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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정신분석 20110930 반장님 발제

 

<비전문가 분석의 문제>(1926)(전집15권)

 

 

서문

‘비전문가’란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문제는 하나의 치료술로서 정신분석을 비전문가에게 위임할 수 있는가에 있다. 여기엔 시간(“누가 하는가?”)과 공간의 제약이 따르는데, 후자의 경우 각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분석이 학술적 문제로서 실행에 큰 제약이 없는 반면, 프로이트가 사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면허없는 진료행위는 기소의 대상이 된다(닥터 라이크의 사례).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분석의 대상인 환자는 통상적인 환자와 다르며, 이때 비전문가가 반드시 분석의 비전문가이지도 않다는 점이다.

 

 

1.

분석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공정한 사람’(고위 관료)과의 대화를 통해 정신분석의 ABC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유감스럽지만 분석적 상황이란 제3자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이 대화를 통해 얻는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의료수단인 약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환자분들: 편지를 부치거나 가스 버너를 끄거나 대문을 잠궜는지 아닌지, 진짜 그랬는지 아닌지 의심스러워 되돌아 온다거나, 자기가 애를 차바퀴에 밀어넣거나 낯선 사람을 다리 밑으로 던져버렸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경찰서를 찾아가야 하는 분들. 이성을 향한 그들의 다양한 감정을 육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반면, 덜 사랑하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아마도 마음껏 그 반응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분들. “결국 환자들은 그런 불만 사항들을 치료하는 데 아주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사람과 분석을 시작합니다”(304).

 

 

분석의 방법(304): 서로 대화나누는 걸 제외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도구도 없고 처방전도 없으며, 환자를 일상생활에 방치해 두고 단지 규칙적인 방문을 받을 뿐이다.“그것뿐인가? 햄릿 왕자가 말하듯이, 그저 말, 말, 말.” 마술과 분석이 다른 점은 바로 말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말은 강력한 도구이며, 자기의 감정을 타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이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이다. 원래 말은 마술적 행위의 하나였고, 아직껏 그 오래된 힘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대화를 통해 환자가 알게 되는 것은 자신의 자아가 더 이상 완결된 통일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하지만 자아의 분열에 관한 대화는 가톨릭의 고백과 다르다. 신경증자는 그가 아는 것 이상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의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석가의 감화력이 필수적이다. 분석은 다른 독특한 방법이자 새로운 통찰, 새로운 가설이며 따라서 기성의 의학적 진료와는 구별된다.

 

 

2.

그렇다고 분석이 과학 이외의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 과학은 계시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310). 다만 기성의 의학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감각 기관의 생리학이었지 정신생활의 이론이 아니었다. 심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지만, 모두가 아이로부터 성장했다고 훌륭한 보모가 되는 게 아니듯,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

 

 

꿈의 해석은 이를 잘 보여준다. 누구나 꾸지만 과학적인 설명에서 배제되는 꿈.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어찌 과학이라 불릴 수 없을까? 꿈이 과학적인 설명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무의식을 관장하는 정신적 장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자아와 이드(315-8). 현실과의 관계를 구성하는 자아의 이면/심층에는 이드가 있으며, 이드야말로 진정으로 정신적인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사실 이미 만들어진 정신적인 것의 결과물인 셈. 이는 허구나 공상이 아니다. 문학이 아니라 과학이다! 유일한 대립은 오직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이지만, 이 구분이 자아와 이드에 정확히 대응하지는 않는다(320).

 

 

3.

자아와 이드의 관계는 역동적dynamic 각도에서, 그것들 사이의 작용하는 힘forces at work의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정신적 장치를 행동화하는 그 힘은 신체 기관에서 생산된 것이며, 신체적 욕구의 표현인 충동이다. 충동이 이드를 채우는 것이고, 이드의 에너지이며, 자아 속의 에너지는 결국 이드 속의 힘인 충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자아란 이드의 요구와 외부 세계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맡지만, 양자 사이에는 자연적인 대립선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건강한 상태에서 자아와 이드는 구별될 수 없기조차 하다. 신경증은 자아가 이드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억압하려 시도하고, 이에 대해 이드가 복수를 할 때 생겨난 증상을 말한다. 그리하여 “치료적인 목표... 우리는 자아를 복구하고, 자아를 제한들로부터 해방시키며, 자아가 초기의 억압 때문에 상실한 이드에 대한 지배권을 되돌려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가 분석을 수행하는 것은 이러한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이고, 우리의 전체 기술은 이러한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났던 억압을 찾아내고 자아가 우리의 도움으로 그것을 교정하도록 그리고 도피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충돌을 더 잘 처리하도록 강요해야 합니다”(328-9).

 

 

4.

“분석은 가장 친숙하고도 역겨운 성생활을 논하기로 유명하다. 바로 이 이유로 인해 분석은 전문의에게 맡겨야 한다고들 한다. 이토록 위험한 자유를 비전문가들에게 허락하는 건 어려운 일 아닌가?” 질문 자체가 문명화된 생활 전체가 얼마나 신경증적인가를 보여준다. 성은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문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문명이란 전적으로 성욕을 희생시켜서 세워진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이는 어린이 시절부터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즉, 생후 5년간 급격히 발전하는 성적 호기심과 그 이후의 잠재기를 거쳐 성인이 되는 이중적 형태의 발달은 오직 인간에게만 발생하는 신경증의 특별한 요인이다.

 

 

성인 여성의 성욕은 여전히 ‘암흑의 대륙’에 파묻혀 있지만 전반적으로 남근과 관련해 형성되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아이 때부터 관능적 만족을 추구하고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달리 말해 근친상간의 욕망은 인간의 본래적 유산이다. 유아 성욕과 오이디푸스는 인간 형성의 불가피한 일반 법칙인 셈이다.

 

 

진퇴양난: 문명화 수준이 낮은 집단에서는 아이의 성이 비교적 자유롭게 방임되며, 이는 성인 신경증을 저지하는 보호막이 되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성적 방임은 문화적 성취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호색 권하는 사회? 그것은 네 판단에 달려있다.

 

 

5.

분석가는 아무나 될 수 없다.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증상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발견해 환자에게 전달하는 적절한 순간을 발견해야 한다. 어떻게? 그건 어디까지나 경험적으로 다듬어져야 할 요령이다. “환자가 억압된 내용에 가까이 접근해서 분석가가 제안한 해석의 지도에 따라 단지 몇 발자국만 더 디디면 되는 순간까지 기다려라”(350). 그리고 알게 되는 것은, 환자는 전혀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소위 질병으로 얻는 이득. 왜 그런가? 자아는 이드와 더불어 초자아와의 관계도 잘 설정해야 하는데, 여기에 무의식적 죄의식이 끼어들고 그 사이에서 자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석은 단지 스킬이 아니다. 분석가의 감화력은 환자의 신뢰없이 불가능하다. 이 특별한 정서적 태도를 전이라고 부르는데, 간단히 강박적 성격의 사랑이라 불러도 좋다. 분석가에 대한 일정량의 존경이나 신뢰, 감사, 인간적 공감을 넘어선 사랑은 병리적인 현상이며 실상 신경증을 일으켰던 과거의 사랑이 재생된 것이다. “그 사랑은 신경증을 대신하게 되고 우리는 결국 하나의 질병을 다른 질병으로 대체해 버린 결과를 얻는다”(357).

 

 

그럼 뭔가? 헛짓거리였나? 신경증을 병리적으로나마 다른 형태로 변화시켰음에 주목하자. 환자는 자기 삶에서 잊혀진 부분을 분석가와의 관계에 투사해서 ‘반복’하는데, 그것이 환자의 내밀한 생애의 중핵이라는 게 중요하다. 환자는 기억하는 대신 재생산하는 것이다. 전이의 기술은 바로 이것을 해내는 데 있다. 반면 전이를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는 온당하지도 않고 심지어 비겁하기조차 하다. 그렇다고 환자의 전이에 순순히 응하는 것도 옳지 않다. 전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추적하여 환자가 자신의 과거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분석가는 노련해야 하며 인내심과 평온함, 극기심을 가져야” 한다(359).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되돌아보게 하고 전이를 극복하도록 하는 것.

 

 

“정신분석 작업을 위한 준비는 결코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 작업은 고된 것이며 책임은 엄청나다. 그러나 그런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자신을 분석하고, 무의식에 대한 현재의 심리학이 가르치는 것을 습득하고 성생활에 대한 과학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정신분석의 미묘한 기술, 해석 방식, 저항을 처리하고 전이를 다루는 방식 등을 배운 사람이라면 그는 ‘더 이상 정신분석 분야에서 비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신경증을 치료할 수 있으며, 적절한 때가 되면 그 분야에서 이런 치료 형태로부터 요구되는 모든 것을 성취할 것이다”(360).

 

6.

정신분석에서 ‘돌팔이’는 무면허 진료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돌팔이는 치료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지 않은 이를 가리킨다. 문제는 제도로서 의과대학이 분석에 요구되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반대되는 지식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정신의학조차 증상의 신체적 요인만을 추구할 뿐, 정신 생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삶의 정신적 요소들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의사들은 그것들을 쉽게 무시하고 비과학적이라 매도한다.

 

 

정신분석은 외과적 치료와 달리 금세 호전되지 않는다. 분석에는 자연이나 시간이 도와주어야 한다. 이 과정을 잘 다루는 이가 잘 훈련된 분석가이며, 프로이트는 분석을 위한 특별한 교육의 여부만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면허증은 단지 ‘쯩’일뿐!

 

7.

당연히 의사들을 싸그리 무시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증상이 정신적인 것인지 신체적인 것인지의 결정은 의사가 할 수 있다. 모든 경우에 있어 진단은 일단 의사가 한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문제는 증상이 정신적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치료를 분석가에게 넘겨줄 것인가 아닌가이다. 반대로 치료 중에 분석가가 환자의 증상이 신체적 문제라는 판단을 하게 되면, 설령 그 자신이 의사면허를 소지하고 있더라도, 즉시 의사에게 환자를 이송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모두는 의사나 완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게 아니라, 다름아닌 과학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환자는 분석가의 면허를 중시하지 않는다(?). 문제는 분석가 개인의 믿을 만한 자질인데, 여기엔 경험뿐만 아니라 지식과 이해력도 포함된다. 분석가는 잡동사리류의 인간들이 아니라, 오히려 고등 교육을 받고 인생에서 큰 경험을 갖거나 탁월한 인격자들인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 대학이 설립된다면, 거기서는 의과대학의 과목들도 가르치겠으나, 실제로 의학과는 동떨어진 문명사, 신화학, 종교 심리학, 문예학 등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런 분야들에 정통해야만 분석가의 전문성이 생겨날 수 있다. 의료적 경험인 염증, 화농, 탈저 등과 대조적으로 분석가의 경험에는 자기 분석이 포함된다. 그 다음으로 신경증 환자들을 경험하여 수련하게 되는데, 분석가들에 대한 특별한 교육은 일반적인 의과대학의 교육과 전혀 다르다. 또한 분석의 특성상, 아이들의 교육이라는 특수 응용 분야를 분석은 맡게 된다. 정신분석에 대한 사회 일반의 규제나 금지는 불필요하다.

 

후기(1927)

분석가에게 중요한 것은 학위가 아니라 분석을 하기 위한 특별한 훈련에 있다. 따라서 분석가 양성을 위한 훈련의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실현 가능한 이상이다.

 

 

정신분석에는 의료 면허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면 정신분석은 의학이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인 탓이다. 물론 내과의사가 치료를 위한 과정에서 정신분석이 발견되었으나, 프로이트 자신의 경우를 빌면, 41년간의 의료 활동을 돌아볼 때 그 자신이 고유한 의미의 의사로 활동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원래의 의도를 벗어나게 됨으로써 의사가 되었다”(394). 실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면허가 아니라 자신의 임무와 규칙을 냉정히 수행하는 분석가인 것이다.

 

 

이러한 분석가의 역할은 어쩐지 성직자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분석가는 환자를 일탈자로 보고 사회 공동체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갖지 않는다. 다만 억압되어 무의식에 파묻힌 그의 에너지를 자아가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분석가다.

 

 

현실적으로 의학의 예비교육을 받은 이들이 미래 분석가들의 원천임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분석에 필요한 것은 심리적인 개념틀을 통해 심리적 사실들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신분석을 과학으로 만들어 준다. “진정한 분할선은 의학 분야나 비의학 분야 모두에서 똑같이 ‘과학적’ 분석과 ‘그것의 응용’ 사이에 그어져야 한다”(399).

 

라이크 박사와 비전문가 치료의 문제(1926)

무면허 치료를 일삼은 테오도르 라이크의 소송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서, 정신분석과 의학의 관계는 전혀 단순하지 않으며, 따라서 민법상 무면허 치료 금지 조항을 정신분석의 훈련된 전문가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내 딸을 봐라. 면허 없이도 어린이와 청소년 치료에 엄청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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