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두번째 시간 진행합니다.
범위는 4장부터 끝까지 입니다.
저번 시간엔
르네상스 간판스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소용돌이를 을매나 사랑하고 탐구했는지를 시작으로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 빈치가 왜 소용돌이에 홀렸는지 그 심리상태에 대한 분석은 없었습니다. 전 그걸 기대했는데....
그래서 왜 그랬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탐정놀이를 하려면 자료부터 취합해야 하나
쫌 많이 귀찮아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던져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정신분석은 이미 프로이트님이 하셨지만
무리무리한 꿰어맞추기라 패스.
"물의 움직이 속 무엇인가, 물의 소용돌이와 회오리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본성 깊숙이 자리한 어떤 비틀림에 조응했다."
예술사가인 포펌의 말대로
인간이 뭔가에 매혹될 때는
대체로
깊숙이 들어있는 뭔가 때문이지요.
다 빈치의 뭔가는 뭔가?
다 빈치는 거대한 바다를 봤다기 보다
아르노 강과 같은 강이나 개울에서 관찰을 한듯합니다.
아..... 다 빈치는 대양으로 가기에는 소년이었습니다.
흐르며 섞이고 합쳐지다 갈라지고 다시 만나 돌고.....
분별이 없는 세계
혼돈스럽지만 숨겨진 질서가 있고
너와 내가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는 아닌
그런 물의 흐름
물이 만들어 내는 형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포착하기 어려운 무늬들....
경계를 허무는 물의 파괴력
그 앞에서 부질없는 인위적인 규율들.....
마음 속에서 늘 외치는 부질없음
그것의 증거로서의 소용돌이
위안을 주면서 동시에 그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현기증에 시달리게 하는
두 어머니와 늙은 아버지를 가진 천재
너무 빨리 배운 쇠락
부질없음....
노쇠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으로 활짝 열린 창을 보여주기 힘듭니다.
이런 경우 모성의 양가성은 더욱 두드러지고
아이는 아주 헷갈리는 삶을 삽니다.
이 분열이 가끔 운좋게 천재성을 키우기도 합니다.
좀더 사내성이 강한 멜빌은 바다로 갔습니다.
그리고 봅니다.
부질없다고 남 탓하면 어떻게 파멸하는지
자연이라는 소용돌이가
공허하다고 미쳐날뛰는 인간의 타락을 어떻게 응징하는지....
아합이여! 나무로 만든 남근이라니 우습구나.
너 자아폭발한 이아손이 어떻게 죽었는지 잊은게냐?
니가 다시 뱃속에 갇혀야 정신 차리지!
에잇, 몽땅 삼켜주마.
멜빌은 이런 예언적 드라마를
제대로 보고 옵니다.
아무튼 우리의 레너드는
소용돌이에서 부질없음을 보고
자기와 닮은 그 속으로 끄달려 들어갔지만
책은 말합니다.
"흐르는 건 질서고 세상은 대류로 만들어진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자연과학자가 쓴 책입니다.
그래서 일체의 야부리 없이
어떤 역학이 작동해서 소용돌이가 생기는지
어떤 형태로 생기는지 꼼꼼하게 설명해줍니다.
물결이란 것은 전단력(두층의 유체가 교차하며 생기는 마찰)에 의해 나타나고
그때 오목과 볼록한 부분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가 달라 생겨나는 파동의 돌출이 더 격렬해지고....
어쩌구....
물이 그렇고
대기가 그렇고
목성의 대적반이 그렇고
지구 속 맨틀이네가 그렇고
그렇고 그렇고..... 다 같은 방식으로 흐르고 흐릅니다.
이 일관된 물질의 원리를 보라. 숭고하지 아니한가..... 음하하...
질문!
그러면 왜 대류는 만들어지나요?
그것의 원인이 몇가지 소개됩니다.
세상은 완전히 평평하고
이지러짐 없이 둥글고
심지어 백퍼 균일하고
완벽하게 대칭 대칭 대칭이었는데
문득,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어리바리한 신의 탄생?
혹은 무겁고 탁한 것은 가라앉고 가벼고 맑은 것은 떠올라서 하늘과 땅으로 갈라지는?
에잇 설마, 빅뱅이것지....
그렇게
대칭은 깨어지고
에로스가 탄생합니다.
대류는 에로스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밀도가 조금만 불균형해도 대류가 발생합니다.
표면장력 차이도 흐름을 만듭니다.
장력의 차이는 온도가 다를 때 생깁니다.
염도의 차이도 대류를 만듭니다.
거대한 해류의 뫼비우스 띠는 온도와 염도로 만들어집니다.
(열염순환)
대류가 있는 곳에 세포가 존재합니다.
세포는 움직임의 흔적입니다.
태양에도 매우 격렬한 대류 세포가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대류가 만든 다양한 모양의 세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물결을 닮은 암석들, 돌맹이들부터 조가비, 해파리,히드라.... 대류의 세포들이지요.
우리도 대류의 세포입니다. 물질의 흐름이 아주 잠깐 형태를 취한 게 나입니다.
동시에
우리 몸에도 대류가 있습니다.
세포는 좀 복잡하고 섬세한 대류운동을 합니다.
선택적으로 보입니다만 결국
차이를 매개로 한 음양의 부침을 의지해 일을 합니다.
에로스는 음양의 신입니다.
태극과 무극 사이를 진자운동하며
에로스는 살아있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우리 육체가 그랬듯 우리의 세계관이 그 테두리 안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너무 당연하기에 간과하기 쉬운 점은
2500년 전통의 이 세계관 또한 대류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하는 것이라
충분히 점핑의 여지가 있다는 거지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오..... 나 쫌 굉장.....
에로스가 요즈음 인류를 극으로 몰아대고 있습니다.
통돌이 세탁기에 넣고 막 돌려대고 있습니다.
알긋어, 알긋어
새로운 것이 될게.
인지혁명이 윤리성의 혁명이 되길.....
이렇게 급마무리하는 이유는?
점심을 먹어야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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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영화는
<내일을 위한 시간>입니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5588
정미양의 수줍은 영화읽기가 점점 위대해지고 있습니다.
듣는이를 감동시켜 눈물을 쥐어짜는 수준이라니....
오...... 너도 쫌 굉장.....
저번주 언더더스키니 영화평 바로 올려주세요.
전 스키니진 입기 포기했습니다.
나으 타고난 언더더스키니 때문에...ㅠㅠ
참여하실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회비는 15000원, 월 1회 납입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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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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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뭔가...얄팍한 식견이 드러나는 감상평이라 좀 부끄럽네요..
개인적으로...약한 것은 파괴되어 버릴 거라는...공포가 있는데
그게 드러나는 영화여서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귀여운 아이의 순수함 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공포랄까요...
선생님의 후기를 읽으며 와...대단하시다 했네요.
ㅋㅋㅋ 지금까지도 두통이 작렬이어서 그런지 다 소화해 내진 못했지만
신화(畵)적인 글이에요.
상상이 마구마구...
균형을 깨고 나타난 에로스는 왠지...
오리진 선생님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도 같구요...*-_-*
(사랑은 아닙니다만...ㅋㅋㅋ...)
'흐름'은 물리학자가 쓴 책인데도 문학적인 냄새가 조큼씩 나서 읽기 좋았던 거 같아요.
처음이라 분량이 적기도 했지만...
차이가 흐름을 만들고 그것이 생명의 움직임인 것 같아서
자연은 몸으로 말하는 존재라는 것이 참
자연스러운 거구나
했습니당.
어제의 감동의 밤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빙글빙글...
예전에 딱따구리가 머리를 내리치던 두통약 광고는
정말 훌륭한 이미지다..하면서...
잘 견디고
목요일에 뵈어요~
^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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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여전히 아프다니....
피로가 많이 누적된 거야.
괜히 걸어가지고.... 쯔
우리 뽀뽀도 어제의 트라우마로 하루종일 졸기만 하세요.
보기 안쓰럽네요.
그 포악한 성질은 다 어디가구.....
아무튼 레너드가 그렇게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 양반 속이 공허해서 그랬나?
나도 요즈음 회복을 핑계로 먹어댑니다.
음식이 식도에 스킨십을 해주는 거에 중독된건가.....?
그러고보니 <언더더스킨>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식도가 없어서 먹지를 못하지.
외로워도 먹을 수 없다니
식탐때문에 외롭지 않을 수도 없다니
외로움의 경지는 어디까지인가.....
마지막에 자기 스킨과 눈을 마주하며 무언의 연민을 나누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 씬이 가장 아름다웠던 같아요.
껍질과 알맹이가 서로를 응시합니다.
에릭슨이 말한 정체성은 사회를 떠나서는 어찌 해볼 수가 없는 개념인데
여성은 외계인이다 보니
그 모순을 봉합을 하느라 더 흔들리며
더 깊고 큰 대류운동을 합니다.
모든 소수자들 약자들이 다 그렇겠지요?
그 격렬한 흐름에서 껍질이 벗겨지고
그때마다 드러난 자신의 알맹이를 응시하고
비로소 주변이 보이고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하면서
인류의 도덕은 그렇게 단련되어 왔다고 봅니다.
지금 유툽에서 쿠와타 케이스케가
"이므진강 말근무으른 흐러흐러 내에리히고..."
하면서 <임진강> 노래를 부르는데....
현실에 비해 노래가 너무 고와서 듣고있기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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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https://youtu.be/KhfoiSnidHY
사구 형성 동영상입니다
좀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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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https://youtu.be/uY2QdZLLRP8
주름 이동 실험 동영상입니다
슬금슬금 나름 귀엽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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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와...일정한 간격을 유지해가는 과정이 엄청 나네요...
꾸물꾸물...신기해용.
수학 천재면 뭔가 수학적 계산을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현상이 아..닐지...지만
저는 회복을 핑계로 계속 처묵처묵...
*-_-*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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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https://youtu.be/5C9BLAXCe1I
연기의 흐름, 난류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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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https://youtu.be/wvJAgrUBF4w
클라드니 도형
진동주파수에 따른 패턴변화
https://youtu.be/2OWWvlnAGGs
파동 패턴
https://youtu.be/DnMt4aro2cM
오실론
유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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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https://youtu.be/g0LwS4ysGbE
https://youtu.be/QbUPfMXXQIY
보이드는 어떻게 움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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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함께 살아간다는 게 뭔지 너무 보여주네요...와우...
난류는 뭔가 섹시하구요...ㅋㅋㅋ...
다들 너무 신기해요...ㄷㄷㄷ...
좋은 자료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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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https://youtu.be/k7ZZtxdtmeQ
https://youtu.be/cEqvx0N_txI
쿠에트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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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섞였는데 본질을 잃지 않았네요...!!!
왜 자꾸 문학적인 해석밖에 할 수 없는지...
*-_-*
언더 더 스킨 / 조나단 글레이저
마치 우주선이 도킹하는 듯한 세련된 장면과 언어를 연습하는 것 같은 기계적인 배경 음성이 인간의 눈동자로 연결되며 영화가 시작된다. 어둠을 뚫고 달려온 오토바이맨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로 옆의 숲에서 여성의 사체를 찾아내 짊어지고 준비된 트럭으로 넣는다. 기묘한 공간, 주인공 ‘로라’는 여성 사체의 옷을 벗겨 입기 시작하고 알몸이 된 그녀의 몸을 기어 다니던 개미를 손가락에 올려 신기하다는 듯이 관찰한다.
도시로 보내진 아름다운 ‘로라’는 남성을 유혹해 살해한 후 고깃덩어리를 에너지원으로 삼기위해 보내진 에이리언이다. 그녀는 트럭을 몰고 다니며 길을 묻는 척 남자를 트럭에 태운 후 외딴 건물로 유인해 정욕에 휩싸인 남성을 포획하는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존재로 어떤 감정이나 윤리성은 결여되어 있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그녀의 시선 중심으로 그려지는데, 처음에는 사냥을 위한 남성만 보이던 그녀의 시선에 자신의 육신(피)를 느끼게 되면서 거리의 인간, 여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야가 넓어지며 무지의 자유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그녀. 그런 그녀가 그동안의 남성과는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얼굴이 일그러져 인간들의 편견 속에 외롭게 살았을 이 남성은 로라에게 다른 종류의 메시지를 주고, 그의 나약하면서도 경계심 가득한 태도에 흥미를 느낀 로라는 그와의 스킨십을 통해 변화를 느낀다. 그러나 수순대로 외딴 건물로 유인되는 일그러진 얼굴의 남성. 경계심 많은 인물답게 로라가 다 벗을 때까지 성욕에 휩싸이지 않는데 그런 그를 포획하고 나온 그녀는, 계단 아래에 있는 거울을 보며 일그러진 얼굴의 남성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 그리고 눈,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아가 생긴 것이다. 타인을 받아들일 마음이라는 게 생겨버린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의 남성을 구해주고 도시를 벗어나 외딴 곳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그렇게 달리다가 엄청나게 짙은 안개를 만나 트럭을 멈추고 내린 그녀. 한치 앞도 안보이는 안개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던 그녀가 스스로 안개 밖으로 걸어 나온다. 무지의 자유에서 깨어나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부터 거울뉴런이 작동하듯 의식적으로 인간을 따라하는데, 초반, 남성을 대상화하며 두려움 없이 행동하던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약자의 포지션을 취하며 도움을 받고 대상화되기 시작한다. 그 감정이 자신을 보살피려하는 성품의 남성을 통해 극대화되는데,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앎과 동시에 슬픔과 공포도 알아버린 그녀, 그 후론 먹지 못하듯 성관계조차 할 수 없는 약자에게 다가올 수 있는 비참한 최후를 향해 달려간다. 천박한 인간의 시선에 의해 내면이 드러나 버린 외계인이자 여성은 그렇게 파괴되어 버린다.
익숙한 공간을 낯선 시선으로 보여주며 작은 숨소리까지 생경하게 느끼도록 우리를 환기시키던 영화는 로라가 대상화되고 자아(혹은 인간중심의 아름다움)를 인식하는 순간,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세상에서 약자가 소비되는 방식의 익숙한 장면을 보여주며 마무리 짓는다.
‘왜 아름다운 여자 외계인일까’라는 설정을 생각해보면, 영화적 상황이 의아하지 않을 정도로 남성의 시선과 폭력성이 그만큼 여성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 남자와 원나잇을 즐기는 여자라니, 외피가 중요한 어떤 종류의 남성들에게는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그녀는 겪어 온 패턴과 다른 남자에 의해 변화를 느끼는데, 결국 익숙함과는 다른 존재가 구원이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존재는 나를 돌아보게 하니까...
타인의 시선에 의해 생경함의 자유를 잃어버린 예술은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지, 그리고 안다는 것이 주는 슬픔과 공포를 인식하게 해준, 나에게는 ‘인사이드 아웃’의 성인 버전 같은 영화였다. 애니메이션은 모든 감정을 받아들인 인간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지만, 예술론으로 접근한 영화는 비참하게 파괴시켜 버린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실험하듯 감정이 배재된 채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몹시 마음에 들었다.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사람이 피곤하듯 이래라 저래라 떠 먹여주는 영화보다는 각자 알아서 주워 먹는 영화가 더 흥미로운 게 아닐지... 내 행복을 위해 껍데기보다 내면을 볼 수 있는 인간이 되자 라는 개인적 다짐과 함께 누군가의 눈을 오랫동안 조용히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냉혹한 현실의 SF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