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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장세진, 4장 13-15절,『상상된 아메리카』, 푸른역사, 2013

 

오영진

 

쓸모있는 먼 과거와 쓸모없는 가까운 과거

 

앞 서 서술된 ‘신라의 발견’은 심미적 동양에 대한 향수로서, 민족적 통일성을 먼 과거로 배치하는 바, 분열된 민족이라는 당대의 틈을 봉합하는 이데올로기였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김동리, 서정주를 위시한 이러한 동양론은 사실상 허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아메리카의 물질적인 풍요가 보여주는 서구-자유민주주의와 당장 대결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쓸모있는 먼 과거-신라에 대척적인 지점에서 쓸모없는 가까운 과거-유교(중국, 조선)에 대한 내재적 반성이 일어난다. 유교는 서구의 부르주아 혁명이 불가능한 아시아 안에 내재한 봉건적 질서로서, 세계사 안에서 후진적인 정치체제로 판단된다. 이는 주로 최남선, 이광수로 대변되는 문화적 민족주의자들, 즉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이념과는 달리 문화, 경제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스스로 자인하는 자들에(근대화론을 신봉하는 민족주의자들)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흐름덕분에 친일이라는 딱지 붙었던 최남선, 이광수는 복권된다. 특히 최남선의 경우, 그가 천착해온 역사적 문제의식은 김동리의 초월적인 ‘구경적 세계관’과는 달리 과학적 틀을 갖추고, 조선의 문제를 내재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에서 쓸모있는 먼 과거와 쓸모없는 가까운 과거 모두를 다루고 있다고 판단된다.

민족은 우리 내부로부터 요청되는 것일 뿐 아니라 외부로부터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기운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윌슨주의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독립을 맞이한 신생 국가들에서 열광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혁명적인 민족주의의 에네르기가 레닌 독트린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현상을 담론 차원에서 조절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윌슨주의는 바로 같은 맥락에서 1950년 이후 다시 유행하게 된다.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윌슨주의의 영향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3.1 운동이 ‘혁명’이 되지 못하고, 비폭력적 반공주의(자유를 외쳤다는 점에서)로 전유된 것은 “혁명적이고 폭발적이기 쉬운 탈식민의 민족적 에너지는 민족 단위의 문화와 경제 발전을 최우선에 놓는 윌슨주의적 민족자결주의 쪽으로 정향되고 관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상계』든,『새벽』이든 1950년대 남한의 영향력 있던 종합 월간지들의 계보를 따져보자면, 이 잡지들은 확실히 식민지 시대부터 문화적 민족주의가 강성했던 서북 지역의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치적 자립없는 공허한 문화적 민족주의는 해방 이후 주어진 정치적 자립 위에 그 자신의 이념을 자유롭게 펼쳐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 앞 서 언급한 쓸모없는 과거-유교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아시아적 정체성에 관한 사회주의자들의 과학적 해명이 이른바, 외인론, 즉 제국주의 이론에 입각한 것에 대응한 것이다. 이는 (서방 측의 근대화 이론에 의해) 그 원인을 아시아 사회 내부의 문제점에서 찾으려는 내인론이었다는 것은 참고할 사항이다.

여하간 쓸모없는 가까운 과거에 대해 논평하는 일은 역시나 껄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유교에 대한 비판은 주로 중국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내인론은 은연중에 반공주의와 결합하는데, 바로 중국의 아시아적 정체성이 중국으로 하여금 부르주아 혁명없이 공산주의-전체주의로 접속하게 만들었다는 해명이 끼어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인론이 50년 후반의 이승만에게로도 향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주의-자유민주주의는 실은 반공주의-전체주의로서 유교적 후진성을 담고 있는 체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지점에서야 아메리카는 반공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전환하고, 국가장치의 반대편의 힘으로도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독재=전체주의=공산주의’라는 기존이 반공주의적 담론은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의 유교비판을 경유해 의외로 “체제 비판의 가장 유력한 언설”로 다시 돌아오고야 만 것이다.

과잉의 균열

 

이 책의 1-3장을 거쳐 흥미롭게 드러난 것은 민족주의나 반공주의는 그 자체의 과잉을 포함하고 있다는 명제일 것이다. 민족에 대한 과잉은 고대의 문명으로, 반공주의의 과잉은 아메리카를 호통치는 이승만 식의 반공으로 나아간다. 이 과잉 속에서 각각의 이념들은 그 자신의 정치적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50년 후반으로 갈 수록, 이 과잉들은 스스로의 과부하 속에서 균열을 갖게 된다. 선우휘의 경우, 작품 「테러리스트」에서 “공산당이 없어진 지금에 와서 누구를 보고 주먹을 내둘러야 하는지 그 주먹질의 대상을 잃어버렸다”라는 진술에서 과잉끝에 드러난 균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라는 매체의 궁극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프로파간다적 반공주의 소설을 쓴다하더라도 현실과의 회로를 중요시하는 소설에서는 ‘현실’ 그 자체가 무의식적으로라도 직시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우휘의 반공주의 소설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작가를 떠난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의 승리, 리얼리즘의 승리일 것이다.

여하간 아메리카-반공주의는 아메리카-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이는 그 당시 지식인들이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 미국의 실제를 체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해방 후 아메리카가 낳은 두 가지 과잉은(민족, 반공) 외적 체험과 내적 체험 모두에서 균열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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