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판단은 한낱 관조적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대상의 현존에는 무차별적이고, 오직 대상의 성질만을 쾌불쾌의 감정과 결부시키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 관조 자신도 개념들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취미판단은 인식판단이 아니고, (이론적 판단도 실천적 판단도 아니고)
그래서 또한 개념들에 기초하지도 않고, 또 개념들을 목표로 삼지도 않기 때문이다." (판단력비판, B 14)
칸트는 말합니다. 미(감)적 판단이란, 다른 모든 이도 전제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근거로 한다고.
어떤 개념도 거치지 않고 이해관심도 갖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이라는 주관적 판단을 보편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현재 진도인 미의 분석학에서 다룹니다.
10월 6일 목요일 칸트 세미나 진도
이번 주는 판단력 비판 원전과 해설서를 함께 가지고 오세요.
제1권 미의 분석학 중 취미판단들의 제3계기 관계로 본 취미판단의 분석 전반을 읽습니다.
10. 합목적성 일반에 대하여~ 14.실례들에 대한 해명 발제를 타락천사 님이,
15. 취미판단은 완전성의 개념에 전적으로 독립적이다~ 17. 미의 이상 발제를 하장성 님이 정리합니다. (아카넷판으로 214~238쪽)
이와 병행해서 디터 타이헤르트의 <판단력 비판> 52~77쪽을 나갑니다. 이 부분은 반장이 정리합니다.
새로운 분의 참가를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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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N/칸트 세미나/2011년 9월 29일/<실천이성비판>/p. 195~203
제1편 미감적 판단력 비판
3. 쾌적한 것에서 흡족은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4. 좋은 것에서 흡족은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5. 종적으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흡족의 비교
* 제1계기로부터 귀결되는 미의 설명
취미는 대상/표상방식을 흡족이나 부적의함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일체의 관심 없이 흡족하게 대상을 여길 때 이를 아름답다[미적이다]라고 일컫는다.
3. 쾌적한 것에서 흡족은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쾌적한 것이란 감각에서 감관들에 적의한 것을 말한다. 감각은 객관적 감각과 주관적 감각으로 나뉜다. 객관적 감각이란 감관의 객관적 표상을 가리키며, 사상의 표상을 감각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주관적 감각은 쾌/불쾌의 감정이다. 예를 들어 “초원이 녹색이다”할 때 녹색은 객관적 감각이다. 하지만 이 녹색이 쾌적하다 느끼는 것은 주관적인 감각이며, 이 쾌적함은 어떤 대상도 표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한 대상이 쾌적하다 언명하는 대상 판단이 그 대상에 대한 어떤 이해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그 대상의 실존과 나의 상태와의 관계가 전제된다. 그 판단은 감각을 통해 그와 같은 대상에 대한 욕구를 약동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쾌적한 것에 대해 단지 ‘적의하다’고 말하지 않고 ‘쾌락[즐거움]을 준다’고 말한다. 내가 쾌적한 것에 보내는 것은 하찮은 찬동이 아니라, 그에 의해서 경향성[애착]이 산출된다. 특히 몹시 쾌적한 것은 객관의 성질에 관한 어떤 판단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언제나 단지 향락만으로 끝나는 사람들은 기꺼이 일체 판단에서 벗어나려 한다.(197)
4. 좋은 것에서 흡족은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좋은 것이란 이성을 매개로 순전한 개념에 의해 적의한 것을 말한다. 적의한 것에 있어 수단으로서만 적의한 것은 유용한 것,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이라 부르고, 그 자신만으로 적의한 것은 자체로 봏은 것이라 부른다. 이 둘 안에는 언제나 목적 개념(이성의 의욕과의 관계)이, 따라서 현존에 대한 흡족(이해관심)이 함유돼 있다.(197)
아름다운 것에서 흡족은 어떤 한 개념에 이르는, 대상에 대한 반성에 의존한다. 이는 전적으로 감각에 의거하는 쾌적한 것과 구별된다. 많은 경우 쾌적한 것과 좋은 것은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쾌적한 것은 그 자체가 대상을 단지 감관과의 관계에서만 표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쾌적한 것은 무엇보다 목적의 개념에 의해 이성의 원리들 아래 놓여야 한다. 좋은 것에소는 언제나 그것이 유용해서 좋은가 아니면 그 자체로 좋은가(간접적으로 좋은가/직접적으로 좋은가)가 문제가 된다. 반면 쾌적한 것에서는 그 말이 항상 직접적으로 적의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조미료를 잔뜩 친 요리는 쾌적할 수 있다. 즉 느낌을 좋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내다보는 이성으로 볼 때 그것은 적의하지 않다. 즉 좋은 것이라 말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비춰봐야 한다. 행복의 관점에서 쾌적함이 최대치로 좋은 것을 최고선이라 부를 수는 없다. 이성은 이에 대해 쾌적함이란 향수(享受)일 뿐이다. 인간은 향수[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그가 행하는 것에 의해서만 한 인격의 실존으로서 그 현존재에게 절대적 가치를 부여헌더. 행복은 완전히 충만된 쾌적함과 함께 환기될 수 있으나, 그것을 무조건적인 선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쾌적한 것과 좋은 것은 이처럼 상이해도 항상 그것들의 대상에 대한 이해관심과 결합돼 있다는 점에서 합치한다. 도덕적으로 좋은 것은 최고의 관심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추구한다는 것과 그 현존재에 흡족함을 갖는다는 것,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동일하다.(200)
5. 종적으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흡족의 비교
쾌적한 것,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의 흡족. 쾌적한 것은 정념적으로 조건 지어진 흡족을 말한다. 좋은 것은 순수한 실천적 흡족을 수반한다. 이 흡족은 주관의 대상의 실존과의 표상된 연결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그에 반해 아름다운 것, 즉 취미판단은 한낱 관조적이다. 그것은 대상의 현존에는 무차별적이고, 오직 대상의 성질만을 쾌/불쾌의 감정과 결부시키는 판단이다.이 관조 역시 개념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취미판단은 인식판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념들에 기초하지 않고, 개념들을 목표로 삼지도 않는다.
쾌적한 것은 누구에겐가 즐거움(쾌락)을 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에게 한낱 적의한 것을 말한다. 좋은 것은 존중되고 시인되는 것, 객관적 개치를 부여받는 것이다.(201) 그러므로 쾌적은 이성 없는 동물들에게도 타당하다. 좋은 것은 모든 이성적 존재자 일반에게 타당하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오직 인간, 동시에 동물적 존재자로서 인간들에게만 타당하다. 이 세 종류의 흡족 중에서 아름다운 것에서 취미의 흡족만이 유일하게 이해관심이 없는 자유로운 흡족이다. 흡족은 저 세 경우에 있어 각기 경향성, 호의, 존경과 관련되는데, 무릇 호의만이 유일한 자유로운 흡족이다.
쾌적한 것에서 경향성의 관심이란 뭔가. 그러한 흡족은 취미에 따른 선택을 나타내지 않는다. 누가 취미를 가지며 그렇지 않은가는 필요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판가름 나는 것이다.
또한 윤리적 법칙이 발언하는 곳에서 어떤 행위는 더 이상 아무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다. 도덕적 사유방식은 지시명령하며 필요욕구를 산출한다. 반면 윤리적 취미[취향]는 흡족함의 대상들을 가지고 단지 유희할 뿐이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에 매임 없이 자유롭다.(202)
* 제1계기로부터 귀결되는 미의 설명
취미는 대상/표상방식을 흡족이나 부적의함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일체의 관심 없이 흡족하게 대상을 여길 때 이를 아름답다[미적이다]라고 일컫는다.
취미판단의 제2계기: 양의 면에서
6. 미는 개념들 없이 보편적인 흡족의 객관으로서 표상되는 것이다
미적인 것이란 일체 관심 없는 흡족의 대상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다. 이러한 흡족함은 주관의 여느 경향성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이고, 판단자는 그가 대상에게 바치는 흡족함에 대해 온전히 자유롭다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주관에 의한 사적 조건도 그 흡족의 근거로 볼 수 없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 흡족함을 전제할 수 있는 것이 기초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 판단은 단지 미감적/감성적인 것이다. 미감적 판단도 사람들이 그 판단의 타당성을 누구에게나 전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 판단과 유사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성은 개념들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취미판단에는 일체의 관심에서 떠나 있다는 의식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타당해야 한다는 요구주장이, 객관들 위에 세워진 보편성 없이고, 부수하지 않을 수 없다. 취미판단에는 주관적 보편성에 대한 요구주장이 결합돼 있을 수밖에 없다.(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