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핵심어라면 '취향(자기색깔)'이었습니다.
니체의 정신적 제자인 들뢰즈의 '차이'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차이의 인식적 측면을 '관점'이라고 한다면, 차이의 의지적 측면을 '취향'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
니체는 취향이 없는 경우의 인간을 '이류'라고 표현하고, 자신의 본성을 마음 속에 벌레처럼 묻어두고 타인에게 휩쓸려, 결국 삶(예술)에서 자기혐오에 빠지고, 깊은 바닷물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헤엄을 칠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또한 자기 취향을 가진 '예외적 인간'의 경우 삶(예술)을 향유할 수 있고 중심을 잡아 춤을 출 수 있다고 하며 취향(관점주의)의 소중함을 말합니다.
니체는 로렌스 스턴이라는 문학작가의 '애매성'을, 격언(Aporism)의 '간결함과 함의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예술,문화,음악,종교...등에 대한 본인의 관점주의(차이,취향)을 Aporism 형식을 빌어, 정직하고 함의적으로 표현하였고, "나의 관점주의는 여러가지 관점주의를 파생시킬 수 있다, 그대만의 관점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ㅠㅠ
하지만 자기 관점(차이)만을 주장하고 강조한다면 타자와의 관계에서 싸움이 될수 있고( 촉촉님의 경험담처럼)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시공간적으로 의식을 확대하고, 경계를 허물어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인식(관점)이 필요하다고 니체의 관점주의는 말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석두.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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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관점주의'와 들뢰즈의 '차이철학'을 연결시킨 점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차이의 인식적 측면을 '관점'이라고 한다면, 차이의 의지적 측면을 '취향'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부연하면, 서로의 차이를 긍정한다는 것이 다른 '관점'을 인식한다는 것이므로,
그리고, 같은 것들 가운데 차이를 획득하려는 의지가 자신의 '취향'을 갖는 것이므로.
석두님의 해석에 유쾌한 한표를 던집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사유를 절단하고 연결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작업이 '사유의 놀이'가 아닐까요?
맞고 틀리고에 갇히지 말고, 그냥 실험해보는 거지요. 그런 방식으로 사유는 힘을 갖게 되니까요!
그리고 차이(다름)을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 차이를 긍정한다는 것은,
그의 관점을 나로 하여금 나의 관점을 넘어서게 하는 계기로 본다는 것이고,
나와 대립하는 부정적 종합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게 하는 긍정적 종합을 하는 것입니다.
니체의 관점주의는 거기까지 상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