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인문학__미래의권리들_후기

미라 2018.10.15 00:48 조회 수 : 108

분노

분노, 라고 답했어요.

강의는 아주 짧은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한 백인 남성과 철판과 철사 뭉치로 이루어진 모형이 등장하고

그 남성이 모형을 발로 차면

그 모형은 쓰러질 듯 하다가 다시 균형을 잡고,

그 남성이 발로 또 차고,

그러면 그 모형은 다시 균형을 잡고,

이런 모습이 계속 반복되는 동영상이었어요.

맨 앞줄에 앉아있던 제게 도희샘이 질문하더라구요.

이 동영상 보면서 미라샘은 어땠어요, 라고.

분노가 인다고 답했죠.

그때 까지도 그 모형이 제가 알고 있는 생명체의 모형일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제 답변에 이어서 다른 분이

살아있는 개가 발로 차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저 철사뭉치가 개 모형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마도 저는,

굳이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우리와 함께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하고 있다면 모두 존중받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아요.

그저 철사뭉치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감을 느껴으니 말이예요.

 

이상하죠.

그때까지도 저는,

로봇이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만이 로봇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미국의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안한 ‘로봇의 원칙’에 어떤 의문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거든요.

보고 있는 동영상이 로봇의 원칙에 어긋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거죠.

뭐지?...그런 괴리감 속에서

도희샘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생생하고 따끈따끈한 강의

강의 제목이 ‘미래의 권리들’인데요,

미래의 권리들이란,

동물, 식물, 로봇 등과 같은

비-인간 존재자와 관련된 권리들을 말해요.

물론 ‘미래’라고 표현했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의미 보다는

이미 와버린 권리들이라는 의미를 뜻하는 것으로서,

아마도 도래한 권리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런 권리들이죠.

 

도희샘이 동물, 식물, 로봇과 관련된 최근의 투쟁사례들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셨는데요,

그 중 식물과 로봇에 관한 것이 제게는 아주 신선했어요.

 

2008년 스위스에서

“식물이라는 생물의 존엄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는데요,

그 보고서에는,

‘식물에게 가하여지는 무차별적 가해에 대하여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적혀있대요.

연희동 궁동산 산책하다가 야생화 꺽으면 안될 것 같아요^^

 

로봇의 경우에도

국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로봇 관련된 헌장이 발의되고 제정되어왔더라구요.

로봇을 생명체 혹은 인격체로 감각한 경우이든,

로봇을 인간의 범주의 확장으로 이해하는 경우이든,

인간의 유전자를 결합시킨 ‘로보 사피엔스’가 인간과 대등한 비율로 존재하는 세상에 대비하려는 경우이든,

그도 아니면 그저 로봇이 지배할 세상이 두려워서이든

...그 어떤 경우이든

로봇을 규범체계에 권리라는 형태로 포섭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될 거라는 게

도희샘의 분석이예요.

 

되기의 길

그런데 동물, 식물, 로봇 등과 관련된 ‘권리’라고 하지만,

사실 그러한 존재자들은 인간과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바로 여기서 미래의 권리들을 상상하고 실천해 가는 두 가지 길이 있게 되는데요,

 

하나는, 미래의 주체들을 인간 범주에 포섭하여 확장시키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차라리 대리의 불가능함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되기’로 나아가는 길로서,

고래-되기, 미모사-되기, 00로봇-되기 같은 길이죠.

도희샘은 첫 번째 길이 자칫 인간중심주의로 환원될 것을 우려하면서,

두 번째 길, 즉 되기의 길을 제안하죠.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도희샘은

시대 의식이 드러나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하나 날리더군요.

두 개의 갈림길에서 선택한다는 것이 과연 인간의 몫일 수 있는가라는 반문을 제기하면서,

대리한다는 것은 -되기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벌써 와 있는지도 모른다, 라고요.

도희샘의 시대의식의 배경에는

아마도 동물, 식물, 로봇과 관련한 미래의 권리들의 문제가

단순한 법적 권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존재자의 삶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아름다운 강의

강의를 들으면서 갖게 된 의문들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평등의 근거에 관한 의문이예요.

평등이란 것이 당위성을 넘어서서 어떤 근거를 확보해야 할 경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그 근거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더라구요.

말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혹은 무엇무엇 때문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존재자들이 평등한 존재임을 보증해 주고 있다고 본다면, 어떤 난점이 있게될까?

 

의문 하나를 더 소개하면요,

동물이나 식물과 구별되는,

로봇만이 갖는 고유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건데요.

동물이나 식물은 모두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게 된 것들인데 비해,

로봇은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이 만든 것이잖아요.

내 맘에 안들면 부숴버릴 수 있는 장난감과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식물이나 동물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 것이고,

이 점이 미래의 권리들을 사유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기계 없이는 인간의 삶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비가역성의 관점과는 별개로

로봇만이 갖는 고유성들이 사유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강의란 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질문을 갖게하는 강의를 말하는 것이라면,

도희샘의 강의는 좋은 강의였죠^^

 

아름다운 강의란 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보이지 않던 것에 눈과 사유를 돌리게 하는 강의라면,

도희샘 강의는 충분히 아름다운 강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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