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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세미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6-10장 발제

20190406 박연희

 

6장 아카데미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회화와 조각은 대부분 아카데미에서 이성적 법칙과 원리에 따라 가르쳤다. 아카데미 기초는 1563년 토스카나 대공이 된 코시모 1세의 후원에 아래 조르조 바사리가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를 개설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군주제와 아카데미의 해체는 공화국이 세워졌던 프랑스혁명 기간에 시작되었다. 아카데미는 곧바로 재건되었으나, 이때의 해체는 미술교육과 미술에 대한 후원이 군주제나 공공기관이 아닌 사적인 영역에서 지원받는 개인적 사업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술교육의 새로운 전형이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독일에서였다. 미술가가 제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개인화실과 마스터 클래스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개인주의의 보호막 아래 천재라는 현대적 개념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카데미와 전시회, 살롱들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며 19세기의 위대한 미술로 꼽는 것들은 대부분 아카데미제도의 지원을 받지 않은 것들이었다. 19세기 말에는 미술가들이 아카데미와 그것이 대변하는 모든 것을 경멸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현대의 화상-비평가 체계는 아카데미와 살롱들을 대체했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새로운 체계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개인 기업의 하나로서, 개인의 작품이 의미와 가치를 획득하는 여러 수용제도들―화랑이나 비평, 출판, 개인 컬렉션, 미술관, 대중매체 등―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7장 박물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형태의 박물관의 기초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확립되었다.

*물론 18세기 말 이전에도, 회화와 조각상을 위한 화랑들이 있었다. 이 화랑들의 기능은 현대의 상업적 혹은 비영리적 화랑들의 기능과는 구별되었다. 예를 들어 그림들은 화랑 전체에 가득 쌓여 있었다. 이 그림들의 기능은 장식적인 분위기를 생생하게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림을 방 크기에 맞추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순백색의 벽 위에 눈 높이에 맞추어 그림을 거는 관습도 1930년대에 이르러 제도화되었다.

* 1980년대 포스트모던 미술관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술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술관들은 더 이상 미학적 걸작들의 진열과 감상만을 위한 시설들이 아니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박물관들은 이제 전시실외에도 기념품 가게와 서점, 식당과 카페들로 구성되어 있다. 포스트모던 미술관의 이러한 모습이 이전의 현대 박물관에는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도와 다양성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 준다.

8. 미술사와 모더니즘의 발전

 

* 미술관과 화랑 미학, 예술이란 용어와 마찬가지로 미술사 역시 근대의 발명품이다.

*1764년 요아킴 빙켈만 『고대미술의 역사』를 출판했는데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을 태동, 발전, 쇠퇴, 등 그리스 양식과 초기 고전 양식, 후기 고전 양식, 로마의 모방과 쇠퇴라는 시기의 연속으로 연대기화하여 분류했다.

*빙켈만 이전엔『미술가들의 생 』-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대의 회화와 조각의 발전, 세련화로 소개하고 있어 어떤 의미에서 근대적 모델의 원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1790년대와 1800년대 초에 이르러 빙켈만의 저서는 역사를 쓰는 방식으로 인정되었다.

* 19세기에는 문명이 시간을 통해 이어지는 선형적으로 성장하는, 진보하고 쇠퇴하는 그 무엇이라고 보는 것이 ‘근대적’이었다.

 

*20세기 초반까지의 근대 미술사는 사실적이고 환영적인 재현에서 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미지로의 점진적인 발전의 역사이다. 이와 유사한 선형적인 발전은 모더니즘 대가들의 양식적 발전에서도 볼 수 있다. (예, 몬드리안의 작품).

 

* 초기 근대미술은 형식과 내용이 가장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표현으로 진보하였는데 미술가들이 추상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1910년대 중반에는 회화가 그 ‘본질’에 다다른 것으로 이해되었다. 칸딘스키는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자신의 추상화에서 나타내고자 한, 어떤 시대의 보편적 정신에 대한 자신을 생각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20세기의 추상미술에는 크나큰 모순이 있다. 이 창작품들은 시각의 본질을 그리고자 하는 시도이며 이러한 형태로만 볼 수 있는 형이상학적 사실성 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추상의 한계를, 어떤 의미에서 미술제작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추상은 그림인 단지 캔버스 위에 그려진 물감일 뿐이란 사실을 보여주게 되었다.(카지미르 말레비츠의 <검은 네모>, 1915).

 

* 이 모순은 후에 20세기의 많은 추상화가들도 주목해왔고 또 작품에서도 의문을 제기했다.(예, 1960년대 프랭크 스텔라가 그이 검은 그림들을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필기체’가 되길 원한 것이 아니라 ‘물감이 원래 깡통 속에 든 그 자체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1983년 엘런 맥콜럼의 <대용그림 surrogate painting>).

 

*20세기에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초기의 현대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며 이 붕괴가 20세기 미술에서 시각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형적인 독창성은 사라지게 된다.

* 20세기 초, 추상화가들은 이상주의적이었고 유토피아를 꿈꿨다. 그들은 근대세계를 위한 보편적인 언어 창조를 위해 사물이나 이야기, 민족이나 역사 등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적 이미지들의 침묵과 형태의 순수함이 반드시 형이상학적 세계를 본질적, 절대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추상 양식은 그 작품에 사용되어진 재료만을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했다. 추상미술은 근대세계의 보편적 언어가 되기보다는 몇몇 지식인들만이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아는, 신비하고 비밀에 쌓인 주체가 되었으며 그 사정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 점이 모더니즘의 실패이자 추상미술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상은 현대미술의 타자라 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현대의 보편적인 언어가 된 것이다. 몬드리안의 미술이 의도했던 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몬드리안의 그림이아니라 코카콜라의 상표가 현대 세계의 보편적 상징이 된 것이다.

 

9장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 19세기 고급 문화는 귀족 계급의 특권이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산업혁명과 사진술, 영화, 라디오, 컴퓨터, 텔레비전과 같은 신기술이 대중문화를 창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20세기의 대중문화는 국제적인 것이 되었고, 항상 변화에 민감하며, 확장되는 시장과 관중을 위해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현대미술에서 ‘독창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새로움’이 대중문화에서 찬양받게 되었다.

*1913년을 전후로 미술가들은 문자 그대로, 그림의 ‘사각틀’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조르주 브라크와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양식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입체파라는 ‘양식’을 함께 창조함으로써 양식의 유효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그들은 미술적인 공헌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즉 유일하고 독창적이며 ‘서명’과 같은 양식을 창조해 내는, 미술가 개인의 능력이라는 문제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들은 미술의 천재가 자신의 양식에 대해 가지는 절대적인 권위를 해체하고, 창조성을 둘러싼 근대 초기의 신화들의 유효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피카소의 가장 큰 공헌은 입체파가 아니라 콜라주였다. 콜라주는 서구 회화 전통에 중대한 전환점이다. 유화물감과 캔버스의 유기적 통합성은 대량생산된 재료의 활용과 도입으로 제동이 걸렸으며 순수회화의 영역은 파괴되었다. 자율적이고 심미화된 회화와 대중 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고 두 번째로는 창의성에 대한 미술가의 자율적이고 절대적인 관계에 모순을 드러나게 했다. -현대의 천재 미술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평생의 작업을 통해 천재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있음은 정말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913년 뒤샹은 자신의 첫 레디메이드, 〈자전거 바퀴〉를 만들었다. 뒤샹은 바퀴와 위자라는 대량생산 된 두 오브제를 결합함으로써 피카소와 브라크와 같이 무언인가를 창작하는 것은 자신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콜라주와 레디메이드들은 모든 재현의 형태-그림이든 단어든 제스쳐든지 간에-가 문화적 언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피카소와 뒤샹의 작품들은 우리가 인식하며 재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 이상적인 본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형성되는 것임을 심오하고 근본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피카소와 브라크, 뒤샹 등의 작품들이 갖는 함축적인 의미를 보다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특정한 역사와 문화에 의해 형성될 뿐만 아니라 재현하는 것과 소통하는 방식조차 특정한 목소리에 묶여 있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성gender과 인종, 국적, 성 정체성, 매우 개인적인 기억, 집단적인 기억, 그리고 역사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피카소와 브라크, 뒤샹과 같은 미술가들이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고 레디메이드들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 재료들은 이 작가들이 탐구하는 가치가 급진적으로 가치 재평가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완벽한 기술로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미술가라는 전통과 신화는 절대적이고 개인적인 창작의 영역에 대한 미술가의 지배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성에 관한 문제에서 그림과 콜라주는 매우 다르다. 의미에서 피카소는 좁게는 창작에 대한 미술가의 권력이라는 신화를,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현대 남성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신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소쉬르의 중요한 공헌은 단어가 의미와 본질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면에서 언어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소쉬르는 언언가 인위적인 사회의 구축물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많은 분야에서 의미와 가치가 생산되는 방식에 대해 유사한 재평가가 있었다. 이 세계의 현상들이 영원불변한 본질의 그림자가 아니라 항시 변하는 역사의 일부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많은 미술가들은 문화와 현대사회에 활기를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술을 창조적인 방법으로 일상생활에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추상성을 실험하던 20세기 초 미술가들은 추상미술이 현대 세계의 미학적, 형이상학적 구원이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일본이 제 1차 세계 대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로 사회적 정치적 위기에 처한 미술가들은 사회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이 미술가들은 국제 아방가르드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미래파와 표현주의자,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 데 스테일, 바우하우스, 그리고 소비에트 제도 내에서 작업하는 이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히틀러는 바우하우스를 패쇠하고 아방가르드를 금지했으며 신고전적인 선동기구를 강요한 반면, 이탈리아에서 아방가르드는 무솔리니에 의해 지원받으며 심지어 그와 함께 작업했다. 1910년대와 1920년대 미술적 혁신들은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리얼리즘으로 변모되었다. 미국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포스터 경연대회와 전시회들이 전쟁의 노고를 찬양했다. 국제 상황주의는 전후 자본주의와 대중매체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전후의 ‘통제되는 소비의 관료사회’를 ‘스펙터클의 사회’라 부르며 비판했다.

10. 오늘날의 미술과 문화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순수미술이 성취할 수 있는 기대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에 대한 신화 자체가 변화했다.

오늘날은 20세기 초에 불타올랐던 유토피아주의가 사라졌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작업했던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현대세계를 급진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전후의 미술가들은 대부분 그들의 작업과 상당히 역설적인 관계를 가진다. 전후 미국의 그림, 특히 추상표현주의는 미술사가들에 의해 ‘미국회화의 승리’로 이해되어 왔다. 추상 표현주의는 현대미술사의 절정이며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는 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일컬어지는 전후 문화와 동시대 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전의 양식들을 재활하는 것의 시작일 뿐이었다. 모더니즘 양식의 차용은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나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나, 일본등 전 세계를 통해 이뤄졌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술은 대부분 화랑과 대안적 전시공간, 미술관 미술잡지, 미술사와 경매장의 테두리 안아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미학적 문제들을 해명하기 위해 미술잡지나 대중신문을 읽지 않고, 그 대신 한 미술작품이 미술계의 작품들 속으로 흡수되어 가는 방식에 흥미를 더 가진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작품 창작에만 자신들을 국한시키지 않고 오브제나 프로젝트, 또는 설치 작품들을 제작하고, 화랑이나 미술관들, 출판사, 후원자들, 미술시장이 힘을 비판하거나 그것과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은 미술의 수용과 분배를 위한 매개체 제도에 완전히 조절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경향으로 작업하는 화가는 ‘미술가-제작자’로 생각할 수 있다.

 

* 이런 도전에 잘 대처한 전술적인 미술가-제작자는 앤디 워홀이다. 40년 동안 그는 혼자, 또는 다른 이들과 연합하여 그림, 드로잉, 사진, 조각, 그리고 설치미술 등을 제작했다. 그래픽과 광고를 디자인했고, 영화를 감독 제작했으며, 로큰롤 밴드를 운영했으며 잡지를 출판하고 상업광고에서 모델을 서고 연기를 하는 한편 미술작품, 디자인, 대중문화를 수집하였다. 심지어 죽은 이후에도 사후법인체인 앤디 워홀 시각미술재단이라는 창작물을 남겼다.

 

* 요셉 보이스는 ‘사회적 조각cocial soulpture’이라고 신봉한 것을 창작한 미술가-제작자였다. 독일 낭만주의의 상징성과 샤마니즘적인 대중 이미지를 결합하여 집단 작업이면서도 미술제도의 체계를 포함하고, 많은 경우 관객이 참여하여 완성하는 오브제와 설치, 프로젝트 그리고 퍼포먼스를 창조하였다.

 

*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초 미국에는 문화적 행동주의가 다시 부상하였다. 1989년에 창립된 액드-업 ACT-UP 은 WHAM! WAC 등 여러 활동 그룹 중 최초이자 가장 큰 두각을 나타냈다. 왬!은 1988년 여성의 임신중절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대법원에 ‘웹스터’ 판결과 그에 대한 미국여성들의 반말이 뒤엉켜 결성되고, 1992년에는WAC가 형성되었다.

 

* 현대미술, 특히 20세기 아방가르드와 관련된 대부분의 구호들이 대중문화에서 이뤄졌다. 대중문화는 현대미술의 영역이었던 급진적인 비판을 수용할 수 있을까? 신디 셔먼이나 마돈나는 우리 문화의 여성적 스테레오 타입에 대해, 롤링 스톤지는 욕망과 소비문화에 대해, 퍼블릭 에니미는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다. 대중문화의 풍부한 표현력을 고려한다면, 미술을 고급으로 대중문화는 저급으로 동일시하는 판단기준은 버려야 할 때가 됐다. 그렇다고 순수미술의 힘이 강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미술은 때로는 대중문화와도 교차하거나 결합하는, 매우 강력한 하위문화 중 하나이다. 미술가들은 우리 문화를 계몽적이고도 어떤 때는 아름다운 방식으로 재현하며 새로운 개념 –새롭게 보는 방식-을 위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준비시켜주는 것이다.

 

* 모든 것이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이런 시각은 우리 자신과 세계를 보는 방식일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주체가 되는 강력한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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