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마루카와 데쓰시, 『냉전문화론』(2010년, 너머북스)의 제1장~제3장을 읽습니다.
지난 번 서문을 읽을 때 등장했던 타이완의 왕통 감독의 영화 <홍시>(1996년)의 포스터를 발견했어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으로 후퇴할 때 따라내려온 가족의 이야기.
기억나시죠?
지난 셈나 시간에,,,
주인공의 부하로 나온 저우푸순이라는 병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내전이 한창일 때 타이완으로 후퇴하는 배를 놓쳐 그대로 내전의 최종단계에 투입되고 공산당의 포로가 되어 대륙에 남겨졌던 그가
연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공산당의 인민의용군에 편입되어 한반도에서 남측과 싸우게 되고
거기서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어 대륙으로 귀환할 건지 타이완으로 송환될 건지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죠.
그는 결국 타이완행을 선택하게 되고, 자신에게 닥친 기구한 재난을 트라우마로 느끼지 않는 것처첨 행동하지만
저자는 "영화 속 그의 얼굴엔 어딘가 손상된 구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저자 자신과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의 얼굴 안쪽에 비춰지는 광경은 어떤 것일까?
저우푸순의 얼굴 안쪽에 펼쳐진 풍경은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거리가 먼 어떤 것으로 상정되어 왔지만,
이 책의 저자는 냉전을 고정화시킨 최대의 전장으로부터 일본이 단지 조금 바깥쪽에 자리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저우푸순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낸 냉전이란 어떤 것인지,
일본과 대만, 한국의 영화와 문학작품들을 통해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분석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사례로 제시되는 작품들을 구해서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목요영화관..... 뭐 이런? ㅎㅎㅎ *^ ^*
목요일에 만나요~~~~~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파란 글씨는 이번에 읽을 부분)
1장 다케우치 요시미와 ‘적대’사상
전제 1 일본의 ‘독립’? / 전제 2 국민문학? / ‘적대’의 사고 / 결단의 실패를 참고 견디는 일
2장 그 전쟁, 이 전쟁
전쟁과 ‘현실’의 생산 / ‘바다’라는 메타포 / ‘육지’의 침식 / 중국혁명의 글로벌화 / ‘기아’의 리얼리즘
3장 육체의 자장
냉전의 포지션, 혹은 ‘육체’의 과오 / 60년대의 잠재적 방향 : 스즈키 세이준의 양의성
전후와 ‘타락한 여인’ / 동아시아 냉전에서의 ‘육체’의 행방
4장 회귀하는 아시아, 여백의 아시아
‘아시아’ 회귀? / 60년대 혹은 다케우치 요시미 / 냉전, 기억, 고도성장
냉전, 노스탤지어, 신식민주의 / ‘일본의 장소’란 무엇인가?
5장 한국전쟁이라는 겁화
한국전쟁에 대한 대응 / 한국전쟁을 둘러싼 투쟁 / 한국전쟁과 ‘일본’
두 개의 공간 / 두 개의 시간
6장 불타는 오키나와
‘류큐제도’의 일체성 / 미국과 오키나와 / 아시아와 오키나와 / 위기에 처한 현재
7장 포로/귀환의 자장
부두의 어머니 / 전후의 ‘이야기’ / ‘억류자’의 ‘이야기’와 반(反)스탈린주의 / 종교적으로 체험된 ‘억류’
8장 대척공간으로서의 아시아
전쟁중의 에너지, 혹은 50년대 / 한국전쟁하의 서클운동 / 55년이라는 분수령
토지와 인간의 자유 / 방법으로서의 ‘고향’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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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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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가득한 내 지식의 한 부분을 채우는 공부 모임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원중의 바램은 저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이 바램 오랫동안 잊지 않을게요,,, ^ ^
인터뷰 작업을 하고나면 사실 저도 마음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고 무거워집니다.
왜 그럴까,,,,
어느새 내가 포로할아버지들의 삶에, 유족들의 삶에,,,
혹은 병역거부를 선언한 동료의 삶에 조금씩 개입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인 건 아닌지,,,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원중이 말한 것처럼,,,
지금-여기의 우리가 그들이 서있던 그곳에서의 목소리를 듣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곳에서 들어야할 목소리에도 귀기울이는 작업을 통해서
그들의 '목소리'가 어떻게든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그러나 다양한 결로 노력해 보고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우리의 목소리가 개입되어 섞여들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기록'을 하고 있지만,
그 기록이란 것이 그들의 목소리에 우리의 목소리가 겹쳐진 형태가 되겠죠.
이런 공부와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안정감이 그들의 목소리에 침식당하는 건 저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일입니다.
때로는 안정감 따위 다 부서져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셈나때 언급되었던 영화들을 꼭 같이 봤으면 좋겠아요.
찾아볼게요. 어떻게든 . ^ ^
세미나에 친숙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라도 남겨 봅니다.
106.p : '전후 사회의 안정감에 의해 침식' 당하기 시작했다.
110.p : -냉전구조의 확립을 통해 규정된 '육체'와 그 '육체'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학(politics)-이 가로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침식당해가는 과정과 타락의 경위를 일단 빠짐없이 거슬러 올라가는 일일 것이다.
세미나 몇 번과 증언을 기록하는 시간을 한 차례 가져본 것으로는 전체적인 지도상도 세심한 부분도 잘 그려내질 못하고 있기에 맘도 걸리고, 때론 힘이 빠져버리면 안되는데...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들:음 세미나'에서 마다치않고 희망하게 되는 바램이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만남을 통해 나와 당신의 삶이 길 잃었던 삶에서 길을 다시 찾으며 나아가는것 아닐까... 그러기에 단지 허기 가득한 내 지식의 한 부분을 채우는 공부 모임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저에겐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문장은 아니지만, 잠시 빌어쓰며 생각을 돌아보고 질문을 만들어 봅니다.
시베리아에 포로로 끌려갔던 할아버지와 유가족을 만나며 점차 침식 당하는 내 의식의 안정감은 흔들렸습니다.
복잡하고 깊은 주름이 산맥처럼 형성된 말 없던 당신의 피부는 당신이 들려주는 증언보다도 더 깊은 울림으로 제 기억의 잔상에 남아 있습니다.
전후문학에서 다뤄지는 육체에서는 이상한 비릿내가 나는 듯 했지만(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해가득한 느낌만 가졌을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육체에서는 고향집이 생각납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돌아온 당신에게서 왜 저는 안정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그 안정감은 저 자신도 모른체 사회 속에서 침식당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돌아온 당신의 '육체'를 마주하며 저는 제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 자신은 어떻게 침식당하고 타락해 갔는지 바라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서 있던 그 곳에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가 서 있는 위치에서 들어야 할 목소리 역시 귀 기울이며
깊은 메아리가 울리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