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월터 미뇰로의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을 드디어 끝냈습니다.지난 시간 읽은 부분에서 특히 주목되었던 부분은 해체와 탈식민주의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미뇰로가 자신의 지적 계보를 자리매김하는 부분이었어요.ㅎㅎ 내용은 발제문의 해당 부분으로 대신할께요.
"그렇다면 해체와 탈식민화의 관계는 무엇인가? 해체는 서양 내부의 헤게모니적 구성물에 대한 비판이며, 탈식민화는 식민지적 차이들에 대한 비판이다. 미뇰로는 이 둘을 상보적 과정으로 자리매김한다. “서양 형이상학 내부에 있는 해체는 역사의 침묵으로부터 탈식민화될 필요가 있다. 탈식민화는 권력의 식민성으로부터 해체될 필요가 있다.”(532, 번역서에서는 오역) 초분과학문성 역시 (서양 내부의) 해체적 관점에서는 학제들 간의 경계를 횡단하는 것에 머문다면, 탈식민화에서는 근대/식민세계의 외부 경계지대들을 가로지르는 것이 중요하다. 즉 탈식민적 초분과학문성이란 서구의 ‘과학’이나 ‘지식’에 의해 진지한 과학이나 지식이 아닌 것으로 배제되었던 영역들(비서구라는 장소에서의 문학, 에세이, 민담)에서의 사유이자 글쓰기이다.
탈식민화가 해체를 보완한다는 의미를 좀더 살펴보자. 데리다에게 해체는 ‘두 개의 세션(double session)’로 분절된다. 첫 번째는 전복의 국면으로, 주어진 순간의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대립들이 제 3의 항목을 구성해내는 일 없이 스스로 녹으면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대립들의 산포”(535)라는 계기다. 식민담론 역시 이런 방식으로 해체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탈식민화는 서양 형이상학으로서의 식민담론을 해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민지적 차이에 주목해야 하는데, 식민담론과 접촉, 교차, 갈등해온 다양한 비서구적 사유방식들을 고려하는 경계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미뇰로는 해체와 탈식민화를 이렇게 보완적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경계사유를 사이드, 스피박, 바바의 포스트식민주의 담론과는 다른 선으로 계열화한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서구 이론(푸코, 데리다, 라캉)을 전유하면서 아직 식민담론의 해체에 머물러 있는 반면, 경계사유는 특정한 장소들과 결부됨으로써 탈식민화(decolonization)의 과업까지 떠맡고 있다는 것이다. 미뇰로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자신의 출발점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식민지적 차이’와 ‘권력의 식민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그와 결별했음을 단언한다. 나아가 월러스틴, 푸코, 라캉, 데리다 등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페루의 키하노와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엔리케 두셀의 작업 속에서 진정한 탈식민화의 계보를 찾았음을 고백한다..."
미뇰로가 경계사유의 가장 탁월한 사례로 드는 것은 바로 사파티스타 운동입니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사파티스타에 대한 분석이 자세하게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좀더 최근작인 The Darker Side of Western Modernity 에서 미뇰로는 아예 한 챕터를 할애하여 사파티스타를 다루고 있더군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맑시스트 무장 게릴라들이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운동과 삶의 방식은 미뇰로가 강조하는 '다른 말, 다른 사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보여주죠. 예전에 한창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등의 사파티스타 관련 책을 읽으며, 언젠가 함께 남미에 가자고 뜻을 다지던 친구들이 떠오르네요.^^;; 그때로부터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 뜻을 이루기는 요원해 보이고,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 사이 급변한 멕시코 정세 속에서 최근에는 사파티스타 전술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평가가 분분해지는 것 같지만... 물론 먼 나라에서 전해오는 풍문을 낭만적으로 이상화하는 것을 경계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사파티스타가 '경계사유'의 유력한 사례로 거론되는 것을 보니 새삼 반갑네요.
포스트구조주의나 포스트식민주의가 18세기와 계몽주의에 초점을 맞춘 반면, 미뇰로는 라틴아메리카의 장소성에 뿌리 박은 탈식민적(decolonization) 사유의 계보를 그려 나갑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로컬역사는 16세기와 르네상스, 근대성/식민성의 동시적 출현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 미뇰로가 월러스틴에서 키하노와 두셀을 향하여 방향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당연히도, 동아시아의 로컬 히스토리는 또 다른 물음들을 제기할 것이고, 또 다른 사유를 요청하겠죠.
자! 다음 시간에는 그 탐색의 출발점으로 마루카와 데쓰시의 <리저널리즘>을 읽습니다.
구체적 사례 분석이 풍부했던 <냉전문화론>에 비해서는 아직 문제의식만 나열한 느낌이 들어서 쪼금 실망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아직 세미나 초반이니 동아시아 역사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텍스트: 마루카와 데쓰시, <리저널리즘> 1부, 2부
일시: 6월 2일 금요일 오후 2시
장소: 수유너머 104, 1층 왼쪽 세미나실
발제와 간식: ㅎㅎ
세미나 문의: 010-이삼팔오-육육17
날짜(금.2시) | 저자 | 텍스트 | 범위 |
6.2 | 마루카와 데쓰시 | 리저널리즘 | 1부.2부 |
6.9 | " | " | 3부 |
6.16 | 아리프 딜릭 | 글로벌 모더니티 | 1,2,3 장 |
6.23 | " | " | 4,5,6 장 |
6.30 | 왕후이 | 아시아는 세계다 | 1, 2장 |
7.7 | " | " | 3,4장 |
7.14 | " | " | 5,6장 |
7.21 |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 유럽을 지방화하기 | 서론,1,2장 |
7.28 | " | " | 3,4,5,6장 |
8.4 | " | " | 7,8장.에필로그 |
8.11 | 이정훈, 박상수 편 | 동아시아,인식지평과 실천공간 | 1부 |
8.18 | " | " | 2부 |
탈식민/탈근대 세미나 안내: http://www.nomadist.org/s104/index.php?mid=SeminarAD&page=2&document_srl=517
중간에 저녁 하러 나가서 많이 놓쳤는데 후기덕분에 정리 잘 됐어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미뇰로 뒤로는 갑자기 급속도로 진도가 나가는 것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