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2. [벤야민 프로젝트] - <일방통행로> 앞부분 에세이 (hermes)
(벤야민을 따라) “무작정” 따라 써보는 10가지 명제
Ⅰ.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 아담한 길을 따라 평화롭게 걸을 것. 그리고 한 잔의 차를 마신다. 단,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Ⅱ. 권태라는 손님이 찾아오면, 그냥 잔다. 깨어나면 다른 세상에 속해 있을 수도 있다.
Ⅲ. 예전에 써둔 일기를 다시 불러내 읽어본다. 똑같은 내용이 고스란히 몇몇 어휘만 바뀐채 담겨있다. 똑같은 절망과 좌절, 자기비하와 자기연민들, 결말에 이르면 어김없이 나오는 섣부른 희망까지도. 일기를 쓰는 것과 그 일기를 다시 바라보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다시 바라볼 때는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는 지반이 마련되니까.
Ⅳ. 글쓰기는 한밤중에 운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이런 방법으로 목적지까지 다다를 수 있다.
Ⅴ.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펜을 뻣뻣하게 굴릴 것.’ 오히려 펜을 쥔 손의 긴장을 한 템포 늦추면 초현실주의자들의 환상에 빠져들지 않고 그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
Ⅵ. 예술안에서, 핏발 세우며 날 서있는 정치적 주장을 듣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그건 TV로도 충분하니까. ‘예술은 예술인들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인 서클이 쓰는 개념들은 구호이고, 또한 오로지 구호 속에서만 전투의 함성이 울려 나오기 때문이다.’
Ⅶ. 세잔이 했던, 마음에 담아둘만한 말. “애초부터 유파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 작품 자체가 모든 것에 앞서며, 그림에는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 둘 중의 하나만 있을 뿐이다.”
Ⅷ. 아포리즘은 몇 만겹이 층층 겹겹으로 쌓여있다는 광고 속에 등장하는 애플파이와도 같은 것. 그 한 겹 한 겹을 벗겨가며 음미하는 맛과 흥이 있지만, 처음 만들어질 때의 과정을 그대로 추적하는 집착은 곤란하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 부스러기만 무한히 만들어질 뿐.
Ⅸ. 팝 이후 예술과 일상에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 여전히 예술은 특별한 경험이고 사건이 되어야 한다. 무너뜨려야 할 것은 귀족들의 혹은 재벌들의 저택에 걸려있는 예술이지, 예술을 일상에 파묻어 일상과 뒤범벅을 만드는 게 아니다. 따라서 중요해지는 건 윤리이다. ‘비평은 도덕적 사안.’이라는 벤야민의 말처럼.
Ⅹ. 영화감독 박찬욱이 말했다. 회사에 출근하듯이 영화 작업을 준비한다고. 무언가 ‘작품’을 만들려는 사람은 매일 거의 똑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무의식이 당신을 위해 창조적으로 작동하도록 길들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