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말과 사물을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말과 사물! 도저히 혼자서는 읽을 수 없는 책이죠. 셈나 중간에 참여하셔도 좋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4장 말하기의 분절 지칭 파생 언어의 사변형을 읽었습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한 부분이 가장 난해했던 것 같아요.
지지난 시간과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일반문법이 커버하는 이론들을 보았습니다.
에트르 동사를 중심으로 하는 명제이론에서 분절과 지칭, 파생이론까지.
분절(articulation): 일차적으로 명제는 또 다른 재현을 분절합니다. 하지만 이 분절을 더욱 정교화하는 것은 소사들이죠.
소사는 그 자체로는 의미도 없고 재현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소사들은 언어안에서 새로운 분절을 만들어 내죠.
문법안에서 그 자체로는 더 이상 재현적이지 않은 소사의 기능은 문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민을 야기하죠. 그래서
두 갈래의 길로 나아갑니다. 하나는 역사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각 민족마다의 자의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반면
또 다르는 하나는 감추어진 재현적 요소를 찾아내려는 처절한 노력이 그것이죠.
이런 움직임만 봐도 르네상스의 접근과는 완전히 다르죠. 언어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낱낱이 분석하는 것이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의 특징입니다.
지칭: 언어가 판단이라는 것과 대칭적으로 명명의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물을 XX라고 명명하게 된 말의 기원
언어의 양쪽에는 귀속이라는 에트르 동사에 의한 역할에 힘입어 "존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칭이라능 역할에 의한 "기원"이 있는 것 같다고 푸코는 말합니다.
언어의 기원은 어떤 사물에 대한 최초 명명의 계기- 그것은 아마도 자의적인 것일텐데- 과 명명되는 사물과 언어의 깊은 관계가 설명되어야 하는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흔히 생각하듯이 이해나 표현의 자연스럼 움직임이 아니라 기호와 재현의 가역적이고 분석가능한 토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가령, 배고프다는 것을 표현하는 어떤 외침이 있었다고 합시다. 그 외침이 단지 자신의 강한 배고픔을 표현하기만 할때 그것은 아직 언어가 아니죠. 다른 사람도 자신이 느끼는 감각과 외침사이의 관계같은 그런 감각과 외침의 유비관계가 확립되어야 하고, 배고픔이 아직 찾아오기 전에도 그의 외침은 자신이 내지르는 외침과 자신의 먹고자 하는 욕망사이의 관계를 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언어가 단지 이해나 표현의 자연스런 움직임이 아닌 것이죠...
그 다음은 파생,
"실제로 인간의 역사는 알파벳 문자의 등장으로 완정히 변한다" 서양인들의 전형적인 자뻑이죠. 알파벳은 사물과의 유사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요. 그래서 궁극의 재현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상형 문자는 여전히 유사성에 얽매이 있다는 것이지요. 푸코는 18세기 진보의 관념은 역사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언어와 공간과의 근본적인 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알파벳은 제한된 구성요소를 가지고 서로 다른 언어를 옮겨 적을 수 있습니다. 이런 알파벳의 특성때문에 전의법의 공간이 생겨난다고 하지요. "이러한 전의법의 공간이 없다면, 귀속관계를 확립할 수있게 하는 그 모든 보통명사로는 언어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명제의 이론에서 파생의 이론까지 일반문법이 말하는 것은, "언어는 분석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 공지 나갑니다.
5장 분류하기 1절에서 4절까지 살림쌤이 발제 입니다. 저도 강의마치고 곧장 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쩜 이렇게..... 깊이가 느껴지는 정리네요.
선생님 덕분에 복습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런 기운을 안고 '분류하기'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심지어 '말하기'와 매끄럽게
포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