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일정 :: 세미나 일정공지 게시판입니다. 결석/지각은 일정공지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oracle

[토론주제]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 : 9~12장

 

1. (9장) 비시대성이란 무엇이며, 시대성, 반시대성과는 어떻게 다른가?

(p211) 니체는 그 시대가 포착하지 못하는 '광기, 탈주, 예외' 등의 문제를 시ㄴ상의 불일치와 관련시켰다.

(p212) 미래는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 있지만 오해되는 시간이다.

그것은 자기 시대와 불일치하는 시간이며, 비시대적인 것, 때에 맞지 않은 것(unzeit)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p213) 위대함은 시대성이 아니라, 비시대성에서 나온다. 

(p214) 니체가 말하는 비시대성은 시대에 대한 반대, 즉 반시대성과는 다르다.

시대의 지배적 가치와 대립하는 것만으로는 그 시대를 넘어설 수 없다. '반시대' 역시 지나치게 '시대적'이다.

"네가 아직도 적대받는 한 너는 너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너의 시대가 너를 전혀 알아볼 수 없어야 한다."

(12장 p252) 시대의 중력장에서 탈주하고 싶은 욕망를 가진 이들이 있다. 심지어 탈주가 초래할 위험성을 감수할 결심이 선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기 시대 자기 삶에 대한 거부만으로는 결코 날 수가 없다. 

부정과 거부는 여전히 무거운 자들의 정신이다. 중력의 영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부정과 거부는 금세 반동이나 허무로 돌변할 수 있다.

(p215) 시대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사는 것. 바로 '비시대성'이다. 미래로 떠나고 싶다면, 지금 여기서 그 미래를 만들어라.

이것이야말로 '머무른 채로 떠나기'이며, '앉은 채로 유목하기' 아니겠는가.

 

2. (9장) 시간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p216) 그것은 창조와 생성을 이해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는 과거를 재창조해서 미래로 만들어줌으로써, 과거에서 미래의 건축소재를 발견함으로써,

그리고 과거 속에 들어있던 니맬르 발견함으로써 문제를 풀어냈다.

(p217) 창조와 생성은 현재와 과거를 구원하는 방법이며, 미래를 구성하는 방법인 것이다.

미래로 여행하는 법. 그것은 시간과 동시대인(Zeitgenosse)이 되는 것이고, 시간을 뛰어넘은 시간을 갖는 것이다.

 

3. (10장) 순수한 인식의 추구자들은 어째서 관음증, 불임증을 갖는가?

(p220 관음증) 니체는 연구대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학자들의 시선에서 관음증 같은 것을 읽어내고 있다.

여기엔 진리와 '벗기고 싶은 욕망'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니체는 진리에 대한 철학자의 태도를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태도에 빗대어 설명한다. 

자연의 옷을 벗겨 진리를 보고자 하는 학자들의 욕구가 드러나 있다.

(p222 불임증) 순수한 인식의 추구자들은 인식의 영역에서 욕망을 몰아내려 한다.

(p224) 욕망을 몰아내고 객관적 사실과 가치중립을 내세우는 학자들의 문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임증이다.

 

4. (10장) 순수한 인식과 관점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다이너마이트 니체 p77) 니체는 어떤 문제를 대할 때, 사랑(자기 고유한 고통ㆍ고난ㆍ환희ㆍ정열 등)이 없다면,

문제를 포착할 수는 있지만 붙잡아둘 수는 없다고 했다.

[즐거운 지식] #345 “모든 위대한 문제는 위대한 사랑을 요구한다.

그리고 위대한 사랑의 능력은 오직 자기 자신을 확고히 지닌 강하고 원숙하고 굳건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갖고 있다.

어떤 사상가가 자신의 문제에 인격적으로(자기의 고유한 문제로)’ 마주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운명ㆍ고통ㆍ행복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비인격적으로(자신과 무관하게)’ 문제를 대하는가(냉정한 호기심의 더듬이로 사상을 더듬어 파악하는가).

이 둘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아무리 많은 것을 약속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사 그것이 포착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위대한 문제들은 개구리나 나약한 자들로서는 붙잡아둘 수 없기 때문이다.”

 

5. (11장) 니체는 현대인의 초상을 교양인, 난쟁이, 전도된 불구자, 허무주의자(최후의 인간)라고 불렀다.

이들은 어떤 특징을 가진 존재들인가? 이런 자들이 내 안에 존재하지는 않는가?

(p232 교양인)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지식을 모은 것이.... 문제는 현대인들이 긁어모은 지식들 모두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

제 것도 아닌 지식들을 모아 붙여놓고는 예뻐졌다고 착각하는 현대인들의 위선...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앎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p234 난쟁이=중력의 영) 그들의 덕은 지배보다는 복종을 가르치고, 가치를 창조하는 자보다는 가치에 복종하는 자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중력의 영향을 너무 크게 받는다. 강한 중력 때문에 그들의 키가 자라지 않는 것이다.

'중력의 영'으로 불리는 난쟁이는. 내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하면, 난쟁이는 그것이 예전에 이미 시도되었던 낡은 것이라고 말한다.

'중력의 영'은 경험, 관습, 도덕, 법률, 법칙 등 다양한 것들 속에 기거하면서 내 자유로운 비상을 가로막았다.

(p239~240 전도된 불구자) "하나를 너무 많이 지닌 대신에 그 밖의 다른 것은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눈이거나 커다른 주둥이거나 커다란 배, 아니면 또다른 커다란 어떤 것일 뿐이다.

나는 이런 자들을 일컬어 전도된 불구자라 부른다.... 모든 것에서는 너무 적게, 오직 한 가지에서만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전도된 불구자. (구제)"

문제는 그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것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한 가지 능력만 키우느라 여러가지 능력을 퇴화시킨 것이 문제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에게 몰려든 불구자들은 한가지가 불구이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현대인은 한가지 빼고는 모든 것이 불구다!

(p242 허무주의자=최후의 인간) "이 종족은 벼룩과도 같아서 잘 근절되지 않는다. 이들 최후의 인간이 가장 오래 산다."

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아미 죽음의 시작이다. 이들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것을 비난하는 것도 싫어한다. 

아마 죽는 것조차 귀찮아서 빨리 죽지 않는 것 같다. ......

신앙이 없다는 점에선 차라투스트라를 닮았는데, 이들의 말에선 기쁜 소식, 복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니컬한 냉소만 있을 뿐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 이들의 유일한 신앙은 무신앙이고, 유일한 근면은 게으름이다.... 그들은

세상일에 냉소적이고 '세계에 싫증난 자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간교한 게으름뱅이'거나 '훔쳐먹기를 즐기는 쾌락의 고앙이'들이다.

그놈들은 세상에 대해 뭔가를 아는 척 뻐기며 세상을 욕하는데 바쁘지. ... 세상에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정작 세상을 등지진 않는다!

(*그들이 세상에 냉소적인 것은) 엄밀히 말해 세상 살기 싫다는 게 아니라, 무언가 욕망하는 게 있는데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후의 인간.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도, 무언가를 동경하는 것도 다 귀찮아하는 것,

수면제 한 움큼 먹은 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속에서만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더이상 가난해 지지 않음 부유해지지도 않는다. 이런 것은 너무나도 귀찮고 힘든 일이다.

아직도 다스리려는 사람이 있는가? 아직도 순종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이런 것들은 너무나도 귀찮고 힘든일이다." (차라투스트라 머리말)

최후의 인간은 제발로 선 적이 없는, 그래서 항상 무언가에 의존하고 그것을 숭배하는 인간의 종착역과도 같다. ....

수동적 허무주의 '모든 것은 헛되다', '해봤자 다 쓸데없는 짓이다'라는 생각. 최후의 인간은 허무주의의 전형이자 완성이다. 

 

6. (12장) 시대의 중력장에서 탈주하는 2가지 방식 : 부정을 통한 도약 vs 긍정을 통한 도약에 대하여

(p252 부정을 통한 도약) 시대의 중력장에서 탈주하고 싶은 욕망를 가진 이들이 있다. 심지어 탈주가 초래할 위험성을 감수할 결심이 선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기 시대 자기 삶에 대한 거부만으로는 결코 날 수가 없다. 

부정과 거부는 여전히 무거운 자들의 정신이다. 중력의 영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부정과 거부는 금세 반동이나 허무로 돌변할 수 있다.

(p252 긍정을 통한 도약) 부정을 통해 도약해서는 안된다(변증법처럼 해서는 안된다). 도약은 긍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중력의 영)"

자기 삶을 사랑하는 자만이 자기 삶을 아름답게 창조할 수가 있다. 자기 삶을 부정하는 자는 탈주할 때 고통의 비명이나 분노의 울분을 토한다.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