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코프와 존슨의 <몸의 철학>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4장부터 8장까지 예요.
발제는 4.5장 최양님과
6.7.8장 윤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오후3시에 시작합니다.
최양은 감동의 영화, 감동의 영화평을 올려주세요.
다음 시간에 볼 영화도 소개해주시구요.
선율씨의 시 또 기대해봅니다. 기대해도 되죠?
유나님의 아이디어도 궁금합니다.
회비는 15000원입니다.(월1회 납입으로 다른 일반세미나 공짜로 참여가능)
참가하실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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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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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하아...뭔가 점점 제 글이 오글거리는 거 같아서 다른 종류의 부끄러움이...*-_-*
이번주는 아무래도 영화 글은 못 쓸 거 같아요.
일정이 불안불안...*-_-*
참고로...<컨택트>를 봤는데,
여러모로 지금 공부하고 있는 책에 도움이 되는 거 같았어요.
인간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범주화를 해야하는데, 그 범주화 되지 못한 존재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그런 순간에 진정 내면의 강함과 약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그리고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문자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언어라는 도구이자 무기,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의 은유들이 잘 나와서
과학으로 포장한 철학물 같은 영화였달까요.
그리고 선형적 시간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시간을 이렇게 다룬 이야기는 처음이라
매우 흥미로웠습니당.
허핑턴포스트에서 요즘 과학이 철학을 대체해서
대학교에서 점점 철학과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님들이 대부분 철학과를 나오셔서...
인간 풍요에 중요한 학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오히려 더 하게되네요.
뭔가 당연한 것 같은 내용이지만 과연 은유적 도구로 잘 발제를 해갈 수 있을지!!!
목욜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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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후기를 읽으니 저도 얼른 가서 보고싶네요.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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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정미씨가 보고 온 영화
<컨텍트>
오래 전에 산 책에서 이 이야기가 있어서 다시 읽었어요.
<네 인생의 이야기>
원통형의 칠족, 이 외계인들이 보는 세계를 소설에서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은 7로 정확하게 나뉠 수 없다는 암시와 입과 항문이 같다는 설정이 멋져요.
발화는 수행하기 위해 있는 것이고 미래를 이미 알고 있어도 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자유의지의 문제와 미래예견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신일까?)
관계는 대칭적입니다. 그래서 거울상으로 대응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왜 지구에 왔는지 인간들이 그들의 목적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
햅타포드들은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신이나 선각자나 성인들처럼
깨달음을 전수하듯
역사인듯 역사 아닌 역사 같은 너.... 힌두의 신들이 꾸는 꿈을 재현하는 헵타포드들...
그렇게 사유한다해도 삶과 죽음에 의연해질 수는 없겠지요?
뭐 의연하려고 사는 거 아니니까...
굉장히 직선적 역사관을 가진 유대인들이
장기간 집단적 스트레스 속에서 신에 대해 사유하고 사유한 결과
갖게 된 윤리관 중에 하나가
과거에 대한 책임이라고 합니다.(의외의 결론에 도달한 거지요.)
몇천 년 전 과거에 대해 지금의 공동체와 개인이 책임을 지려는 의지는
가히 신적이고 초인적이라 할만한 개념입니다만
그러나 이런 관념을 도출한 건 초인도 아니고 신도 아닌
누대에 걸쳐 의연해질 수 없는 상황, 고통의 연속을 겪은 그들
참혹한 고통 속에서 그들중 누군가(아주 소수겠지만)는 공정함과 책임을 밖으로만 돌리지 않고
그렇다고 안으로만 내면화 하지도 않고
진실로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삼았습니다.
선형적이냐 비선형적이냐 하는 인식의 방법론도 중요하고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정신성도 중요한듯 합니다.
이런 정신성은 극단적 다름에서 출현하곤 하는데
공동체와 개인이 그걸 버틸 재간이 있느냐가 관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급마무리합니다.
오늘의 결론,
역시 생긴 모습대로 언어가 구현되는듯
레이코프말대로
신체화된 마음의 예증으로 이 소설 괜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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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ㅁ
아...역시 선생님은 최강 책부자.
<지대넓얕>에서 소개 받고 본 영화라 원작이 있는 줄은 알았는데!
책에는 원통형의 칠족이라고 표현되나 봐요.
책을 안 본 입장에서...입과 항문이 같다는 설정 부분에서 빵 터졌....영화에서는 워낙 진지해서 생각 못했는데
그 곳이 입이자 항문 이었군요....뿜뿜...하고 먹물을 뿜어내서...친구에게 문어 외계인이라고...*-_-*
헵타포드라는 단어가 왜케 입에 촥촥 붙나 했더니
세미나에서 읽은 책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때문이었나봐요.
가질 수 없는 매혹적인 처녀 수라고 표현된 '7'이 인상적이었는데!
스포일러 같아서 여기까지.
개봉 중인 영화라 아슬아슬 하네요. ㅋㅋㅋ...
비교적 짦은 단편집이라던데...원작도 읽어볼게요~
윤님 보고 오시면 참 좋을텐데!
내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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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선생님 저는 일이 가득하여 오늘은 못 뵙고 다음주에 참석하겠습니다. 다음주엔 아마... 지난번 보여드린 제 시로 쓴 피아노 곡...
을 가져가게 되지 않을까 ...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아... ( 부끄럽지만;;;)
좋고 다정하고 따스한 하루 되세요!
(이곳의 댓글들은 언제나 감동입니다... ㅠ)
칠드런 오브 맨 / 알폰소 쿠아론
이유모를 불임으로 인해 가장 어린 인류인 디에고가 18년 4개월 20일 16시간 8분을 살다 살해된 날, 이유 없이 그저 살고 있는 런던의 공무원 테오는 커피를 사고 막 나온 가게가 테러로 폭파되는 일을 겪는다. 그렇게 절망과 불안으로 점철된 2027년, 테오는 숲에서 은둔자처럼 살고 있는 오랜 친구 제스퍼를 가끔 만나는 정도로 허무를 위로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민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피쉬단의 리더인 전처 줄리엔이 20년만에 갑자기 나타나고, 피쉬단이 보호하고 있는 불법체류자 소녀 ‘키’가 해안가까지 갈 수 있도록 통행증을 부탁하는데, 이로 인해 테오는 인류의 아이라 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생명을 위한 희생의 길을 걷게 된다. 과연, 불신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에서 테오는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대학생 시절 줄리엔과 함께 반정부 운동을 했던 신념 가득한 청년 테오가 자신의 아이를 잃고 ‘운명’이라는 허무에 빠져 공무원이 되고 도박으로 삶을 견딜 만큼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줄리엔에게 다시 선택되는 순간 자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후 이 영화를 지탱하는 핵심 감정이자 생존 전략은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내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판단하거나 자신의 입지를 위해 ‘생명’을 수단화하려는 인간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살얼음판 같은 시선 속에서 간신히 버틸 수 있는 건 타인을 향한 믿음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다. ‘키’가 줄리엔에게 가진 믿음과 줄리엔이 테오에게 가진 믿음, 그리고 테오가 제스퍼에게, 우리가 테오를 돕는 몇몇 등장인물들에게 가질 수 있는 믿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나마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런 편견 없이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음이 아닐까 해서. 특히 영화 속 ‘Theo(라틴&그리스어)’라는 이름 속에 상징되는 신적인 존재인 남자 주인공은 동물들이 따르는 모습을 보이며 자연에 부합하는 선택된 존재라는 인상을 준다.
202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2006년도 영화지만,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적인 난민 문제, 여전히 피를 부르는 종교 문제, 그리고 피부색으로 나뉘는 인종차별로 생명이라는 가치 위에 놓인 정치적 편견이 서로의 시야를 혼탁하게 만들고 삶의 본질을 잃게 만들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우리도 등장인물의 의복, 피부색, 언어 등의 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진 않았을까. 줄리엔에 이어 피쉬단의 리더가 된 루크가 영화 말미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무작위적인 폭격 속에서 새 생명의 성별로 인해 흠칫하며 머리를 굴리는 장면이 경멸스러우면서도, 그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크가 절규하며 찾은 인간의 존엄을 논하기 전에 색안경을 빼고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서 보지 못함이 인간의 한계이자 진정한 비극이 아닐지.
생명 경시의 끝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것이 그저 지어낸 극 영화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헬드라는 다큐 촬영 방식으로 찍어졌고 긴박한 몰입이 필요한 장면은 최대한 롱테이크로 찍어서 관객을 집중 시킨다. 이 영화 이후로 ‘그래비티’ ‘버드맨’ ‘레버런트’라는 굵직한 영화로 아카데미 촬영상 3회 연속 수상의 이력을 지니게 된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이 영화의 완성도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 영화는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연출, 촬영, 그리고 메시지라는 삼박자가 만들어낸 종합 예술로서의 최대치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여인 ‘키’를 돕는 전직 간호사 미리엄이 황폐화된 폐교의 교실 안에서 밖의 놀이터를 쓸쓸히 바라보며 테오에게 말한다. ‘놀이터의 소음이 사라지면서 절망이 찾아왔어요.’ 인류에게 종말이 올지라도, 어른이 된 우리가 아이의 웃음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을 살 수 있길. 그것이 내 행복과 무관한 일이 아님을 인류가 깨달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