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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미나 공지

 

다음 주에도... 금요일 저녁에 어김없이 만나요^^

 

8월 19일 금요일 저녁 7시

 

읽을 범위 :

 

 [영미문학길잡이] 20세기 영국문학 개관, W.B. 예이츠, T.S. 엘리어트 (433~478)

+ 예이츠와 엘리어트의 시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잘 나오고용...

아니면 시집을 직접 읽어보시와요...

 

발제는 문학 세미나의 브레인 종현님이

간식은 반장이 (여러분 뭐 먹고 싶으셈??? ㅎㅎ)

 

영국문학사도 이제 20세기로 넘어오고...

정말 모두들 대견합니다^^

(원래는 하디의 [테스]를 먼저 읽어야 하지만...

장편이기도 하고.. [테스]발제를 꼭 하겠다는 신영님이

여행을 가서 순서를 바꿨습니다.

2주 동안 테스 꼭 읽으시길 바래요...)

 

그동안 매주 장편 한 편씩 읽느라 벅찼지요?

이번 주는 다행히(?) ‘시(詩)’ 니까 꼼꼼하게 영미문학길잡이를 읽어주시고요.

더불어... 지난 주 충한님이 보여줬던 것 처럼...

다른 자료도 찾아보는 열정을 보여주길 바래요. ㅋㅋ

 

tse.jpg wby.jpg

 

                                    T.S. 엘리엇 , W.B. 예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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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는 지난 주 발제문입니다.

조지 엘리엇의 [사일러스 마너]를 읽었지요

이것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 작가 디킨즈와 조지 엘리엇의 두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상이나 소설 기법상의 특징을 알아봤습니다.

사실 조지 엘리엇의 [사일러스 마너]는 살짝 싱겁기도 하고..

‘너무 교훈적이지 않나?’

‘주요 사건이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 무지개에서의 장면은 가난한 농민들의 삶과 시골사회가 실감나게 그려졌기 때문에 매우 인상적이지요...

이미 많은 평론가들이 세익스피어적인 장면으로 칭송을 했다는데...

실제로 엘리엇이 세익스피어를 많이 읽었다고도 하지요..

워즈워스적이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충한님이 질문하지 않았더라면 빼먹었을 내용이었는데

이 역시 논란이 됐던 질문이라고 하지요..

 

한편으로는 워즈 워드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과거의 중요성을 신비화하는 워즈워스적 경향이 창조적 상상력을 마비시켰다”, 사일러스 마너에서 나오는 “낙관적인 틀을 워즈워스적 평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적 요구를 함께 아우르는 쉴러적 ‘균형’에서 나온 것이다”는 지적인데요.

 

이외에도 그래도 현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문제적 개인”(루카치)이 전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 하지요. 아마도 그래서... 조금 싱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이후로 읽을 [암흑의 핵심] 이나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같은 작품은 타락한 문제적 개인들이 등장할 예정이오니...

 

모두들 기대하시고요... 그럼... 다음 주에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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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미나_ 2011.8.12.금_화

조지 엘리엇, 『사일러스 마너』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사일러스 마너』를 중심으로...

1.

‘농가들마다 물레바퀴가 윙윙거리며 바쁘게 돌아가던 시절에, 심지어 비단옷에 아마사 로 치장한 신분높은 귀부인들조차도 윤기나는 참나무로 만들어진 장난감 물레를 가지고 있던 시절에, 오솔길 사이 외딴 곳이나 골짜기 깊숙이 자리잡은 고장에서는 간혹 창백한 얼굴에 몸집이 작은 사람들이 눈에 띄곤 했다.’ (p.5)

19세기 빅토리아조의 작가 조지 엘리엇의 사일러스 마너는 위와 같은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단지 한 문장을 읽었을 뿐이지만(물론 한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길지만) 이 문장은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한다. 평화로운 전원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느낌.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고 ‘간혹 창백한 얼굴에 몸집이 작은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았을 때는 이 문장이 다시 읽힌다. 뭐랄까. 태초에 외롭고 쓸쓸한 남자가 있었구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평화로워 보여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공동성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 산업사회의 태동으로 기존의 공동체가 와해된 자리에서 조지 엘리엇은 이 문제를 탐구한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이야기, 혹은 한 남자가 어떻게 공동성을 만들어가는 지를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2.

이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진다. 처음 1부 1장은 사일러스 마너가 영국 북부의 공업도시 랜턴 야드에서 종교에 심취해 있다가 친한 친구에게 도둑 누명을 쓰게 되고 애인 마저 빼앗긴 이야기. 그리고 1부의 2장 이후에는 산업화와 청교도적 열성과는 동떨어진 영국 중부의 작은 마을 래블로에 이주해서 15년간 은둔생활을 하다가 두 번의 변화를 겪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2부는 이제 까지 사일러스 마너를 괴롭혔던 사건들로부터 그가 회복되고 몇 가지 미스테리들이 풀리는 방식이다.

한 남자의 인생을 바꾸는 몇 번의 사건들, 예컨대 도둑누명, 금화를 도난당하는 사건, 에피를 양녀로 맡아 기르는 일들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조롭게 묘사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사일러스 마너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래블로의 마을의 풍경,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사일러스 마너의 인생을 바꾸게 하는 에피를 제공(?)한 다른 한 축 거쓰가의 이야기이다. 엘리엇은 사건을 진행 시키되 그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어떤 토대에 그리고 그 사람들의 내면에 관심이 많았고 또 이것이 충분하게 설득되지 않으면 그 극의 구성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테면 거짓말과 회피로 일관하는 거쓰가의 두 형제의 대화나, 사일러스 마너가 에피를 키우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암묵적인 혹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지지해주는 마을의 주민들에 대한 묘사가 그런 좋은 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의 묘사는 때때로 불충분하고 너무 급작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번 지적되고 있는 몰리의 급작스러운 죽음. 왜 하필 그녀는 사일러스 마너의 집 근처에서 쓰러졌으며 에피가 문을 열고 그의 집으로 들어간 것은 더더욱 그렇다. 특히나 도난당한 금화와 금발 머리칼을 비교하는 묘사는 그 묘사가 운이 딱딱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현대의 소설에 익숙한 우리에겐 너무 잘 끼워 맞췄다는 혐의가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런 어색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 엘리엇이 시종일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그러니까 인간은 어떻게 구원되는가? 그리고 그는 혹은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공동성을 만드는 가?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그는 에피를 맡아서 기르면서부터 달라진다. 친구의 배반으로 인해 교회로부터 등을 돌렸던 그는 이제는 시골 마을에 있는 예배당에 나가고 에피에게 세례도 받게 한다. 그가 돈을 버는 이유도 달라진다. 처음 도시에서는 돈에 대해 관심이 없고 오로지 종교적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썼다.) 그랬던 그가 누명을 쓴 이후로는 금화에만 집착했다면 오로지 그 돈의 교환 기능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모으는데만 관심이 있었다는 점에서 완벽한 페티시즘이었다. 이랬던 그가 이제는 딸을 위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너의 이런 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공동체에 나타난 화폐에 대한 태도 변화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엘리엇은 이런 마너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어쨌든 그는 이제 ‘살 아야할 이유’를 찾은 것이며 더 이상 ‘외롭지’ 않기 때문. 금화의 딱딱함 보다는 금발머리의 부드러움에서 따뜻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에피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교감을 만드는 법. 이를테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관계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가 1장의 내용이라면 2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풀리지 않은 것들을 풀어낸다. 2장은 이 부녀가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원을 꾸미려 하는 딸과 아버지. 이 장면은 두 사람의 행복을 묘사하면서 더불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부녀가 돌덩이를 옮길 때 왠지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았는가?) 앞으로의 벌어질 일이란 애초에 마너를 불행하게 했던 두 가지 사건 중 하나 바로 ‘금화 주머니’에 대한 행방이 해결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모르지만 독자는 모두 다 아는 사실. 우리는 거쓰가의 둘째 아들이 저지른 짓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것이 어떻게 들통나고 해결될지를 지켜보는 재미를 얻게 된다. 이런 구성은 소설의 기법상 이전 시대의 다른 소설에 비해 진일보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또 한 번 소설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와 그러한 중심이야기에 갈등을 제공한 다른 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그러니까 한 명의 영웅이나 고독한 주인공이 아니라 이 주인공의 인생에 대항하는 다른 축이 소설의 구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대립은 에피가 자신의 친부를 거부하는데서 분명해지는데 엘리엇이 생각하는 구원의 성격이 드러난다. 부와 지위로는 과거의 죄를 보상할 수 없으며 그 구원이란 다른 사람들 속에, 자기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저 아이가 내게 보내지고, 내가 그 아이를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믿기에 충분한 빛을 갖게 되었지요.”

3.

또 하나 이 소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매우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이 종교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것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이나 주어진 역할에 책임을 지고 그 안에서 도덕을 지키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종교적 인간을 마땅히 따라야할 바람직한 인간이라고 놓는데 비해 ‘운을 믿는 인간’은 운을 믿고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거스가의 장남이 에피를 자신의 딸로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나, 운을 믿고 그의 동생이 마너의 돈을 훔쳤다가 사고사를 당하는 것, 역시 운을 믿는 인간의 최후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은 운을 믿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행운이란, 자기가 옳다고 믿는 법칙에 따르는 대신 자기 자신의 이런저런 욕망을 따르는 모든 인간들의 신(神)인 것이다. 오늘날의 세련된 신사라 할지라도 자기가 인정하기에 수치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면 그런 상황에서 나올 것이 뻔한 결과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모든 가능한 출구로 마음이 쏠리게 될 것이다. (...) 그는 곧 시혜자가 될 만한 사람, 아니면 감언이설로 꼬드겨서 돈을 울궈낼 멍청이를 꿈꾸거나,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런 정신상태를 가진 그럴싸한 사람을 만날 꿈을 꾸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그가 본성상 적합하지 않은 직업의 신사연하는 태도를 좇느라 꽤 괜찮은 생업을 버리게 되면, 그의 종교는 틀림없이 복된 우연의 숭배가 될 것이고, 그는 이 우연을 성공의 강력한 창조주로 믿게 될 것이다. 이 종교에서 배척당하는 악의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는 인과의 법칙일 것이다. (p.119)

하지만 이런 결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마너가 당한 억울한 일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다시 찾아가도 옛 모습은 없고 그의 억울한 누명은 벗겨지지도 않았는데! 이에 대해 돌리는 꼭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 한다.

“그것은 밤이 가면 아침이 오고, 잠이 들면 아침에 눈이 뜨고, 비가 오고 추수를 하는 것과 같지요-한 가지 일이 지나가면 다른 일이 오는데 우리는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전혀 모르지요. 우리는 애써 일하며 꾸려가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요-큰 일들은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왔다가 가지요-그렇게 되어 있지요.”

돌리의 이 말은 마너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 이 울림은 어디서 오는가? 그녀가 독실한 신자라서? 만약 이 말을 목사가 했다면 마너를 설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독자 역시 그럴것이다. 이 말이 마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돌리 그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그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공동성을 구성해나가는지 보여줬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녀가 갑자기 찾아온 에피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마너에게 보여줬기에. 그 둘 사이에 이미 어떤 공동성이 형성됐기 때문에, 이런 그녀의 도덕적인? 말이 공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공동체가 와해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다고 떠들썩하던 시대에 엘리엇은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꾼다. 때때로 그것은 너무나 낙천적으로 보이기까지 할 정이지만 그녀의 희망에 대해 쉽게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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