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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31.

오대산 등산일지

 

23:09

수유너머 도착. 등산화를 벗기 전까진 아직 여행이다.

동료와 마지막으로 먹을 것을 나눠먹고 물을 마셨다.

명종님은 어제 타고왔던 자전거와 함께 집으로 귀가했다.

다음에 만날 약속을 했다.

 

23:00

내내 소라님이 운전했다. 나는 돌아가면서 운전을 하자고 아침, 점심, 저녁에 안부인사처럼 물었다.

자차나 자신이 렌트한 차가 아닌 차는 운전하는게 아니라고 배웠지만, 배운건 배운거고.

소라님은 운전하는 것에 부담을 그리 느끼지 않는다고 누차 얘기했다.

이게 힘들지 않다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10:00

차가 꽤나 밀렸다. 벌초와 여행일거라고 여겼다.

네비게이션이 실시간 교통정보를 토대로 막히지 않는 길로 안내하면

도리어 그 길이 막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여느 차에서 한번쯤은 이야기되었을 법한 이야기를 나누며,

대개의 등산 피크닉은 이렇지 않을까.

가끔 라디오를 듣다가, 폰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멀미마저 평탄하게 찾아왔다.

어제 봤던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명종님이 빌려온 갤럭시 노트 10을 구경했다.

사진은 이걸로 찍으면 되겠다.

그런가하면 이것의 부품을 만든 공장의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나 무겁기만하지.

무겁기만한 것은 너무도 가볍다.

 

12:15

평창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라면정식이었다. 라면정식이라.

케찹과 머스타드가 범벅된 고추 핫바를 좋아해왔었다.

왜인지 어느 순간 휴게소 음식이 그렇게 끌리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유사한 체험을 자주하기 때문일까.허겁지겁일 때 느껴지는 포만감으로서의 맛.

 

12:43

오대산 도착.

 

13:07

람쥐를 만났. 명종님의 손끝 두마디 앞까지 와서 서성였다.

다람쥐 발가락을 그렇게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다.

예전에 내가 조공을 바치던 람쥐가 있었다.

사람 먹으라고 냉동실에 넣어둔 잣을 꺼내 특정 장소에 두었다.

내가 그것과 가까이 있을 땐 오지 않고

딴청 피우는 척하면 잣을 가져가던 람쥐가 있었다.

 

13:39

볕을 내가 받을 땐 여름. 나무가 받으면 가을. 이때엔 빛의 속삭임이 다르게 들려온다.

이것에 대한 화답은 내가 할 수 없다. 새의 울음을 풀벌레가 받는다.

전에 올랐던 산행들이 생각났다. 어느 때이든 함께하면 좋을 사람들과 함께였다.

날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던 사람을 특히.

숨소리. 순간마다의 발 위치.

나중의 오름과 내림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나중이라는게 있을까?

계단 가장자리에 조그맣게 피어있는 분홍 들꽃. 지금처럼. 안녕. 해야. 해요.

해가 겹칠 때 그려지는 부드러우나 찌르는 실선.

떠다니는 공기방울을 윤이 나게 닦는 바람.

색종이를 찢을 때의 질감으로 다가오는 모기.

가끔 빨간 단풍.

 

14:20

비로봉 도착.

이곳의 산들은 몇 개씩 겹쳐져 있음을

이미 올라올 때 잦은 뒤돌아봄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겹쳐짐이 원호를 그린다는 것은 여기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곱겹으로 중첩된 아이기스의 방패에 둘러 싸여 있었다.

그러나 이 방패는 외부를 향해 있지 않고 내부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14:37

가져온 책을 쉴때 잠시 잠시 읽다가 비로봉에서는 조금 더 긴 잠시가 되었다.

지연님도 시집을 가져왔다. 박상순님의 시집이라고 했다.

 

14:57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이어지는 구간. 풀의 장벽이 시작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지나가려 해서 지나가게 된 것이지,

진로 방향이 가로막혀 있어 등산로가 아닌줄 알았다.

시야를 차단하는 풀의 장벽 밖에는 아까 보았던 광활한 산의 장성이 있다.

풀 사이로 얼핏 보이다.

 

15:15

개활지가 있었다. 헬기장 표시가 하얀 돌들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로 진지공사를 오는 병사들이 있었구나. 이전의 나의 모습이 그러했다.

둥그런 돌들을 모아 모양을 만든다. 그리곤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다.

돌의 옆 부분을 보면 페인트 튀긴 자국. 

페인트가 부식되어버린 돌들과 풀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제 곧 병사들이 올 때가 되었다.

그 옆에는 산마다 있는 돌로 쌓은 소원탑이 있었다.

별 관심이 없어 항상 지나치기만 하지만.

군대에 있는 동생 생각에 작은 돌을 주어 올리며 강녕을 빌었다.

 

15:20

나는 공을 던졌다. 개활지에서.

그건 나아감과 동시에 나아간 궤도를 따라 나에게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우울한 몰이사냥도 광포한 뒤쫓김도 아니구나.

과연 잠깐의 서성임을 포함한 수많은 체위가 발현됨에도, 온도는 대개의 범주에 머무른다.

다시 말하자면, 눈을 어지러이 하는 만화경이며 우리가 덮을 수 있는 이불이다.

저 공은 내 마음 안에서도 조용히 요동치고.

선생님 보고싶어요.

어깨 뼈를 잘 타일러 공을 꺼낼게요.

선생님께서 이렇게 눈 앞에 계셔도저는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15:50

상왕봉 도착. 이제 슬슬 하산이 시작되었다.

 

16:16

껍데기도 아니고 얇은 껍질만 남긴, 속이 완전히 발려져 있는,

고구마를 조금 잘라 수저로 안 쪽을 다 파먹으면 남는,

그런 바깥만 두르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이 텅빔이 어디서 끝나는지 궁금했다.

그것을 눈으로 쫓아 올라갔다.

그 끝엔 잎이, 셀 수 없는 잎들이 흐드러져 피어있었다.

사진으로 남겨서는 안 되었다.

 

16:33

우리가 낯설고 기이한 것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는 들녘 위에서 시원적으로 친숙한 것에 이르게 됩니다.

(언어로의 도상에서, 마르틴 하이데거, 신상희 역, p.170)

 

17:30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조심스레 의견을 나누었고 정확히 같은 의견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감시하기로 했다.

감시는 우리만으로 부족하여 다른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청할 것이다.

동료. 서로가 서로의 등 뒤를 밝힘.

나는 깜깜한 밤의 오대산이 어떠할지는 상상해볼 뿐이다.

그렇지만 이와같은 동료와 함께 거닌다면 지금과 같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쓰다가 막히면 위에서부터(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등산할 때, 길 잃으면 출발한 데로 되돌아가듯이’

오늘 새벽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내려올 때 다시 되뇌어 보니, 이 문장은 다른 층위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18:57

산채 비빔밥, 감자전, 도토리묵, 막걸리. 

 

23:53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참됨 자체에 대한 물음의 가장 내부의 견인력[기차]에 빈 선로를 마련해주기 위해 충분히 가차 없이 물을 때, 그 물음 자체가 강요하는 기이한 길이 지금 우리 앞에 점차 나타날 것입니다.

(철학의 근본물음, 마르틴 하이데거, 한충수 역,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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