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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張問 十世可知也
자장이 물었다. 10세대(열 왕조) 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공자 말씀하시길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제도,시스템)를 따랐으니 채택하고 버린 부분을 알 수 있다.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제도,시스템)를 따랐으니 채택하고 버린 부분을 알 수 있다.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혹시라도 주나라의 예를 계승했다면 백 세대 후의 일이라도 미리 알 수가 있다.
자장은 앞서 취직할 수 있는 공부법을 공자에게 물어 본, 좀 철이 없어 보이는 제자인데요. 이번에도 다른 제자들이 감히 물어보지 못한 도발적인 질문을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예측하는 법에 대한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와 지금 시대와의 공통점은 바로 혼돈이 아닐까 합니다.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이제껏 살아왔던 방식이 앞으로는 더 이상 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 모두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도 왕부터 일반 백성까지 과거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공히 느꼈던 것입니다. 불안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은 절실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장은 陳나라 출신 유학생으로, 그 나라는 망했지요. 나름 절실했던 고민이었지, 영 엉뚱한 질문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논어를 통틀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장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禮治시스템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물론 누구나 하,은,주는 전쟁을 통한 왕조교체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굳이 禮를 가지고서 대답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한자를 사용한 이른바 중화 문화권의 시스템에 대한 우월감을 이 문장을 통해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화권 이외의 문화는 이른바 오랑캐로 부르는 자민족 중상주의 내지는 중화사상의 시초가 바로 이 문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일반 백성들은 국민이라는 개념이 없이 살았지요. 각자 먹고 살 길을 찾아서 살았지, 통일된 제국에 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굳이 하,은,주를 말하면서 역사를 엮었던 것이지요. 그런 생각에서 춘추도 썼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진나라가 통일을 하고, 이어서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이런 중화주의는 모든 사람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흩어져 사는 것은 혼란의 시대이고, 그 혼란을 끝내고 하나로 통합해야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의 프레임을 가지고서 역사를 정리한 책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입니다.
그래서 인류보편의 사상을 펼친 철학자로서의 공자가 있는가 하면, 노나라 국민으로서 중화주의를 주창한 공자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진핑이 중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세계 곳곳에 만들고 있는 공자학당 속의 공자는 아마도 후자를 염두해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팔일 편이 시작됩니다. 부족한 저의 위정 편 발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세미나는 되도록 1시까지 끝내고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5월 14일에 뵙겠습니다~
자장이 물었다. 10세대(열 왕조) 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공자 말씀하시길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제도,시스템)를 따랐으니 채택하고 버린 부분을 알 수 있다.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제도,시스템)를 따랐으니 채택하고 버린 부분을 알 수 있다.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혹시라도 주나라의 예를 계승했다면 백 세대 후의 일이라도 미리 알 수가 있다.
자장은 앞서 취직할 수 있는 공부법을 공자에게 물어 본, 좀 철이 없어 보이는 제자인데요. 이번에도 다른 제자들이 감히 물어보지 못한 도발적인 질문을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예측하는 법에 대한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와 지금 시대와의 공통점은 바로 혼돈이 아닐까 합니다.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이제껏 살아왔던 방식이 앞으로는 더 이상 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 모두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도 왕부터 일반 백성까지 과거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공히 느꼈던 것입니다. 불안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은 절실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장은 陳나라 출신 유학생으로, 그 나라는 망했지요. 나름 절실했던 고민이었지, 영 엉뚱한 질문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논어를 통틀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장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禮治시스템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물론 누구나 하,은,주는 전쟁을 통한 왕조교체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굳이 禮를 가지고서 대답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한자를 사용한 이른바 중화 문화권의 시스템에 대한 우월감을 이 문장을 통해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화권 이외의 문화는 이른바 오랑캐로 부르는 자민족 중상주의 내지는 중화사상의 시초가 바로 이 문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일반 백성들은 국민이라는 개념이 없이 살았지요. 각자 먹고 살 길을 찾아서 살았지, 통일된 제국에 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굳이 하,은,주를 말하면서 역사를 엮었던 것이지요. 그런 생각에서 춘추도 썼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진나라가 통일을 하고, 이어서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이런 중화주의는 모든 사람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흩어져 사는 것은 혼란의 시대이고, 그 혼란을 끝내고 하나로 통합해야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의 프레임을 가지고서 역사를 정리한 책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입니다.
그래서 인류보편의 사상을 펼친 철학자로서의 공자가 있는가 하면, 노나라 국민으로서 중화주의를 주창한 공자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진핑이 중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세계 곳곳에 만들고 있는 공자학당 속의 공자는 아마도 후자를 염두해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팔일 편이 시작됩니다. 부족한 저의 위정 편 발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세미나는 되도록 1시까지 끝내고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5월 14일에 뵙겠습니다~
1: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게 고전 한문의 매력이다. " 최유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경우, 자신의 해석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입니다. 요즘처럼 자유로운 시절에, 굳이 예전의 해석권력(?)에 대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을 듯. 다의성을 충분히 즐기고 싶네요.
2: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상나라에서 주나라로 바뀌었지만, 공자는 그리 큰 변화가 없다고 말합니다. 고대 중국인에게 혁(革)이란 생각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전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시진핑을 보면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은근쓸적 같다고 말하면서 포섭해 버리는 중국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축구의 원류가 중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현대 중국에서도 혁(革) 이란 생각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공산혁명이 일어났지만.. 얼마 지나면 공산주의 사상도
원래 중국에 있었다라고 주장할 거란 예상도 듭니다.
좋은 후기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