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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로버트 트리버스의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읽기를 끝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책이라서 그런지 읽아내기가 껄끄럽고 내심 힘들었던게 아니었던가하고 생각 해봅니다...

마지막 부분의 대략적인 내용을 간추려보겠습니다.

 

11장 자기기만과 전쟁


 진리는 전쟁의 첫 번째 사상자라고 한다.

자기기만의 과정들을 전쟁에 유달리 큰 기여를 하는 데 특히 공격을 시작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 특히 그렇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4가지 원인은 다음과 같다.
1.과신

2.상대에 대한 과소평가(폄하)

3.자기편의 첩보 무시

4. 인력 낭비


이 모든 것은 자기기만과 연관이 있다.

일단 자기기만이 수반되면 의식적인 마음은 반대 증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 성공에 취해 멀리 나가게 된다.


침팬지에서 보여주는 자연에서의 습격은 나쁜 결정을 내리는 이들에게 향하는 부정적인 되먹임 바로 돌려준다.

즉, 자연 선택은 그 실수를 저지르는데 기여한 가기기만의 주체에게 곧바로 되갚는다.

인간들의 원시적인 전쟁에서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1만 년 전 농경과 가축의 도입으로 인류사회의 규모가 크게 증가한 시점부터 생겨났으리라 추정되는 전투에서 부터는 몇 가지 새로운 요소가 작용하기 시작했다.

1.정보 입수가 어려워지고,

2. 결과 예측이 더 어려워졌으며

3. 상대를 속일 기회가 더 많아졌다.

자기기만과 더 잘 들어맞았으며 과신이 핵심변수로 , 전면적인 살육을 일으킨 수 있는 요인으로 등장한다.

이제 나쁜 결정을 내리는 자는 죽지 않는다. (빌어먹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최소한의 진화적 되먹임조차 일어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아무 관련없는 민간인들이 군인보다 몇 배나 많이 죽었다.

권력자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그 결정 후, 죽을 자리에 다른 사람들을 내보낸다.

권력을 쥐고 나면 남의 관점, 남의 복지,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 노력이 줄어들기 때문에(1장) 호전적인 결정은 권력이 빚어내는 편향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먼저 자신의 눈을 멀게 한 뒤에, 목을 베는 것과 같이 미국이 시작한 많은 전쟁에서 보여준 여러 사례들에서 자기기만은 마약처럼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제1차 세계대전은 군대가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된 마지막 주여 전쟁이었고 제 2차 세계대전에서부터는 살육 상대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을 향한 대규모 공중폭격이었다.

이 후부터는 가기기만의 부정적인 되먹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자기기만자는 죽지 않고 다른 힘없는 사람들이 죽는다.)

그리하여 자긱기만은 역사를 삭제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폭격도 감행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증거를 인멸하기위하여 희생자를 완전 살해하고 증거가 될 만한 건축물과 장소를 폭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폭격이 약 500만년 전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이 이웃 집단의 구성원을 주기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던 "집단 간 살인과 전쟁"의 최근 사례에 불과 할 수도 있다.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해왔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현재에 자행되고 있는 종교적인이유로 인한 살해들과 수단과 콩고 등에서 일어나는 집단 강간과 살해들을 보면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모든 민족 집단들은 이 고대의 습성에 탐닉하고 있는 듯하다.


침팬지의 전쟁에서는 언어 자기기만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며 언어라는 요소가 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침팬지들이 어떤 방식으로 동조하고 협력하는 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는 공격한 뒤 그것을 합리화 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을 언어를 통하여 실행한다.

언어는 과거를 윤색하거나 부정할 기회를 현재와 미래에게 추가로 제공한다.

언어의 측면 중에서 전쟁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종교 일 것이다. 

 

12장 종교와 자기기만


종교와 자기기만은 중요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더 중요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상대를 유인할 수도 있다.

자기기만은 종교의 핵심도 심오한 진리도 아니지만 그 둘의 혼합물은 때로는 진리를 압도한다.


종교는 건강 및 질병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건강이 종교적 행동과 믿음을 선호하는 주된 선택 요인 일 수 있다.

종교 신앙과 모임이 개인의 생존, 면역기능,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증거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종교가 필요했다)

종교과 구애 때 흔히 듣는 음악도 면역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의술은 본래 종교에 속했고, 의술과 종교 모두 적어도 집단의 일부에게 강한 플라세보 효과를 제공한다.

종교는 몇 가지 방식으로 전쟁에 기여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 내 유연관계를 증가시키는 번식 체계로 뒷받침되는 내집단 심리를 부추기며, 집단행동의 토대가 되는 공통의 가기기만을 쉽게 제공한다.

게다가 독선이라는 한 가지 결정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종교 집단 내에서 살인은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구되기도 한다.

자신과 자신의 집단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이교도, 블신자, 타자를 죽이는 것이 도덕적 의무가 되는 것이다.

 

13장 자기기만과 사회과학의 구조


자기기만의 과정들은 지식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앞 장에서 보았듯이 자기기만이 조종사와 공무원, 전쟁 기획자 등 개인의 인지 기능을 왜곡시킨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지식 체계 자체도 마찬가지로 체계적으로 왜곡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식이 왜곡될수록 그것을 통제하는 이들로서는 왜곡을 하면 할수록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과학은 더욱 정교해지는 냉철한 기만과 자기기만 대항 메커니즘(反 자기기만 장치)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반면 인간에 대한 내용이 많은 사회적인 학문분야는 자기기만의 힘 때문에 편향이 더 커질 것이고 발전이 더 지체될 것이다. 


사회과학 분야들의 발달에 대한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어떤 주제에 대하여 사전에 지닌 도덕적 입장이 그 주제의 이론과 지식의 발달에 영향을 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정의가 진리보다 우선 할 수 있다.

거짓정의도 마찬가지로 진리보다 우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과학의 구조를 보면 물리학은 수학에 의존하고 화학은 물리학에, 생물학은 화학에, 원리상 사회과학은 생물학에 기댄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문화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사회과학 분야들은 생물학이라는 토대와 연결되는 것을 계속 거부하고 있으며, 그 결과 참담한 결과를 빚어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심의 이론”이다. 

인간이 가진 이기적인 본능에 대한 해석과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사회구조 이론은 현실과 미래를 제대로 예측 해 낼 수가 없다.


생물학을 인류의 사회생활에서 제거하면 무엇이 남을까?

 
언어조차 남지 않고 단어만 남는다.


언어는 지극히 생물학적인 것으로 단어 홀로 남게 되면 사람의 생각을 편향시킬 수 있는 마법의 힘을 휘두르게 되고 과학 자체는 수많은 자의적인 사고 체계 중 하나로 격하되어 왔다.


트리버스가 정신분석을 자기기만 연구의 자기기만이라고 칭하고 사이비 종교(사이비 과학)라고 평가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자기기만이 지식 분야의 구조를 다양한 방식으로 일그러뜨릴 수 있듯이 그 점은 진화생물학과 사회과학 양 쪽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사회과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점점 더 관련이 깊어지는 반면,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그 분야가 전공자에게 자기기만을 유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편향은 생명이 더 고차원적인 기능을 돕도록 자연히 진화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얼마간의 희망을 제공한다.

사이비 과학들이 장기적으로 갈 때에 그것들의 미래에는  승산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이 경쟁하는 분야들을 이기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4장 우리 자신의 삶에서 자기기만과 싸우기

 

“기만과 자기기만이라는 질병은 모든 인류 집단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어느 누구도 이 병에 면역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알아차린 편향을 스스로 의식적으로 교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과신과 무의식을 피하려고 노력하라. 들 다 저마다 위험하다. 그리고 둘이 결합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는 자기기만과 싸워야 하나? 그렇다. 


자기기만은 기만에 봉사함으로써 기만을 부추기만 할 뿐이다.

우리의 삶, 관계, 사회가 거짓말을 토대로 구축된다고 믿지 않는다.

자기기만을 갖춘 기만은 단순한 기만보다 도덕적 지위가 더 낮은 듯하다.

자기기만과 결합되면 상대방 뿐 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게 되며 자신이 쌓아 올린 구조도 망치게 된다.

그렇지만 유전자는 자신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도 유전자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사회에서 도덕과 윤리가 작동되고 유지되어왔을까?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진화 게임에서 내쫓길 수 없는 전략이다.

정직한 것, 혹은 정직하려고 애쓰는 것, 자기기만을 줄이는 것, 혹은 그러려고 애쓰는 것이 멸종으로 내몰릴 일이 없는 전략인 한 진화적인 장기 결과가 어쩔지에 대하여는 미래에 내맡기면 된다.

낮은 빈도지만 소멸당하기 않는 한 反자기기만을 인생관으로 내면전략으로 삼을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다.

(아..그래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구나!)

유전자가 처음에 우리 내면에 욕망과 충동의 기본 구조를 깔아놓아 우리 행동의 반복적인 특징을 수정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책감을 안고 매일 아침에 깨어나는 것보다 선량하고 더 의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낫다.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고 그 혜택이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달라지기를 원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바꿀 수는 없다.

이것이 자기기만의 진정한 역설이자 비극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한다면 자기기만의 경향과 맞서 싸울 수 있다.

대체로 의식은 우리 주위의 사회적 세계, 즉 정부와 언론의 거짓말에서부터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는 더 내밀한 자기기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훨씬 더 깊이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에필로그


 이 책의 제목이 나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왜 였을까?

아마도 과거에 자기기만의 과정들을 의식하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그것들을 무의식의 과정으로 보내버리고 자기기만이 주는 당장의 효용을 얻고 싶었던 것, 그리고 직면하지 않고 피해버린 것들로 인하여 문제는 더욱 커졌고 결국 그 후에 그 문제들의 본질들과 강제로 마주해야하는 순간들이 떠 올라서 그랬지 않을까.


또한 흔히 심리학으로 분류되는 자기기만의 문제를 진화생물학자의 시각을 통해 어떻게 설명되는지 알고 싶었다.

기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기기만은 생명이 탄생한 이래 강력한 진화의 도구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기만과 자기기만은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 우리와 존재한다.

여러 실험과 논문 그리고 자연의 증거들을 그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70세의 노학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담아내는 진심어린 충고라서 더욱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생물학은 매력적이지 않는가.

수학적 계산과 물리 실험으로 내놓는 답변이 아니라 기나긴 진화의 역사와 더불어 개인의 인생에 녹아있는 경험과 어우러져 답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을 불허하는 생물학의 창발적인 특성을 무시하고서는 인간을 다루는 사회과학 분야의 발전이 더욱 늦어질 것이라는 트리버스의 의견에 강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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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시간에는 철학자 '대니얼 대닛'의 마음의 진화를 읽습니다. 

진화론을 근간으로 자신의 철학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대닛의 철학세계에 드디어 진입합니다.

교재는 '사이언스 북스 ' 출판사의 '마음의 진화' 

진도는 1,2장 나갑니다.

참고도서는 '전중환'교수의 '진화한 마음' 과 대닛의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등을 참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세미나 시간에 뵈어요.

시간: 2019년 11월 29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수유너머 104 1층 세미나실 (L)

참석을 원하시는 분은 댓글을 남기시든지 반장에게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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