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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Walter! / 채혜진

 

 

“오! 발터!”

책을 읽은 후에 입술사이로 터져 나온 외침은, 혈족을 일러주는 ‘벤야민’이라는 성(姓)이 아닌 한 존재에 고유하게 붙여진 ‘발터’라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연구자로서의 벤야민을 넘어선 벤야민을 보게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벤야민을 내가 지금 이 순간도 살아내고 있는 이 삶이라는 것을 동일하게 살아냈던 한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산 넘고 물 넘고 바다를 건너가야 이를 수 있는 공간에, 또 시계태엽을 수만 번 거꾸로 돌려야 닿을 수 있는 시대에 살았던, 게다가 세상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학문을 했던 유명한 학자 벤야민을, 떨쳐내기 힘든 고독과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을 안고 살아갔던 ‘인간, 발터’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이 소설이 제공해준 것이다.

우정보다 섹스에의 집착, 한 여인을 향한 저능아 같은 무너짐, 주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함, 불명확한 관점의 애매모호한 태도, 죽어가는 심장 등은, 하트가 자동 발사 되는 부드러운 매너에 씩스팩을 겸비해야하는 훈남의 조건을 과연 몇이나 만족시킬 수 있을까 싶은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그의 단편들이다. 그러나 그 모습들은 내 안에 학자로 자리하고 있던 발터 벤야민이라는 딱딱한 막을 걷어냈다. 그리고 ‘인간, 발터’에 눈 뜨게 했고, 그를 더 알아가는 여정을 떠날 수 있을만한 토양을 다져주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은 그를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되는 과정이고 그것은 감히 사랑에 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은 그의 완벽한 모습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이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벤야민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품게 되는 감정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했다. “감정은 사랑하는 육체의 그늘진 주름살, 투박한 몸짓,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결점을 찾아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안전하게 은신처 안에 몸을 움츠린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떨림은 바로 거기, 결점이 되고 비난거리가 될 만한 것 안에 둥우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제 ‘지나가는 사람’으로 벤야민을 보는 것을 넘어선듯하니, 아마도 난 지금 사랑, 그 비슷한 감정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묵과 언어 사이에 놓인 간극을 뛰어넘어 언어로 이행하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야”(142)

팔 하나가 없거나 얼굴이 두 개 달린 것 같은 모습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언어의 한계는 언제나 나를 괴롭게 한다. 생각은 입에 고이는 순간 혀의 펄떡거림에 기를 쓰지 못하고 뒤틀리고 해체되어 '말'이라는 형태로 변한다. 또 생각은 눈에 보이는 기호로 변환된 순간 음절-단어-문장- 의 정형화된 틀 속에서 깎이고 잘려나가고 때로는 부풀려져서 ‘글’이라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침묵과 언어의 멀고 먼 거리, 그렇지만 말 속에 나를 쪼개어 넣고 글 속에 나를 우려내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너무나 무서운 법칙! 그러나 나를 던질 때에야, 세상은 너는 그리고 벤야민은 부메랑처럼 다시 나에게로 올 것이니, 두려움을 무릅쓰고 오늘도 나는 이렇게 나를 던져본다. 세상을 알기 위해, 너를 알기 위해 그리고 벤야민을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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