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오제, <망각의 형태들>, 21쪽
그렇기는 하나, 죽음을 개별적이고 명백한 삶 전체의 지평으로 정의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을 삶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으로서 인지하자마자, 두 죽음 사이에 있는 삶을 정의하는 것으로서 인지하자마자,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좀 더 미묘하고 좀 더 일상적인 의미를 말이다. 이는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망각을 추억의 상실로 정의하는 것은, 우리가 망각을 기억 그 자체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로서 인지하자마자,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두 가지 쌍들, 곧 삶-죽음의 쌍과 기억-망각의 쌍이 이처럼 서로 유사하다는 것은 도처에서 감지되고 표현되며 심지어 기호화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유사성은 단지 비유적인 차원에만 (망각을 일종의 죽음에 비유하고 삶을 일종의 추억에 비유하듯이) 속할 뿐 아니라, 그것은 죽음에 대한 개념들(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보는 개념 또는 죽음을 삶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는 개념)을 내기에 걸기도 한다. 이것들은 기억에 부여된 역할과 망각에 부여된 역할을 그 순서대로 명령하는 개념들이다. 한 경우에, 죽음은 내 앞에 있으며 나는 언젠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지금 기억해야만 한다. 다른 경우에, 죽음은 내 뒤에 있으며 나는 현재에 머물고 있는 과거를 망각하지 않은 채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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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리말로 번역해도 이해될 듯 안 될 듯 알쏭달쏭한 내용이네요.
하지만 번역을 통해 오늘 배운 것을 다시 복습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음 주에는 푸코를 읽을 예정인데, 이 유명한 철학자를 불어로 읽게 되다니 무척 기대됩니다.
삽입구가 많고 문장이 긴 글이라, 구문 자체는 어렵지 않아도 번역하기는 까다로운 문장들인데, 깔끔하게 잘 풀어주셨군요.
간식 주스도 상큼하게 잘 마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