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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미나]늦은 발제문

요로나 2011.02.07 11:21 조회 수 : 1438

 

1월 31일 문학세미나 발제문 올려요.

 

낭만주의 부분을 읽으며,

계급과 자아 사이에서 쉴새없이 갈등하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기도.

뭔가 확실한 답을 원하는 이성의 버릇인지도.  

 

뒷풀이는 즐거웠는지요.

오늘 뵐께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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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1. 혁명과 예술

 

1. 18세기 : 수단으로서의 예술

혁명과 더불어 예술은 “사회적 토대의 일부”라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예술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개선하는 하나의 모범이 되어야 하였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추상 강령들은 예술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고 공동체 감정을 심화하며 혁명이 이룩한 성과를 의식화시키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제부터 예술 역시 사회의 강력한 통치수단이 되었다.

 

2. 다비드와 고전주의

 

다비드는 이러한 혁명시대에 고전주의의 유파가 된다. 그의 영향력은 통령정부시대(Consulate, 1799-1804)부터 제1제정 시대(1804-15)에 걸쳐 지속되었는데 이는 그의 예술이 시대의 정치적 목적에 상응하였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은 다비드의 [브루투스 앞으로 자식들의 유해를 옮겨오는 호위병들, The Lictors Returning to Brutus the Bodies of his sons]으로 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789년에 그려졌다. 이 그림에서 브루투스는 타르퀸 왕의 부패를 막고자 로마에 공화정을 세운 사람이다. 다비드는 그의 회화에 로마시대를 다시 불러옴으로써 혁명 정신을 북돋우고자 함과 동시에 근대애국주의 생성에 일조한다. 이러한 모순은 나폴레옹 정권의 모순이기도 하였다. 나폴레옹 정권은 혁명에서 자신의 근원이 출발하였다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황제정으로 복귀하고자 하였다.

다비드 예술의 모순 즉 “의식적인 것이 자연주의를, 인습적인 것이 자발적인 것을 누르는” 현상은 브뤼쎌 망명기간에 더욱 첨예화된다. “현실과의 모든 관계를 잃고 순전히 기교상의 유희만을 일삼는 고대세계의 환상에 빠져들 때” 그의 작품은 낙후된 인상을 준다. 그에게 더이상 “순수한 예술적 질(質)이 실제적인 정치적 목적과 조화를 이룰 수 없”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3.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이 두 양식은 “프랑스혁명이라는 공통의 원천에서 출발”한다. 이 두 양식의 분리는 1820-30년 사이로, “낭만주의가 예술적으로 진보적 요소를 지닌 양식이 되고 고전주의가 여전히 다비드의 절대적 권위를 추종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양식이 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다비드의 제자 그로, 지로데, 게랭에서 낭만주의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가 고전주의에 대한 공격이나 와해를 목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정시대는 “혁명이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적 성과를 절대군주제의 통치형태와 조화”를 이루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를 위해 나폴레옹은 귀족과 교회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게 해주는데 이러한 종교의 부할은 고전주의의 해체를 촉진하게 하고 낭만주의에게는 자극을 주는데, “카톨릭의 혁신사상과 왕당파적 경향”이 낭만주의에 내포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은 직접적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환멸을 몰고 온다. 나폴레옹 정권은 혁명을 자신의 근원이라 인정하지만 혁명의 이념이었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이 시기에는 자유와 평등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하게 된다. “질서와 규율의 원칙은 더 이상 예술적 창조의 원동력이 되지 못했고, 자유주위적 이념”이 비로소 영감의 원천이 된다.

낭만주의는 “혁명이 창조한 진정한 양식”이었다. “다시 말해 혁명에 의해 실제로 행해졌던 예술이 아니라 혁명에 의해 준비되었던 예술”이 바로 낭만주의였다.

 

4.혁명 이후 낭만주의

 

예술에서 개인의 탄생 : 예술적 자유는 예술가, 재능 있는 개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는 “개성적 표현의 법칙과 기준은 개인 자신 속에 있다” 혁명적 사고의 생성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낭만주의를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게 되는데, 낭만주의 운동은 “아카데미, 교회, 궁정, 패트런, 예술애호가, 비평가, 기성대가들에 대한 자유의 투쟁일 뿐 아니라 전통과 권위, 그리고 규칙이라는 원칙 자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투쟁이 된다.”

 

예술애호가 층에서 개인의 탄생 : 과거 예술애호가층은 하나의 계급을 대표하였다. 그들은 예술을 중심으로 자신의 계급 속에서의 연대감을 높이고 타 계급과의 거리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이제 예술애호가층은 미학적 취향을 중심으로 한 아마추어 그룹으로 발전한다. 이들에게 예술은 “자유로운 선택의 대상이자 변화하는 취향의 대상”이 된다.

 

2.독일 및 서유럽의 낭만주의

 

1.낭만주의, 자유주의, 반동

 

비현실적․비합리적․비변증법적 낭만주의 : 낭만주의는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경향을 보이는데 그 하나가 “자본주의의 승리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나 새로운 시대에 등을 돌리고 인민의 해방투쟁을 거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길에 따르고 있고, 봉건제에 반대할 뿐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와도 대립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특징적인 것은 낭만주의 운동이 어떤 입장이든 “역사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에 대한 인식”을 통하기보다 “비현실적․비합리적․비변증법적” 인식을 통하여 움직였다는 것이다.

 

강렬한 재생(再生) 감정과 동적 역사적 감각 : 어떤 시대이건 “부활의 환상”을 품지만 낭만주의만큼 강렬한 시기는 없었다. 낭만주의는 자신의 현재에 대한 의미를 과거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추적하였다.

계몽주의 역사관이 역사를 “영구불변하는 이성의 전개이고 이러한 전개는 처음부터 인식할 수 있는 일정한 목적을 향하고 있다”는 직선적 연속성으로 파악했다면 낭만주의 역사관은 역사를 우리 자신과 문화의 끝없는 흐름이며 간단없는 투쟁으로 인식함으로써 “진화적이고 동적인 것”이라 파악하였다.

 

신비적 역사 감각 : 낭만주의는 과거 속에서 현재를 물음으로써 역사를 동적인 것으로 구성해내지만 동시에 과거 속으로 침잠함으로써 역사를 신비화, 인격화시킨다. 이로 인해 역사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들이 지배하는 영역처럼 보이며, 개개의 현상들 속에서는 불완전하게밖에 표현될 수 없는 한층 높은 이념의 토대처럼”보이게 된다. 예) 뵐플린이 주장하는 예술사관

“진보적 시민계급이 사회제도들의 역사적인 근원 속에서 그것의 절대적 타당성에 대한 반증을 보였다면” 보수적 계층은 역사에서 자신들의 특권의 근거를 찾게 된다. 이로 인해 “시간과 초시간성, 역사와 절대적 존재”가 대립관계에 서게 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 성장과 개인적 자의(恣意)”가 대립으로 만들어진다.

 

고독 : 혁명 후의 작가들은 혁명이 이룩한 개혁에 대해서 무력하게 되고, 소외된다. 개혁은 어떤 편에서 지나쳤으며 어떤 편에서는 미흡했으며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도피처를 과거, 역사에서 찾는다. 그 속에서 “이념과 현실, 자아와 세계, 개인과 사회의 모든 긴장”이 사라진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향수”, “고향”이라는 단어가 다수 등장한다. 모든 것에서 “미지의 것의 위엄”을 찾게 된다. 이는 단순히 삶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를 유토피아로 대체시킨다”.

 

정신의 자율성과 개인주의 : 낭만주의에 이르러 시민은 “자명한 인간의 기준”이 된다. “속물이라는 개념과 ‘시민’과 대비되는 부르주아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하지만 낭만주의 문학의 독자층은 자유시장, 즉 부르주아 독자층이었는데 이들에게 부합했던 세계상은 “정신의 자율성 및 개개의 문화영역들의 내재성”이었다. 이는 시민계급의 해방이 없었더라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개인으로 하여금 개인주의와 정신의 자율성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반대하도록 자극을 받게 한다.

 

유미주의 : 고전주의가 미의 근거를 인간적 기준에 두었다면 낭만주의는 “인생을 예술의 기준에 의해 평가”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낭만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속물들, 성직귀족으로부터 미적으로 군림하고자 한다.

낭만주의에서 “갈등은 의식의 본질적 형식”이 되고 “삶과 정신, 자연과 문화, 역사와 영원, 고독과 사회성, 혁명과 전통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논리적 상관개념이나 도덕적인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동시에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가능성의 장이 되고, 이런 가능성들의 어떤 종합도 추구되지 않은 채 실험되고 연습된다. 일관성 있게 세계를 바라보던 태도는 사라지고 반성하고 비판하고 의문하는 태도만 남는다.

이런 태도는 “자기이중화” 혹은 “병의 철학”에 도취하게 한다. 이들에게 병은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 이성적인 것의 부정을 의미”하며 “명확하고 지속적인 모든 것의 가치절하를 의미하였고, 일체의 제한과 일체의 확실하고 최종적인 형식에 대한 낭만적 혐오감”을 나타낸다.

 

2. 쎄나클르

 

왕정 복고 시대는 혁명을 되도록 없었던 것으로 하려했다. 이 시기에 나폴레옹 시대보다 시민적 자유가 부활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계급적 지배의 테두리 속에서”만 보장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지상에서 고뇌와 삶에 대한 혐오”는 샤또브리앙의 르네에 와서 한걸음 더 발전하여 절망을 표현한다. 르네의 우울은 정의할 수도 없고, 치유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일체의 노력과 투쟁은 무익하며 인생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행동은 자살이 되었다.

샤또브리앙을 포함한 낭만주의 유파들은 진보적 예술관을 정치적 보수주의와 일치시키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는 낭만주의가 18세기적 과거보다 17세기적 과거에 연관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관이 1824년경 변화의 조짐을 맞이한다. 이때 낭만파 동인그룹 ‘쎄나클르’가 생겨나는데 이는 “근대문학사에서 유파라는 형태가 예술발전에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된 최초의 지점이었다. 이는 “깊은 공동체 사상과 집단주의에 대한 강한 경향성”을 생성하게 된다. 이때는 여론이 자유주의로 전환되는 시기와 그 때를 같이 하는데 교권주의와 전제주의적이었던 입장을 포기한다. 쎄나클르는 “반속물주의 및 ‘예술의 위한 예술’이라는 원칙과 더불어 근대적 보헤미안의 온상이 된다”.

3.7월 혁명과 보헤미안

 

낭만주의자들은 7월혁명을 기준으로 대부분 보수주의적 입장을 바꾼다. 왕정복고를 실제로 지지한 강력한 세력이 부르주아임을 인식하고 낭만주의자들은 모든 증오와 경멸을 이 계급에 쏟게 된다. 이때 연극계에서는 연극의 주도권을 놓고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적 양식의 옹호자들 사이에서 투쟁이 벌어진다. “비극과 문학적 연극은 정신적 엘리뜨의 전문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중극장에 바탕을 둔 연극이 문학적 연극을 침해”하게 되었다. 새로운 관객층은 군인, 노동자, 상점 정원, 젊은 패거리들이었다. 이제 연극은 “고전비극의 심리학적 ․ 도덕적 문제” 대신 “흥분된 액션이나 회화적 장면, 기발한 상상력이나 극단적인 감정묘사”와 “대중적인 것, 세속적인 것, 효과적인 것에 대한 감수성”이 요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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