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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세미나] 세미나11 4장~5장 발제문

박모군 2011.11.15 14:50 조회 수 : 15644

라캉 세미나

111117 박모군

4 시니피앙의 그물망에 관하여

1

무의식은 Unbegriff개념/UnBegriff기능처럼 절단 기능과 시원적 연관을 맺으며, 이는 시니피앙과의 구성적 관계를 통해 주체의 기능과 연결된다. 여기서 주체라는 장소는 하나의 받침점(73)이 된다. 프로이트는 데카르트의 용어를 빌어 본질적으로 거부된 것에 의해 구성된 무의식과 관련하여 받침점을 사유 Gedanken(73)라 칭한다. 프로이트는 시니피앙의 배치를 통해 자신의 확실성 Gewibheit를 정립한다. 데카르트의 작업에서 그러했듯이 프로이트에게서도 의심의 콜로폰(74)()텍스트의 일부를 이룬다.

여기 꿈의 장이야말로 네가 있는 너의 집이다. Wo es war, soll ich werden는 자아가 이드를 몰아내야 한다가 아니다. 프로이트의 Ich는 시니피앙의 그물망의 충만하고 완전한 장소인 주체를 가리킨다. 그런 그물망을 식별해냄으로써 주체는 자신이 그것이 있던 곳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확실성은 우연을 벗어나도록 서로 교차한다.

프로이트의 두 번째 지형학의 지각-의식 Wahrnehmung-Bewubtsein체계(76)에서 두 요소를 가르는 간극이 바로 타자가 위치하는 곳이며 주체가 구성되는 곳이다. 프로이트의 지각의 흔적 Wahrnehmungszeichen은 언어학자들이 이후에 명명한 시니피앙이라 부를 수 있다. 시니피앙적인 공시태는 우연과 인접성을 넘어서는 인과율과 관련된다. 무의식의 구조의 중심에 원인이라는 간극을 위치시키게 된 것은 분석 경험에 고유한 필연성, 즉 그 확실성의 주체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2

프로이트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명되는 자가 데카르트에 기원을 둔 주체라는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분석에서 기억하기는 플라톤적 의미에서의 상기가 아니라 구어적인 언어들의 시니피앙적 구조들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억압되었던 것의 귀환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장 자체가 회귀 Wiederkehr(80)에 근거한다. 프로이트는 자가 분석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에 매달려 있는 욕망의 법칙을 천재적으로 간파해냈고, 자기 욕망과의 관계와 정신분석을 설립하는 자신의 행위에 기대어 진일보한다. 지각에 대한 퇴행적 투자 과정이라 할 프로이트의 환각 개념에는 주체의 전복, 주체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한다는 점이 함축되어 있다. 이는 그가 어느 정도는 주체를 시니피앙의 체계에 의해 본원적으로 전복된 것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반복하기 Wiederbolrn는 기억하기와 관련되며 실재라 불리는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까지만 주체가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실재는 늘 동일한 장소-사유하는 자로서의 주체 res cogitans(82)가 그것(실재)과 만나지 못한 장소-로 되돌아온다.

히스테리증자의 욕망은 아버지라는 위상 속에서 유지되어야 하는 아버지의 욕망이다. 히스테리증자는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프로이트)을 위해 모든 것을 쉽게 기억하기를 수행한다.

반복은 재생이 아니다. 프로이트가 상징적 방식의 필연성을 강조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반복은 명확하지 않은 형태로 재생산이면서 (실재와 관계를 맺는) 행위로서 현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할복은 지극히 인간적 행위로서 구조적으로 무언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며 다른 이를 거북하게 만들 것으로 간주된다. 반복하기에서 주체는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길 안으로 항상 자신만의 무언가를 끌어들인다. 주제가 여러 개의 심급으로 분열됨으로써 접근 가능해진 분열된 왕국에서는 총제적이고 종합적 의식이라는 정신현상의 통일성 관념 자체가 소멸된다. 분석 경험에서 기억하기가 되풀이되어 분석이 일종의 중심점으로 다가가는 순간 주체의 저항이라 부른 것이 나타나 행위로서 반복되는 것이다.

 

5 투케와 오토마톤

정신분석은 관념론이 아니다. 정신분석만큼 경험의 중심에서 실재의 중핵을 향하고 있는 실천은 없다.

 

1

투케가 실재와의 만남이라면 오토마톤은 기호들의 회귀, 재귀, 되풀이로서 우리 자신이 쾌락원칙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실재는 항상 오토마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들의 일반적인 개념화와 달리 전이는 본성상 분석에서 베일에 가려지는 반복과 구분되어야 한다. 전이는 우리에게 그림, 부재와의 관계처럼 주어지는 것이며, 전이와 관련된 모호함은 반복에서 실재가 담당하는 기능으로부터 출발해야 해명될 수 있다.

반복되는 것은 항상 우연인 것처럼일어나지만 이는 투케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투케의 기능, 어긋난 만남은 정신분석에서 우발적인 것으로 보이는 기원으로 기능하면서 뒤의 모든 사건을 결정짓는 트라우마의 형태로 처음 등장했다. 트라우마는 쾌락원칙 아래서 주체화하는 항상성에 의해 완충되어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반복적으로 배후에서 자신의 존재를 스크린으로 드러낸다.

현실 체계는 그것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여전히 실재에 속해 있는 것의 핵심적인 한 부분이 쾌락원칙의 올가미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이런 현실, unterlegt, untertragen은 불어로 souffrance로 번역될 수 있으며, 이는 현실이라는 것이 거기서 미결상태로 대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반복하기 Wiederbolung로 정의한 Zwang, 강박은 1차 과정의 우회 자체를 명령하는 것이다.

 

2

노크 소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1차 과정은 표상을 중심으로 의식이 재구축되는 과정이다. 이 때, 내가 깨어나기 전에 존재하는 무언가는 ‘ne’와 같은 허사를 통해 드러난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꿈이 현실과 흡사한 것을 꿈속에서 나타냄으로써 잠을 연장시키려는 욕구만을 충족시킨다면 우리를 잠에서 깨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꿈 속에 있는또 다른 현실이다. 본질적으로 어긋난(상실된) 현실, 즉 도달할 수 없는 깨어남 속에서 무한히 반복됨으로써만 이뤄질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운명적이라 할 무언가가, 영원히 어긋난 만남이 의식적 주체와 무의식적 주체 사이에서 스쳐 지나가는 간다. 꿈은 단순히 소망을 충족시키는 환상만이 아니라 대상의 상실을 더없이 잔인한 부분까지 그려냄으로써 욕망을 현전화하는 것이다. 투케는 오직 꿈속에서 이루어지며 의례로서만, 반복되는 행위로서만 기념될 수 있다.

무신론의 진정한 공식은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은 무의식이다라고 할 수 있다. 꿈의 표상과 관련해 본질적으로 무의식을 결정짓는 것이라고 프로이트가 지적했던 표상의 대리자 Vorstellungsreprasentanz는 차후에 살펴보기로 한다.

실재는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소한 현실에 의해 대표(대리)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소한 현실은 표상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무언가를 실패하게 만드는 배후에 숨겨진 또 다른 현실이기도 하다.

구성되고 표상된 어떤 현실 속에 우리를 다시 위치시키는 깨어남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분석은 꿈의 저편에서 꿈이 우리에게 감싸 숨기고 있는 어떤 것 속에서 실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3

욕구의 회귀가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소비를 지향한다면 반복은 늘 새로운 것을 자신의 차원으로 하는 유희적인 것으로 기울어진다. 의미효과를 변주하며 시니피앙스를 전개하는 것은 그 시니피앙스를 회피하는 것이다. 시니피앙스의 행위를 놀이로 변형시키고 행복한 방출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거기에 부여하면서 시니피앙스의 목표물을 망각시킨다. 포르트다 놀이에서 아이는 스스로 엄마의 부재의 작인이 됨으로써 그 부재의 효과를 지우려한다. 허나 이는 부차적인 것이다. 오히려 시니피앙스가 도입되는 기점이 될 자기 절단이라는 시련을 통해 아이로부터 분리되어버린 무언가가 원심적인 궤적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패꾸러미놀이는 엄마의 부재가 아이의 영토의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요람의 가두리 위에 파놓은 깊은 구렁에 대한 주체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실패꾸러미는 작은 공처럼 축소된 엄마가 아니라, 주체로부터 떨어져나왔지만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는 주체의 일부분이다. 즉 그것이 주체가 위치하는 지점이며 소문자 a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포드트다 놀이는 주체의 분할 Spaltung의 원인이 된 엄마의 떠남을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표상의 대리자인 것은 바로 그 놀이 자체이다.

정신분석의 독창성은 심리적인 개체발생을 이른바 단계들에 근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발달이 투케라는 헛디딤에 의해 오직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서만 활성화된다면 이는 투케가 우리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 세계 자체의 동기가 되는 곳이라 여겼던 곳으로 이끄는 한라고 할 수 있다. 클리나멘.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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