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들의 합창
- “철학원전강독세미나” 시즌1: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
이종현/수유너머N 회원
“디 프라게 나흐 뎀 진 폰 자인 졸 게쉬텔트 베어덴.(Die Frage nach dem Sinn von Sein soll gestellt werden.)"(<존재와 시간>, 1927, 5쪽)
이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제기 되어야 한다.” 저는 이 문장을 살짝 비틀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하이데거 세미나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제기 되어야 한다.”
정말 ‘제기’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독일어로 한줄 읽고 한줄 해석하며, 하루에 진도를 많이 나가봤자 다섯 쪽이 넘지 않는 이 세미나가 존재해야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지난 2년간, 수유너머N 사람들은 송년회의 시상식에서 ‘인문변태세미나상’과 ‘인문변태학자상’을 이 세미나 팀에 수여하며 일 년에 한 번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듯 조롱하고, 조롱하는 듯 존경의 염을 표했습니다. 그 존경의 염은 사실 “나는 하지 않을 테니, 너희나 해라. 그래도 너희는 참 대단하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하이데거 세미나는 수유너머N에서 현존하는 최장기 세미나가 되었을까요? 지난 2년 동안 책 한 권도 다 읽지 못하는 이 ‘무능력한’ 세미나는 어디서 존재의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속도전을 중요시하며 하이데거의 주요저작들을 한 학기 만에 다 읽어버리는 성격 급한 수유너머N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이 거북이 세미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사실 이 세미나에 참여한지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 답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제가 확실하게 느꼈던 것은 이 세미나 팀이 상당히 풍요로운 뒤풀이를 종종 갖는다는 점입니다. 우리 팀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최고급 중국술(수정방, 마오타이 등등)로 회식을 합니다. 아무리 고급술이라 해도 술만 마실 수는 없으니 귀하고 맛난 안주들도 곁들여 먹습니다.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저같이 근성 없는 사람도 여전히 세미나에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세미나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이 공술만 바라보고 참여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이들은 한 문장, 한 단어에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그 의미에 대해 토론하고,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골치를 썩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팀원들은 평일에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만 공부할 시간을 낼 수 있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왜 사서 고생하는 걸까요? 공부가 즐거워서, 하이데거의 사상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젊었을 때 하지 못한 공부가 아쉬워서 등등의 대답은 정말 재미없습니다. 저는 그들의 야망을 그 까닭으로 꼽고 싶습니다. 공부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헤쳐 나가 결국 철학의 고봉(高峰)에 도달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와 시간> 한 권을 떼자는 목표로 시작된 세미나는 어느새, 더 큰 프로젝트로 발전되었습니다. 이 책이 끝나면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독일어로 읽으면서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중 그 해당하는 부분을 불어로 읽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불어로 들뢰즈의 <천의 고원>을 읽으며 예전에 수유너머 학인들이 번역한 것을 꼼꼼히 교정할 것입니다. 아,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독일어로 읽겠다는군요. 그 과정이 얼마나 더 험난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는 플라톤의 <국가>를 고대 희랍어로 읽겠다고 합니다. 이 세미나 프로젝트의 시즌1 <하이데거>는 3년이 걸리며, 프로젝트 전체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인문대생이라 학부에서 제2외국어로 독어를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은 독일어를 처음 배우면서 <존재와 시간> 강독을 시작했습니다. 불어도 그렇게 한 달 동안 기본문법을 떼고 들뢰즈를 읽게 되겠지요. 처음에는 관사까지도 사전을 찾으면서, 괴상한 동사변화형이 튀어나와 원형을 추측할 수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번역본도 참고할 것 이구요. 그래도 그렇게 느린 보폭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징검다리 건너듯 가다보면 기존 번역에서 오역도 발견하고 그 정복감이 여간 시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세미나는 이처럼 고통 속에서 피어난 한 줄기의 사소한 즐거움을 중국술로 증폭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제목을 ‘변태들의 합창’이라고 지어봤습니다. 왜 변태인지는 어느 정도 분명해졌겠지요.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점에서 ‘도착(perversion)’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들의 현상을 굳이 ‘변태(metamorphosis)’라고 이름붙이고 싶습니다. 우선 다들 ‘근본 없이(?!)’ 독일어를 배우는 바람에 발음이 제각각 다릅니다. 파독 한국인 광부의 독일어 발음이라 하기에도, 터키에서 온 이주민 과일상인의 발음이라 하기에도 부적절합니다. 같은 단어를 발음했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한 번 소통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변태라고 밖에 할 수 없겠지요. 하나의 문자가 파생하는 수만 가지의 변이된 목소리들. 그리고 또 이들이 변태인 까닭은 인고의 무한한 시간 동안 이들의 외모가 변해 가기 때문입니다. <존재와 시간>의 한 챕터를 끝낼 때 마다 미간에는 주름살이 늘어나고 서서히 하이데거를 닮아 가겠지요. 그래도 인상 쓰는 하이데거가 되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며 꼬끼까까 즐겁게 웃어댈 것이고, 각자 서로 다른 하이데거가 되어 가겠지요. 그리고 플라톤의 <국가>를 다 읽을 때쯤이면, 하이데거와 헤겔과 들뢰즈와 니체 기타 등등의 얼굴이 뒤섞여 그들의 얼굴에서는 세미나를 시작할 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 도래의 시간성을 짊어지고,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도 우리 변태들은 한데 모여 하이데거의 문장을 함께 읽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하고 싶어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0분 수유너머N 세미나실에서 만나요!
반장 : 김민우(010-7799-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