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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세미나-우리집

지현 2021.07.07 09:41 조회 수 : 400

우리 집

 

처음 집 보러 왔을 때부터 거실 창문 가득 나무가 보여서 좋았다. 뽕나무였다. 봄에 잎이 돋아나는 것과 동시에 오디가 맺히더니 나뭇잎이 무성해지면서 오디가 하나둘 검게 익기 시작했다. 옥상에 올라가면 나무와 눈높이가 맞아 오디를 따먹기 좋았다. 오디가 잘 익으면 오디 잼을 만들리라 별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요다가 몸에 흰 실 같은 걸 묻혀왔다. 어디서 그런 걸 묻혀오나 했더니 뽕나무의 아랫 가지에 허연 실가닥이 실타래처럼 엉겨 있었다. 뽕나무이 애벌레의 분비물이었다. 허연 실타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전체를 뒤덮었고 검게 익은 오디는 엉킨 실타래 속에서 말랐다.

 

뽕나무는 갈라진 시멘트 틈을 뚫고 나와 자란 거였다. 하수도가 막혀 땅을 파니 나무뿌리가 하수도관을 껴안고 있었다. 인부가 나무를 그냥 두면 뿌리가 관을 막을 거라고 했다. 집주인이 나무를 자를지 말지 나더러 결정하라고 했다. 고민하다 자르겠다고 했다. 하수도관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뽕나무이 때문이었다. 한번 생긴 벌레는 해마다 다시 생긴다고 했다. 인부 둘이 나무를 베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토막토막 잘린 나무는 트럭 한가득 실려 사라졌다.

 

뽕나무가 사라진 마당엔 단풍나무 한 그루만 남았다. 단풍나무는 뽕나무만큼 키가 크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그늘을 만든다. 볕 좋은 날이면 단풍나무 그늘에 의자를 놓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무릎에 올라앉은 찰리를 쓰다듬는데 붉은 알갱이가 만져졌다. 그걸 책장에 문지르니 누런 액체가 묻어나왔다. 벌레였다. 찰리 등에는 같은 벌레가 여러 마리 붙어 있었다. 무슨 벌레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과 땅바닥에도 그 벌레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단풍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잎사귀 뒷면에 벌레가 깨알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진딧물이었다. 질겁해서 집 안으로 도망쳤다. J가 밖에 나가 진딧물을 보고 들어오더니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를 흉내 내 말했다. “여기가 곤충의 왕국이냐?”

 

우리집은 곤충의 왕국이다. 이사 오던 해 5월의 일이다.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웬 벌레떼가 바닥을 까맣게 메우고 있었다. 2제곱 미터의 화장실 바닥을 메우려면 몇 마리의 벌레가 필요할까. 샤워기로 물을 뿌려 전원 수장시킨 뒤 수챗구멍을 막아버렸다. 벌레가 수챗구멍으로 올라왔는 줄 안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화장실 문을 여니 전날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벌레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화장실 문틀 아래쪽의 찢어진 시트지 틈으로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들춰 보니 시트지 안쪽으로 나무가 한 뼘이나 없었다. 거기가 그것들 소굴인 것 같았다. 약을 친 뒤 시트지를 막았다. 그러나 다음날 벌레는 부엌 벽에서 나왔다. 벌레는 여기를 막으면 저기서 나오고 저기를 막으면 또 다른 곳에서 나왔다. 매일 밤 그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구멍을 막고 또 막았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2주쯤 지나자 그것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것들이 아주 사라졌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 해 봄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그것들이 또 화장실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이것들의 정체가 뭘까? 검고 긴 몸통에 날개 달린 모습이 여왕개미 비슷하지만, 개미라기엔 움직임이 똘똘하지 않고 비실비실했다. 검색창에 ‘날개 달린 개미’를 검색했다. 이미 같은 검색어로 검색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화면에 그것들이 여러 불운한 집을 배경으로 찍힌 사진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것들의 정체는 흰개미. 흰개미는 흰색 개미가 아니라 바퀴벌레다. 땅속이나 죽은 나무에 살면서 나무를 먹는데 목조가옥을 안쪽에서부터 먹어들어가 무너뜨리기도 한다. 화장실 문틀도 그것들이 먹어서 없앤 거였다. 흰개미는 일 년에 딱 한 번 혼인비행 때 밖으로 나온다. 왕과 여왕이 될 흰개미가 짝을 지어 분가하려고 날개를 달고 지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화장실에 흰개미가 나타나는 게 이때다. 짝짓기하러 일부가 나온 게 숫자가 그 정도면 안 보이는 곳에는 얼마나 많은 흰개미가 있다는 걸까?

 

유튜브에 흰개미를 검색했다. 밖으로 나온 왕과 여왕 흰개미는 호감 가는 외모에 속했다. 나머지 흰개미는 알비노증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허얘서 생긴 것부터 기분 나빴다. 여왕도 화장실 바닥을 기어다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여왕은 알 낳는 기계로 변해 있었다. 머리와 가슴은 그대로인데 배가 수십 배 크기로 늘어나 거대한 애벌레 같았다. 부풀어오른 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머리가 패트병에 달린 병뚜껑 같았다. 여왕은 배가 너무 커진 나머지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 했다. 깨알만 한 흰개미들이 부지런히 여왕의 몸을 씻기고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고 알을 받아 날랐다. 여왕은 밤낮으로 알을 낳았다. 3초마다 하나씩 매일 3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했다. 15년을 산다고 하니 평생 1억 5000만 개의 알을 낳는 것이다. 나는 발밑에 있을 거대한 흰개미 왕국을 떠올렸다. 너무 소름 끼쳤다.

 

매일 저녁 진공청소기로 그것들을 치우다가 하루는 치우기도 지쳐서 그것들이 나와 돌아다니게 놔두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잤다. 그것들이 하도 빌빌거려서 놔두면 얼마 못 가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그 많던 것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 새로운 거처를 찾아 들어간 것이다. 왕과 여왕 흰개미는 짝을 찾으면 날개를 떼 버리고 새로 살 곳을 찾아 들어간다. 거기서 새로운 흰개미 왕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틀과 창틀, 천장과 바닥의 가장자리, 천장과 일부 벽이 나무였다. 흰개미들이 거기 들어가 알을 깔 상상을 하니 심란했다. 그러나 내 집도 아닌 데다 머지 않아 재개발될 집이다. 집과 운명을 같이할 그것들의 최후를 상상했다. 중장비가 벽을 부수고 땅을 파면 그것들은 햇빛에 노출된 채 우왕좌왕하면서 죽어갈 것이다. 안 됐어 해야 할지 시원해해야 할지 고민하다 문득 그것들이 집뿐 아니라 가구에도 골고루 들어가 자리를 잡았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둘러보니 침대부터 책상까지 거의 모든 가구가 나무였다. 가구는 내 건데, 이사할 때 가구를 가져간다면 그것들을 데려가는 꼴이 될 터였다.

 

해충방제업체에 전화했다. 업자는 흰개미의 경우 방제작업을 해봐야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눈에 보이는 흰개미는 빙산의 일각으로 90프로 이상이 안 보이는데 있어서 그것들을 없애려면 집을 뜯어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밖에다 약을 치는 게 고작인데 그럼 개체수만 좀 줄지 시간이 지나면 또 나올 거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을 뒤졌다. 흰개미를 퇴치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집 전체를 몇 겹의 비닐로 포장하고 살충제 증기로 보름에서 한 달을 푹 찌면 흰개미가 죽는다고 했다. 문제는 약효가 떨어지면 흰개미가 다시 돌아온다는 거.

 

전에 살던 집에는 개미가 있었다. 나는 개미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패치를 놓고, 개미가 자기 집에 가지고 들어가 다 같이 먹고 죽는다는 약을 놓고, 보이는 족족 압사시키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했다. 그러나 끝내 개미를 없애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파리, 모기, 바퀴벌레, 초파리, 진드기, 개미에 이어 흰개미까지. 돌아보면 내 삶은 벌레와의 지난한 투쟁이다. 그것들 몇 마리를 잡아 죽이는 건 간단하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인해전술 앞에선 결국 속수무책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집에 있는 가구 중에 나무로 된 게 몇 개나 될까. 넓은 집으로 이사하며 새로 산 가구가 많은데 그것들이 죄 나무로 된 것이라 속이 쓰렸다. 나무 프레임으로 된 대형 거울과 스피커도 나무 가구에 포함 시켜야 할까? 푼돈 아끼려다가 흰개미를 새 집까지 데려가는 수가 있다. 이사할 때 나무로 된 가구를 싹 다 버리고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보름 남짓 지나자 흰개미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들의 흔적은 집 구석구석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회색의 유선형 날개. 꽃잎을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날개맥이 뚜렷한 그것은 작고 가벼운 성질을 이용해 방바닥, 창틀, 베게, 책상, 싱크대, 프라이팬에 달라붙어 두고두고 나를 소름 끼치게 했다.

 

그것들이 일 년 365일 중 350일을 안 보이는데 처박혀 지내다가 보름 정도만 밖에 나오는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상기후로 날이 더워져서일까. 올해는 3월부터 그것들이 밖으로 나왔다. 방에 있는데 날벌레 몇 마리가 날아다녔다. 흰개미였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흰개미 떼가 마루 천장의 나무 프레임에서 쏟아져나와 벽면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메운 그것들의 모습이 호주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해변의 바다거북 떼 같았다.

 

보름달이 뜨는 밤 호주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해변에선 바다거북의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온다. 수백 수천 마리의 거북이 동시에 깨어나 드넓을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로 향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그러나 이 몇 분이 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밝은 보름달 아래 수많은 갈매기가 새끼들을 노린다. 사방에서 몰려든 갈매기 떼의 공격에 새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갓 부화한 바다거북이 살아남을 확률은 낮다. 나는 다큐를 보면서 새끼가 무사히 살아남아 바다에 도착하길 기도했고 마침내 먼 바다로 헤엄쳐 가는 거북을 보면서 생명의 위대함에 가슴 뭉클했다. 이런 장면을 직접 목격하다니, 나는 현장에 있었을 다큐 스태프를 질투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서 그 못지 않은 자연의 대서사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흰개미의 결혼비행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흰개미 수백 수천 마리가 마루 벽을 가로지르자 마루의 벽은 광대한 그레이트베리어리프 해변이 되었다. 장관이다. 나는 눈앞의 광경에 압도돼 중얼거렸다. 그러나 자연은 냉혹한 것. 나는 진공청소기를 꺼내 세기를 최대로 올린 뒤 흡입구로 그것들을 조준했다. 흡입구가 움직일 때마다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벽이 하얘졌다. 오늘 밤 니들이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야. 나는 그것들을 마지막 한 마리까지 찾아내 흡입구로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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