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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존재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자신에게만 오늘 피에르퐁에 갈 권리가 없는 것은 자기가 실제로 오데트에게 남들과는 다른 인간, 바로 그녀의 애인이기 때문이며, 또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할 권리를 갖고 있음에도 자신만 그 권리를 제한받는 것은 이 노예 상태, 자기로서는 참으로 귀중한 이 연애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져 스완은 모든 걸 잊고 행복에 젖었다. 참말이지 그녀와 사이가 나빠지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참고 견디며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스완은 마치 애정 나라의 지도이거나 한 것처럼 콩피에뉴 숲의 지도를 들여다보고, 피에르퐁 성의 여러 사진에 파묻혀 나날을 보냈다.”(스완의 사랑, 동서문화사 1권354쪽)

 오데트와 열애에 빠지면서 베르뒤렝네 사람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하는 스완은 ‘작은 그룹’의 여행에도 오데트가 원치 않기에 따라갈 수 없는 처지가 되지만, 오히려 몸이 달아 자신이 오데트 곁에 가야만 하는 온갖 이유와 상상속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본문은 한마디로 ‘노예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화자는 스완의 이 상태를 ‘자기로서는 참으로 귀중한 연애의 한 형태로 여기고, 모든 걸 잊고 행복에 젖었다’라고 묘사한다. 노예 상태로 유지되는 편의 사랑은 ‘정신 승리’라는 자기 최면을 먹고 자라기도 하고, 사랑의 도착적인 행복의 속성(어떤 고통과 수고도 복되다고 여기는)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도착적 사랑은 오데트와의 관계가 악화될 여느 가능성들을 철저히 배제시키며 ‘참고’, ‘견디며’, 그녀가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편을 선택하게 만든다.

  분명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도 하고 사랑 없이는 당장 죽을 것 같은 불안의 한 극단으로 믿어넣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희생의 삶’을 빚어내기도 하는 역설의 논리로 무장하는게 아닐까. 

사랑에 깊이 도취된 사람만 깨닫지 못하는 이 무모하면서도 위험하고 우스꽝스런 사랑의 작동방식을 프루스트는 마치 인체의 해부도를 그리듯 참으로 선 하나 점 하나까지 세밀하고 ‘적확’하게, 참으로 질릴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해낸다. 

이런 구절들을 만나면, 한 순간의 상상과 느낌만으로도 설레임과 쓰라린 고통을 번갈아 싣고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스완의 애처롭고 어처구니 없는 모습들이 그 어느 날의 찌질한 내 모습과 오버랩 되기도 하는데, 참 짠하고 한편으론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한다.

“열차 시간표는 그에게 그녀를 뒤따라갈 방편을 가르쳐주었다. 오후에도, 저녁에도, 그날 아침에도! 방편을? 아니, 거의 그 이상으로 그럴 권리를. 왜냐하면 시간표도 열차도 개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므로…”(같은 책, 352쪽 중간)

“그의 마음을 끄는 유일한 장소(피에르퐁 에 있는 콩피에뉴숲)에 가는 것을 하필 오늘 그녀가 못가게 하다니, 참으로 불운한 노릇이었다. 그것도 골라서 오늘! …만약 그가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간다면…스완과 만난다면 그녀는 뽀로통해져서 그가 자신을 뒤따라왔다고 투덜대고 또 그를 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골이 나 등을 싹 돌릴지도 몰랐다.”(352쪽 아래쪽부터 353쪽 위까지 부분 발췌)

스완의 사랑은 진정 ‘덜 사랑’할 가능성이 농후한 오데트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치명적으로 깊다. 

“참말이지 그녀와 사이가 나빠지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참고 견디며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이 구절은 얄궃게도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데, ‘사랑장’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믿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7절)

여성을 마구 마구 사귀고, 아주 free하게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엔조이 하며 연애를 구사했던 자신의 지난 삶에서 ‘사랑의 실체 혹은 본질’을 온전히 배우지 못한 스완에게 오데트는 처음엔 자신의 취향이 아닌듯 했으나, 결국 운명처럼 '오데트 만의 매력'에 끌리기 시작한  사랑에서 스완은 모든 걸 포기해야만 얻을 수 밖에 없는, 위에 인용한 구절에서처럼 '참고 견디는', 철저히 모든 주권을 상대방에게 양도하고 그 처분만을 기다리는 '존재의 몰락'을 선택하고 만다.

  오데트에게 '덜 사랑받는 것'을 죽기보다 두려워하는 스완의 사랑은 오데트의 예측할 수 없는 거짓과 마력 앞에서 무력하지만 결국 화자의 묘사처럼 ‘독이 든 열매’를 먹게 되고, 그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존재의 몰락’을 재촉하는, 스스로 연출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스완의 자기애적이며 자폐적 사랑을 참으로 징하게 읽어내려가다가 사랑에 대해서, 지나온 내 삶의 아름다운 무늬라 여겼던 사랑에 얽힌 추한 얼룩들을 떠올려보며 묵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았다. 나는, 혹은 우리는 사랑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주체를 짓밟는 상대방을 참고 견디며, 믿고 기다리면서, 세상의 중심을 자신으로부터 타자에게로, 나의 결여(내세울 게 쥐뿔도 없음,부족하고 못남,어리석고 찌질한)를 자각하고 상대방의 결여를 보듬으면서, 자폐적 사랑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중심으로 세우는 보다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갔을까? 사랑하는 이에서, 온갖 다양한 조건을 가진 나와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더 확대되고 세밀한 영역으로 깊어졌을까?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모든 것이 새롭고 달리 보인다는데, 살아있는 모든 존재, 사물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보지 못한 세계를 보는 ‘진실한 시각’이 열리고, 내 중심적 시각에서 전혀 새로운 시각을 ‘지속적’으로 지니며 살아왔을까?

왜 그리 사랑은 쉽게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바람처럼, 임의로 불며 다가오는걸까? 자크 데리다는 ‘환대에 대하여’에서 이방인, 타자, 손님, 나그네, 방문객로 호명되는 그와 같은 존재들이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고 우리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어느날 느닷없이 강도로 돌변하여 내 모든 것을 앗아갈 지도 모르는, 내 의지를 거스르는 존재,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은 삶의 안정과 습관에 지배 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흔들고, 강압적이고 때론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물음을 던지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생에 만나는 사랑하는 이도 그와 같지 않을까! 호기심으로 자극하여 나를 매혹하기기도 하고 이전에 맛보지 못한 생의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하기도 하지만 빛나는 가슴을 한순간 폐허로 만들기도 하는 존재, 내 삶을 한순간 내동댕이칠 수도 있는, 위기와 고통을 주면서 강압적으로 내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리라!

사랑, 존재의 몰락을 가져옴에도 불구하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가사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헛헛하게 노래 부르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쳐서는 안되리라. 삶의 가장 소중한 배움을 포기해서는 안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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