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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분 충동과 그 회로

라캉읽기. 박모군. 2011.1.6

전이는 무의식의 현실(성욕)을 현행화하여 경험 속에서 드러낸다. 그렇다면 분석 경험에서의 사랑이 전이 속에서 작동하는 성욕의 현전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사랑의 행위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서 이 견해를 명백히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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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성욕의 생물학적 목적인 생식의 관점에서 충동이 언제나 부분 충동이라고 했다.

충동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압력의 측면에서 쾌락원칙의 기능이 실행되는 조건에 종속된 경제적 요인과 결부된다. 다음번에 살펴보겠지만 중추신경계로 인식되는 Real-Ich는 내적 압력의 일정한 항상성을 보장하는 체계다. 성욕이 부분 충동의 형태로만 기능하는 것은 Real-Ich체계의 현실 때문이다. 충동이란 무의식의 간극구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성욕을 심리적 활동에 참여시키는 몽타주다.

분석 경험의 한 쪽 끝에는 억압된 시니피앙 하나가 놓인다. 억압된 것은 증상과 동질적이며 시니피앙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다. 증상을 구성하는 것은 억압된 시니피앙 위에 축조되는 시니피앙의 철골구조이며 이것은 순차적으로 구성되었다고는 하나 결국엔 공시적인 관계에 기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쪽 끝에 해석이 있다. 해석은 논리적 시간 아래서 종국에는 욕망을 가리키며, 그것이 결국 해석 그 자체가 된다.

성욕은 억압된 시니피앙과 욕망(해석) 사이의 경계에 놓여 둘의 경제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항상 욕망(해석)을 통해 소급적으로 주어지며, 개인 이력의 매 순간마다 적시 적소에 개입하는 충동을 통해서만 독립적이고 완결적인 것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성욕은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부과되며 성욕의 심급과 관련해서는 아이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체가 평등하다. 이때 주체는 성욕 중에서 주체 구성의 망, 즉 시니피앙의 망에 걸러지는 부분에만 관여한다. 성욕은 생식의 관점에서 부분 충동이라 할 것의 작용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다.

성욕과 관련해 육체를 두르는(보정하는) 어떤 것(충동의 주체)은 성욕을 욕망의 변증법 속에 통합시킨다. 생명체에서 충동은 성욕이 완성되는 완만한 과정을 대표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으로 ‘대표’할 뿐이다. 생명체에게 성의 현존은 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활=>생명/죽음.<=충동

2

프로이트는 충동을 설명하기 위해 시니피앙적 전회를 활용한다. 그러나 그 전회와 그것이 포장하고 있는, 그 내부의 근본적인 것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충동의 수준에서 근본적인 것은 충동을 구조화시키는 왕복운동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동사(보다;보여지다, 괴롭히다;괴롭힘을 당하다)’만을 활용해 충동의 두 극점을 설명했다. 그것은 그가 충동의 왕복운동, 근본적인 전회, 순환성을 벗어날 수 없는 충동의 도정을 미리 상정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제기한 전회는, 특히 마조히즘의 경우에서처럼 양자(兩者)의 운동이 아니라 세 번째의 지점에 위치하는 주체, 즉 충동의 주체를 출현시킨다. 그 자신이 타자라고 할 이 주체는 충동이 순환의 과정을 끝마치는 한에서 출현하며, 충동의 기능은 오직 그 주체가 타자의 수준에서 나타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

Math-2-FINAL.jpg

추동력은 대상 주위를 돌아 원천;가두리;성감대의 표면을 가로지르며 회귀한다. 목표(생식)는 금제된 것으로 존재하지만 충동에 있어 그것은 여정Aim인 동시에 목표에 도달했다는 사실Goal 자체를 나타낸다. 충동이 생식이라는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고도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부분 충동이며 그 목표가 순환적인 회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언급한 자가성애의 이상적 모델인 자신에게 입 맞추는 입은 충동 속에서 화살표를 물고 꽉 꿰매진 입이며 분석 경험 안에서 순수한 형태의 구강 충동이 침묵 속에 절정에 이르는 것과 같은 꽉 꿰매진 입(무언증)이 된다.

자가성애와 충동의 만족을 구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충동의 대상 때문이다. 충동의 대상은 충동이 움켜쥐고 있는 어떤 무엇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말대로 공백의 현존이며 우리는 그것을 대상a라는 상실된 대상의 형태로서만 알 수 있다. 여기서 대상a는 충동의 기원(구강충동에서의 최초의 음식물)이 아니다. 충동은 대상a의 주위를 맴돌 뿐이다.

충동은 유기체에서 후천적으로 획득되거나 선천적으로 기입되어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립을 통해 발생하는 충동의 변증법적 진보와도 무관하다. 부분 충동 간의 이행은 어떠한 발생론적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충동의 장에 속하지 않는 외부, 즉 타자의 요구가 개입(전도)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는 비단 구강기에서 항문기, 항문기에서 남근기로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외의 충동, 즉 시관 충동이나 호원 충동을 고려하면 쉽게 명확해진다.

항상적인 힘은 충동을 항상적인 압력으로 유지시킨다. 그러한 압력의 방출은 프로이트의 은유처럼 순차적으로 폭발하면서 회귀의 여정을 만들어내는 물질적 방출(밀어냄)의 이미지로 그려질 수 있다. 이는 곧 충동의 근본 구조를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위의 첨부 이미지 참조). 이 때 충동 구조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충동이 우회해야 할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대상뿐이다.

충동이 항구적인 압력의 관점에서만 분절되고 주체와는 위상학적 공통체로서의 관계만을 맺는 이상, ‘충동의 출현’은 머리 없는 주체의 양태가 된다. 충동이 무의식의 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이미 육체 속의 어떤 것이 충동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한에서다. 이은 작동 중인 간극 들이 위상학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앞의 언급을 반복하자면 주체는 세 번째 지점에서 충동이 순환의 과정을 끝마치는 한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3

충동은 도착증이 아니다. 충동이 프로이트의 설명에서 주체가 아직 자리 잡고 있지 않은 구조로 제시되는 반면에, 도착증은 주체가 그 구조 속에서 자리 잡는 방식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보는 즐거움Schaulust이 도착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관음증에서 주체는 시관 충동의 수준에, 보는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체는 도착증자로 존재하며, 오로지 원환의 종착점에만 위치할 뿐이다. 원환은 대상 주위를 맴돌고 대상은 미사일이며 도착증에서 대상은 표적에 명중한다.

관음증의 대상은 응시다. 주체 자체인 응시, 주체를 적중시킨 응시, 활로 표적을 명중시킨 응시다. 열쇠 구멍을 통해 방을 훔쳐보는 주체를 쳐다봄으로써 주체를 기겁하게 만드는 응시는 완전히 숨겨져 주체가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응시는 상실된 대상이지만 타자가 개입함으로써 격렬한 수치심과 함께 갑작스럽게 다시 발견된 대상이다. 관음증의 주체가 보려한 것은 부재로서의 대상(부재하는 남근;커튼 너머의 부재)인 것이다. (160쪽, 235쪽)

타자의 등장으로 충동의 구조가 나타난다면 그 구조의 완성은 오로지 전도된 충동 형태(능동적 충동)을 통해서다. 노출증에서 욕망의 진정한 표적은 노출 장면에 휘말리는 것을 넘어, 강요된 자로서의 타자다. 그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을 응시하는 어떤 다른 사람과 연루되어 있는 한에서의 희생자인 것이다.

결국 프로이트는 주체 자신의 신체 위로 충동의 시작과 끝이 되돌아오고 기입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도-마조히즘에서 고통의 가능성이 원환이 닫히는 순간에야 충동의 경제에 도입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자가 개입하고 주체가 스스로를 충동의 종착점으로 간주하는 순간에야 주체가 타자를 통해 느끼게 되는 고통이 개입한다. 그 주체가 앞으로 사디즘적 주체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완성된 충동의 원환이 타자의 행동을 개입시키게 되는 한에서다.

결국 충동의 경로는 쾌락원칙과 관련해 주체에게 허용된 유일한 형태의 위반이 된다. 주체는 타자가 개입하는 한에서 쾌락원칙의 너머에 주이상스가 있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이 타자의 주이상스를 낚으려는 헛된 우회로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부분 충동은 자기보존 충동이 성욕에 포획되는 곳, 즉 자기보존 충동의 경계, 항상성 유지의 경계선에 자리 잡고 쾌락원칙에 대한 침범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Real-Ich 너머의 또 다른 현실의 개입을 드러내는데 이와 관련한 사항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자.

질의응답

Q : 충동과 실재의 관계, 충동의 대상과 환상의 대상과 욕망의 대상 간의 차이.

* 충동의 대상 => 머리 없는 주체;시니피앙과의 관계에 의해 구멍이 난 주체의 수준에서 항상성을 주체 내에서 최대한 유지하려 하는 무엇. Real-Ich의 활동은 쾌락원칙을 충족시키면서도 아무 방어 없이 성욕의 증강에 의해 투자되도록 결정되어 있다는 점이 정신장치진보(주체화)의 구조를 가능케 한다. 여기서 주체는 공백을 갖고 있는 장치이며, 상실된 것으로서의 대상a의 기능을 만들어낸다.

* 환상의 대상 => 주체는 스스로 환상에 의해 결정된 자로서 항상 환상 속에서 산다. 환상은 욕망을 지탱하며, 주체는 시니피앙 집합과의 관련 아래 욕망하는 자로서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통상 쪼개지고 분열된 스스로를 지탱한다. 도착증은 주체가 주체성의 분열과 대면하면서 스스로를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환상의 전도된 효과라 할 수 있다. 이 때 대상의 역할을 맡는 주체야말로 사도-마조히즘적 충동이라 불리는 상황의 현실성을 지탱하는 것이다. 사도-마조히즘적 충동 자체로 구성될 수 있는 것은 주체가 타자의 의지의 대상이 되는 한에서다. 사디스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자를 위해 대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그 타자의 주이상스를 위해 사디즘적 도착증자로 행동한다.

* 욕망의 대상 => 욕망의 버팀목이 되는 환상이거나 하나의 미혹.

- 욕망이 겨냥하는 것과 항상 불일치하는 ‘대상a’

1) 전주체적 2) 주체의 동일시의 토대

3) 주체에 의해 부인되는 동일시의 토대;사디즘은 마조히즘에 대한 부인임.

* 충동과 실재의 관계 => 주체는 충동에 의해 침범되지 않은 쾌락원칙에 긴밀하게 의존함으로써만 실재와 건설적인 관계를 맺는데 사랑의 대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현한다. 관련 사항은 다음 시간에 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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