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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2009)

 

제1부 마음의 레짐

 

 

1장 진정성의 구조

 

 

I.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1992년 출판된 같은 제목의 박일문의 소설은 엄혹한 시대(80년대)를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생존자들의 수치심과 슬픔을 잘 나타낸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부채의식으로서, 경쟁을 통한 생존을 최선의 가치로 삼는 98년 이후의 현 시대와는 사뭇 동떨어진 감정이다. 죽어가는 타인들 앞에서 생존을 부끄럽게 여기는 감수성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가치가 될 때, 옳은 삶의 기준으로서 간주될 때, 이를 우리는 ‘진정성의 시대’라 부를 법하다.

진정성authenticity이란 좋은 삶과 올바른 삶을 규정하는 가치 체계이자 도덕적 이상으로서, 자신의 참된 자아를 실현하는 데서 가장 큰 미덕을 발견한다. 진정한 자아는 내적인 태도에서만 달성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공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하기에 60년대 서구 사회에서 신좌파의 윤리 감각을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진정성은 근대적 주체의 형성사에서 이미 나타났던 마음의 형식이기도 했다. 진정성의 윤리는 루소와 헤르더 이후의 낭만주의에서 시작해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적 감성 속에 구현된 도덕적 기획으로서, 외부에서 부과된 규범과 개인 내면의 욕망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근대적 주체의 자기 통치 양상이다.

 

 

II. 마음의 레짐

시대 변환을 연대기적 관점이나 제도적 이행의 관점에서 검토할 때 부딪히는 문제는 삶이 연대표나 제도에 따라 명확한 분절선을 긋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 삶의 구조 변동은 의미 세계의 변화를 포괄해야 하며, 이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 체제(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고통과 쾌락 등), 즉 마음의 레짐에 의거한다. 푸코에 따를 때, 동시대의 현실에 관련된 어떤 존재 양식, 다수의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유와 행동의 특정한 양식인 에토스가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토크빌의 ‘풍습’이나 베버의 ‘윤리’와 ‘정신’, 뒤르켐의 ‘집합 표상’ 등과 맥락을 같이 하는 개념으로서 아날 학파의 ‘심성’ 및 벨라의 ‘마음의 습관’, 윌리엄즈의 ‘정서 구조’ 등과 공명한다. 이 모두는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공유되는 암묵적이고 집합적인 마음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으며, 공유된 마음의 구조이자 시스템이란 점에서 레짐/체제라 할 만하다. 진정성의 문제란 바로 이렇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심적 상태, 공유된 감정 구조와 가치관 등을 가리키는 바, 마음의 레짐이란 개념을 통해 진정성의 문제를 풀어봄 직하다. 근대 세계에서 진정성이야말로 주체의 자기됨을 결정짓는 지배소였으며, 마음의 레짐은 주체성의 형식을 산출하는 장치dispositif라고도 할 수 있다.

 

 

III. 진정성의 기원과 구조

 

 

1. 신실성에서 진정성으로

신실성sincerity이란 전근대의 도덕적 가치로서, 자신에게 거짓되지 않은 동시에 타인에게도 진실하기를 원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신실성을 추구하는 자는 내면과 외면의 불합치나 모순을 느끼지 않고,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규범적 의무와 자신이 욕망하는 바 사이에서도 어떤 단절이나 간극을 느끼지 않는다.

진정성은 개인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한 근대적 인간이 공동체로부터 부과된 규범과 자기의 욕망 사이에 괴리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理想이다. 진정성의 주체는 외부 세계와 자신의 차이와 불화를 경험하고, 이를 의지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불행한 의식의 주체이기도 하다. 헤겔은 불행한 의식의 운동을 타락이 아닌 역사적 진보로 파악한 바 있다.

외부 세계와 내면의 불화와 대립, 투쟁을 경험하는 어떤 현장에서도 진정성의 등장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진정성의 추구는 근대적 자아 구성의 기획이 있는 어느 곳에서도 문제시 된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진정성 레짐이 현실적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정치적 조건들과 부합해야 한다. 진정한 자아에 대한 추구와 진정한 사회에 대한 추구가 함께 공명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386으로 대표되는 시대적 가치가 그렇다. 경제 발전을 통해 절대 빈곤을 벗어나 자유와 자기 가치에 관심을 가진 세대이자 광주 민주 항쟁을 거치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이 세대에게 진정성이란 가장 중요한 마음의 레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2. 진정성 레짐의 구조와 주체의 형식

‘레짐’이자 ‘장치’로서 진정성의 주체 형성 논리는 (1) 형성되는 주체와 (2) 그의 성찰적 내면, (3) 내면이 외화되는 공적 지평이란 3박자를 필요로 한다. 주체는 진정한 것에 대한 내적 성찰을 통해 자기에 대한 윤리적 감각을 갖추게 되고, 이를 다시 외적 차원에 투사하여 공적이며 활동적인 삶 속에서 구현함으로써 자신을 진정성의 주체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진정성의 주체, 근대적 주체는 실천과 희생의 과정에서 모방되고 추종되며 추앙될 만한 전형성을 획득한다.

 

 

 

IV. 진정성의 한계

 

 

1. 진정성의 폭력

어원상 진정성은 예술 작품의 진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유일한 삶의 사건이자 도덕적 우월감 및 미적 아름다움까지도 포괄한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진정성의 주체가 된다면, 그의 타자들은 필연적으로 ‘진정하지 않은 존재’로 격하되며, 폄하될 수밖에 없다. 진정성의 언어는 상처의 언어, 배제의 언어, 專制의 언어로 작동하는 것이다. 진정성을 객관적으로 규정지을 아무런 척도가 없기에, 진정성은 다만 그것을 주장하는 자의 것만이 될 수 있다.

또한 진정성은 어떤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획득되는 대상이 아니라, 행위와 실천에 옮겨지기 직전까지의 망설임과 주저, 때로는 무능 속에서 발견되곤 한다. 객관적 척도 없는 진정성은 ‘내면의 목소리’에 의존하는 바, 절대적인 확신에 도달하기까지의 고뇌가 진정성의 척도가 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러므로 진정성의 레짐은 항상 붕괴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불안한 체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80년대적 진정성이 윤리적 부채감을 통해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강력했으면서도, 막상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무너져버린 이유가 된다.

 

 

2. 夭折

척도 없는 척도, 규범 없는 규범인 진정성은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프로젝트이다. 진정성을 꿈꾸는 주체는 한 순간 활활 타오르며 장렬히 산화해 버리길 원할 뿐,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 지속되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따라서 삶의 운명이 극적으로 ‘정지’하는 순간이 요구되는 바, 그것이 바로 요절이라는 삶-죽음의 형식이다. 요절은 진정성의 레짐이 그 내적 논리에 따라 이상화될 수밖에 없는 삶의 형태인 것이다. 87년을 앞두고 수없이 죽어간 민주주의의 투사들이 예술가적 포즈(사진) 속에 장식되는 것이나, 실제로 신화적으로 길이 남은 요절 예술가들의 이름들이 우리에게 아련히 새겨진 것도 이유가 없는 게 아니다. 유재하, 김현식, 김광석, 기형도, 진이정, 김소진... 오오, 이것이 청춘의 형이상학!

IMF 이후 97년 체제는 사정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제 장렬히 산화하는 예술적 순간인 요절, 진정성의 레짐은 ‘생존의 레짐’으로 교체된다. 97년 이후 한국 사회는 세 가지 생존의 형식 속에 온전히 존속하게 된다. 1) 경제적 생존 2) 사회적 생존 3) 생물학적 생존. 부유(10억 만들기), 성공(경쟁과 승리), 장수(well-being)가 97년 체제의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영웅이요 주인공들의 조건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몰락만은 아닌데, 진정성의 해체는 새로운 마음의 레짐과 새로운 주체의 형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V. 마음의 사회학

 

 

진정성은 어떤 실체가 아니라, 동시대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마음의 '상태'이자 마음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관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으며, 사회적 조건과 물질화된 정서적 장치들을 통해 객관적으로 구현되는 사실이다.(80년대 대학생들의 '분노') 저자는 80년대적 진정성의 해체는 어떤 고귀한 가치나 윤리 감각의 상실이 아니라, 이런 마음의 레짐의 변화라고 파악한다. 진정성을 대하는 일반적 태도와 자세, 그 개념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 진정성을 구가하고 욕망할 수 있던 물적 토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진정성을 욕망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성을 대신하는 새로운 무엇을 명확히 꼬집어 말할기도 어줍잖다. 진정할 수도 없고, 진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시대, 그것이 바로 포스트-진정성 시대의 아포리아다.

 

 

 

 

2장 삶의 동물/속물화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귀여움

 

 

I. 생활의 발견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이 던진 질문. 우리는 인간인가 괴물인가?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인 척하는 위선자나, 괴물도 못되면서 괴물인 척하는 위악자, 이 위선과 위악의 교차로에서 몸부림치는 게 바로 87년 이후의 주체 형식, 속물이었다. 평범한 것이 악이 되는 세계의 기묘함.

 

 

 

II. 자폭을 할 줄 아는 속물

진정성이 포기된 삶을 사는 존재는 속물이다. 그러나 속물이 다 같은 속물인 것만은 아닌 게, 우리는 속물의 두 가지 유형을 나눌 수 있다. 1) 즉자적 속물, 속물로서 살되, 스스로가 속물이라는 데 문제의식이 없는 속물 2) 대자적 속물. 스스로가 속물임을 깨닫고 있는 속물. 이들은 깨달음의 계기 속에 진정성의 흔적을 보전하므로 ‘진정성의 속물’이라고도 부를 수 있으나, 그 진정성 때문에 궁극적으로 속물이 될 수 없으므로 ‘사이비 속물’에 불과하다. 시인 김수영이 말했듯, 그것은 ‘자폭을 할 줄 아는 속물’, 곧 ‘고급 속물’이다. 그럼 1970년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는 뭐라고 해야 할까?

 

 

 

III. 동물+속물

코제브에 따르면 역사의 종언 이후의 삶은 크게 동물과 속물의 삶으로 나뉜다. 전자는 미국인의 삶으로서 계급 없는 사회가 달성되고, 거기서 하는 일이라곤 물질적 풍요 속에 신체를 살찌우는 일밖에 없다. 소련과 중국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미국인이 되고 말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 그가 본 것은 속물의 삶이다. 철저한 형식적 규범 속에 자신을 가두고 로봇처럼 자신을 규칙화하는 존재인 속물. 속물은 내면과 깊이를 모두 표면으로 드러낸 채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순수하게 노출시킴으로써 살아가는 존재다. 스펙타클이며 게임이고, 키치의 세계. 미시마의 삶도, 그의 할복도 하나의 퍼포먼스, 타자의 시선 앞에 자신의 육체를 노출시키고 피와 살을 헤집으며 내장을 끄집어내는 하나의 공연에 가깝다고 할밖에.

 

 

IV. 게임과 유희

미시마는 우리의 정신은 신체의 표면 바깥으로 단 1mm도 빠져나갈 수 없음을 단호히 주장한다. 철저한 ‘유물론자’로서 그가 택한 것은 정신을 둘러싼 신체의 호화로움과 아름다움이다. 존재는 육체다! 육체에 대한 숭배는 그러나 파시즘의 지름길이다. 육체에 못 박힌 채 육체에 고립된 존재는 감각의 논리를 곧이곧대로 신봉한다. 육체의 미적 조형은 절대적 척도로서 던져져 있고, 피와 대지의 은유 속에 파시즘에 함몰된다. 오직 육체만을 아는 존재는 육체만이 모든 것이라 믿으며, 그로써 자신의 진정성을 객관화한다. 지도자에게서 진정성의 화신을 찾고, 잘 단련된 육체 속에서 진정한 존재의 이상을 본다. 진정성의 속물이 맞는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V. 최후의 인간과 수치의 상실

레비나스를 빌어 말하면, 수치심은 인간이 자신의 동물성을 자각하는 것, 동물로서 인간의 한계를 대면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부끄러움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비인간성을 대면하고 이 관계를 성찰한다. 그런데 근대 이후의 인간, 87년 이후의 인간은 그런 수치심, 부끄러움을 상실한 채 태어났다.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들이 등장했다!

수치심이 없기에 최후의 인간은 동시에 최초의 非인간이며, 타자와의 관계를 성찰할 내면의 거울 대신 타자들의 평가에만 집착하는 자의식을 갖는다. 그들은 직설적이고 투명하고, 낙관적이며 해맑고 천진한 존재들이다(진정 부러운 존재들이다!). 최후의 인간들은 무상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애수나 허무감, 분노, 절망 따위를 알지 못한다. 타자는 그들의 맑은 피부에 반사되어 햇살처럼 부서져나가고, 있는 것은 오직 나의 표면에 되비친 타자들의 눈[평가]뿐이다. 세계와 자신을 부정하며 역사를 굴러가게 만들었던 근대성의 견인차였던 부정성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역사는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다.

 

 

VI. 귀여움의 시대

성인이 아동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인간이 (특정) 동물에게 느끼는 귀여움이란 애초에 강자가 약자에게 느끼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강자를 위해 길들이고,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존재에게 느끼던 공격성이 문명의 순치로 말미암아 역전된 감정인 귀여움. 남성에게 복종하는 여성은 귀엽다. 우리 속의 호랑이는 고양이만도 못하다. 장난감이나 익숙한 동물을 연상시키는 외계인은 귀엽다. 귀여움이란 본질적으로 권력 감정에 다름 아니다. 생명 권력의 문제인 귀여움.

과거 인간의 권리와 삶의 진실, 고귀한 생존의 문제에 답하기 위해 투쟁하던 시절은 지났다. 고문과 학살, 처형의 지옥 뒤로 남겨진 시간은 역사가 끝난 시대로, 코제브 식으로 말해 동물(+속물)의 왕국이다. 그것도 자유로운 세렝게티 초원에서의 삶이 아니라, 짐승우리 안에서 맞는 찬란한 하루하루인 일상이다. ‘럭셔리한 아우스비츠’에서 맞는 무료한 날들이여!

추구할 목적도 없고, 오직 생존만이 지상 과제가 된 현실에서 우리는 최대한 귀여워져야 한다. 타자들의 타게트가 되지 않기 위해, 떨어지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따뜻한 온열바위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완전한 사육’에 걸맞는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역사는 끝장을 보았지만 아직 종말의 때는 오지 않은 까닭에 그 시간을 무사히 버텨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의 진공, 그 공간을 버텨내야 한다. 귀여운 존재, 동물+속물이 됨으로써.

 

 

VII. 인간의 운명

진정성의 레짐 이후의 인간은 동물이자 속물이다. 진정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존재는 非인간이며 따라서 마음 없는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시대가 ‘진정성의 상실’이 아니라 ‘진정성 레짐의 상실’로 특징지어지는 시대란 것이다. 하나의 레짐으로서 진정성은 소멸했고, 포스트-진정성 레짐에서 인간, 혹은 동물+속물은 어떤 마음의 레짐을 가질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탐구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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