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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광기의 역사] 제 3부 5장 발제문

만 세 2010.08.31 11:01 조회 수 : 7376

푸코 세미나 / 『광기의 역사』제 3부 5장 인간학의 악순환 / 2010. 8. 29. / 만세

 

*전반적으로 잘 못 알아듣겠어요.

 

#근대 광인의 자유

광인의 자유는 고전주의 시대에도 광인의 실존영역에 속해 있었다. 다만 근대에는 이것이 전면화 된다. 아마도 ‘광인의 자유’는 피넬과 튜크가 보여주는 광인에게 자유의지를 돌려주는 것, 하지만 그 와중에 나타나는 속박을 묘사하기 위한 단어인 것 같다.
 앞서 여러 장면에서 설명된 것처럼, 근대 광인의 자유는 몇 가지 모순을 지닌다. 첫 번째 광인의 자유는 언제나 자유롭지 않은 공간에서 작용한다. 즉 어떤 형태의 수용을 경험하면서만 자유를 누린다. 두 번째 범죄와의 연관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자유롭지만, 그것은 항상 결정론의 엄밀한 메커니즘에 갇힌다는 조건 하에서이다. 세 번째 광인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쇠사슬이 제거되지만, 그 자유의지는 의사에게로 옮겨간다. 의사가 왕이다. 광인은 “이미 자유를 상실한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다.”(782)
 고전주의 시대 자유는 광기에 대한 광인의 관계에서, 광인이 자신의 광기와 완전히 동일하게 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아마 고전주의에서 광인의 ‘자유’는 광인이 광기라는 착란의 세계에서 거리를 둘 때 잠깐 생기는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는 말인 듯. 반면 근대에 광인의 자유는 광인이 관리되고 의사에 의해 수동화될 때 나타나는 상태이다.
 이를 통해 광기는 자신의 진실이게 되며, 동시에 자신의 진실을 잃어버린다. 근대의 광기가 자신의 진실인 이유는,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가 존재에 대해 국외자라면, 근대의 광기는 자신에 대한 국외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든 광기가 자기와의 연관 속에서 정의된다. 자신의 진실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인정됨으로써 광인은 완전히 수동화되어 관리받는 정신병자가 되기 때문이다. “광기는 이제 인간의 진실과 이 진실의 상실, 따라서 ‘이 진실의 진실’을 동시에 겨냥하는 인간학의 언어를 보유한다.”(? 784)

 

#근대 광인을 둘러싼 모순

고전주의 시대 광기는 침묵이 영역에 속해 있었다. 이성의 바깥에서 이성을 성립시키는, 그래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성질을 가진 어떤 것이었다. 저것은 광기다! 라고 한 번에 알아볼 수는 있지만, 정작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할 생각도 없었던 어떤 것이랄까.
 반면 근대의 광기는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한다. 『라모의 조카』부터 낭만주의 시까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뭔 말인지 알아듣기가 아주 어렵다. 광기의 언어는 재탄생한다. “더 이상 세계의 비가시적 형상이 아니라 인간의 내밀한 진실이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언어.”(787)
 광인은 인간의 진실이 된다. 완전 비존재로서, 이성이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이성 완전히 바깥에 놓인 어떤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잘 들여다보면 있을 수도 있는 어떤 것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광인을 볼 때마다 늘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광인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매력과 현혹력을 배가시키며, 자신의 진실보다 더 많은 진실을 지니고 있다.”(788)
 푸코는 이런 근대 광인을 둘러싼 담론의 특성을 네 가지 모순적 접합을 통해 설명한다. 첫 번째 광인은 인간의 기본적 진실을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의 최종적 진실이기도 하다. 광기는 일종의 유년기이다.(기본적 진실) 하지만 광기는 문명과 문명의 불편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최종적 진실) 두 번째 광기는 뇌에 생기는 일종의 병이다. 하지만 동시에 광기는 육체의 지병으로 설명되지 않는 진실, 위험한 본능/병적 악의/번민 등을 뜻하기도 한다. 세 번째 광인의 (아마도 형사상) 결백은 들끓는 정념의 작동 등에 의해 보증된다. 하지만 동시에 광기는 ‘무의식적 자동성’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완전히 결정론의 맥락 하에 놓여 있다고 여겨짐과 동시에 행동에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는 말. 네 번째 광기는 인간 자신의 진실이며, 그것을 통해서 거꾸로 광기의 치료가 가능하다.(아무리 해도 이 요상한 관계가 잘 이해가 안되네요...^^;;) 즉 광기는 이성의 상실이나 외부가 아니라(이게 고전주의 인식), 이성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이며, 그런 만큼 너그러운 치료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 반면 동시에 근대는 그렇게 드러나는 광기의 진실을 억압하고 무시하려 한다. 의사로 자유의지가 넘어가는 것도 그 때문.
 
#세 가지 전형

푸코는 이런 담론적 모순을 분석해보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 다만 그 결론은 “고전주의적 비이성의 이항구조가 인간, 인간의 광기, 인간의 진실이라는 세 항목으로 이루어진 그러한 인간학적 구조로 대체”(793)된 것이라 미리 제시한다.
 그래서 우선 이런 구조가 나타나는 세 가지 전형적 질병을 살피는데, 첫 번째가 전신성 마비이다. 전신성 마비는 성적 과오의 결과로 인식되었다. 이런 과오는 환자와 가족/의사/측근 사이에서 공유되었다. 전신성 마비는 건강이 괜찮은 증거이기도 하고, 동시에 과오를 증명한다. “생체적 객관성 속에서 감추어지는 만큼 드러나는 과오, 과오에 대한 비난, 과오의 시인. 이것은 19세기에 광기가 의미한 것, 19세기 사람들이 광기로 의미하려고 한 것은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794) 이런 전신성 마비는 광기를 인체 상의 문제로 완전히 객관화한다. “모든 광기와 광기의 모든 것은 외부의 등가물을 갖게 될 것이다.”(795) 즉 광기는 인간을 객관화하고 사물들의 층위에 진열한다.(광기가 인간 외부에 있었던 시절과 대비하려는 듯)
 두 번째 전형이 모랄 인세니티, 도덕성 장애이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막 폭력적이 되는 등의 현상을 말하는 듯하다. 이는 내면에 잠재해있는 포악한 본성을 지적하는 것인데, 푸코는 이 도덕성 장애가 근대 광기의 본질적 구조와 인접해 있다고 본다. 정확히는 못 알아듣겠지만,(죄송) 이것이 인간이 객관화되는 또 하나의 계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하는 듯하다. 이런 도덕성 장애를 중심으로 인간의 심리학화가 구축되었다. 덕분에 인간은 광기를 통해 객관화될 수 있었다. 광기와 분리됨으로써 이성이 성립되고 광기를 묘면했던 고전주의와 달리, 광기를 통해 인간이 성립되는 것이 근대 인간학의 특징이다. “인간에서 참된 인간으로 이르는 길이 미친 인간을 통과하는 셈이다.”(798)
 세 번째 전형은 편집증이다.(그래도 이것에 대한 함의가 제일 이해하기가 쉽다.) 멀쩡해 보이는 인간이 특정 상황이나 특정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의미. 멀쩡하다가 갑자기 살인을 한다거나. 이런 형태의 광인은 동일자와 타자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멀쩡하다가 광인이다가 한다는 말이다. 둘이 서로 함축하고 있다는 말은, 고전주의 인식처럼 둘이 외재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성과 광기는 편집증 환자가 그렇듯이, 서로 얽혀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진실이자 자기 진실의 반대이고.....현재의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이며, 현재의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어서 유죄이다.”(801)
 푸코는 이런 전형들이 인간이 광인이기도 하고 광인이 아니기도 한 당시의 인식 구조를 드러낸다고 보는 듯하다. 오늘날 인간은 광인이기도 하고 광인이 아니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간의 진실은 광기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피넬의 보호시설의 진짜 중요성은, 그것이 비인간적 사슬을 끊어냈다는 것이 아니라(이것이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은 앞서 설명되었다.), 인간의 진실과 광인의 진실을 연관되도록 만든 것이다.(광인도 인간이다! 가만 냅두면 정신차린다! 사슬을 풀어라!에서 나타나는 태도라는 말) 이게 근대 인간이 성립된 배경이다. 근대 시리학이 언제나 빛과 어둠, 사랑과 죽음, 낮과 밤의 교차로에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마 이게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근대 인간이 정립되는 구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핵심 요지이지 싶다. 아 어려워.

 

#비이성의 부활 혹은 공격

“그렇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길을 잃고서 영원히 방황하기를 바란다.”(805) 고백하자면, 뭔 말하는지 모르겠다. 전체적인 말은 그래도 비이성의 전통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난다는 것 같다. 즉 병리학화되고, 인간 내면의 조그만 진실이 되고, 문명의 이상한 산물이 된 광기를 넘어, 인간 외부의 불가해한 힘으로서의 비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 비극적 광기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고야나 니체나 사드나 아르토를 통해 살아난다. 특히 사드. 자연으로 돌아가자! 라는 루소적 선언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대신 그는 폭력과 죽음으로 점철된 비자연을 제시하고, 그것의 지배를 묘사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연이 이런 비자연에 휩싸이게 된다. 사드가 단조로운 이유는, 이런 비자연의 승리가 완전해 지면, 이제는 이게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당연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쥴리에트에서는 이런 국면이 나타나는 듯.) “사드와 고야를 통해 서양 세계는 폭력 속에서 이성을 초월하고 변증법의 장래성을 넘어 비극 경험을 되찾을 가능성을 결실로 거두었다.”(811)

그리고 나오는 작품 자체와 단절하는 경지....다시 읽어보고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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