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八佾 3>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면서 仁하지 않으면 禮를 어찌하겠는가? 사람이면서 仁하지 않으면 樂을 어찌하겠는가?"
仁은 '어질 인'입니다.
국어사전에 '어질다'는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 仁을 '어질다'라고 풀이하면 仁과 禮樂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2월 5일에 시작하여 13회 논어 세미나를 하면서 仁이라는 글자는 學而편에만 3번 연달아 나오고, 爲政편에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더니, 여기 八佾편 앞부분에 다시 등장합니다.
有子曰, “其爲人也孝悌,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學而 2>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學而 3>
子曰, “弟子, 入則孝, 出則悌,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學而 6>
仁을 풀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람답다'가 아닐까 합니다.
공자는 '~답다'를 강조한 인물입니다.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顔淵 11>
유명한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아들이 아들답다'라는 문장입니다. 공자는 실제가 이름에 부합하도록 바로잡는다는 이른바 '정명론(正名論)'을 주장합니다.
공자 당시인 춘추시대, 周는 이름뿐인 천자국이고 실제 권력은 힘이 센 제후, 대부 등이 행사했습니다. 모두가 ‘혼란하다’고 여긴 시기였습니다. 공자는 이를 한탄하며 문왕 무왕 주공이 다스리던 주나라 초기의 ‘성세’를 다시 일으키고자 동분서주했던 인물입니다. 어지러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이상적인 이미지를 옛 것에서 찾는 방식.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仁과 禮樂입니다.
仁은 質(바탕)이고 禮樂은 文(겉꾸밈)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禮와 樂은 엄정한 계급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의 장치’입니다. 仁은 禮樂이 외부의 통제로 여겨지지 않고 자발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내면화 장치’입니다. 논어에서는 質(바탕)이 本(본질, 먼저)고 文(겉꾸밈)은 末(말단, 나중)이라고 애써 ‘강조’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외부 장치를 만들어 놓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 장치가 나중에 개발된 건 아닐까요?
‘불온하게 논어 읽기’를 추구하는(?) 우리 세미나에서는 八佾편에서 본격적으로 仁과 禮樂의 관계, 바탕과 꾸밈인 文質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주 일요일, 5월 21일 오전 11시에는 八佾편의 6번째 문장부터 읽을 예정입니다.
- . 子謂冉有曰, “汝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八佾 6>
- ,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八佾 7>
- ,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八佾 8>
- ,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八佾 9>
- ,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八佾 10>
- .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八佾 11>
- ,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八佾 12>
이날 읽을 수 있는 문장은 아마도 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막연하게 동양 철학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세미나에서,,,
논어의 한자를 겨우 겨우 사전 찾아가며 해석만 해오는 저에게 깊이 있는 토론과 사고의 장을 만들어 주시는 세미나 여러분 모두를 알게 되어 감사하고 기쁩니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