 광기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구성되는데, 이 경험 속에서 인간은 일반적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을 상실하고 자신의 본질에 관한 법칙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이 미친 사람에 관해 말할 때, 이때의 미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의’ 직접적 진실의 땅을 떠나서 자기 자신을 상실한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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